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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10-06
 제목  초대 교회의 종교적 배경
 주제어  [교회사] [초대교회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초대 교회의 宗敎的 배경

 


1). 유대인의 종교 


  유대교의 창설자는 모세이다.1) 비록 히브리민족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며 그가 그 후손들에게  유일신 사상을 물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적 신앙을 조직화하여 후세에 끼친 것은 모세였다. 모세는 어느날 양을치다가 호렙이라는 산에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애굽에 내려가 430년동안 종살이하던 그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모세를 산으로 불러 유대인들의 경전에 핵심이 되는 법전을 받아 그들에게 전하여 주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가까이 하셨고 이 법전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에 중심이 되어왔다. 유대교(Judaism)는 (헬 Ioudiqmos 유다이스모스) 유대인들의 신앙과 생활을 나타내는 말이며 교의(敎義)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그와 계약관계가 있는 유대인의 공동체 생활방식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유대인이란 국적이 이스라엘인으로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2)

유대교는 기독교의 전신(前身)이며 모태이다. 그리고 또하나의 종파인 이슬렘교3)가 발생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4)  유대교의 명칭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기원전 100년에 기록된 제2 마카비서이다. 그리고 신약성서에는 갈라디아서 1: 13절에 나타나 있다. 

기독교의 기원이 되는 예수님도 유대인이셨다. 그리고 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살던 팔레스타인에서 발원이 되었고 그 최초의 제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를 연구하는데 신약시대의 종교적 배경에 있어서큰 영향을 끼친 유대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북방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 나라에 망하여 식민지가 되었고 남유다는 586년에 바벨론에게 나라가 정복되어 많은 에리트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면서 유다 나라는 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70년간의 포로 기간중에 여호와의 신앙을 지킨자들이 B.C 539년 페르샤가 바벨론 나라를 정복한 뒤 고레왕의 칙령에 의하여 스룹바벨을 선두로 유대인들은 귀국하게 되었다. 그들은 돌아와서 무더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70년간의 포로생활이 무희미한 허송세월의 생활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바벨론 포로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유일(唯一)신앙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셨고, 성전은 찾아갈수 없었던 그들은 회당을 지어 회당중심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흩어졌던 민족의식을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뒤부터 가는곳마다 회당을짖고 여호와의 율법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후대에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하는데 큰목을 차지하게 되는 장소가 되었다.

  오늘날 유대교는 세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정통파로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고수(固守)하는 파이며. 둘째는 자유파로서 현대인들에게 부적당한 옛 의식과 조문을 포기하고 유대교의 의식을 현대인들에게 적응시키려는 혁신파이고, 셋째는 중간파로서 첫째와 둘째의 중간적 태도를 취하는 파이다.5)


2) 유대인의 종파


  유대인의 종파들은 포로 이후에 여호와의 신앙에 미온적인 상태에 머물자 경건한 유대인 단체들은 서로가 격려하기 시작하였다. B.C 450년경 말라기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자들이 피차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되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라는 말씀중에6) 여호와앞에 있는 기념책은 파사 왕궁에 보관되어 있는 일기와 유사하다. 거기에는 모르두개가 아하수에로 왕을 위하여 행한것과 같은 공헌들이 왕의 앞에서 기록이되었듯이 자기들의 이름이 여호와의 기념책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심판의 날이 동터올 때 하나님의 의로운 태양이 떠올라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게될 이유가 있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종파를 하나님을 경외하는자와 같이 “경건한 사람들(the godly people) 에서 하시딤의 기원(紀元)을 추적해 볼수있다.7) 그들은 2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위기에 봉착했을때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율법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은 그 누구도 따를수없다.

또한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와 그의 참모들이 유대종교와 국민성의 특이성을 말살하고자할 때 핫시딤들은 굳굳이 서서 목숨을 걸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을 율법을 위하여 기꺼히  자기 자신을 바치는데 앞장선 사람들이다.8) 그리하여 그들은 마카비 전쟁속의 핍박 가운데서도 종교의 자유를 다시 얻었고 성전이 회복되어 이스라엘 하나님께 순수한 예배를 드릴수 있었다. 

(1). 대 제사장




  유대인들의 종파가 생기게된 배경를 아래 도표를 통하여 함께 이해하여 보기로하자.



에스라. 느혜미아             사 독              헬라주의

  (b.c 536-432)            (b.c 1025-953)        (b.c       )

  

                핫시딤(경건한자들)

                   (b.c 160-143)         

  

서기관          바리새파                   사두개파            (랍비)           (분리주의자)         에세네파        (헤롯주의)




(2) 바리새파 (행5:17 유대인의 한 종파)


시몬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의 통치때에 하시시딤과 하스모니안들과의 동맹이 붕괴되었는데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역사적인 사건들속에서 독특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이다. 이때 요한 힐카누스와의 관계를 끊은 것이 하시딤이다.

위와같이 바리새파의 이름에 관한 설명은 하스모니안과의 동맹에서 분리하거나 혹은 철회한데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불확실하다.  다만 이해할수 있는 것은 하스모니안과 분리되었다는 뜻에서만 이해할 수가 있다.9)

또한 의식상 정결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율법을 담장밖에있는 이방인들과의 엄격한 분리(分離)와 정결법에 대한 해석이 유대인들과 다른 사마리아인들과의 분리를 초래하였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처럼 정결의 법이나 십일조에 아주 철저하지 못한 동료 유대인들을 멀리하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신약시대에 살았던 유대 백성들중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친자들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뒤부터 유대교의 본질적인 내용을 보존한자들이기도 하다. 바리새(Pharisees)란 말의 뜻은 본래 분리된자(separated), 또는 분리자(Separatist)란 의미의 뜻을 가진 셈족의 말에서 유래되었다.(눅7:36 행5:34)10)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자들로 유대의 청교도들이라고도 할수 있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이들의 기원을 A.D 145 년 하스모네 왕조와의 불화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그러나 마카비오서는 하시딤 즉 “경건한자들”이라 불리는 민족주의자들을 바리새인이라 명명하기도한다. 이들은 장로들의 전통과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며 대부분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 길거리에서서 기도하고 구제를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하고 금식을 즐겨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종파들이라 할수 있다. 성경의 대표적인 바리새인으로는 니고데모와 가말리엘의 후예인 바울이 있다.11)이들의 신앙관은 ①. 조상들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탈무드나 미쉬나 등의 규례집이 있다. ②. 영혼의 불멸을 믿으며 부활과 내세를 믿는다.③. 행위 구원론을 가르치며 율법의 내면적인 뜻보다.외면적인 준수를 중시하여 외식적인 종파이다.④. 회당중심의 신앙생활을 한다.12)  바리새인은 예정론을 믿었다. 사두개파들은 각자의 자유 의지에 의하여 인생의 역사가 좌우된다고 하지만 바리새파는 하나님의 예정을 믿었다. 그리고 바리새파 유대인들은 천사론을 믿었다.13) 그러나 결국 바리새인들의 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들이다.


(3). 사두개파( The Sadducees)


사두개파는 모든면에서 바리새파와 대조를 이룬다. 사두개라는 이름은 솔로몬시대의 제사장 사독14)의 가문의 후예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수 있는데 사두개라는 이름은 안티고누스(Antigonus)의 제자 사독크라는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요한 힐카누스가 통치하던때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제사장들은 아니었으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로 헬라화 정책을 추진하며 많은 재산을 소유한 귀족계급으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들의 교리는 구약성경외에 조상들의 모든 전통과 해석을 부인하며 둘째는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고 내세의 존재도 죽은자의 부활도 믿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고 인간의 절대적인 자우의지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합리주의와 현실주의에 만족해하며 신앙은 성전 중심의 생활을하며 정치적인면에 많이 치중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바리새이들과의 사이에 사상적인 면 때문에 항상 불화와 갈들의 왈력이 있으며 이로인해 불리된자들이며 A.D 70년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이 멸망함으로 이들의 권력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밖는데는 바리새인들과 하나가되었다.  이들의 신앙은 철저히 바리새파와 적을 이루는데 ①. 구약성경외에 모든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②. 영혼의 불멸을 부인하고 부활과 내세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③. 하나님의 에정 섭리를 부인하고 자유의지를 믿었다.15) 인간은 자기 운명에대하여 자기가 책음을 져야 한다는것이다.16) ④.구원의  필요성을 부인하고현실주의에 만족해한다. ⑤. 성전중심으로 활동을 하며 전치적이고 귀족적이다.



(4). 엣세네파(The Essenes)


신약시대의 유대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더불어 엣세네파는 제3의 당파중의 하나 이지만 그들이 했던 것 만큼 대중생활에 활약하지는 못햇다. 엣세네파에 대하여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B.C20- AD 50년)가 엣세네파에 관한 최초의 정보를 제공한사람이다. 그들의 이름에 관하여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에세네파란 명칭은 아람어의 핫샤(하시아)로 “경건한” 혹은 “거룩한”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엣세네파는 성경이나 탈무드에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으나 요세프스(Josephus)나 필로(Philo)의 글에는 언급이 되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주전 150년경 파샐된 엣세네파는 금욕적인 종파로로서 사해 근방에서 많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엣세네파라는 이름은 창설자의 이름에서 나온것이라기 보다는 종파의 도덕적 사회적 특색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이름의 뜻은 사색과 헌신이란 설고 있다. 그들은 청빈한 독신생활과 수도원적인 은둔생활을 특색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후 대부분 팔레스틴 교회에 흡수 되었고 많은 학자들은 엣세네파를 쿰란(Qumran)종파와 동일시하는 학자도 있다.  이들의 신앙은 ①. 구약성경만을 믿고 바리새인들이 믿는 구전과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②.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준수한다면 이들은 율법의 뜻을 명상하며 사색한다.③. 금욕적이어서 결혼을 반대하고 공동 생활을 위하여 재산을 포기한다. ④. 성전 제사의 세속화를 개탄하며 예루살렘을 피하고 동물제사를 거절하였다.17) ⑤. 엣세네파 사람들은 예정론을 믿는데 오히려그들은 바리새파보다 더 심하다고 요세푸스는 말한다. 18) 그리고 요세프스의 기록에 보면 헤롯시대에 바리새파가 약6000명아상이었다고하며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대략18000명정도이며 엣세네파사람들이 약4000여명정도였다고 한다.19)   그리고 그들의 교리를 보면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보며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고, 의의 열매를위해서는 노력을 그들의 의무로 여기고 있다. 또한 성전 예물을 드릴때에는 특별한 정결규례를 따라 예물을 드린다. 따라서 그들의 소유는 공동소유와 공동 생활을 하며 그들의 전번적인 삶은 독신주의자들이라고 하는 필로와 플리니의 말을 요세푸스는 뒤받침해주고 있다.

(5). 헤롯당(Herodians)20)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 3:6절 마22:16절. 막12:13절)

헤롯당은 문자 그대로 헤롯이나 헤롯왕조의 지지자들을 말한다. 고대 문헌에서는 헤롯단이 헤롯왕조의 측근들이었으며 예수에 대항하여 바리새인들과 협력하여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선자들이다.

고울드( Gould 1896) 는 헤롯당에 대하여 아래와같이 말한다. 헤롯당은 유대인들 가운데 로마 행정 장관의 통치에 은근히 반대하여 헤롯의 아들들이 통치하는 민족적 왕국의 회복을 소망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리게네스도 케사르에게 공물(貢物)을 기꺼이 바치려고 하는 사람들의 그 반대자들이 헤롯당이라고 물렀다고 하며 워터툴리아누스는 헤롯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헤롯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초기 학자들의 해석에 확신감이 결여되었다고 반대하고 있지만 필자는 비커만의 해석을 동의하고 싶다. 비커만은 헤롯당원들을 헤롯 안디바의 추종자들이라고 정의한다.21) 그리고 헤롯당은 바리새파와는 달리 그들ㅇ느 종교 집단들이 아니라 오히려 헤롯왕조의 이해와 관계된 정치 집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헤롯당은 당시 유대 국민들중에 헤롯왕조의 가시적 번영에 유혹된 무리들로 그들의 소원이 헤롯왕조를 통하여 성취할수 있으리라는 기대와함께 이 왕조에 아부하고 동조한 집단들을 지칭해서 부른 이름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반대하기 위하여 이 헤롯당파들과도 손을잡고 예수를 죽인 자들이22)지만 필자는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상황 윤리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자기들의 유익에따라 신앙을 갖고있는 사람들이다. 

 





(6). 열심당원


마태와 도마와 및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하는 시몬과“(눅6:15절)


열심당원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히브리어 콴나임 혹은 아람어 콴아나야란 용어로 불렀다. 누가가 셀롯인 시몬이라고 부른 사도는 다른 복음서에는 가나안인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요세푸스는 이들의 이름을 라틴어 시카리(sicarii)의 헬라어 형태인 시카리오이(sikarioi)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단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한다.

열심당원은 바리새파의 작은 당파로 율법을 충실히 지키려 하였으나 유대교의 다른 종파들로부터 상당한 적의를 일으킨 자들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편에 강도가 함께 달려 죽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보다는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쳤는데 그가 열심당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강도처럼 로마 관리들과 싸우다가 잡힌 사람이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운 투사들이었던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밑에 있던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나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바라바를 놓아 주라고 했던 이유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심 당원들은 A.D 66년에 있었던 대 폭동의 주동세력 역시 그들의 종교적 열심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66년 9월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군을 지휘하려고했던 메나헴의 추종자들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66년과 67년 겨울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폭도들중의 극단론자들과 관련이 있음이 확실하다. 요세푸스는 그들을 강도라고 부르는 자들과 세롯당을 이들과 괄련이 잇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음모와 폭동, 속임수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투쟁하였다. 열심당은 때로 도적이나 산적, 또는 강도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로마와 대항하기 위하여 외로운 투쟁을 하였다. 역사적으로 열심당이란 구약의 비느하스(Phinehas)에서 따온것이다.23) 비느하스는 바알브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사라지고 도덕적 나태함이 고조되자 그것의 갱신을 주장하였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시므온이라는 제자가 열심당원이었다.24) 이들 당파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은 약 3만명정도 였고 대부분은 당파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았다.


(7) 서기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마20:8절)


  서기관은 헬라어(        ) 그람마테이스로서 “글쓰는 솜씨가 숙달된” 이란 뜻이다. 서기관은 구약 시대부터 글을 베껴쓰는 사람으로서 가족의 전문적인 직업인데 이 직업은 레위 지파에서 배출이 되엇다. 레위인은 제사장의 직무를 기록하였고 왕실의 서기관은 성전 수리비로 모금한 기금을 계산하여 기록하고 또한 율법을 복사하기 위하여 갖추어 놓는일이 레위인의 서기관의 임무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예수님때에 바리새인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함께했던 자들이며 종교적으로는 외식종파들이다. 마태복음 15:1절과 23:13절에는 외식종파이고 마태복음 23:15절에는 복음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었으며 마23:25절에는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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