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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7-10-12
 제목  파나마운하(Canal de Panamá)
 주제어  [파나마] [운하]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파나마의 지협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길이 82km의 운하이다. 파나마가 S자 모양으로 굽어 있어, 생각과는 반대로 운하의 동쪽이 태평양, 서쪽이 대서양이다. 정확하게는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갈 때는 북북서쪽,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갈 때는 남남동쪽으로 간다. 191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으며,1999년 12월 31일 미국 정부에서 파나마 정부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1880년 프랑스인 레셉스가 7년 내에 운하를 완공하겠다고 큰 소리치고 다음해에 양대양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이곳 지형이 수에즈운하와 달라 수평식으로 모래땅을 파고 지중해홍해를 연결한 것이지만, 파나마는 가로막은 땅이 너무 높고 지질은 암반으로 되어 있어 결국 9년이 지나 자금 사정과 기술적 한계(갑문식으로 설계를 변경했으나), 말라리아 황열병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프랑스에서 투자한 수 많은 갑부들은 파산하고 말았다.

레셉스가 손을 들고 난 후에도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를 잘라 운하를 만들면 떼부자가 되리라는 망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니카라과가 자국 땅에 운하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몇 달 못가서 정신을 차리고 공사를 중단했다.

19세기 중엽 멕시코의 방대한 땅을 빼앗은 미국은 중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과의 일전을 벌여 압습했다. 신대륙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20세기에 들어 서면서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1903년 미국은 파산한 레셉스의 운하 굴착권과 기계 설비 일체를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들였다.

이 때는 파나마콜롬비아의 한 주였다. 미국은 운하건설과 건설 후의 운하 운영권을 단독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 지역의 치외법권을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사들이려 했으나 콜롬비아 상원에서 무산되었다.  미국은 세력이 미약했던 파나마 민족주의 자들을 선동해 콜롬비아로부터 분리 투쟁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파나마는 독립했다.

 

이때부터 미국파나마 운하를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해 증기삽, 준설선이라는 새로운 건설장비와 유럽에서 1만 2000명, 서인도제도에서 3만 1000명의 노동력을 투입해 지상 최대의 대역사는 1914년 8월 15일 마침내 끝낼 수 있었다. 8만 1237t급 퀸 엘리자 베스호가 최초로 이 운하를 통과했다.

 

파나마는 남한 땅의 4분의 3에 불과한 작은 땅에 인구 260만명의 가난한 나라였지만 운하 통행료로 부자 나라가 되었다. 1968년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토리호스 장군은 1977년 미국과 담판을 벌여 1999년 12월 31일에 파나마 운하를 돌려받기로 약속받았다. 파나마 운하권은 2000년 1월 1일이 되는 것이다. 운영권을 돌려받는 날 중남미 6개국의 정상이 참여했지난 당사자인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보이지 않았다.

 

이 운하는 공학적인 경이로움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수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태평양 연안의 파나마시티에서 대서양의 콜론(Colon)까지 80km를 뻗어 있는 이 운하는 한해 12,000척의 대양을 운항하는 배가 지나다닌다. 옆에는 광대한 원시림이 양쪽에 호위하듯 서있는 좁은 운하를 지나며 거대한 배에서 보는 광경은 잊혀지지 않을 광경이 된다. 운하를 방문하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파나마시티의 북동쪽 언저리에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수문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 곳의 관람대에서는 수문이 작동하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또 운하에 관한 영상과 모형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다. 보트로 파나마시티의 서쪽 교외인 발보아를 출발하여 미라플로레스 호수의 수문을 지나는 다섯시간 짜리 투어가 있다.

 


헤이-뷔노-바리아 조약 Hay-BunauVarilla Treaty

미국과 파나마 사이에 체결된 협정(1903. 11. 18).

이 조약은 미국이 신생공화국 파나마에 금전적 보상과 보호 보장을 하고, 파나마는 그 대가로 미국에 파나마 지협(地峽)을 가로지르는 운하의 독점적 건설권을 부여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1903년 1월 22일에 체결된 헤이-에란 조약(HayHerrán Treaty)에서 당시 파나마를 지배하고 있던 콜롬비아에 비슷한 조건을 제공했지만,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콜롬비아 정부는 자국의 주권 침해라는 이유로 이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었다.

미국 정부의 묵인과 인근 해역에서 미국 해군의 우호적인 시위하에 파나마는 그해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고, 3일 후에 미국은 사실상 독립을 승인했다. 이어 11월 18일 워싱턴에서 파나마 대표 필리프 뷔노 바리야와 미국 국무장관 존 M. 헤이는 지협을 횡단하는 너비 16km의 운하 건설 부지를 미국에 영구적으로 양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이 운하지역을 통치하고 요새화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파나마는 그 대가로 독립을 보장받고 일시불로 1,000만 달러를 지급받았으며 9년 후부터는 연간 25만 달러를 지급받게 되었다. 이 조약은 1904년 양국에서 각각 비준되었고, 1914년에 운하가 완공되었다. 조약이 발효되면서부터 조약의 해석과 당해지역에서 미국의 파나마인에 대한 차별을 둘러싸고 간헐적인 분쟁과 고소가 발생했다. 1978년 미국이 파나마에 당해지역에 대한 통제권과 2000년 이후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이양한다는 세부적 조치들을 내용으로 하는 2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파나마운하 제원>
- 길이 : 82 km
- 너비 : 150 m
- 방식 : 3단 갑문방식(양쪽 3개씩 전체 6개 갑문)
- 통과선박대수 :38척/일
- 통과가능선박 : 7만 톤 미만
- 통과소요시간 : 8시간
- 건설기간인명손실 : 5,609명(풍토병 및 안전사고)

파나마운하 관련 연대기
- 1821년 : 콜롬비아공화국(파나마는 한 주로 존재)이 에스파냐의 식민지로부터 독립
- 1869년 : 수에즈운하 개통, 북미대륙횡단철도 개통
- 1879년 : 파리 국제학술대회에서 운하건설에 대한 회의(드 레셉스경 주도)
- 1887년 : 수평식 운하에서 갑문식 운하로 변경(홍수, 열병 등으로 중도 포기)
- 1903년 : 11월 미국의 도움으로 콜롬비아에서 독립.(미국이 프랑스로부터 건설권 인수)
- 1914년 : 파나마 운하 완공(미국 인수 후 공사기간 : 10년)
- 1977년 : 신 파나마 운하조약 체결
- 1999년 : 파나마 운하 운영권 미국에서 파나마정부로 완전 이양
- 2001년 : 현재 확장공사 진행 중

 

>> 목차고리 : 세계 > 아메리카 > 중앙아메리카 > 파나마

>> 참고고리 : 페르디난드 데 레세피(파나마 운하의 최초 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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