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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10-26
 제목  칼빈의 인간론
 주제어  [인간론]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칼빈에게서 지상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서로 상관관계에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사회학적인 이해와 철학적인 이해, 심층심리학적인 이해등 여러 가지가 있다. 칸트가 우리 인간학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세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이다. 칼빈은 인간을 인식하려면 두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즉 인간 인식의 두가지 단계이다. 첫 번째는 원초적인 선한 인간의 본성(타락이전)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직접 인식과 정의(공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진지한 노력이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인식은 종말론적인 인식으로서 지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식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매우 선하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과 진리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법의 씨앗이라는 말을 칼빈은 하는데, 참과 거짓을 분간하는 원초적인 씨앗으로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식의 씨앗이다. 기독교적인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신 진리의성령이 그 인식을 알지 못하더라도 모든 자연 과학의 발전의 통해서 진리의 조그마한 빛이 빛나고 있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 창조한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담에 의한 타락(원죄)으로 인해서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부패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적이고 본래적인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의 본성이 오염(썩은 뿌리 ; inherited ; original sow)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이해하려면 썩은 뿌리에서 썩은 줄기가 나오듯이 우리 인간은 원초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은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빗대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간의 두가지의 본질은 성서의 가르침에 의존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칼빈이 말하고 있는 타락한 인간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사람은 아첨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타락한 인간이므로 아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맹목적인 자애(自愛)가 있다는 것이다. 본 훼퍼는 "교회는 남을 위한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 Being for Others -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회를 포함해서 우리 자신도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 나를 희생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거지까지도 자기 가슴에는 거대한 궁전을 지어놓고, 맹목적인 자아에 빠져 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우 겸손한 척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용광로에서 불똥이 계속 튀어나오듯이 인간은 맹목적인 자애심(自愛心)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은 교만(Pride)이다. 칼빈은 인간의 교만을 두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교만으로서 하나님에게 불복종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인간의 정당한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위치에 설려고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서 이웃에 대한 멸시, 착취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니버는 지적인 교만이라고 한다.(교만에는 지적인 교만, 도덕적 교만, 이데올로기적 교만이 있다.) 네 번째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야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야욕에는 개인적인 야욕(명예감, 승리감)과 사회적인 착취구조 (비도덕적인 사회)가 있다.

 

타락한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노예의지"라고 한다. 어거스틴도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노예의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선을 행할려고 계획을 세우나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근원적인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과 사회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까지도 죄의 결과인 저주 아래서 신음하고, 탄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원죄의 비참성이다. 이러한 인간들은 자연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고난의 연대성을 갖고 있으며, 희망의 연대성을 갖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영광의 해방의 연대성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우리의 원죄(유전죄)는 생물학적인 번식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흘러간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원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역사 뿐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게 되었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죄의 그늘에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칼빈이 말하는 육체라는 말은 타락한 인간이 행하는 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보수적인 측면으로 칼빈은 이러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 영적인 생명이 죽었다고 보았다. 영적인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회복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영적 생명이 소생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자유의지문제

이에 대해서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부인 Origen은 선악을 구별하는 이성의 능력이고, 선악을 선택하는 의지의 능력이라고 말한다.(악을 행하고 선을 행할 때 인식할 수 있는 인지의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본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경우이다. 타락한 인간이든 아니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의지의 빛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은총의 도움을 받을 때 의지로 선을 선택하고 은총의 도움이 없으면 악을 선택하는 이성과 의지의 능력이라고 말한다.(칼빈도 어거스틴의 의견을 따른다. 우리를 조정하는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은총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우리의 의지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셀름(중세기의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은 근면과 정직을 이해하고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선택의 능력으로서 지성과 욕망이 혼합된 의지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정직함(바른 행위)을 위한 충분한 인도자(빛)가 될 수 있다.

 

이성의 빛에 순종하는 의지는 악한 감정(탐욕)의 충동을 이기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 선을 행할 수 있다."칼빈은 이런 철학적이고 낙관적인 인간이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 자체가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지는 죄, 원죄, 자기 자신의 탐욕에 의해서 인간의 의지가 자유의지가 아닌 노예의지가 되어서, 죄와 탐욕을 행할 수밖에 없는 의지로 전락해 버렸다고 말한다. 욕망이 인간 전체를(인간의 의지,이성) 정복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죄악에 빠져있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유를 상실하여 노예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이 해방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의지는 부자유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건설되는 것은 "은총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지 않으면 인간의 죄의 종, 탐욕의 노예로써 수갑이 채워진 의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정의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선과 사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인간의 의지가 은총에 의해서 해방되지 않는한 이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으로는 칼빈이 강조하고 있는 이성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인간의 타락, 죄의 노예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이성의 은사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칼빈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본다. 칼빈은 이것을 번갯불에 비유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영원히 인간이 선을 행한다는 것을 거부한다. 이성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재능들, 창조하는 은사들이 인간에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성의 역할 중에서 첫 번째 영역인 정치 경제 영역에서는 자연의 능력으로써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질서를 창조한다. 두 번째 영역인 학술(특히 수학)과 예술(노래, 미술, 조각)의 영역에서 학술과 예술의 은사를 말하고 있다. 예술적인 면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인간의 이성의 은사를 남겨주셨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역인 기술 분야에서는 의학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을 말하는데, 여기서 만약에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인간의 창조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면 이러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의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칼빈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업적을 쌓지만 이러한 일들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의지가 되어서 죄악에서 산다고 본다. 칼빈은 이성의 능력에 의한 인간의 업적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이성의 능력이 하나님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서 칼빈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 지혜,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은총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은총의 진리를 우리가 이해할려면 성령의 계시로써만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세 분야(정치경제, 학술분야, 기술분야)에 속한 사람들은 십계명의 첫째 돌판(1-4계명, 하나님외에는 누구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첫째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과 우리의 초월적인 신앙의 관계는 하나님의 영적 지혜와 진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계시, 조명, 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목차고리 : 신학 > 역사신학 > 종교개혁사 > 종교개혁자 > 존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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