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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7-10-11
 제목  뭄바이(Mumbai)
 주제어  봅베이 [인도] [도시]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면적: 440 sq km (170 sq mi)
인구: 1500만명
주: 마하라시트라(Maharashtra)
언어: 힌디어, 마라티(Marathi)어
시간대: 협정 세계시에서 5시간 30분이 더해짐
전화 지역번호: 022

역사

현재 뭄바이를 이루고 있는 일곱 개의 섬은 원래 어부였던 콜리(Koli)족의 근거지였고 지금도 콜리족의 오두막집이 뭄바이의 일부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이 섬들은 대대로 힌두 왕조에 의해 다스려져 왔지만 14세기에 이슬람의 침입을 받았고 1534년 구자라트(Gujarat)의 술탄에 의해 포르투갈에 할양되었다. 포르투갈이 다스리는 동안 섬들에는 큰 발전이 없었지만 그중 가장 큰 섬이 1661년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하는 브라간자의 캐서린(Catherine of Braganza)의 지참금에 포함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665년 영국 정부는 일곱 개의 섬 모두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했지만 3년 후 이 섬들을 일년에 10파운드라는 명목상의 임대료만 받고 동인도 회사에 임대했다. 봄베이는 곧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는데, 입지가 좋은 항구를 끼고 있는데다 종교적 자유와 토지 제공에 대한 영국 정부의 약속에 매력을 느낀 인도 상인들이 각지에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민자 중에는 파르시스(Parsis)와 구자라티스(Gujaratis)의 주민들이 대규모로 옮겨온 경우도 있었고 고아에서 포르투갈의 박해를 피해 옮겨온 남인도의 힌두교 신자들도 있었다. 이들과 후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이 봄베이의 유명한 복합문화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 채 20년이 되기 전에 동인도회사의 지휘권이 수라트(Surat)에서 봄베이로 옮겨졌고 봄베이는 인도 서해안 전체의 교역 본부가 되었다.

 

봄베이의 요새는 1720년대에 건설되었고, 곧 토지 개간 사업으로 일곱 개의 섬을 하나의 큰 땅덩어리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은 세기를 넘어 지속되었다. 봄베이는 18세기 동안도 꾸준히 성장했지만, 1818년 영국이 마라타(Maratha) 제국을 패배시키고 인도 서부의 상당부분을 합병하기 전까지는 다른 지역에서 다소 고립되어 있었다. 증기선이 도입되고 1853년 봄베이에서 타나(Thana)를 잇는 아시아 최초의 철도가 건설되면서 봄베이의 발전에는 박차가 가해졌다. 이듬해에는 목화 제면소가 세워졌고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해 영국으로의 목면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봄베이에는 목화 붐이 일었다. 1864년에는 요새의 성벽이 해체되었고 주요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해 새롭게 획득한 부에 걸맞는 도시 풍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봄베이의 선창이 크게 확장된 것으로 인해 인도의 주요 항구로서의 봄베이의 입지는 더 굳어졌다.

 

봄베이는 인도 독립 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1885년에는 최초의 인도 국민 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가 개최되었고 1942년에는 '인도에서 물러나라(Quit India)'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독립 이후 봄베이는 '봄베이 주(Bombay Presidency)'의 수도가 되었으나 이 지역은 언어적 기반에 근거해 1960년 마하라시트라와 구자라트로 나뉘었다. 그 이후 봄베이의 경제적 성공에 마음이 끌려 몰려든 많은 농촌 이주민(주로 마하라시트라 출신)들로 인해 도시의 기본시설이 부족해졌고 인구 통계도 변화되었다. 마라티(Marathi)를 지지하는 우익 지역주의 운동이 일어났고 현재의 시브 세나(Shiv Sena) 지방자치 정부가 그 선봉에 서 있다. 그들이 비(非) 마하라시트라 인과 이슬람 교도들을 차별함으로 인해 봄베이의 다문화적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조된 지방 자치주의의 긴장은 1992년의 유혈이 낭자한 아요다(Ayodhya) 이후 폭동으로 분출되었고 1993년 3월 하룻동안 13개의 폭탄이 터져 도시 이곳저곳이 엉망이 되는 사건이 뒤따랐다. 폭동에는 시브 사이낙(Shiv Sainaks)이 연루되었고 폭발에는 봄베이의 마피아가 연루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비록 정치적 위치와 조직된 범죄 사이의 구분이 마피아를 정확하게 지목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1996년 시브 세나는 공식적으로 도시 이름을 뭄바이로 개칭했다. 이 변화는 언어상의 혼란을 초래했고 마하라시트라 주 정부가 이 도시가 마라티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었다. 새 밀레니엄을 맞은 뭄바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도시 인구의 절반이 여전히 수도와 전기 없이 살고 있다. 뭄바이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하루 2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영향을 받는다는 최근의 보고서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조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본토에 조성되고 있는 위성도시인 뉴 봄베이(New Bombay)가 이러한 도시 환경에서 오는 압력을 다소 완화시켜주기를 바라고 있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남아시아 >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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