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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12-11
 제목  이갑성(李甲成, 1889.10.23~1981.3.25)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본관 : 전주
호 : 연당
활동분야 : 독립운동
출생지 : 대구
주요수상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본관 전주(全州). 호 연당(硏堂). 1889년 10월 23일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세브란스 의약(醫藥) 지배인이 되고, 1926년부터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이사로도 활약하였으며, 1931년 경성공업(京城工業)의 지배인이 되었다.
1933년 신간회(新幹會) 사건으로 상하이[上海]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 1940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였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회장, 1947년 과도입법의원을 역임하고, 1950년 민의원(民議院)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2년 국민회 최고위원에 추대되었으며,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정무부장을 역임하고, 1963년 공화당(共和黨)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장(光復會長)에 취임, 독립유공자들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진력하였고, 이준열사(李儁烈士)기념사업회 총재도 역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민족대표 33인 중 마지막 생존자, 1947년 과도입법의원(경기도), 1950년 민의원 의원에 당선, 1952년 국민회 최고위원, 1952년 전시내각 국무총리,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정무부장,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1963년 공화당 발기위원, 1965년 초대 광복회장, 이후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 등. 그의 이력으로만 보면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는 자조 섞인 사실은 그 논거를 잃게된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과 세속적인 출세의 이면에는 또 다른 그의 이름인 '이와모토 쇼이치'(岩本正一)라는 창씨개명과 그에 달라붙어 있는 친일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 목차고리 : 민족대표 3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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