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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07
 제목  조직신학 / 인간론
 주제어  [인간론]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전통적으로 인간론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원시상태에 있는 인간,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 은혜 언약 아래 있는 인간의 세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론은 창조-타락-구속의 범주에서 논의되며, 특히 죄의 문제가 그 핵심에 존재한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조직신학 책들 중에는 이 논의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상당히 그 논의의 수준이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론이 조직신학 중에서 가장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신학은 오감으로 관찰할 수 없는 대상, 즉 하나님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에 우리의 관찰이나 이성의 작용에 근거하지 않고 계시와 성경에 근거하여 그 논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조직신학의 여섯 대상 중 오감으로 관찰이 가능한 대상이 있는데, 인간론과 교회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회론은 일반 학문에서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간론의 경우는 생물학, 문화인류학 등에 의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신학과 일반 학문의 충돌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론에서 다룬 바 신학 방법론, 즉 계시와 성경의 논의에 근거하여 인간론을 전개한다. 하지만, 일반 학문에서 얻어지는 지식을 무시한다는 것은 독단의 오류에 빠지는 것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일반 학문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귀를 열어두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신학 방법론에 의해 인간론을 전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 원시 상태의 인간

 

1) 인간의 구조적 성질

신학에서는 인간의 구조에 대해서 다룰 때,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다루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여기에는 삼분설, 이분설, 일원론의 세 가지가 등장했고, 아직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삼분설은 이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이 인간관은 성경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헬라철학에서 온 것이다. (중략) 이 견해에 대한 성경의 뒷받침을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23히브리서 4:12에서 찾았으나, 이 구절들은 그 요점을 입증하지 못한다."1) 게다가 이 두 구절 외에는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만한 구절이 전혀 없기까지 하다. 사실 이는 깊은 성경에 대한 숙고에 근거하지 못한 미성숙한 견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분설은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분설은 기독교 사상의 초기 시대부터 제안되었다. 그러나 특히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이후에 이 사상은 점차 인가를 얻다가 마침내는 교회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었다."2) 죽음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분설은 비교적 쉽게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상이 되었다.

일원론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다. 그러나, 성경신학의 바탕을 가지고 구약과 신약의 논의를 파헤쳐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주장이다. 적어도 구약성경은 인간을 영과 몸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히브리식 사상에 의하면 "영"이라 함은 사람의 생명,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원론의 장점은 상당히 성경적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며, 단점은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근래에는 주로 이분설과 일원론을 함께 받아들이는 입장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둘은 구분은 될지언정 분리될 수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기보다,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인간이 해체되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해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영혼이 하나님 앞에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2) 영혼의 기원

인간의 구조 문제에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에는 선재설, 유전설, 창조설의 세 가지 입장이 있어왔다. 선재설이라는 것은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인간의 영혼이 이미 창조되어 있어서,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그 영혼들이 육체에 주입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사변적인 입장일 뿐, 전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유전설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영혼이 번식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후, 창조의 사역을 중단하셨다는 점(창 2:2), 성경은 하와의 영혼을 창조한데 대하여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는 점(창 2:23, 고전 11:8), 그리고 자손들이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고 말한 점(창 46:26, 히 7:9-10) 등 여러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3) 문제는, 부모들이 영혼의 창조자가 된다는 점, 하나님이 세계 창조를 완성하신 후에는 다만 매개적인 방법으로만 일하신다고 전제한다는 점, 예수께서 마리아로부터 영혼을 받으셨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무죄성이 변호될 수 있는가 하는 점 등이 설명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적 특성에서 일원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전설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이다.

창조설은 하나님께서 탄생하는 각 개인의 영혼을 그때마다 창조하신다는 입장이다. 전통적 입장에서는 창조설이 가장 설득력있는 입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학설은 부모의 특성들이 자녀들에게서 재현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문제, 또한 하나님이 죄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자가 된다는 문제 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근래에 들어서는 복제인간의 문제까지 등장하며 도전을 받고 있다.

 

3)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문제는 카톨릭과의 논쟁이 불가피한 영역이다. 카톨릭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분하여, 모양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덧붙여진 의"라고 본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형상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파는 이 둘이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 역시 죄에 의해서 타락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나님의 형상 개념에 대해서는 안토니 후크마가 가장 철저하게 논의하고 있다.4)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논의를 다 할 수는 없고, 여기서는 요약적으로 다루어 본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5) 그러나, 후크마의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의 영혼에만 국한되어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전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이 옳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 인간 가운데 드러난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장이 나타나지만, 사실 성경의 논의를 따르면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 역시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을 계시한다. 그의 개인과 행동과 사회적인 삶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4) 인간의 기원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지만, 여기서 잠시만 다루고 넘어가자. 이는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중요성이 부각된 부분이다. 곧 인간이 진화된 존재이냐,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이냐 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인 신학의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화론의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진화론의 주장을 상당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는 있다. 밀라드 에릭슨은 "유신론적 진화론"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선택한다.6) 그러나, 문법적-역사적-문예적-정경적-신학적 성경해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서는 아담과 하와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이러한 입장을 받기는 곤란하다.

 

2.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

 

1) 죄의 기원

성경은 인간의 죄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입장이 전통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죄성을 인간의 동물적 본성, 유한성의 불안, 실존적 소외, 경제적 갈등, 개인주의와 경쟁성 등에서 찾는 입장이 있는 것이다.7)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입장들이 모두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음을 간파한다.

 

2) 죄의 본질

"죄란 무엇인가"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히 다루어져 왔다. 적어도 죄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결핍된 상태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선-악 이원론의 입장, 특히 마니교와 같은 입장은 우리가 받을 수가 없다. 죄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 뜻에 언제나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상태를 생각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윤리적인 영역에서 선과 악의 대조는 절대적인 것이며, 흑과 백으로 명확하게 나뉘게 된다. 이 외에도 죄는 죄책과 오염을 내포한다는 점, 그 자리가 마음에 있다는 점, 죄는 외부적 행위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렇게 복잡한 양상들로 죄가 정의되어 왔지만, 사실 죄를 정의하기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Grudem은 죄를 정의하기를, "죄는 행동과 태도와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에 일치하지 못한 것"8)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죄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법에 관련된 부분에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양상들은 결국 이 정의의 부분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죄의 분류

죄를 분류함에 있어서, 주로 "원죄"와 "자범죄"의 분류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원죄란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들에게 유전되어온 죄책과 부패를 말하는 것이며, 자범죄, 또는 본죄란 원죄의 속성에 의하자 자신이 짓게 되는 죄를 말한다. 이 개념은 죄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인간이 그 죄에 대해서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의해서 심각한 토론의 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죄를 인식하기 전에 죽은 유아들의 경우는 과연 그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만약 물을 수 없다면 그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또 유아세례의 효력은 어디까지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유아들도 다 원죄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논리적인 입장으로 보았을 때에는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성경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신학하는 사람들은 "성경은 이 문제에 관해 일체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성경이 침묵을 지키는 문제를 지나치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못된다"9)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4) 죄의 확산

아담의 죄가 어떻게 모든 인류에게 확산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입장들이 있다. 이에는 실재설, 직접전가설, 간접전가설 등이 있다. 실재설이란, 하나님께서 최초에 하나의 보편적인 인간성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이 시간의 과정 속에서 많은 인류들 가운데로 나뉘어졌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변적 명상에 의한 입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직접전가설이란,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면서 또한 언약의 대표였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가 인류의 대표의 자격으로 범죄하였기에, 그의 죄책은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를 '대표의 원리"라고 부르는데, 전통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간접전가설이란, 인간의 죄책이 자연적 생식과정을 통하여 전가된다는 입장이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원죄는 단순히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뿐 아니라 우리가 나기 전의 모든 조상들이 지은 죄들이 함께 전수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로 넘어가 그 아들이 그 아버지의 죄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간접전가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십계명에도 이 사실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이 나타나 있고, 특히 구약성경 곳곳에 그 조상의 특성이 후대에게 물려져 내려간 것처럼 나타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3. 은혜언약 아래 있는 인간(구속받은 인간)

 

구속받은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오르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별로 깊은 관심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인간론은 주로 그 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구속받은 상태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앞에서 말한 죄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 바로 구속받은 것이다. 즉 이 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1) 행위언약 vs. 은혜언약

여기서는 일단 "은혜언약"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사실 이 용어는 우리가 받기에 어려운 용어이다. 오히려, "새 언약" 또는 "십자가 언약" "그리스도 언약" 등의 표현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 중에 은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은혜언약"이라는 용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 규정하고, 그에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언약 개념은 창세기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은혜언약을 맺어주셨다. 아담은 그의 순종을 전제로 어떤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을 약속 받은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언약이 맺어짐으로써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2) 자유의 문제

자유의 문제는 Anthony Hoekma가 상당히 자세히 다루고 있다.10) "타락한 인간이 오늘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죄로부터의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는 결론만 간단히 말해보려 한다. 구속받은 인간은 참자유를 소유하게 되는데, "참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의 계시된 뜻에 맞는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며 행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11) 죄로 인해서 인간은 참자유를 상실하였고,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맞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속받아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기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자유이다.

 

1) Louise Berkhof, Manual of Christian Doctrine, 신복윤 역, 기독교 신학개론, (서울: 성광문화사, 1996), p. 132.

2)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현재규 역, 복음주의 조직신학(중),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7), p. 90.

3) Louis Berkhof, op.cit., pp. 133-134.

4) Anthony A. Hoekema, Created in God's Image, 류호준 역, 개혁주의 인간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0) 참조.

5)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알기 원한다면 Louis Berkhof, op.cit., p137-139을 참조하라.

6) Millard J. Erickson, op.cit., p. 49.

7)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Millard J. Erickson, op.cit., pp. 156-172를 참조하라.

8)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노진준 역, 조직신학(상), (서울: 은성, 1997), p. 740.

9) Ibid., p. 756.

10) Anthony Hoekma, op.cit., pp. 375-402.

11) Ibid., p. 377.

 

 

>> 목차고리 : 신학 > 조직신학 > 인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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