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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28
 제목  자이나교(Nigantha:尼乾陀)
 주제어  [비교종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자이나교의 창설자

; 마하비라(인도 제2계급의 인물)는 30세시 그 부모가 별세하기까지는 극도의 호화스런 생활을 하다가 입도한 후 수도 생활을 하기 13년간 비상한 난행고행 끝에 성도 하여 열반의 경지에 이르름. 성도후 수도사의 은둔생활에서 나와 72세의 임종까지 그의 깨달은 도를 선포하기에 전력을 기울임.

2. 경 전

'아가마스'(계율의 뜻)라는 것인데12편으로 됨. 대개는 그의 서거후 200년 이후에 기록된 것. 경전을 이해하는 교도는 많지 않으며 일부만 매일 규칙적 읽을 뿐임.

 

3. 교 의

(1) 신관 - 인도교의 신관을 배척하며 기도를 부인. 다라서 사라미이외에 다른 숭배할 존재를 인정치 않음. 그러나 후일에 교조 마하비라 자신이 신격화되어 교도의 숭배의 대상이 됨.

(2) 인생관 - 인간관은 이원론(사람은 악한 물질과 영원한 영으로 구성)임.

(3) 인과율 - 인도교의 인과의 법칙과 윤회 전생설을 믿음.

(4)구원관 - 영이 육에서 해방 받는 동시에 우주적인 인과율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

(5)윤리관 - 개인적으로 극단적인 금욕주의 강조. 사회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대한 사랑과 미움, 동정과 냉담, 협조와 손해 끼침 등을 초월해야 한다고 함. 마하비라가 그의 교도들에게 오계(불상생, 불망어, 불도취, 금여색, 금집착)를 줌.

(6) 사회 생활 - 자이나교의 독신자가 되기 위해 속새 생활 절대 불가능. 승가 제도 창설하여 공동생활.

 

4. 자이나교의 종파

·백의파 - 여성의 수도와 구원을 인정하며, 여성을 위한 사원을 허락,

·탈의파(공의파) - 여성의 구원을 인정치 않음. 남자로 환생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 다고 봄.

 

5. 자이나교의 현황

·분 포 - 인도 북부, 서부, 남부에 분포.

·신 도 - (1951년 인도 정부의 집계) 1,618,406명

·교 세 - 국내외에 확장하고자 선교 활동을 일으키고 있음.

 

6. 결 론

교조의 숭고한 인격과 종교적 정열, 교도들의 종교적 목적을 위한 자기 부정의 정신, 인도교와는 달리 영혼과 육체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점, 생명 존중의 사생과 함께 동물 애호의 정신, 계급 부정 등.


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신을 부인, 자력 구원의 신앙, 지나친 금욕주의, 정상적인 감정까지 부인, 여성을 죄악시 하는 점. 무엇보다 자이나교의 구원의 목표인 열반은 불교의 그것과 함께 가장 소극적 일뿐 아니라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할 것이며, 장려해야 할 만한 정서 즉 사랑, 동정심까지 끊어 버려야 한다는 것은 이해 불가능한 교리임.

3 자이나교의 장단점


나교라고도 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불타에서 연유하여 '불교'라는 호칭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조의 출신과 인간형성, 지리적·문화사적 배경, 교단 성립의 경위도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으므로,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 무형의 유산에 관해서 자이나교를 무시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불교와 교단간의 밀접한 교섭은 양종교의 원시 경전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전승에 의하면, 1세기 말경 공의파(空衣派)와 백의파(白衣派)로 분열되고, 다시 여러 지파가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시 경전에서는 비교적 상세한 교의가 정립되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불교만큼 다채로운 발전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인식론이나 논리학은 불교의 영향이 현저한데, 오랫동안 산일되어 있던 불교의 작품들이 최근 자이나교의 승원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교도 수는 인도 전역에 걸쳐 180만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상호부조적인 성격이 강하고 상인이나 금융업자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그 실천생활상의 특색으로서 승려를 통하여 불살생(ahins)이 엄격하게지켜지고 있다. 교의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주창한다. 즉 생명(jiva)과 비생명(ajiva)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생명은 다시 공(空:운동의 원리)·비공(非空:정지의 원리)·물질재료·허공·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 형이상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다음 7종 또는 9종(선·악을 포함하여)의 실천론적 계열이 모든 가능태로 제시된다. 즉 생명·비생명·선·악·누(漏)·박(縛)·차(遮)·멸(滅)·해탈(解脫)이 바로 그것이다. 생명이 외적 대상의 영향을 받아, 물질재료가 생명 속에 누입(漏入)하고[漏], 그것이 물질적 업(業)을 형성하여 생명을 속박한다[縛]. 그리고 외적·내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업물질의 누입을 정지시키고[遮], 또한 이 업물질을 멸(滅)한다. 이 멸한 상태가 해탈이다. 해탈에 이르게 하는 덕목으로는 정견(正見)·정지(正知)·정행(正行)으로 요약되거니와,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오계(五戒)에 해당하는 오금서(五禁書:브라다),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삼기율(三紀律:구프티), 오용심(五用心:사미티)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

 

★ 자이나교의 양대 분파

 

1. 공의파 [空衣派, Digambara]  : 공기를 의복으로 한다는 인도 자이나교(敎)의 분파.   

 

백의파(白衣派)와 나란히 2대 분파를 이룬다. 디감바라를 번역한 말로, 나형파(裸形派)를 의미하는데, 현재 이 나형은 극히 일부의 고승에게만 허용되고 있다. 백의파에서 전승되어 오는 경전(經典)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경전을 가지고 있는데, 내용은 반드시 일정하지 않고, 4 ~5세기 쿤다쿤다가 지은 경전을 신봉하고 있다. 교도는 인도 각지에 퍼져 있으며, 17세기 이래 비스판티파(派) ·테라판티파 ·타라나판티파의 3파가 있다. 뛰어난 사원 건축이나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프라크리트어(語)인 자이나 샤우리셰니어로 된 2차 경전과, 아파브란샤어로 된 경전의 방대한 문헌은 인도 언어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9세기 이후의 것은 주로 카나라어로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2. 백의파 [vetmbara, 白衣派]  

자이나교에서는 수행자는 무소유(無所有)의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당초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행하였는데, 마침내 1세기경 백의를 걸치는 것을 허용하는 일파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공의파(空衣派)와 2파로 나뉘어졌다.

 

현존의 자이나 경전 《싯다르타》는 백의파의 것이며 공의파(空衣派)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백의파는 많은 분파로 갈려 서인도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 자이나교의 이론

 

 도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도 삶을 태어나고죽고 다시 태어나는 끝없는 윤회와 속박으로 보며, 그원인은 개개인이 지은 행동(까르마)이라고 믿는다. 따라서윤회에서 해방되려면 까르마를 소멸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까르마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자이나교에 있어서 구원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개인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되므로 신은 자이나교에서 중요시되지 않는다.

A.D. 8세기에 자이나교는 북인도를 중심으로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여 여성의 출가나 구원을인정하는 보다 대중적인 Svetambara파(백의파 : 나체를 거부하고 흰옷 착용을 인정한데서 오는 명칭)와 남인도를중심으로 보다 보수적이고 수도승은 옷을 입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하는 Digambara파(공의파:나체로 수행)로 나뉜다. 그러나 순수한 형태의 자이나교도는 현재 약 200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주로 봄베이와 구자라트주에 거주하고 있다.

 

 이나교도는 종교적 실천방식에 따라 (1) 출가하여 엄격한 고행을 하는 소수의 수도승 (2) 가정을 유지하는 승려 등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이나교의 경전은 아가마(가르침) 혹은 싯단타라고 불리우며 자이나교도들은 이를 제자에게 베푼 마하비라의 직접적인 교시라고 믿고 있다.자이나의 아힘사(불살생)와 고행에 대한 강조는 힌두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 사상에도 반영되었다.철저한 불살생 교리때문에 자이나교도에게는 생명을 살해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직업, 즉 군인,도살업, 피혁공, 심지어는 농업까지도 금지되어 이들은 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대한 신용으로 뛰어난 상인이 되었는데,역설적으로 고행과 자발적 가난을 중시한 자이나교도들은생명에 대한 존중 교리로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계층이 되었다.

 

 

★ 자이나교와 불교의 개념비교 - 인식론  

 

 식의 이론이 관계되는 한, 자이나교는 외부적인 대상들의 인식에 의한 모든 지식은 우선 첫째로, 불확정적이고, 단정적이지 않은 불교의 견해에 공헌한 것은 아니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인식의 문제에 있어서 자이나교와 불교의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인식이 색깔이나 형태들과 같은 그들의 다양한 특성들과 일치하는 외부적인 대상들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비갸나바바딘 불교(유식불교)에서처럼 대상들은 지식의 형태들일 뿐만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무지는 장막처럼 자아를 가리고 있고, 이 장막은 확고한 인식에 의해서 제거되어 진다. 자이나교에서는 불교와는 반대로 불확실한(니르비칼파) 단계의 인식을 부정하고 확실한(스바비칼파) 인식의 단계에 이른다. 반면에 불교는 불확실한 감각의 물질들의 표상이 구성된 첫번째 단계는 인식의 단지 유용한 부분이고, 확실한 단계는 진실로 표상하는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상, 기억 등과 같은 정신적 범주들의 적용의 결과라고 간주한다.

 

 이나교에서는 불교의 실재가 원인이 되는 능률에 있다는 견해를 부정하는데, 그 견해란 다시 말하면, 그 대상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할 때만 그 대상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가공의 뱀이 두려움등과 같은 결과를 일으키는 것처럼, 환영의 뱀이 실제적인 것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이유로 이러한 접근을 거부한다. 사실 결과의 산출이라는 것은 불교에서처럼, 유일한 존재의 정의이다. 각각의 결과의 단위는 어떠한 다른 단위와 다르지만, 결과의 다른 단위들의 연속은 각각의 순간의 새로운 실체들의 연속을 나타내고, 그것이 모든 사물들이 일시적인 이유가 된다. 자이나교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이러한 견해를 논박한다. : 우리는 단지 사물의 존재가 대응하는 경험에 의해 나타내어 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생산된 결과의 각각의 단위가 각각의 시간의 새로운 지점에 동일하지 않고,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이 순간적이라는 불교의 견해는 거짓된 것이고, 왜냐하면 경험이 모든 대상의 매 순간에 변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 장식품에 있어서 금이 귀걸이나 팔찌 같은 것으로 변하는 것이 형성되지만, 영원한 것으로 남게되는 것으로 발견되어 진다. 그러한 경험에 맞서서 모든 사물이 매순간 소멸하고 새로운 것들이 연속된 순간에 다시 생산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이 근거없는 분석이 불교를 미 발견적 허무주의에 이르게 하는 호기심 많은 arthakriy?k?ritva 원리를 낳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에 의하여 간다면, 우리는 자아나 외계를 부정할 수 없다. 경험을 통한 인식의 발생은 어떠한 사물들의 병치에 대응 되어질 수 있다. 마하야나(대승불교)의 두 학파들, 즉 순야바다(공론학파)와 비갸나바다(유식학파)를 제외하고는 불교는 현실주의의 감각에서 시작하여 석녀의 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만큼이나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경험적인 세계를 간주하는 절대적인 이상주의에 이른다. 그 철학사의 과정에 있어서 자이나교는 또한 몇몇 이상주의적인 경향들을 발전시켰으나, 자이나교의 논점의 실제적인 본성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자이나교는 그들이 감각기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론학파나 유식학파에 반대한다. 의존적인 기원을 가진 불교의 이론은 그 자신의 개별적인 방법에 있어서 생멸하는 일련의 속성들을 품고 있으나, 그것은 이러한 속성의 근원들의 형태에 있어서의 어떠한 원자적 형태로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인식 가능한 세상위에 미묘한 요소들의 완전히 구별되는 두가지 유형의 불확정적인 수를 위치시키는데, 그 하나는 물질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적인 것이다. 거대한 세상은 그것에 따라서 미묘한 물질적 요소들의 단지 결과(카랴), 혹은 변경(파리마나)이다.

 

 반적으로 인식의 문제들 중에서, 자이나교는 인식의 자신 현현의 특성적 논점에 관한 유식학파에 속하는 불교와 일치 하지만, 반면에 유식학파는 인식과 별개인 대상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의 특수한 한 부분은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자이나교는 외부 대상들을 인정하고, 인식을 발생된 현상으로 간주한다고 주장한다. 유용한 인식과 유용한 인식의 도구를 의미하는 인식방법의 문제가 관련되는 한, 불교 논리학자들은 자의식이나 자기 현현의 사상을 도입한 것인데, 그것은 시다세나와 사만타바드라와 같은 초기 자이나 논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인식의 한 부분의 유용성과 무용성이 내재하거나 외부적인가 하는 문제에 관련해서, 샨타라크쉬타에 의해서 지지되는 것처럼 불교의 견해는 인식의 한 부분의 유용성과 무용성은 어떠한 한 경우에 있어서는 내재적일 수 있다고 하고,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외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복된 지식(아뱌사-다샤)의 경우에 있어서는 첫번째 지식(아나뱌사-다샤)에 있어서 인식의 한 부분의 무용성만의 유용성은 외부적인 것으로 간주 되어져야 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이 내부적인 것으로 간주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위치는 또한 샨타라크쉬테에 의해 제시된 불교의 경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식방법의 결과들의 본성에 관해서는, 불교전통은 두가지 견해들을 주장한다. : (1) 그것은 대상의 인식에 존재하는 것이며, (2) 그것은 자기의식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이나교의 전통에 따르면, 프라마나의 곧장의 결과는 무지를 제거하는 것이지만, 떨어진 결과는 대상을 받아 들이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는 기억(스므리티)을 인식의 도구로 간주하고 그것을 비인식적인 지식의 아래에 분류하지만 불교는 이 사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을 불교 원자론에 관한 간단한 언급으로서 마무리 하는데, 불교원자론의 개념은 자이나교의 이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원자론의 이론은 불교의 사르바스티바다 학파(설일체유부 학파)에서만 찾을 수 있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원자들은 영원하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은데, 그 이유는 불교는 교리적으로 볼 때 모든 것들을 무상한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불교에 따르면 원자들은 에너지의 촛점에 비교될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만을 가질 수 있다. 네가지 요소들의 원자들과 또한 그들의 분자들은 오감과 관련되어 진다. 네 요소들은 구별되는 속성들과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地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단함과 유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水는 습기와 점착력을 가지고 있고, 火의 경우에는 열과 익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空의 경우에 있어서는 움직임과 확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원자들은 네 요소들 중 적어도 하나의 원자를 포함하는 분자들을 구성하고, 두드러지게 그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에 따라서 그것들의 특성들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들은 니야야·바이셰시카에 더 밀접한 자이나의 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 자이나교에서 추구하는 열반

 

 이나교에서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목적으로 말하는 열반(涅槃)은 어떤 것일까? 영혼의 소멸일까?

그렇지 않다. 라다크리슈난 박사는 그것을 영혼이 "끝없는 축복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혼은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다만 지난 까르마의 영향권과 육체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육체를 가져야하는 운명에서 해방되며, 육체로부터 해방되었으니 행위나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리고 변화도 없고 끝도 없는 휴식을 취한다. 이렇듯 열반은 '무존재'의 부정적 상태가 아니라 절대 정적(靜寂)의 완전한 긍정 상태이다. 말하자면, 기어가 중립 위치에 놓인 것과 같다.

 

 반을 성취한 영혼도 느끼고 인지할 수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감각과 그 지식을 통해서이다. 열반의 경지에서 영혼은 무한한 의식과 순수한 이해, 절대적 자유, 영원한 축복을 얻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열반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일까? 자이나교는 세 가지 보물을 통해서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이나교에 대한 신앙, 그 교리에 대한 지식, 완전한 덕행이 그것이다. 올바른 믿음이란 진실한 존재에 대한 믿음, 즉 타트바스(tattvas)이다. 올바른 지식은 진실한 본성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오류도 없는 지식이다. 그리고 올바른 덕행은 외부의 대상에 대해 욕망도 반감도 없는 중립적 자세이다. 이 세가지 원칙을 자발적으로 따른다면 새로운 까르마가 생기는 것을 막고 영혼이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열반에 드는 길이 열린다.

 

출처 :  http://www.indiadream.net/menu/62-5-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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