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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신학용어사전  작성일  2007-09-07
 제목  인간론
 주제어  [인간론]
 자료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 목 차 ◇


1. 총 론 


2. 인간 타락과 향상 

    (1) 인간 타락 

    (2) 인간 향상 


3. 인간의 난제와 해결 

    (1) 시국 난제와 해결 

    (2) 사상 난제와 해결 

    (3) 인간 전쟁 난제와 해결 

    (4) 인간 정치 난제와 해결 

    (5) 경제 난제와 해결 

    (6) 마귀 난제와 해결 

4. 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2) 봉건주의와 인격 

    (3) 공산주의와 인격 

    (4) 인본주의와 인격 

    (5) 신비주의와 인격 

    (6) 복음주의와 인격 

5. 인간의 주권과 생활

    (1) 경제 주권과 생활 

    (2) 정당 주권과 생활 

    (3) 교회 주권과 생활 

    (4) 시민 주권과 생활 

    (5) 성도 주권과 생활 

6. 인간 요구와 종말 

 


1.총 론


인간이라는 것은 먼저 시발점을 바로 알고 끝을 바로 아는 것을 목적하고 본서를 기록한다. 인간은 조물주 하나님께 피조로 받을 때에 삼대 요소를 받은 것이다.


1. 몸이 신의 형상을 따라서 모양을 이루었고 그 신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몸을 위해서 세운 것이니 인간의 몸이 없다면 만물도 필요가 없다. 조물주의 모든 영광은 피조물된 사람의 몸으로서 누리도록 한 것이니 몸은 신과 같이 동거 동락하는 데까지 목적을 두고 창조한 것이다.


2. 머리에 정신 작용이다. 동물은 이러한 것을 준 것이 아니요 정신 작용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고 순종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정신 작용이라는 것은 물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준 것이다. 오늘의 과학 발전이라는 것은 여기에 국한된 것이다. 사람이 정신 작용이 바로 움직여질 적에 물체를 바로 이용해서 얼마든지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범위를 가지고 있다.


3. 생령이다. 이 영이라는 것은 물체를 사용하는 정신 작용을 초월하여 조물주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인격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활동을 바로 할 때에 신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를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이 발전한 사람으로서 정신 작용이나 몸을 움직일 적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완전을 준 것이 아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자격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상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향상을 주기 위해서는 법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법을 놓고 하나님은 여기에 의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진리의 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역사 하시는 신께서는 진리를 대적할 수 있는 마귀도 창조했다.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한 동시에 얼마든지 사람에게 진리를 따라서 활동을 못하도록 꾈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세운 것은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여도 진리의 법을 지키면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사랑이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는 데서부터가 현 사회를 이루는 타락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기록한 것은 타락한 인생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목적 두고 쓴 글이다.


2. 인간 타락과 향상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고 보게 된다. 금일에 모든 인간들은 그 자체의 존귀성과 미의 세계를 자기의 타락한 그 입장에서 찾아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일이다(엡2:3). 왜냐하면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 왜 타락했느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인간 타락


① 인간은 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다


이것은 사람의 몸에 선악과의 질이 들어온 데서부터 이다. 선악과의 질을 받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수치, 공포, 불만 이것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즉시에 발생했던 것이다(창3:7-13).

이때부터가 수치스러운 일, 원수에게 떨 일, 서로 불만을 가지는 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향상의 가치를 잃고 점점 타락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이 가져 온 것이다(창4:1-12).


② 지식의 타락


인간은 자기의 완전한 가치를 찾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완전성을 의심한 데서부터가 지식의 흑암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창3:4-6). 인간의 향상은 조물주는 어떻게 행하시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지식은 타락을 가져오는 자리를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사47:10-11). 왜냐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은 사람의 최고의 가치를 달성하기까지 역사 해주시기 때문이다(엡4:13).


③ 기능의 타락


인간은 동물에 국한된 썩어질 양식 하나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기능의 한계가 아니고 가장 위대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하는 데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물주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먼지 나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사람에게 기능을 주시어 영원한 세세 왕국을 이루기까지 진보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계22:1-5). 하나님은 인생에게 약속을 세운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을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기 힘에 의지하고 사는 것은 타락의 생활이다(사9:8-11).


④ 종교적인 타락


종교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이 향상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들이 질적으로, 지식으로, 기능으로 타락했다 하여도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다시 근본을 복구하는 동시에 향상을 주자는 것이 종교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종교를 갖되 종교의 본능을 상실하고 탈선된 신앙 노선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종교는 사람을 망치는 타락을 첨부시키게 되었다(습1:4-6). 그러므로 아담은 유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를 갖고 인간 생활을 개척했던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받아 주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그 제사를 통하여 고쳐지는 일, 새로워지는 일, 완전한 의의 열매를 맺는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창4:4, 롬12:1-2). 그러나 인간들이 종교를 악용하여 자기의 죄의 질에 따라 소욕을 채우려 할 때에 오히려 탈선된 우상적인 종교로 말미암아 더 큰 화를 받게 된 것이 종말의 심판을 이루는 것이다(사66:3-6).


⑤ 도덕으로 오는 타락


인간은 도덕으로서 가정 사회 국가를 이루는 것을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도덕을 떠난 가정이 될 때에 가정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매가 되었고 사회는 피흘리는 전쟁으로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오히려 금수만도 못한 타락에 들어가는 것은 도덕 부패로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도덕이 없는 사회라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망치는 비극을 가져 올 것뿐이다(미7:1-6).


(2) 인간 향상


①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찾는 일


인생이라는 것은 어떠한 길을 가야 끝을 바로 맺느냐는 것을 바로 알고 떠나는 데서부터 가치를 찾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은 끝을 바로 맺는 데만 있기 때문이다(빌3:14-16). 아무리 잠간의 고난이 있다 하여도 목적을 위한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빛의 생활이니 빛이라는 것은 멀리 내다보는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롬8: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1:6-14). 세상에 제일 최고의 가치를 이룬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말 구유에 탄생하셔서 빈곤의 생활에서 박해를 받은 생활에서 십자가의 악형을 받는데서 완전한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다시 찾아 주는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 기독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가치는 잠간의 고난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이루는 일 밖에는 인간에게는 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계5:9-10). 그러나 인간들이 수고를 하되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하는 수고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를 가져오는 슬픔이 되고 말 것이다(계18:19).


② 완전한 지식을 찾는 일


금일에 인간들은 과학적인 지식으로서 인간에 국한된 사회라는 것을 알고 나간다는 것은 결국에 유물론 공산당의 정치가 되고 말 것이다(단11:36-39). 왜냐 할 때 인간 과학적 지식에 최고 발달을 가져오는 데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머리 속에 한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 지식을 가지고 더 높고 완전한 지식에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통일된 사회가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가르치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사11:9). 지식은 인간의 두뇌로서 움직여야 할 지식도 있고(단12:4), 무소 불능의 조물주 하나님의 영적 활동으로서 오는 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계를 아는 지식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생활에서 목적을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신의 역사를 순종할 때에 이것을 초인간적인 지식의 종교라는 것이다(마13:11). 세밀히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사는 생활에 최고의 과학 발전은 최고의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를 이루기 까지의 한 도구에 불과한 기계다(계11:18). 그러므로 기계에 국한된 인간이 아니고 영원한 영생의 생명을 목적 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향상이라는 것이다(단12:10).


③ 기능의 향상


인생은 기능이라는 데서 발전을 가져올 때에 최고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은 기능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이다(창1:28). 우리 사람은 초인간적인 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엡2:2). 아무리 무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마귀의 도구가 된 생활이라고 본다(합1:11). 하나님은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신들의 신을 반대하는 자가 북방에 자리잡고 나왔다가 필연코 망할 것을 심판기라 했던 것이다(단11:36). 그러므로 짐승이라고 계시록에 말했다. 마귀의 최고의 미혹은 무신론이라고 본다(계13:1-2). 심판기에 무저갱에서 나온 흑암은 이 사상이다(계9:1-2). 그러므로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짐승은 육 육 육이라 말한 것은 마귀의 기능이 짐승을 통하여 최고도로 발전할 것을 말했다(계13:3-4). 우리의 생활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향상될 수 있다. 사람이 물체에 국한된 기능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생활은 향상을 가져 올 수 없는 타락의 생활이다(사3:1-8). 기능의 향상이라는 것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단계라고 한다(요3:5-7). 중생을 한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이 하나님께로 부여된다(행2:38-39). 인간의 자체는 신의 기능을 받을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성신 권능을 받아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시고 그때부터 승천하신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올 때까지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기독교의 본능이라는 것이다(행1:8). 기독교는 이 본능을 상실할 때에 오히려 이방에게 밟히고 만다고 경고했던 것이다(계11:2). 신은 무소 불능의 자체를 가지고 계시지만은 언제나 그 기능을 사람에게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요14:12-13).


④ 종교적인 향상


종교라는 것은 원시적인 종교도 있고 종말적인 종교도 있는 것이니 종교의 근본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데서부터가 시발점이 되었다(창4:4). 이것은 죄진 인간이 종말적인 종교를 이루기까지 영자(影子)적인 종교에 불과했다(히10:8-14). 그때는 뚜렷한 의식이나 또는 법이나 언약의 말씀이 책이 없는 양심에서 움직이는데 불과한 종교다. 그러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는 발전했고 양심이 정욕으로 흐르는 종교는 타락했던 것이다(롬1:21-23). 그러므로 기독교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로서 흘러오는 데서 완전한 언약을 세우는 시대를 구약이라 하고 그 언약을 열매로 끝을 맺는 종교를 신약 시대라 하는 것이다(딤후1:3). 열매를 이루는 종교도 다음과 같이 향상한다. 중생을 목적한 종교 이것은 온 세계 인류가 사망 아래에서 죽은 영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도록 하는 것을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요1:12). 그러나 온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환난과 재앙이 올 때에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활동하는 역사를 새 일의 역사라는 진리다. 이것은 양심적인 종교가 승리를 이루는 즉 완전 결실을 이루는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는 일을 말한다(사43:19-21). 그러므로 개인적인 종교가 민족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세계적인 종교가 완전히 평화 왕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 종교의 발전이라는 것이다(사9:1-7).


⑤ 도덕적인 향상


인간 도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생활이 없는 자도 인간을 상대하는 도덕이 있지마는 이것은 타락에 불과한 도덕 사회를 이룰 수도 있다(골2:22-23). 그러나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한 도덕에서만 향상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서부터 자녀의 축복을 하나님을 향한 양심적인 도덕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엡6:1-4). 그러므로 가정을 도덕에만 국한된 가정의 발전이 아니고 신의 축복을 목적 두고 신앙 양심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부부가 될 적에 여기서부터 신의 축복은 그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게 된다(사44:1-5). 이것이 산 믿음에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도덕은 양심 생활에서 필연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도덕이 있으니 이것은 신께서 인정하는 생활이 된다. 도덕을 위한 도덕이 아니고 신을 순종하는 양심에서 목적을 둔 도덕이기 때문이다(마6:1-4). 인생이라는 것은 신의 축복을 받음으로서만 영원한 가정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사49:19-23). 종교는 영혼을 목적 둔 것만이 아니고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여 신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의 세계를 축복으로 받는 생활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라는 것이다(사65:21-23). 그러므로 완전한 성남 성녀로서 이루어지는 도덕이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사60:15-22).


3. 인간 난제와 해결


(1) 시국 난제와 해결


인생이라는 것은 그 시대 시대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어디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마24:34-51). 사람은 일년 자라는 풀과 같이 그 절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그 시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변천되는 것은 인간 자력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시대는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행1:6-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지를 통하여 앞으로 어떠한 시대가 온다는 것을 말씀 한대로 되어지는 것이니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할 때부터가 하나님의 예언한 말씀이 글자대로 이루어지는 시대로 들어온 것이다(벧전1:20). 금일에 온 세계 인류가 다 평등을 찾고 민주적인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근본이 세계 인류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슥9:10). 그러나 금일에 와서 자유를 부르짖는 시대가 오히려 자유를 악용하는 부패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나타나서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도저히 인심 악화를 수습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은 선지의 예언대로 인류 전멸이라는 심판기가 온 증거이며 도저히 시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난제가 온 것이 하나님의 정한 때가 온 증거이며(계6:2-14) 이 시국에 어떠한 자가 되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계시록과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계10:7). 그러므로 우리는 시국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바로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계22:6).


(2) 사상 난제와 해결


동물에게는 사상이라는 것이 없되 사람은 누구나 다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관에 의하여 각각 다르게 되는 것이다. 소위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인생관을 고등 동물로 보는 것이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단11:37). 인생은 강자가 약자를 먹고 어떻게 하든지 기만적인 정책을 써서라도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자유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상은 죄도 심판도 없다는 것이니(단11:23-24) 이것은 종교를 아편화 시키는 것이니 이 사상이 들어갈 때 사람은 자연적 악해지고 무자비한 투쟁을 하게 된다(단11:32). 그와 반대로 참된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으로 아는 사상이다(사66:2, 18). 이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사실과 개인적 인격적인 체험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그날 그날 사는데서 열매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신앙 양심에서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소망에서 신께서 남을 구원코자 하는 그 뜻을 목적하여 죽기까지 이 목적을 두고 싸우는 것을 기독교의 순교적인 사상이라 하는 것이다(계6:9-10). 이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이 가진 신앙 사상이라는 것이다(요-서3:16). 그러므로 필연코 승리는 남을 살리고자 하는 사상이 조물주 하나님의 편이니 세계를 통일하는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단7:18, 22). 금일에 사상이라는 것은 이것으로서 큰 대립을 가져오는데 끝까지 이 두 가지 사상에서 결전을 보게 될 것이다.


(3) 인간 전쟁 난제와 해결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를 다투는 제국주의적인 침략적 전쟁도 있고 또는 진리의 사상 문제를 놓고 싸우는 전쟁도 있다. 이날까지의 역사적인 전쟁은 제국주의 정치적인 침략적 영토 전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전쟁의 끝이 아니고 선과 악의 대립으로 아마겟돈 전쟁으로 끝을 맺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최고도로 악화된 인류 전멸이라는 비극을 가져올 전쟁의 무력 완비를 이루게 된 것은 성서를 보아서 악한 인간이 자멸이라는 인류가 끝을 맺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계16:14-16, 17:16).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온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불타게 되는 것을 진노의 병기로 온 땅을 멸하게 된다고 말씀한 종말의 큰 화가 된다(사13:4-5).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자를 들어서 악한 세상을 치고 불타서 망할 자를 하나님께서 없애는 재앙을 내리는데는 당신의 백성을 절대 보호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관에 끝이 되는 것이다(계15:1-4). 우리는 전쟁을 하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에 신앙의 요지가 된다(계19:19-21, 미5:6-9). 전쟁은 사람의 맘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환난이 오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계17:17).


(4) 인간 정치 난제와 해결


정치라는 것은 침략적 정치도 있고 민주적인 정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민주라는 것으로만 정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심이 악화될 때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수를 따르는 것이 현실의 소위 투표 제도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악자가 승리하는 다수라는 것은 오히려 악한 사상을 가진 자가 승리하는 정치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합1:4).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부패된 사회의 종말은 포악한 자가 정치를 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사19:1-4). 이제 이것이 말세 정치 난제라는 것이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잡아먹는 악화된 사회에 의인의 세력은 아무런 주권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심판기에 소위 망할 세상이라는 것이다(합1:13-17).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통일의 세세 왕권을 이룰 것을 말씀한 것이 기독교 역사에 종국을 짓는 지상 왕국이다(계17:14). 이것은 아무리 적은 수라도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늘 권세와 땅의 권세를 주어서 인간의 정권이 그 앞에서 다 떨다가 망하게 될 것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이라고 하는 시온산 다윗 왕국 성도의 통치 시대라는 것이다(사24:14-23). 모든 선지는 말세의 북방 정치가 극도로 강해서 인력으로서 그 세력을 당할 수 없는 난제가 올 때에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강림한다는 것을 말씀했으니(단12:1-3)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승천하시고 성경대로 온 세계 인류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성경대로 이 세상을 심판하여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세계 의의 통치 시대가 온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의 정권은 사람의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 때문이다(사7장-9장).


(5) 경제 난제와 해결


금일에 과학 문명을 비롯하여 경제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옵1:3-4). 그러나 경제가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인 정권 아래 빈민의 쓰라림이라는 눈물의 호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 난제라 하는 것이다(사3:13-15). 앞으로 이러한 기회를 엿보는 공산당은 세계 인류를 허위 선전으로서 미혹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단11:38-39). 배고픈 자에게 같이 먹게 한다는 간판 밑에서 자기 독재적인 정권 야욕을 가지고 세계 통일을 꿈꾸는 그 세력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성경에 가르쳤기 때문이다(단11:43-45).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미신화 시키고 자기의 힘으로 경제를 해결한다는 교만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활동은 인간 자력에만 있다는 것은 한 공상에 불과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에 예언하기를 인류 종말에 극도로 무서운 기근이 한재로 와서 모든 사람은 할 일이 없이된다고 가르친 말씀이 있다(사19:5-10). 이때에 특별 보호하는 땅에서 물과 양식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택민 보호의 진리가 모든 선지서에 기록되었다(사25:4, 26:5-7, 33:10-24). 경제적으로 남을 압박하고 교만한 인간들은 다 망하고 말 것을 가르쳤으니 앞으로의 경제는 특별 축복 속에서 보호받는 자 외에는 남지 못할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사23:18). 남은 자가 사는 새 땅의 축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대의 지상 축복을 가르쳤으니 경제 난제 해결은 어디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사60장).


(6) 마귀 난제와 해결


인간들은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요(히2:14-15). 또는 마귀 미혹은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계12:9). 무신론자는 마귀가 없다고 하지만 그 자체 심령이 미혹 당한 심령이라고 보게 된다(계13:2-6). 그러면 마귀의 근본과 종말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계신 조물주 외에 있는 신은 다 피조물의 신이니 마귀를 창조한 자는 조물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창3:1, 계20:2-3). 그러면 조물주께서 마귀를 창조한 동기가 무엇이며 장차 어떻게 하실 것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① 악한 마귀를 만들어서 쓰는 목적은 악을 이루자는 목적이 아니고 의를 이루자는 목적이니 의라는 것은 아무리 악한 마귀가 꾀여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는 것을 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계12:7-11).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아무런 시험이 없이 무조건 일반적으로 다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요 약속의 말씀을 인간에게 법으로 주는 동시에 그 말씀을 인간이 바로 믿고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를 사용하여 악마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자를 진실한 자라 의로운 자라 인정을 하고 이 사람들로 영생의 기업을 상속케 하는 생명 나무 열매와 생명 강물을 마시면서 세세 영광을 화려한 천국에서 길이 길이 누리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계21:5-7).


② 현재에 인간이 마귀를 무서워하고 순종하는 것은 마귀의 종말을 모르고 마귀는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 미혹 받고 순종하다가 멸망을 마귀와 같이 당한다(마25:41). 마귀를 도구로 쓰는 조물주께서 완전한 영광의 나라의 수가 찰 때에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마귀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믿고 순종하는 자를 없앤다는 것이 인류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계14:9-11, 20:7-10).


4. 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인간이라는 것은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범위에서 국한된다는 것은 빛이 아니고 흑암이라고 본다(사5:8-14).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자본을 위하여 인생을 낸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인류에게 사용할 특권을 맡긴 것이니 인격이 자본을 따른다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마6:31-32). 인격이 자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인데 현실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남을 속이고 심지어 지도자까지도 뇌물을 받고 불의의 삯을 받고 심지어 위정적인 행동을 하여 백성의 피를 빤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망치는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미3:3-6).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자본이요 축복 속에서 준 자본을 인간 사회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에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격은 오히려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다(암8:4-10).


(2) 봉건주의와 인격


인격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 대 자연을 창조한 신의 거룩한 뜻이니 이 원칙을 떠나서 어떤 자를 섬겨야만 살고 섬기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봉건이라는 것은 인류 사회를 발전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인 영리에 한 도구로 되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사10:1-3).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 딴것을 섬긴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니 봉건주의적인 사회라 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화시키는 폐단이 있게 되며 오히려 발전보다도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퇴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죄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우상이 되므로 망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사31:1-4).

(3) 공산주의와 인격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자체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오늘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짓밟고 빵으로만 산다는 주의에서 전 인류에게 하나같이 빵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이룰 우려가 있다(계13:6-8). 공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축복을 받은 자가 물욕을 떠난 양심에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에도 있어야 할 일이다(행4:32-35).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짓밟고 남을 죽이고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자는 그 정신은 도둑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에서 나오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근본 사상이 사람을 동물화 시키는 사상이니 이 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사상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동물의 생활이 된다. 짐승을 먹이는 어떤 목장과 같이 한 사람이 먹이를 한데 모아 놓고 때를 따라 먹이를 주는 식이 된다(나2:8-13). 짐승이 일만하고 아무런 삯을 받지 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같이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을 새 시대라고 보는 것이다(슥9:16-17).


(4) 인본주의와 인격


피조물된 인간이 조물주를 모르고 자기밖에 없다는 것은 한 교만에 불과한 인격이니 예를 들면 뚝배기가 토기장이가 필요 없다는 식이다(사45:9). 이 사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좁고 얕고해서 자기 지식에 속은 인간이다(사47:10-11). 다시 말하자면 그릇이 좁은데다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 같이 조갑지에 불과한 두뇌에다가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의 것을 담는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갑지에 담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아를 찾되 자기의 인격적인 존재와 할 일을 바로 찾아서 신의 섭리를 신앙하는 인격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보게 된다(사40:22).


(5) 신비주의와 인격


신비라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한 표적과 증거를 따라서 이것만으로 만족을 삼는 인격이니 이러한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 수 없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마귀도 얼마든지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계13:13-15). 인간이 신비를 따른다는 것은 미신적인 종교의 생활이니 신앙이라는 자체는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 신비만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 정로가 아니고 미로에서 헤매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마24:10-12). 예를 들면 술을 먹는 자가 맹목적으로 취하는 맛에 먹듯이 신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마귀의 술을 먹는 행동이 될 것이다(사28:7-8). 신비를 부인할 수 없고 신비를 따르되 이것이 참신에서 오는 것이냐 거짓 신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을 분별치 못한 신비주의는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사8:20-22).


(6) 복음주의와 인격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는 일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찾는 방법이다(롬1:1-7). 조물주는 목적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니 그 목적을 인간 자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신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한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다(사34:16).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것은 조물주의 예정하신 뜻을 믿되 자기 주관에 붙이지 않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이다(계1:3, 22:6). 이렇게 할 때에 신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신앙자에게 역사 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조물주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게 되어 영육이 아울러 완전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기독교 복음주의라 하는 것이다(계21:3-6)


5. 인간의 주권과 생활


(1) 경제 주권과 생활


인간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인 주권을 위하여 불철 주야로 노력하는 것이 그 생활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과학이 발달되는데 따라서 경제적인 주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하고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황금 만능을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계18:3). 그러나 인간 생활이 여기에 국한된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미6:10-12). 왜냐하면 누구나 다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세상이니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고 또는 크게 실패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니 인간이 경제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라는 것은 큰 개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데 불과한 생활이다. 인생의 참된 열매는 이것을 초월한 주권을 찾는 것이 존귀라고 볼 수 있다(마6:33).


(2) 정당 주권과 생활


오늘의 소위 민주국가를 정당 정치라 한다. 당이라는 자체는 남을 살린다는 목적을 둔 것보다도 남을 죽이는 일을 하고라도 자기의 정권을 내 세운다는 것이 정치적인 야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 주권에서 움직이는 생활은 자연적 무자비한 투쟁을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될 때에 오히려 불행하게 가족 전멸 생활 파탄을 이루고 마는 비참도 있게 된다. 이러므로 정당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생활은 오히려 약자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오히려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해서라도 자기의 위신과 명예를 얻어 보려고 할 때에 양심을 떠난 생활에서 흑암이라는 세계를 영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남을 살리자는 목적에서 뭉쳐진 단체가 아니고는 다 흑암으로 본다(계13:10).


(3) 교회 주권과 생활


교회라는 것은 소수가 하나님을 상대하여 기도로 뭉쳐진 교회가 될 때에 순수한 진리 안에서 신성을 이루는 가장 빛나는 교회라고 하던 때도 있었지만 교회가 확장되어 큰 주권을 쥘 수가 있는 단계에 들어 갈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주권화 시키는 소위 교권이라는 것을 악용하게 될 때에 진리의 사람이 축출을 받고 하나님의 성신을 모독하는 일까지 있게 될 때에 신성한 예루살렘 교회가 바벨론에게 망한 사실이다. 또는 회회교에 중심지가 된 비극이나 말세에 신령한 교회가 음녀적인 협상주의로 들어가는 비극도 있게 되므로 교회의 주권을 악용하는 거짓 선지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모든 선지의 예언의 경고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진리 하나만을 바로 가르치되 진리의 주권을 잃지 않아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요2서8-11). 그러므로 교회의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오히려 미운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도둑이기 때문이다(요3서9-10).


(4) 시민 주권과 생활


참된 자유는 시민된 주권을 바로 찾고 움직이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한다. 참된 민주주의라는 것은 시민 주권의 생활이 향상될 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성립된다(딤전2:1-2). 백성은 개인적인 인격 하나를 바로 찾아 작은 데서부터 큰 것에 이르는 것을 질서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 주권이 강하다 해도 시민 주권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정당 주권자가 시민을 억압하거나 또는 이용을 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시민이 양심 사상이 바로선 인격을 소유하는 데서부터가 모든 인류가 복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니 시민의 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과학적인 교훈으로만은 불가능하고 양심과 사상을 살려주는 참된 진리의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사3:8). 왜냐 할 때에 진리라는 것은 양심과 사상을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딤전1:5). 시민의 인격은 도덕에 있지 않고 진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 안에서 개인적인 인격을 소유 한데서 이상적인 부부가 이루어지고(엡5:22-23) 이상적인 부부가 근본된 가정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게 되므로 시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인격을 출생케 하는 것이다(엡6:4).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이라 하더라도 근본이 바로선 가정에서부터 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민의 주권이 경제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흙과 같이 흩어질 것이로되 진리로 뭉쳐진 가정으로서 이루어진 사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강철같이 강해질 수가 있다(미4:13).


(5) 성도의 주권과 생활


성도라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이나 의식이나 문학이나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골3:1-3). 그러므로 성도의 주권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한 주권이니 이것을 빼앗을 자는 전혀 없다(롬8:31-39). 이 주권은 하나님이 움직여 주는 것이니 아무리 소수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주권이다(단7:18-22). 그러므로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강했지만 3 4인의 청년 앞에 머리를 숙이었고 아무리 세계 인류가 다 대적한다 해도 이상적인 새로운 시대를 정복할 주권은 성도에게 있다. 이러한 주권을 가진 생활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① 하나님의 비밀을 전부 아는 지식에서 움직이는 생활이다(빌3:8-12). 이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고 약해 보이지만 최후의 승리를 가져오는 열매를 보게 된다(사41:8-20).


② 영적으로 사는 생활이다. 영이라는 것은 최고의 인격을 이루는 데서만 활동하는 세계를 말한다. 왜냐 할 때에 조물주는 사람을 움직일 때에 영을 통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사58:10). 인간이 육으로만 사는 인간도 있고 두뇌로 사는 인간도 있고 영으로 사는 인간도 있으니 영적 활동이 있을 때에 두뇌도 몸도 바로 움직이는 것을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요3서2절).


③ 능력에 속한 생활이다. 이 생활은 능력을 믿는 생활만이 아니고 친히 받아서 능력의 힘에 이끌리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골1:29). 인간들은 물질의 힘이나 사람의 권력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의 능력을 받아서 움직이는 자는 역사적으로 심히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것은 능력의 사람으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승리를 볼 것이니 성도의 주권이 완전한 승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결론을 짓는 진리가 된다(계2:25-27).


6. 인간의 요구와 종말


인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무엇을 요구하는 것만은 없는 자가 없다. 그러나 그 요구라는 것이 각각 다르되 어떠한 요구를 가져야 인간 종말의 끝을 바로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을 지혜라 하는 것이다. 이제 요구와 종말에 대하여 구분을 짓는다면 다음과 같이 볼 수가 있다.


① 식물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소리 없이 찾고 있는 수분에 따라오는 질소 인산 가리 일 것이다. 이것을 찾기 위하여 식물의 뿌리는 어디든지 깊이 세포적인 세력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 힘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에 의하여 모든 동물계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주고 있다(창1:29).


② 동물계에서 찾고 있는 요구는 먹을 것을 찾되 식물에서 활동하는 열매를 찾고 있다. 이것은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 동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러한 세계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결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동물보다도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죄를 짓고 죄의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악한 인간이라는 것이다(사3:9). 그러므로 이러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애는 것이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암9:8). 우리는 무엇을 구함으로서 결말을 바로 맺을 것이냐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사45:6-7). 오늘의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인간의 요구와 종말을 바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이 소위 미신적인 종교라 하는 것이다(사44:9-20). 미신이라는 것은 결말을 똑똑히 모르고 덮어놓고 구하는 것을 가르쳤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바로 찾지 못하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도 있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것은 동물은 가질 수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종교성이란 것이다(행17:22-26).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아보는데서 이루어진 종교도 있고 조물주께서 인생을 긍휼히 보고 친히 인생에게 무엇을 구하든지 준다는 사랑에서 어떠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구하면 된다는 법을 가르친 것을 기독교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는 이 진리대로 순종하는 생활에서 구할 때에 신앙자로서 직접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을 참된 종교인의 산 체험이라는 것이다(요1서 5:14-15). 만일 신께서 말씀 한대로 이루어 주는 일이 없다면 심판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이 있는 신이 의로운 심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참된 요구는 진리에 따라 구하는 것이요 결과는 약속의 말씀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루어 줄 것이니 이것을 아름다운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사49:8-13).

 


 

1.인간의 기원과 근본적 성격

 

(1)인간의 기원

 

A.진화론

 

한 종(種)이 다른 종으로 바뀌어 진다는 데 대해서는 지질학도,형태학도,발생학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윈의 저작들은 불확신을 말하는 말로 가득차 있다.'우리는 추측해도 좋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두개의 주요 저작 속에서 무려 800회 이상이나 나온다."(브리얀;Bryan)

비록 진화가 적자생존의 교설(敎說)을 입증한다 하더라도, 그 진화설은 최초의 인간이 어떻게 생겼느냐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B.성경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창1:27,5:1,2,6:7,신4:32,시104:30,사45:12,고전11:9), 그리고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다(창1:26,시100:3,103:14,딤2:13,창2:22,6:6,7), 또한 비물질적 성질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셨다고 했다(창2:7,욥33:4,5,전12:7).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런 개념은 다른 이론으로서는 제공 할 수 없는 특이한 인간의 위엄성과 책임성을 부여하여 윤리 및 구속의 건전한 체계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

 

(2)인간의 근본적 성격

성경은 인간의 원상태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구로 제시하고 있다(창1:26,27,5:1,9:6,고전11:7,약3:9). 그런데 '형상과 모양' 사이에는 하등의 차이점도 없는 것 같다. 이반스(Evans)는 'Image는 어떤 인물의 그림자나 윤곽을 의미하고, Likeness는 실제 인물에 대해 그 그림자의 유사성을 자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의미는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A.그것은 신체적 형상(形狀)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인간과 같은 지체가 없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이것은 유형적 존재를 암시하는 말은 아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기는 했으나(민12:8),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출33:20)

 

B.그것은 정신적 형상이다.

 

하지(Hodg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요,인간 영혼은 작은 하나의 정신적 영이다.영의 본질적 속성은 이성,양심,그리고 의지이다.영은 이성적 도덕적이므로 또한 자유적 행위자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영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속하는 속성들을 인간에게도 수여하셨다.그러기에 인간은 이 세상의 기타 많은 것들과 구별된 존재자이다.인간은 그런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차원적 존재자이다.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동계열에 속한다.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자와 더불어 교할 수 있다.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이와 같은 성품상의 일치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필연적 조건이 된다.그것은 또한 우리들의 종교적 성품의 기초이기도 하다.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닮지 아니했다면,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죽고말 금수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상의 진술은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골3:10).인간이 위대한 지적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동산을 "다스리며""지키라"는 명령(창2:15)과,또 땅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창1:26,28)과 인간이 땅에 있는 모든 동물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진술 속에(창2:19,20) 잘 드러나 있다.

 

C.그것은 도덕적 형상이다.

 

인간이 이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분명히 들어나고 있다.

엡4:24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이에 근거해서 인간은 패역을 참아 보시지 못하는 하나님과 교통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합1:13,전7:29)

창1:31 -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하나님과 닮은 형상이라는 것을 추축할 수 있다.

 

D.그것은 사회적 형상이다.

 

하나님의 사회성은 그의 애정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안에서 그의 사랑의 대상을 찾으신다. 하나님이 사회적 성품을 지니신 것처럼, 인간에게도 사회적 성품을 부여하셨다. 그 결과로 인간은 교우관계를 추구한다. 첫째로, 인간은 이런 교제를 하나님 자신 안에서 발견했다(창3:8). 즉 인간은 자기의 창조주와 교제했다. 또 인간은 자기 주와 더불어 교제하는 가운데서 최상의 만족을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인간관계도 예비하셨다(창2:18).보다 밀접한 교제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서 빼내어 온 뼈로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사회적 성품을 지니신 그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사회적 성품을 어울러 주셨음이 명백하다.


2.인간의 통일성과 본질적 구성

 

(1)인간의 통일성

인류전체는 오직 단일 부부로부터 전래했노라고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창1:27,28,2:7,22,3:20,9:19). 그런고로 모든 인간은 공통된 조상의 자손들이며 공통된 성질을 소유하고 있다(롬5:12,19,고전15:21,22). 이 진리는 모든 인간은 이웃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근거를 놓는다(창4:9,행17:26). 또 다른 의미로의 인간의 통일성이란 창1:26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으며, 27절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다.

Shedd는 이렇게 말한다.

"이 귀절은 남자든 여자든 파차간에 고립시켜 놓는다면,인간의 개념은 불완전해진다는 것을 뜻한다.남녀 두 사람이 인간이란 종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단독적인 남자나 여자 그 개체는 인간이란 종이될 수 도 없으며 종을 포함하지도 못하며 번식시킬 수도 없다". 이것과 일치하는 말씀을 우리는 창2:21-23에서 취해 볼 수 있는데, 거시보면 하나님은 하와를 흙으로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아담의 갈빗대 하난로 만드셨다고 했다.하나님께서 하와의 코에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말을 우리는 들어 보지 못한다.분명코 하와의 신체는 물론 그녀의 비물질적 성질까지 아담으로부터 취해왔음이 확실하다(고전11:8).

 

A.역사적 논증

 

Strong은 이렇게 말한다.

"양반구에 있는 국민 및 종족의 역사를 추적해 나갈 수 있는데까지 소급해 올라가 보면, 중앙아시아에서 인종의 공통된 기원 및 조상을 가리키는 증거가 있다".

유롭인들은 아시아에서,아메리카 인디안들은 동부 아시아의 몽고족들로 부터 왔음을 일반적으로 인종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에스키모인들이 베링해협을 타고 자주 아시아를 출입했다.이것이 아마도 아메리카의 선사시대의 인종의 기원에 관해 다소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고 보겠다.

B.생리적 논증

Fisher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학자들은, 자기들의 전공과학적 견지에 비추어, 인류는 단일 조상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단원 발생설을 다원 발생설보다 더 좋아한다. 다윈 발생설이란 인류의 기원의 중심이 상이한 다수라는 견해를 말한다. 그러나 특별히 다윈이래로 자연과학의 현재적 추세는 단원 발생론에 더 호감을 보이고 있다"

Darwin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류가 단일 조상이상의 여러 조상들에게서 기원했다고 말할만한 중거가 현재로서는 없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인간의 종이 하나 이상 여럿이라고 믿을많遁 하등의 좋은 근거나 또는 신빙성 있는 증거도 일체 볼 수 없었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혹자는 이렇게도 말하기도 한다.

"모든 인류는 피차간에 유사한 자손들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모든 인류의 몸의 정상적인 체온도 같다.맥박의 평균 도수도 같다. 같은 질병에 걸리기도 쉽다.이런 사실들이 다른 동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또 현미경으로 보면 인간의 피는 다른 동물의 피와는 다르다".

 

C.언어적 논증

 

Strong은 이렇게 말한다.

"비교언어학은 중요언어의 공통적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Hodge는 이렇게 말한다.

"각양 각색의 인종의 기원이 다양하다는 말은, 인종들이 쓰고 있는 언어의 공통적 기원에 대한 확고한 증거에 의해 거짓된 것으로 판명된다".

Fisher는 Max Mueller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가령 언어에는 튜란족의 언어와 셈족의 언어와 아리안족의 언어가 모두 있지만, 그 중 언어자체의 소재요소의 기원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D.심리학적 논증

 

Strong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다수 종족 가운데는 공통된 정신적 도덕적 특성이 실재한다. 이 사실은 공통된 격언,성향, 능력 안에서 입증되며, 유사한 전통이 보급된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하나의 철학 및 종교가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다는 사실 안에서도 입증된다.이와 같은 사실은 인류의 기원이 공통된다는 이론에 입각해서 쉽사리 설명되어진다".

소위 "갈대아인의 창세기"란 것이 있다. 여기엔 창조 동방제국의 타락에 관한 전통,장수,홍수,바벨탑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이것들은 세계 여러 지방의 많은 종족들이 알고 있는 소수사건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그와 같은 전통들의 유출된 기원이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에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2)인간의 구조

 

A.인간의 심리적 구조

 

a.이분설(二分說;Dichotomous Theory)

첫째,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원리를 사용하사 생기를 불어 넣으심에 생령이 되었다는 사실로 지지를 받는다(창2:7).

둘째,혼과 영 두 말이 어떤 귀절에서 상호교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실로 지지를 받는다(창41:8,시42:6,요12:27,13:21,마20:28,27:50,히12:23,계6:9).

셋째,혼은 물론 영도 짐승의 피조물에 대해서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지지를 받는다(전3:21,계16:13).그러나 Pardington의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짐승들 가운데 있는 생명원리는 비이성적이며 멸할 운명에 처한 것이지만 사람 속에 있는 생명원리는 이성적이며 불멸적이다".

네째,"혼"은 여호와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로 이분설은 지지를 받는다(암6:8 "by his soul",렘9:9,사42:1,53:10-12,히10:38).

다서째,종교의 최상의 위치를 혼에 돌리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로 이분설은 지지를 받는다(막12:30,눅1:46,히6:18,19,약1:21).

여섯째,몸과 혼(또는 영)이 전인적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로 역시 지지를 얻고 있다(마10:28,고전5:3,요한3서 2절)."목숨(혼)"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다(마16:26,막8:36,37).또한 우리는 물질적 부분과 비물질적 부분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혼과 영을 구별할 수 있는 의식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다.

 

b.삼분설(三分說;The Trichotomous Theory)

이 설은 인간은 몸과 혼과 영의 명백히 구별되는 세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몸은 우리 구조의 물질적 부분이며,혼은 동물적 생활의 원리며,영은 우리의 이성적 생활의 원리이며 동시에 불멸적이다.

첫째,창2:7은 "생기들"이란 복수형을 취하고 있다.

둘째,바울은 인간의 성품을 명백히 구별되는 세부분,즉 몸,혼,영을 말하고 있다(살전5:26,히4:12).

세째,인간 성품의 3중적 구조가 고전2:14-3:4(육적,육신적,신령한 자)에 나타난다.

 

c.전체성

상이한 입장에서 인간을 특징지우는 다양한 용어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그 전체로서의 인간을 보고 있으며 그리고 죄가 그 전체로서의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영,혼,몸 이 각 용어는 인간의 분석에 있어서나 혹은 그의 존재의 어떤 국면을 강조함에 있어서 매우 실용적이지만,이것이 결코 철저한 인성삼분법 혹은 인성이분법이 되지는 않는다.그러므로 인간은 하나의 단일체이며 구성부분으로 절단되어 질 수 없다.


B.인간의 도덕적 구조

 

도덕적 구조의 의미는 인간으로 하여금 정오(正誤)의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이런 능력들은,우리가 부르는 양심,곧 식별력과 충동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함께 지니고 있는 지성,감성,의지이다".

 

a.지성 - 인간에게 정오(正誤)의 구분을 가리게 해준다.

 

b.감성 -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해서 행동케 호소해 준다.

 

c.의지 - 의지는 문제를 결정한다."의지"란 말은 두가지 의미 즉 경향성의 의미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기능의 활용 내지는 선택력의 의미로 사용된다.요나단 에드워드는 "의지의 모든 행위는 동기에 의해 유발된 것이며 또한 그 동기는 의지행위의 원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동기는 의지를 강압하는 원인은 아니다.동기는 다만,의지를 설득하는 영향력이다.하지만 이 동기의 능력은 동기 속에 파고 들어와서 동기로 하여금 동기가 되게 만드는 의지의 힘에 비례한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의지를 인정해야 한다.복음이 사람의 구원에 기여한 바는 그것이 구원받을 수 있는 능력을 기여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손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받아 들이도록 사람으로 하여금 설득케 만드는 것이다.요1:12,13에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무와 인간의 임무가 함께 나타나 있다.

 

d.양심

이상의 세가지 능력을 포함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이 능력이 없으면 도덕적 행위도 없다.이것이 양심이다.양심은 특별한 경우를 당면해서 우리에게 도덕적 법칙을 적용하여 거기에 따라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코커는 "양심이란 이미 알려진 정오(正誤)에 관한 법칙과 관련해서 자기를 아는 지식이다."고 말했다.양심이란 용어가 구약에는 나오지 아니하나 신약에는 30회나 나온다.양심이란 말은 희랍어 suneidesis에서 왔는데,그것의 의미는 수반적 지식이다.다시 말하면 양심이란 말은 진정한 우리 자아라고 생각되어져서 우리 위해 권위행사를 할 수 있는 어떤 도덕적 표준 또는 법칙과 관련된 우리의 도덕적 행위와 상태를 아는 지식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심은 식별적이며 충동적인 힘이다.양심은 우리의 행위와 상태가 정해진 표준과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를 선포한다.양심은 당위성을 지닌 우리의 행위와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선포한다.양심의 임무는 증거하는 일이다.(롬2:15).

양심에 대해 두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양심은 불멸적인가?

성경은 양심은 더러워 질 수 있으며(고전8:7,딛1:15,히9:14),또 화인 맞을 수 있다(딤전4:2)고 가르치고 있다.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을 보아도 양심은 파멸되어 없어진다고 암시하는 곳은 없다.

둘째,양심은 과연 오류가 없는가?

양심은 양심에게 주어진 법에 따라 항상 옳게 결정하려 한다는 뜻에서 볼 때, 양심은 통일되며 오류가 없다.그러나 지성에 의해 용납되어진 도덕적 표준이 불완전할 경우,양심의 결정은 비교적 공정을 기하려 라겠지만 전적으로 부당할 것이다.(예,회심하기 전의 사도 바울).양심은 우리가 용납해드린 사회적 표준에 따라 판단하기도 한다.그러나 양심에 대한 참된 표준은 성령에 의해 해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따르지 않는 다면 그것의 결정은 분명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C.영혼의 기원

 

a.영혼 선재설

영혼은 이미 전세에 어떤 상태로 존재해 있다가 신체의 초기 발전의 어떤 시점에서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이들은, 요9:2은 영혼 선재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이것은 확실치 않다.따라서 이 설은 성경에 근거가 없다.

 

b.영혼 창조설

영혼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이며,이 영혼은 몸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 몸에 들어 온다.몸만이 과거 세대에서 부터 유전 전수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설에 대해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 다고 답변한다.

 

첫째,하나님을 영혼창조주로 언급되어 있는 구절들(민16:22,전12:7,사57:16,슥12:1,히12:9)은 매개체를 둔 간접창조를 시사하고 있다.하나님은 역시 몸의 창조주로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만(시139:13,14,렘1:5),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직접적인 몸의 창조행위로 해석하지는 아니하며 오히려 간접적인 창조로 해석하고 있다.하나님은 모든 자연발생의 사건에도 임재해 계시지만 자연발생케한 행위는 직접적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이다.

둘째,사람은 흔히 몸에 있어서는 물론 영에 있어서도 자기 조상들을 닮는 다고 답변하는 바이다.뮬린스는 "만일 유전이 유사한 신체적 특색을 설명하는 것이라면,그것은 또한 영적인 유사성에 대해서는 더욱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세째,이 영혼 창조설은 모든 사람의 범죄 경향성을 설명하지 못한다.하나님께서 죄된 상태에 있는 개개의 영혼을 창조하셨거나 또는 몸과 접촉한 영혼의 접촉자체가 사람을 부폐케 했음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처음 경우라면 하나님은 죄의 직접적인 창조자이며 둘째 경우라면 하나님은 죄의 간접적인 창조자 일 것이다.

 

c.영혼 유전설

인류는 육체나 영혼에 있어서 모두 아담안에서 직접적으로 피조된 것이며 육체와 영혼 양자는 모두 자연 번식에 의해 아담으로 부터 전수되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영혼 유전설은 성경과 일치한다.

 

*창1:26,27,5:2,롬7:1 - 남자와 여자를 함께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다.이것은 그 두 남

녀를 하나의 종(種)으로 여기셨음을 뜻한다.Shedd는 "인간은 하나의 종(種)이며 이 종의 개념은 그 종에게서 부터 나온 개체의 전부가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번식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가르친다"고 했다.이반적으로 개체들은 부분적으로 번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번식되어 진다.

*창5:1-3 - 아담이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신체적인 면에서만 국한시킬 수 없다.영혼에 있어서도 닮았을 진대 그 영혼도 출생행위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행17:26 - "하나님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했다.이 말은 모든 족속은 한 부부에게서 나왔으며 모든 족속을 구성함에 있어서 하나의 공통된 인간성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의미하고 있다.

*창2:1-3 - 창조행위가 6일에 완성되었다고 했다.만일 하나님께서 매일 매시 그리고 매순간적으로 영혼을 창조하신다면 아마 그런 말씀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영혼 유전설은 신학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아담의 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영혼 유전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 된다.죄는 한 사람의 자기 결정행위로 인해 세상에 들어 왔다.그러한 죄가 이젠 모든 개개인에게 책임을 부가시켰다.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죄에 가담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죄된 성품의 전달 자체가 영혼 유전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 된다.자연생식을 통해 우리들의 죄된 성품을 지니게 된것이다(욥14:4,15:14,시51:5,58:3,요3:6,엡2:3).

세째,영혼 유전설은 인간 성품에 관한 적절한 개념과도 일치한다.인간 성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종(種) 또는 일반적 실체이지,개개실체의 속성이나 특질이 아니다.


 

3.인간의 타락

 

(1)타락의 배경

사람의 타락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죄의 성질에 대해 이해야 한다.

 

A.하나님의 율법

 

일반적으로 말해서 율법이란 권세로 강요된 의지의 표현이다.그런즉 율법속에는 율법수여자,율법수납자,의지의 표현,그리고 그 의지를 강행하는 권세가 포함된다.율법은 하나의 유효적 작용원인이 아니다.그것은 입법자(혹은 율법수여자)를 전제로 한다.그것은 입법자가 준수하고 있는 원칙에 의해 행동하는 양식일 뿐이다.

 

a.하나님의 율법의 의미

특별히 하나님의 율법이란 그의 권세에 의해 강요된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그것은 두가지 형태를 지니는 바,곧 기본법과 실정법이다.

 

*기본법: 기본법은 이성 및 비이성의 피조물의 구성요소,실체,그리고 활력중에 작용하고 있는 법칙이다.그것이 물질적 우주의 구조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관계로 우리는 그것을 물리학 또는 자연법칙이라 호칭한다.물리법칙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어떤 다른 질서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또 물리법칙은 그 자체 속에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도덕적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자연계의 물리적 질서는 단지 상대적인 연구성만을 지닌다.때때로 하나님은 이적을 통해 물리적 질서를 보완하기도 하신다.그 법칙이 이성적 자유적 존재자의 구성 속에 작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불러 도덕법칙이라 한다.그것은 율법수여자인 하나님과 율법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율법순종자와 인간의 도덕적 성품 속에 기록되어 있는 적극적인 명령과,그 명령을 강요하는 권세와,순종해야할 의무 내지 순종과,불순종에 대한 책벌등이 포함된다.이 율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과 의향을 표현한 것인데,이와같은

 

하나님의 성품에 유감없이 일치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드러난다.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 자체에서 나오는 것인만큼 어떤 독단적인 것은 아니다.그것은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생겨진 일시적인 조처가 아니다.그것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적극적으로 일치 조화되기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존재의 오직 어느 일부에게만 관계하는 부분적인 아니라 몸과 영혼 모두에게 관계하는 전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그것은 법문화한 것이 아니며 실정법은 오직 비성문화된 율법의 표현에 불과하다.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의 양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양심을 인식하든지 않든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다.그것은 어떤 한정된 지역이나 특수한 계열의 사람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도덕적 피조물을 총망라하고 있다.

 

*실정법: 실정법은 성문화해서 반포된 법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이실정법의 구성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도덕적 명령서로 된다.그런 것들은 10계명(출20:1-17)과 산상보훈(마5:-7:)등이다.신약에서는 제4계명(안식일 준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복되고 시인되었다.실정법은 또한 의식법규로도 구성된다.그런 경우를 든다면 제물법칙(레1:-7:),제사법칙(레8:-10:),순결법칙(레11:-15:)등이다.이것들은 일시적인 것이긴 하지만 얼마나 지속되어야 하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말씀하실 수 있다.어떤 율법들은 하나님의 본직적 성품에 근거하고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영원한 것이며 또 어떤 율법들은 사람들의 현재적 상태에서 피차간에 주고 받는 영구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도 있으며,또 어떤 율법들은 사람의 일시적인 어떤 관계나 또는 사회의 환경에 기초하고 있는 것도 있고 기타 어떤 것들은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으로 부터 권위를 행사하게 되는 적극적인 율법도 있다.제사와 할례 등의 의식율법은 이런 성질에 속하는 것들이다.

 

b.하나님의 율법의 목적

*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셨다(롬3:19,20,7:7).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셨다(롬7:12).계명의 성질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의식적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가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신것이다(갈3:24).율법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예비케 한다.

 

c.하나님의 율법과 신자의 관계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신자는 율법의 저주(갈3:13),곧 율법이 사람에게 부과한 형벌에서부터 구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자체에서 부터도 구출을 받았다(롬7:4,엡2:14,15,골2:14,20).그 결과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며"(롬6:14,7:6,갈4:30,518),또한 신자는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갈5:1)는 권고를 받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믿는 자는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나,자유가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도덕폐기론 빠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성경은 우리가 율법에서 구출받았음은 물론 그 다음엔 다른 분에게로 다시 결혼하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롬7:4).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는 율법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여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있는 자이다"(고전9:21,갈6:2). 결국 신자는 자기의 모범과 교사되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집중해야 하며,성령에 의해 그의 법을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다(롬8:4,갈5:18).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고 있는 십계명의 명령이 오늘날 아무런 권위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실제로 십계명을 잘 유의해서 조사탐구해 보면 제4계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개개의 계명들은 신약에서 재확인되고 있음이 드러난다.그 계명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들을 교훈하기 위해 계속 반복되고 있다.단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애써 지켜야 할 명령만은 아닌 것이다(롬3:20).이 세대의 신자는 아들의 양자됨을 받았고 그 양자됨의 보증으로 성령을 받게 되었다(갈4:5,6,고후1:22,5:5,엡1:14).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육의 성질에서 구출을 받았으며(롬8:2),또 성령에 의해서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되었으며(롬8:13),역시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지니게 되었다(갈5:22,23).


B.죄의 성질

 

"죄는 이성적 피조물에게 하나의 규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지 못하거나 또는 침범한 것이다"(대요리문답 24문).이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요일3:4,갈3:10,12,약2:8-12,롬7:7-13).

 

a.죄는 특종(特種)의 악(惡)이다.

우리는 자연재해나 짐승 앞에 "악한"이란 말을 붙여서 쓰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것이 죄는 아니다.왜냐하면 죄에 대한 우리들의 정의는 이성적 피조물에 국한되기 때문이다.이성적 피조물이 아니고 서는 어느 누구도 죄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인간은 이성적 피조물이기 때문에,인간으로서 행해서는 안될 것을 행한다거나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아니했을 때나,자기의 신분을 적절하게 지키지 못했을 때에 그는 그 죄에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다.

 

b.죄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일치이거나 또는 침범행위이다.

우리 인간은 도덕적 및 이성적 피조물인 이상,정의 법에 필연적으로 순종해야 한다.Hodge는 그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그 법은 우리의 이성은 아니다.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에겐 하나의 율법이지만 죄책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기 때문이다.

*그 법은 우주의 도덕적 질서도 아니다.왜냐하면 도덕적 질서란 하나의 추상개념에 불과한 것으로서 의무나 형벌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법은 우주의 행복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행복은 필연적으로 선과 동의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법은 우리 자신의 행복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만일 우리의 행복에만 관심을 두는 법이라면 사리(私利)를 선악의 표준으로 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법은 무엇인가?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그 완전성에 변함이 없으신 이성적 존재자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마22:37-40).

 

희랍어 성경에서 죄에 대해 쓰고 있는 단어들이 이런 견해들을 지지하고 있다.

*hamartia(hamartema) - 표적 또는 목적을 맞히지 못하는 것.

*parabasis - 한계선을 넘거나 탈선하는 것.

*paraptoma - 사람이 마땅히 똑바로 서야할 곳에서 서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

*agnoema -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무지.

*hettema - 완전히 지불해야 할 것을 감소시키는 것.

*plemmeleia - 하나님의 우주의 조화와 불일치하는 것 등.

율법과 죄와의 관계에 관한 몇개의 특별한 설명이 부가되어야 할 것 같다.

첫째,율법이 부과하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아니함은 율법이 금하고 있는 것을 행하는 것만큼 동일하게 죄다(약4:17).

둘째,한가지에 실패하면 전체를 범한 것이다(갈3:10,약2:10).

세째,율법에 관한 무지가 사람에게 어떤 구실핑계를 안겨다 주지는 못한다(눅12:47,48).

네째,인간은 율법을 행할 능력이 있어도 범죄한다.그러나 인간은 율법을 행하기에는 사실상 무능한데 이것은 아담안의 죄에 가담된 때문이다.그리고 이것이 원래의 상태가 아니다.일단 하나님의 율법이 피조물에 대하여 유일한 기준으로서의 하나님의 거룩성을 표하고 있는 이상,순종의 능력이 책임의 척도나 또는 죄의 시험이 될 수는 없다.

다섯째,죄책감이 죄의 사실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적 표준은 지극히 저급하며 그의 양심은 너무도 흔히 범죄해온 탓으로 인해 이런 실재적으로 죄에 대한 느낌마저 없다.그런즉 죄책감이 인간 생활의 죄의 사실에 반드시 따르고 있지는 않다.

 

c.죄는 하나의 행위임은 물론 하나의 원리 내지는 성질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일치의 결여는 행위 및 성질상의 결핍도 내포하고 있다.죄행위들은 죄 자체인 하나의 원리 또는 성질에서 튀어나온 것들이다(마7:17,18,15:19,5:21,22,27,28).바울은 죄(sin)와 죄들(sins)을 구별하여,전자는 성질로,후자는 그 성질의 표현이라 했다.죄는 그 자체가 행위로 표현되기 이전에 모든 사람 속에 하나의 성질로 존재한다(롬7:8,9,17)(롬6:12,14,요일1:8,3:4).무지 또는 태만의 죄와,일반적인 죄에 관한 구약의 규정은 죄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일어나게 된 상태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레4:14,20,31,5:5,6).

영적 인식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사실을 자기 속에 있는 타락한 부패로 돌리고 따라서 자기 죄의 어떤 구체적인 행위보다는 원리로서 존재하고 있는 죄 자체를 보다 더 심각하게 회개한다.

Hodge는 이렇게 말한다."죄는 죄책과 오염을 포함한다.전자는 공의와 관련된 사실을 말하고, 후자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관련된 사실을 말한다.죄의 이 두가지 요소들은 모든 죄인의 양심에 계시되어 있다".죄가 율법의 침범인 이상 그것은 죄책이며,또 죄가 하나의 원리인 한 그것은 오염이다.악한 성품에 의해 일어나는 오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1:5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다".

렘17: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

눅6:45 -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

롬7:24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엡4:22 -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예 사람".

이런 귀절과 다른 모든 귀절은 우리가 정결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의 교훈의 기초를 쌓는다.

시51:2 -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51:7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나를 씻기소서 눈보다 희리이다".

요15:3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엡5:26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요일1:7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오염은 그 자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현상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해력의 어두운 무지(엡4:18,롬1:31,고후2:14)

악과 헛된 공상(창6:5,12,롬1:21)

부끄러운 욕심(롬1:26,27)

더러운 말씨(엡4:29)

부패한 마음과 양심(딛1:21)

노예화된 탈선의 의지(롬7:18,19) 등. 이것들은 부패한 성질이 근원이 되어 있다는 징후이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의 결여는 "죽음"으로 언급되기도 했다.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했다(엡2:1,5,골2:13). 즉 사람들은 영적 생명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d.죄는 본질적으로 이기주의적이다.(사53:6)

이기주의가 죄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죄의 모든 형태가 이기주의를 근원으로 삼고 있는 점으로 보아 틀림없다.심지어 타인에게 우상 숭배적 애정을 쏟는 행위도 어느 의미로는 타인이 곧 자기의 일부라는 감정에 기초해서 오직 자기를 간접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으로서 그들에게 그런 애정을 쏟게된 것 뿐이다.요5:30,롬13:10,고후5:15,딤후3:2 이상의 귀절 및 기타 여러 성경귀절은 이기주의야 말로 기타 모든 생겨 나오는 원리인 죄의 본질이라고 제시한다.


(2)타락과 관련된 문제점

 

A.거룩한 자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에 이르게 하는 동기를 사람 앞에 두시지는 아니했다는 점엔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또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유지케 하는 은혜를 제거하시지도 아니했다.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셨는데 이 선택의 능력 때문에 이런 결과에 부득불 당도하고야 말았다고 말하는 것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우리는 최초의 거룩하지 못한 감정이 어떻게 거룩한 존재자의 영혼 속에 일어나게 되었느냐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그런 사실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 알고 있다.유일한 만족한 설명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고자 하는 자유행위의 반항에 의해 타락되었다는 말이 전부다.Strong은 "죄의 유일한 동기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자아를 최상의 위치에 놓으려는 야욕"이라고 말했다.

 

B.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이 시험을 받게 허용하셨을까?

 

a.시련의 필요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시련이 필하다.

 

b.시험자의 필요

사탄은 스스로를 높여 타락했지만(사14:13,14),인간은 시험자에 의해 타락했다.그래서 사탄의 구속을 말하는 하나님의 자비는 없지만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는 가능한 것이다.

 

c.시험에 대항할 가능성

시험 그 자체 속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케 할 능력이 없다.그것은 사람의 선택으로 되어진다.그런즉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범죄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약4:7).

 

C.가벼운 명령 불순종에 대해 형벌이 너무 과중하지 않을까?

 

a.내포된 원리

혹자가 어떤 타자에게 표하는 충성을 척도하는 데에는 굳이 거창한 행위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비록 작고 단순한 행위를 내포한 경미한 명령만으로도 순종의 정신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다.

 

b.명령의 중요성

자세히 검토해 보면 실제로 외면적 명령은 의미심장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그것은 특출한 권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c.선포된 형벌

아담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형벌을 선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것은 생사의 문제임을 밝히셨다.불순종은 사망의 죄로 여겨졌다.그것은 사느냐 죽느냐, 하나님이냐 자기냐의 사이에서 취해야 할 선택이다.

 

d.계시된 조건

사람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신체적 식욕의 자극을 받은 것도 아니며,사탄이 식욕에 호소한 것도 아니다.그것은 단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야욕이었다.그런즉 불순종의 행위는 하나님을 버리고 철저히 더러워진 마음을 드러낸다.그 마음은 감사치 아니하며 믿지 아니하며 야욕을 피우며 반항하는 마음이다.


4.타락의 사실과 즉각적인 결과

 

(1)아담의 개인적 행위에 나타난 죄의 기원

 

A.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주이원론,페루샤인의 사고방식,노스틱 주의,마니교도들은 죄는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그러나 이 이론은 하나님을 하나의 유한적 종속적인 존재자로 만들며,도덕적 악으로서의 죄의 개념을 파괴한다.또 이 이론은 인간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파괴한다.실로 이 이론은 죄를 인간과 무관한 하나의 영원한 실체로 봄으로써,죄의 성질을 파괴하고 있다.그러므로 죄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B.죄는 인간의 유한성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다.

라이브닛즈와 스피노자는 죄는 우리의 유한성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다시말하면 죄는 우리 존재의 한계성의 필연적인 결과다고 말한다.하나님 자신,곧 범신론적인 하나님은 제한성이 없는 피조물은 만드시지 못하셨다.그가 만드신 피조물 속에는 제한성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이 이론은 신체적 및 도덕적 문제간의 구별을 무시하고 있다.인간은 신체적으로는 한계성을 초월할 수 없지만 도덕적 허약과 제한성을 지닌 피조자로 피조된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인간의 죄는 불완전한 도덕적 성품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다.더욱더 죄가 인간의 한계성에서 기원했다는 견해는 범신론적 우주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선이 하나님의 진정한 일부이듯이 악도 하나님의 일부라고 말한다."선에 필수적인 것은 악의 현실성이 아니라 악의 가능성일 뿐이다"(스트롱).

 

C.죄는 감각성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다.

 

슐라이 마허(Schleiermacher)는 죄는 우리의 감각적 성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감각적 성질 자체가 악이라고 했다.그는 감각적 성질을 "영에 대한 육의 적극적인 반항"이라 불렀다.그러나 이 이론은 여러가지 불합리한 인간 행습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가령, 감각의 기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금욕주의로 빠지게 만든다.이 이론은 죄의 기원을 설명하기는 커녕,오히려 죄의 실제를 부정하고 있다.왜냐하면,만약 죄가 인간 성품의 본래적 기질에서 나왔다면,우리는 그 죄를 불행으로 여길지는 모르나 그것을 죄책감으로 생각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끝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죄는 인간의 원래적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고의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D.죄는 아담의 자유행위에서 기원한 것이다.

 

성경은 한 사람의 한 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 왔으며,그 죄로 인해 죄의 보편적인 결과를 초래케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롬5:12-19,고전15:21,22).이 한 사람은 아담이며 이 한 죄는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의 나무의 실과를 취해서 먹은 행위였다(창3:1-8,딤전2:13,14).

우리는 원조상의 죄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하와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신했다.

*하와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었다.

*하와는 육체적 식욕에 굴복했다.

*하와는 과도한 미추구에 굴복했다.

*하와는 과도한 지혜를 탐했다.

아담은 하나님의 충분한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를 사랑한 탓으로 범죄한 듯하다.

Shedd는 이렇게 말한다.

 

"하와의 죄는 주된 목적과 주된 선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와 피조물을 주된 목적으로 삼으려고 했던 자기결정과 자기의지의 경향성이라 하겠다.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굳이 갈구한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좋아한 처사며,이것이 범죄케 만든 것이다.이 욕망이 그녀의 의지의 죄의 시작이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제10계명에서 금하신 것과 동일한 욕망이다.탐심이나 정욕을 내지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은 일단 무엇이든 욕구하지 말라는 명령인 것이다.하와의 영혼의 모든 내적행위는 따서 먹는 외적행위보다 선재한 것이었다.

환언하면,최초의 죄는 하나님의 유익보다는 자기의 유익을 일차적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마음속에서부터 선택 욕구한 것을 말한다.과도한 죄행위는 이미 마음 속에서 범한 죄를 표현하는 데에 불과하다.


(2)아담의 죄의 즉각적인 결과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 및 그들의 환경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한다.

 

A.원조상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친 영향

a.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b.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유쾌의 의식을 스스로 지니게 됨

c.죄책

d.하나님 앞에 설 자기들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됨

e.정죄를 받음

f.이런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서 달아나게 되고,죄책에 사로잡혀 죄를 전가시키게 되었다.

 

B.원조상의 성품에 미친 영향

수치감,타락감,불결감 등을 갖게 되었다.그래서 그들은 무화과 나무로 치마를 만들어 입게 되었다.그들은 죄된 성품을 갖게된 것이다.

 

C.원조상의 신체에 미친 영향

그들의 범죄의 결과는 신체적인 죽음을 가져왔다(창3:19,고전15:22).또한 모든 신체적 질병도 근본적으로는 죄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그리고 육체적인 고통도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다.

 

D.원조상의 주의 환경에 미친 영향

땅(창3:17-19),동물피조물(창3:14)이 저주를 받았다.그래서 모든 피조물이 해방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롬8:21,22,20,사35장,사11:6-9)


5.죄의 전가와 인류의 결말

 

(1)죄의 보편성

왕상8:46 -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이다"

시143:2 -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잠20:9 -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전7:20 -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눅11:13 - "너희가 악할지라도"

롬3:10-12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9 -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3:23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갈3:22 -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약3:2 -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

요일1:8 -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가 보편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 위에 정죄의 심판이 내려진다는 사실(요3:18,36,요일5:12,19)과,속죄,중생,회개가 보편적으로 필요시 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요3:16,6:50,12:47,행4:12,17:30,요3:3,5) 입증되어진다.성경에서 선인이라고 언급할 때의 단순한 의미는 가정적으로 말한 것이며(마9:12,13),또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발전단계에 있는 선을 의미할 뿐이다(롬2:14,빌3:15)

이와같은 보편적인 죄성은 비단 범죄행위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그것은 죄된 성질의 소유까지 포함된다.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대상은 범죄행위와 범죄행위의 원천인 오염부패된 성품에로의 경향성이다.(눅6:43-45,마12:34,엡2:3).죄의 형벌인 사망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범죄하지 아니한 자에게도 찾아왔다(롬5:12-14).

(2)죄의 전가

책을 참조하라(헨리디이슨,P.414)

 


6.죄의 성질과 최종결과

 

(1)타락의 성질과 범위

 

A.타락의 의미

 

타락의 의미는 인간의 최초의 의 및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애정의 결여와 또한 인간의 도덕적 성질의 부패 및 악을 향한 경향성이다.타락이 있었다는 증거는 성경과 인간 경험이 말해준다.모든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 성경의 가르침은 타락의 보편성을 말해준다.

 

B.타락의 범위

 

성경은 인간의 성품은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한다.그러면 전적타락이란 무슨 의미인가?

 

*소극적인 면

 

전적타락은 모든 죄인은 사람을 기쁘게 할 모든 기질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또한 모든 형태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골고루 다 쁹아가면서 범죄하거나 범죄할 경향성이 있는 의미도 아니며,자기의 형편이 가능한 한 철저하게 하나님을 거스리고 만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그것은 마치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유럽의 대 사원들이 폐허되었지만 그래도 그 사원들의 원래의 아름다운 건축미의 흔적을 조금은 지니고 있는 것과도 같다.예수님은 어떤 개인 속에는 다소의 기쁨을 유발케하는 기질이 있음을 시인했다(막10:21).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어떤 일을 행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마23:23).바울은 어떤 이방인들은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한다"고 주장했다(롬2:14).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점점 악해 지리라고 말씀하셨다(창15:16).바울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딤후3:13)고 말했다.

 

*적극적인 면

 

모든 죄인은 율법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전적으로 결핍하고 있다(신6:4,5,마22:35-38).죄인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우선적으로 사랑한다(딤후3:4).죄인은 때로는 하나님께 적극적인 원수가 되는 지독한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다(롬8:7).죄인의 모든 기능은 무질서하며 부패되어 있다(엡4:18).죄인은 하나님이 만족하게 인정해 줄 수 있는 사상이나 감정이나 행위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롬7:18).죄인된 인간은 계속 타락의 길로만 달리고 있는지라 자력으로는 결코 돌아설 수가 없다(롬7:18).Smith는 이렇게 말한다."인간의 타락 또는 인간의 죄된 상태는 지성과 감정과 마음과 의지를 포함한 전인적 인간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말았다...... 그 결과 아직 중생하지 못한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저급의 애정이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죄인은 자기의 인격과 생애를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할 수 있도록 자력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사랑보다는 자아와 죄를 근본적으로 더 사랑하는 그의 입장을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에서 부패가 죄인 속에 전적 영적인 무능력을 초래케 했다.그러나 전적타락에서 말하는 무능력이란 영혼의 어떤 기능을 상실했다거나 또는 자유적 행동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2)죄책의 성질과 정도

 

A.죄책의 의미

 

죄책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또는 하나님을 전혀 만족시킬 수 없는 부채(負債)를 뜻한다.죄책은 아담안에서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나 또는 개개인의 입장에서나 간에 자기가 결정한 범법을 인해서만 일어나는 죄책감이다.그리고 죄책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에 대한 적대가 된다.죄책은 죄의 객관적 결과이다.

 

B.죄책의 정도

 

성경은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죄에서 나오는 죄책의 정도도 여러가지로 다르다고 가르치고 있다.이것은 구약에서 여러가지 상이한 범죄에 대해 드리는 제사가 제각기 상이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에서 인정하며(레4:-7:),신약의 다양한 심판에서 나타난다(눅12:47,48,요19:11,롬2:6,히2:2,3,10:28,29).

 

a.본성의 죄와 개인적인 범법

본성의 죄란 선천적인 죄에 대한 죄책을 가리킨다.그러나 우리가 본성의 죄로 인하여 개인적인 범법의 행위들을 범할 때에는 더 큰 죄책이 따른다.그리스도께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4)고 하신 말씀은 어린아이의 상대적인 천진난만성을 이야기한 것인데 비해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量)을 채우라 독사의 새끼들아"(마23:32)고 하신 말씀은 고유한 부패성에 더 추가되어진 개인적인 범법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b.무지의 죄와 지식의 죄

여기서의 죄책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지식의 정도가 클수록 죄책도 크다(마10:15,눅12:47,48,23:34,롬1:32,2:12,딤전1:13,15,16).

 

c.허약의 죄와 고범죄(故犯罪).

범죄에 내포된 의지력의 양이 죄책의 정도를 말해준다.

시19:13,사5:18

이들은 뻔히 알고서도 고의적으로 죄에 빠져들어간다.한편,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그가 부인했을 때 허약의 죄를 드러낸 것이다.그는 서려고 했으나 실패했던 것이다.

 

d.미완성의 죄와 최종적인 완고성의 죄

영혼이 스스로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무수한 은혜의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정도가 결국 죄책의 정도를 결정한다.최종의 완고성은 성령을 거스리는 죄로서 이것은 사함을 받을 수 없다.그것은 영혼이 이 완고성을 통해 하나님의 영향을 받기를 거절한 때문이다(마12:31,32,막3:29,요일5:16,17,히10:26).

(3)형벌의 성질과 구체성

죄의 결과로서의 부패와 죄책은 지금 온 인류위에 있으나,온전한 형벌은 지금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

 

A.형벌의 의미

 

형벌이란 법을 파괴함으로써 생겨난 하나님의 공의의 변호를 위해 율법수여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가하시는 고통내지 손실을 말한다. 모든 형벌에는 인격적인 요소,곧 율법수여자의 거룩한 분노가 있다. 이것이 오직 부분적으로 자연적인 결과로 표현되었다. 이로 보건대 형벌은 본질적으로 범죄자의 개조를 초래코자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그런즉 징계와 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징계는 사랑에서 나와서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렙10:24,히12:6),벌은 공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범죄자를 개조하는 데에 목적을 두지는 아니했다는 사실이다(겔28:22,36:21,22,계15:1,4,16:5,19:2). 벌은 범죄를 저지하며 방비할 목적을 때로는 성취하기도 하지만 벌이 일차적으로 목적한 바는 범죄의 저지와 방비가 아니다.왜냐하면 사회의 복지를 위해 한 사람의 개인을 형벌한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웨버-페리(Weber-Perry)는 Hegel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다."법에 의해 가해진 형벌은 징계도 아니고 교정도 아니다.그것은 단지 정당한 보복에 불과하다.형벌은 수단이 아니라 최종 목적이다...... 사형은 오직 정당한 것으로서 반드시 지속되어져야한다. 그러나 악행자를 죽임으로써 그 악행자 자신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불합리하지 않는가? 지금 흔히 대두되고 있는 사형 반대론은 헤겔이 주장하는 대로 법적 형벌의 그릇된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말이지 형벌의 목적은 개인의 개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어진 원칙에 대한 엄숙한 확인인 것이다."

 

B.형벌의 구체성

 

죄에 대한 형벌을 말할 때는 오직 하나의 말만이 있었고 성경에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것은 곧 죽음이다.그것은 3중적인 죽음이니,곧 신체적,영적,영원적 죽음을 말한다.

 

a.신체적 죽음

신체적 죽음은 영혼과 몸의 분리이다.성경에는 신체적 죽음을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로 제시되었다.(창2:17,3:19,민16:29,27:3,시90:7-11,사38:17,18,요8:44,롬5:12,14,16,17,벧전4:6,롬4:24,25,6:9,10,11,갈3:13).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을 감당하셨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몸에 대해서는 하나의 수면이며,영혼에 대해서는 그의 하나님과 만족한 교제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다(고후5:8,빌1:21,23,살전4:13,14,막5:39).

 

b.영적 죽음

영적 죽음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인류에게 내려진 에덴동산에서 선포된 형벌은 일차적으로 이 영혼의 죽음이다(창2:17,롬5:21,엡2:1,5).이 영적 죽음을 인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호의를 상실했으며,또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욕구마저도 잃은 바 되었다.그런고로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눅15:32,요5:24,8:51).

 

c.영원적 죽음

영원적 죽음은 영적 죽음의 최절정이요 완성이다.그것은 하나님과의 영혼의 영원한 분리로서,자책과 외형적 고통이 수반되는 분리이다(마25:41,10:28,살후1:9,히10:31,계14:11). 이것이 영원적 상태라는 사실은 많은 성경귀절에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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