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12-04
 제목  105인 사건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11년 12월 압록강 철교준공식에 참석하는 데라우찌 총독을 안명근(안 의사 조카)이 선천(역에서 신성중학 교장 윤 산온과 회담예정),평양등지에서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고 날조하였던 것이다. 1912년 봄 이 사건을 빌미로 신민회 관련회원 700여명이 구속 되었으며 이중 105인을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에 관련되어 윤치호, 이승훈, 이동휘, 김 구등 신민회 간부가 투옥되었다. 선천군에서도 100여명이 체포되었는데 일심에서 18명이 실형선고를 받았으며 실형이 언도된 된 분은 양전백 목사 외 모두 18명이다.

 

일제는 처음에는 총독을 암살하려 했다는 서북지방의 풍문을 조사하던 중 점차 총독암살기도가 실제로 추진되었다는 단서를 잡아, 추적한 결과 평양·선천·정주 등에서 기독교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총독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을 입수했다고 조작했다. 이 각본에 따르면, 1910년 8월 이래 서울 신민회 본부의 지휘하에 5차례에 걸쳐 '총독모살' 계획이 서북지방의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평양·선천·정주 등 9개 도시에서 이 일에 필요한 자금과 무기를 구입하는 등 준비작업을 수행했으며, 191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일 사이에 압록강 철교 개통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의선열차편으로 총독 데라우치가 서북지방에 오자 그를 암살하려고 각기 준비한 단총(短銃)을 지참하고 각 지방의 역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암살행위는 없었으나 이 사건을 암살미수죄에 해당된다고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그러나 신민회원이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총독암살 음모를 꾸민 사실이 없으므로 그 사실을 부인하자, 일본 경찰은 거짓 자백을 받기 위해, 당시의 총독부 경무총감 아카시[明石元二郞]의 지시로 이들에게 가장 악독한 고문을 자행했는데, 그 결과로 6백 명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 105명을 기소하였다. 1심(審)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105명은 불복상고를 제기하여, 2심에서 99명은 무죄석방되고 윤치호·양기탁·안태국(安泰國)·이승훈·임치정·옥관빈 등 6명만이 주모자로 몰려 4년의 징역선고를 받고 복역하였다. 즉, 1912년 6월 28일부터 경성지방법원에서 제1심 공판이 시작된 이래 1913년 10월 9일까지 5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먼저 9월 28일 제1심 공판 판결에서는 재판에 회부되었던 123명 중에 이창식(李昌植) 등 18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05명에 대하여 검사측이 구형한 형량을 그대로 적용하여 징역 5~10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유죄판결을 받은 105명은 모두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주모자로 주목된 윤치호 외 5명을 제외한 99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결국 1913년 7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윤치호 등 6명에게만 징역 5~6년 형을 선고했다.

 

 

 



   


A-Z




  인기검색어
kcm  316318
설교  164653
교회  118854
아시아  94693
선교  90958
세계  80690
예수  78424
선교회  68877
바울  64691
사랑  64608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