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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04
 제목  헤겔의 종교철학(계시종교로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주제어  [헤겔] [종교철학]
 자료출처  유덕수(창원대학교 강사, 人文論叢, Vol.8 No.-, [2001])  성경본문  
 내용

 

Ⅰ.들어가는 말

헤겔의 체계에서 종교에 관한 논의는 청년기 저작에서 베를린 시절에 이르는 그 자신의 학문적 여정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진 주제이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학문적 체례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헤겔에 있어, 종교철학이란 종교라는 절대적 내용과 철학이라는 절대적 사유형식의 통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최상의 내용으로서 종교와 이 내용에 형식을 부여하는 철학의 상호매개를 통해 종교철학이 가능하게 됨을 의미한다.

헤겔은 '민족 종교와 기독교에 관한 단편(Fragmente ?ber Volksreligion und Christentum)' '기독교의 실정성(Die Positivit?t der christlichen Religion)', '기독교 정신과 그의 운명(Der Geist des Christentum und sein Schicksal)', 등의 초기 저작과 베를린에서 행한 '종교철학 강의'를 통해 종교에 관한 논의를 한다. 이 저작들의 주된 의도는 기독교 해석으로서 기독교를 기성종교에서 철학적 형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헤겔은 율법적 종교인 유대교1)를 사랑의 종교로서 즉, 안간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이 율법으로 규정되어 대립하는 유대교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와 너라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것을 예수의 세계사적 과제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헤겔은 예수를 형식적이며 실정적인 율법보다는 오히려 참으로 도덕적인 것을 정립한 것으로 이해한다.

헤겔이 생각하는 참으로 도덕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규율과 율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매개로 해야 하는 것이다2). 여기서 사랑은 논리적인 사고나 체계적인 이성의 사유가 아니라 느낌3)이며, 이 느낌으로서 사랑은 대립과 분열을 통일시키는 삶 자체이다4). 그런데 종교 특히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며, 이 사랑은 느낌으로서 아직은 개념을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헤겔 철학 전 체계를 관통하고 있는 개념의 자기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종교는 개념으로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종교는 표상5)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랑은 "더 이상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통일된 것으로서 존재하며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느낀다6)."이 통일은 죽음과 삶이라는 대립적 관계의 해소이며 영원한 생명을 정립시키는 신앙과 하나가 되는 데, 이 신앙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바로 종교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인간으로 나타난 신의 보편적 사랑이다. 요컨데 헤겔이 생각하는 종교적 사랑이란 대림을 통일하는 사변의 힘, 즉 정신의 힘이며, 여기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소외를 지양하게 된다.

Ⅱ.이성종교로서 기독교

이러한 입장에서 헤겔은 기독교를 도덕과 신앙의 통일로서, 그리고 예수가 이 기독교를 의식에 매여 있는 실정적인 종교가 아니라, 순수하게 도덕적인 종교를 가르친 것으로서 이해한다.

이 기독교의 내용을 헤겔은 "신의 희열의 근거인 신앙자체"7)로서 받아들인다. 이 기독교는 다름 아닌 이성종교이며, 이 이성종교는 교훈과 의식에 형식적으로 물들어 있는 기성종교와 미신적 신앙에 대해 도덕법칙을 정립하는 종교이다. 예수가 이 도덕법칙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표상이며, 이 종교의 표상은 객관성이라는 진리의 의미를 지니면서 그 자체가 유한하고 주관적인 감각적인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 객관성의 의미는 정립된 것, 나 자체 안에 머물면서 운동하는 것이라는 내용, 이 내용이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내용은 종교적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 의무와 객관적 신앙으로서 나와 대립된 즉자대자적으로 확고한 것이다8).

이에 반해 아직 개념으로 이행하지 않은 이 종교적 느낌은 신을 자신 속에서 직관하며, 신적인 것에 대한 자신의 의식을 자기의식으로 직관하고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직관하면서 자기 자신을 신으로 모시는 신화이다9). 이것은 종교적 느낌의 형식이 지니는 완고함이다. 이 종교적 느낌에서는 객관성으로서 진리가 사라지고 자기 망각과 자신의 견해에 대한 포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와 함께 주관적 신앙의 폭력과 억압이 나타나는 반면, 객관적 신앙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히려 닫혀 있다10).

따라서 이 종교적 느낌은 단지 사적인 경향이나 견해와 같은 우연성이 아니라 실체적인 것을 소유해야 한다. 더불어 이 실체적인 것은 주관의 느낌으로부터 독립된 즉자대자적으로 확고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함을 뜻한다11). 헤겔이 보았을 때 주관적 신앙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공허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진리란 주관성 안에 객관적인 계기를 확고하게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서, 즉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12).

하지만 앞선 언급한 표상은 형식적 실정성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충만함으로 차 있는, 즉 형식적 오성개념에 머물고 마는 단순한 신학과 단순한 실천행위로서의 신앙을 지양하여 역사와 주체를 통해 구성되는 표상이다. 이 표상이 지니는 객관성의 형식은 나의 신앙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신앙의 다양한 방식으로서 종교적 진리가 존재하는 방식은 표상이며, 이 표상에서 내용과 세계와 신이 그 자체로 확정된다13).

그런데 헤겔은 이 표상 자체를 보편성의 단순한 형식을 지닌 하나의 전체, 구체적인 것, 세계, 신, 전쟁으로 생각하지만, 내적으로 참되고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 한 표상 속에 드러나는 사유는 단지 오성적 사유에 지나지 않는데, 이 오성은 이념과 진리의 형식을 중심 문제로 삼으며 비유적이거나 유추적 표현을 한다14). 물론 이 표현 속에 사변적 사유가 내재하긴 하지만, 원죄나 성령 강림과 같은 비유적인 것이며, 전적으로 규정적인 유한적 관계들을 이루어낼 뿐이다15).

헤겔이 생각할 때 이 오성적 사유는 반성을 자신의 계기로 지니며, 이 반성은 유한적 관계와 규정을 결코 넘어서지 않는 것으로서, 이 반성은 종교의 실정적 진리를 외적 증명과 근거 위에 세운다. 진리에 대한 거부인 이 오성은 나에게 참이어야 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참으로 여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사변적-논자 주)사유에 대한 인정이며, 사유의 객관성에 대한 인정이다16). 따라서 표상은 필연성의 형식을 지닌 내용도, 특수한 경향을 절대적으로 지워 버린 내용도 아니다. 헤겔은 이 표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름다운 심정, 순수한 심정, 사랑하는 심정, 종교적인 심정 등은 그것들의 심도에서 마찬가지로 농축된 총체 성을 파악하며, 모든 것을 단순하고도 추상적으로 신에게 연관시킨다. 이것은 곧 열광이며 광신이고 확고한 도덕 규정이며 일종의 우주 확장이다17)."

하지만 스스로 자기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는 주관적 심정은 자유를 상실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에게 있어 진정 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부여되는 모든 것을 자치와 조화시킴으로써, 이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능동적 극복의 결과이다. 이는 단지 현실의 살아 있는 주체와 그 객관적 조건들의 매개과정의 결과로서만 나타나는 통일이다. 이 매개는 현실적 주체로서 살아 있는 자신에게 고유한 기능이며, 이와 함께 살아 있는 자기를 진정으로 현실적 주체로 형성한다. 이 생은 바로 실체가 주체로 파악되는 최초의 형식이며, 자유의 최초의 실현이다. 물론 모든 생의 형식이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으며, 오로지 인간만이 객관적 조건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주관성의 발전을 위한 매개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18). 따라서 참된 자유는 주관과 객관의 매개적 통일을 통해 그 실현이 가능할 것이며, 이는 자기 자신의 실현의 터전이라 할 객관적 조건을 망각한 채로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종교에만 매몰되는 상황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 역사와 도덕의 실정성을 잊은 채 단지 형식적인 종교만을 지니는 민족은 스스로 타락하여 도덕적 힘을 상실하고 신을 버린 채 개인의 삶에만 몰두한다. 물론 이 개인은 자신의 삶의 한계에 이르렀을때, 신앙 자체와 생명력으로 충만한 신의 상징과 기적을 갈구한다. 여기서 기적은 도덕적인 타락을 타파하는 것으로서, 종교를 역사와 주체를 회복한 참으로 실정적인 것으로 이끌어낸다. 이 도덕적인 타락은 의지, 감각, 신앙을 잃어버린 채 자유를 상실한 노예와 같은 상태이다19).

도덕적 타락을 타파하는 이성종교로서 기독교, 즉 도덕법칙을 정립하는 이성종교로서 기독교는 개별을 보편으로 지양하며 보편의 실현을 주체 안에서 성립시킨다. 이 개별의 보편을 향한 통일은 대립의 지양이며, 이 대립의 지양은 도덕적인 의무를 수반한다. 문제는 이 의무가 타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에서 성립한다는 데 있다. 타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바로 타자 존재에 대한 인정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름 아닌 도덕적 의무가 상호인정의 계기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의 도덕성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에 따라 종교는 이성과 현실의 통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헤겔이 생각하는 역사가 다름 아닌 '이성이 자신의 이념인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라 할때, 역사 속에서 종교 즉, 기독교의 의미는 자유에 있으며, 헤겔은 이 정신의 자유를 예수에게서 구한다20), 억압적이고 예속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주체성과 자기의식을 상실한 노예이며, 헤겔은 이러한 노예적 상황을 율법에 매여 있는 유대교에서 찾고있다. 이 유대교에서 스스로 자유로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신의 노예로 남아 있는 인간은 추상적이며 형식적인 율법에 매여 있을 뿐이다. 이 형식적 종교는 내용을 상실한 형식적 도덕의 성격만을 지닌 채, 해방의 가능성을 쓸어버리게 된다.

헤겔은 이 형식적 법칙과 도덕을 지양한 해방자인 예수에게서 종교의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다21). 이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의 힘인 사랑에서 구해지며, 사랑은 예수를 통해 형식적인 율법과 도덕을 지양하여 살아 있는 충만한 것으로 된다. 헤겔에게서 "신은 사랑이고 사랑은 신이다22)." 그러나 이 사랑은 사랑으로서 신이 예수이며 예수는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지닌다23).

사실 헤겔은 이미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중세적 로마의 제도화된 후기 기독교 교회와자율적 주체적 도덕을 가르친 예수를 대립시킴으로서, 예수를 율법이 아니라 성서 속에 내재하고 있는 도덕적 원리들을 깨닫도록 가르친 스승으로 이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세적 농노제를 용인하는 제도화 된 기독교는 이미 원시 교회가 지녔던 사회적 특성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평등과 재화의 공동 소유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평등은 단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만 그럴 뿐이라는 것이다. 초기 저작에서 헤겔은 기독교가 원시 기독교의 중요한 원리인 재산의 공동소유를 포기함으로써, 로마의 지배계급과 사실상 타협함으로서 기독교의 실정적 제도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러한 헤겔의 기독교에 대한 초기의 비판 즉, 예수의 가르침을 변질시켰다는 초기의 입장은 후에 오히려 역사 발전의 법칙으로 이해된다. 사실 이러한 비판적 생각을 헤겔이 바꾸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결단에 있어서 완전히 자율적으로 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것이 헤겔 사상의 발전 과정 중에서 나타나는 운명이며, 여기서 헤겔은 사랑이라는 매개를 추구하게 된다. 이 사랑을 토대로 하는 기독교는 절대적인 계시 종교로, 이는 바로 정신이 자기 자신으로 복귀함을 뜻한다.

Ⅲ.계시종교로서 기독교

헤겔은 계시종교를 헤겔 사유체계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사변적, 변증법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단지 신학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철학적 입장에서 이성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자기의식으로서 정신으로 파악한다. 이에 대해 헤겔의 입장을 살펴보면,

"표상으로부터 유래하는 종교의 개념을 우리는 신 일반에 대한 의식으로 알고 있다. 이 의식은 감정의 형식을 지닌다. 의식은 다른 경우에 표상, 인식, 개념, 지식의 형식으로 나타난다......(중략) 우리가 단지 종교의 대상 그 자체, 즉 신을 다루려 한다면 종교철학은 예전에 형이상학의 한 부분인 자연신학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이 될 것이다. 자연신학에서는 신론과 신의 속성론이 다루어지며 나아가 도덕과 종교적 도덕이 다루어진다. 이것은 또 다시 특수학이 되고 말 것이며, 이 학은 신에 대한 의무와 인간에 대한 의무를 다룬다24)."

결국 이러한 신학은 자연신학을 다루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종교의 대상인 신에 대한이론만을 다루고 있을 뿐, 즉 오성적 사유에 그치고 말뿐이다 이에 반해 헤겔은 이 신에 대한 이론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단지 오성적 사유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특징이라 할 사변적 사유를 통해 접근함으로서, 신 개념 자체를 곧 종교 자체로 파악한다25). 이 사변적 사유를 통해 파악된 신은 "스스로 객관화되고 객관화하는 그의 이념26)"이다. 이 신은 "본질적으로 표상되며 의식되고 직관된 것27)"이다 이 신을 헤겔은 바로 "정신이며 영28)"으로 수용한다.

하지만 일관적이지 못한 자연신학은 실재적 정신으로 존재하는 신의 최고 규정을 인식하지못했으며 신을 인격적 정신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와 함께 이 신학은 종교도 단지 주관적인 것으로만 고찰하고 이 주관적인 것만을 실제의 유일한 것으로 삼는 일면적 측면을 지닐 뿐이다29).

그러나 사변적 사유에서 신은 "정신에 대해 있어야 하며, 신은 주관성 및 유한성과는 다른 존재로, 즉 대상으로 알려지고 인식되지만, 의식과 같이 외적이 방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 정신 속에서 직관된다. 그리스도교의 신적 존재는 원래 감추어지고 비밀스런 존재였지만 그 후 그 내용과 규정이 계시되었다30)." 이 내용은 유한한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무한한 내용으로서 신의 자기 현시이다.

이 무한한 내용은 주관의 느낌으로부터 벗어난 즉자대자적인 실체, 즉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것으로서, 자기 감정에 빠져 있는 주관적 신앙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시 종교의 개념 규정들은 객관적 대상의 체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나며, 내용에 대한 의식 및 진리 규정과 함께 내용의 본질적 계기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언급되어져야 한다31). 이 계시종교는 "종교의 개념이 객관적으로 전개된 종교32)"이다. 종교의 개념은 그 자체가 객관화되면서 대상 안에 나타나야 하며, 순수한 객관성 속에 종교적 의식의 객체와 내용으로 존재한다.

이 종교적 의식 안에 있는 종교의 개념은 객관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이다. 이 주관적인 종교적 자기의식에서 신이 나타나며, 이 신은 전체존재에 내재하는 일자이다33).

헤겔은 이 신만이 계시되는 것으로서 생각한다. 이 계시된다 함은 단 한번의 행위로 끝남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회의 행위로 그치고 마는 것은 신의 진정한 의지라기보다는 단지 신의 자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계시종교에 대해 헤겔은 엔찌클로패디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절대적 정신을 내용으로 하는 참다운 종교, 그 참다운 종교의 개념 안에는 본질적으로 종교는 계시되었다는 것, 그것도 신에 의해 계시되었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즉 정신을 실체로 하는 원리는 자신에 대하여 존재하는 무한한 형식으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원리로서 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정신으로서 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올바르고 분명하게 사유에서 파악하는 데는 철저한 사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신은 자비 자신을 아는 한에서 신이다. 나아가 신의 자기지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이며 신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다. 이 지식은 신 안에서 인간의 자기지식으로 나아간다는 명제들이 내포되어 있다34)"

기독교가 진리의 종교이기 위해서는 무한한 내용을 소유해야 하며 여기서 무한한 내용이란 진리, 즉 개념인 동시엔 실재인 정신 바로 그것이다. 이 기독교가 신을 인식할 수 없고 신이 계시되어 있지 않다면 참된 종교일 수 없다. 신은 곧 정신으로서 신이며, 정신은 진리 그 자체인 즉자대자적인 진리이다. 이 신이 스스로 창조할 수 없고 계시할 수 없다면, 그리고 모든 것이 단 한번의 시원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면, 즉 더 이상의 신의 현시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창조는 유한한 것이며 또한 유한한 내용만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유한한 내용을 대상으로 삼는 의식은 유한한 의식에 지나지 않으며, 헤겔은 이 유한한 의식에 의해 그 스스로 확립된 세계란 신으로부터 타락한 세계로 생각했다. 이 유한한 의식은 우상의 의식이며 보편자 그 자체가 아닌, 외면적이고 유한적 목적의 의식이다35). 이 유한한 의식 속에서는 세계와 신이 분리되며, 이 분리는 곧 신으로부터 타락한 세계를 뜻한다. 따라서 이 분리를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로 일치하게 되는 것, 즉 복귀를 의미한다. 이 복귀는 "유한성이 영원한 자로 받아들여짐이며, 신적 자연과 인간적 자연의 통일 그 자체이다36)" 여기서 세계와 신의 화해가 이루어지며, 이 화해의 종교가 진정 자유의 종교일 수 있다. 세계와 신의 화해, 이는 다름 아닌 타락한 세계가 구원에 이르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신은 이제 바로 구원의 신이다.

이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이것이 곧 신의 영원한 본성이다. 인간에게 있어 이 신은 구원의 신이면, 계시 종교로서 기독교는 신을 신이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해야 하며, 만일 이 기독교 안에 신이 계시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참다운 기독교일 수 없다37). 물론 헤겔이 의미하는 신은 정신으로서 신이며, 이 정신은 절대적 실재인 개념이다.

헤겔은 이 정신을 사랑이면, 타자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직관하는 것, 일자이며 보편자로 이해한다. 신이 다름 아닌 정신이라면, "신은 사랑이며 일자로 존재하는 것38)"이다. 이 사랑은 현실속에서 예수의 사랑으로 드러나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예수의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을 헤겔은 도덕적 계명에서 표명된 것으로 이해한다. 즉, "도덕적 계명은 법이 아니라 타자의 행복으로 표명되며, 따라서 타자의 특수성에 대한 나의 지각의 관계로 말해진다39)." 타자의 특수성에 대한 나의 지각이란 타자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며, 이는 곧 타자존재의 인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도덕적 계명은 "인간사랑 일반의 범위보다 더 추상적이고 확장된 의미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40)."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존재하며, 이는 연인과의 성적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과 남성간의 사랑, 우정 등은 기본적으로 종속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으며, 무한한 사랑 속에 있지 못한다. 예수의 사랑은 무한한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무한한 사랑이며, 감각적 자연적인 연관을 지니는 것이 아닌, "정신 속의 통일41)"이다.

다시 말해,

"무한한 고통 속에 들어 있는 사랑은 당연히 이 정신 자체의 개념인 것이다. 사랑은 신앙의 중심점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대상이며 무한한 넓이와 높이 속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무한한 근접, 고유성, 친족관계, 개성적 주체, 인간성 속에 들어 있는 죽음과 무한한 제약은 신적인 이념으로 받아들여지며 개인 속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개인은 특수한 개인이 아니며, 그는 신적 이념 속에서 그 스스로 보편적이다. 즉, 이러한 개인들의 현실적인 주관성 속에서 사랑은 곧 정신이며, 성령이다. 정신 내지 성령은 개인들 안에 있다42)."

흔히 생각하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또는 감정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그야 말로 감정적이기 때문에 덧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참다운 개념이라 할 정신의 본질적 특성은 지니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정신 속의 통일로서 예수의 사랑은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신성이다43). 이러한 입장에서 계시종교로서 기독교는 실체적 존재를 경배하는 추상이 아니라, 무한한 대립의 통일이며 신의 본성인 정신의 진정한 사변이다44).

이 절대종교이며, 계시적인 종교인 기독교에서 삼위일체45)는 진리로서 받아들여진다. 성부와 성자 성신의 일체를 말하는 삼위일체는 신의 인식, 인간 창조 및 육신화의 인식 그리고 공동체와 교회의 인식과 일치한다. 계시종교로서 기독교에서는 신의 존재가 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도 인식된다. 이 종교가 지니고 있는 규정과 내용은 계시와 현현이다. 이 계시와 현현은 의식에 대한 존재이며, 이 의식 존재는 신 자신의 정신으로서 정신에 대해 존재하면서 영으로서 영에 대해 존재한다. 계시되는 것은 신뿐이며 신은 스스로 특수화하고 객관화하는 방식으로 계시함으로서,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스스로를 계시한다46).

세계를 창조하고 스스로 계시하는 이 절대적 계시종교에서 정신은 스스로 폐쇄된 채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 힘으로서 천지의 창조자와 같은 것으로서 이 영원한 영역에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자기의 아들로서 산출한다. 그것은 최초의 실체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개별성과 주관성으로서, 그리고 성령으로서 존재함을 의미한다47).

Ⅳ.맺는 말

이 절대종교는 진리와 자유의 종교이다48). 헤겔은 이 정신으로서 신을 인식하는 절대적 계시종교인 기독교에서 현실적 자유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흔히 기독교가 원죄설을 채택함으로서 인간에게 예속적 굴레를 지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 기독교가 인간을 죄인으로 삼는 원죄설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적 충동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죄인일 수 있지만, 인간은 이 자연적 충동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이 인간은 자연적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연적 충동이 죄의 근원이긴 하지만, 이 죄의 근원이 오히려 인간을 예속적 상황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상황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와 가능성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이 보았을 때, 기독교는 노예적 굴종의 율법적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 자유의 원리를 실현하는 계기를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해방의 종교이다. 유태적인 종교적 율법과 노예제를 기반으로 하는 고대의 사회 현실에서 예수가 역사 속에 출현함으로서, 인간은 자연적 충동의 존재로만이 아니라, 인격의 원리를 지닌 존재, 즉 "인격의 자유49)"를 지닌 존재로 그 의미를 지닌다. 계율보다 사랑을 그 원리로 하는 원시 기독교에서 예수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으며, 이 예수를 통해 헤겔은 종교의 참된 자유를 찾아낸다.

헤겔이 생각하는 이 계시종교는 물론 중세적 로마제국의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 중세적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계시종교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헤겔은 물론 그 역할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실상 지배적인 통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중세의 기독교는 어쩌면 또 하나의 율법화된 종교의 색채를 지니고, 원시 기독교가 지니고 있었던 헌신과 사랑의 의미를 변색시킨 역사적 기억을 소유하고 있다. 헤겔이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었던 중세 기독교의 모습을 인정한다고 해서 중세 기독교 자체가 곧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리고 헤겔의 사유체계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Was vern?nftig ist, das ist wirklich)50)이며, 이 현실적인 것이 야말로 참다운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것은 바로 자유이념의 구현에서 그 올바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실질적 삶의 역사적 형태였던 농노제를 바탕으로 했던 중세의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것은, 농노제를 바탕으로 했던 이 중세가 헤겔이 생각하는 계시종교의 전형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헤겔은 자신의 사유체계 안에서 이 양자를 구별한다.

다시 말해 헤겔이 생각한 계시종교와 중세적 전통의 기독교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점은 없지만, 헤겔 철학 체계의 독특성인 변증법적 체계로 인해 신학의 차원이 아닌, 종교철학의 차원에서 이성적인 사유대상으로 삼아 자기의식으로서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 중세적 전통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헤겔의 종교철학은 신학이나 종교자체가 아니라, 종교정신의 자기전개라 할 종교의 자기반성이다51). 이는 철학과 신학의 통일을 의미하며, 종교가 철학의 한 계기이긴 하지만 종교철학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동일한 것이며, 다시 말해 종교가 철학으로 지양되었을 때,절대정신의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가 이루어는 것이 헤겔이 생각하는 종교철학의 의미라 할 수 있다.


각 주

1) 유태교를 율법적인 종교로 이해하는 헤겔의 입장에 대해, 아비네리는 헤겔이 헤르더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견해에 대해 아비네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모세의 율법이 유태 민족의 배타성과 고립을 보장하였다. 유태 민족에 대한 헤겔의 묘사는 헤르더의 견해를 대부분 따르는 것이며, 이와 함께 유태교에 대한 전통적 기독교의 견해를 세속적으로 변형시킨 계몽주의적 관점을 따르는 것이다. 유태의 종교를 완전한 굴종의 종교로 바라보는 이 생각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이라는 후기 논문에서 더 강력해진다. 이 저서에서 유태 민족은 자유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민족으로 표현된다.
"유태인들이 이집트인들의 사치를 간절히 바랐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는 예이다. 방랑자 아브라함은 유태민족이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며, 요셉은 자유롭지 못한 유태 민족 고유의 위계적 상하 체계를 이집트에 강요했다. 그리고 안식일은 자유인에게 필요 없는 단지 노예에게나 필요한 휴식일 인 것이다. " (중략...).
헤겔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예수의 출현을 모세의 율법에 의한 유태 민족의 내재적 굴종과 로마 제국의 지배라는 정치적, 외적 굴레에 대한 이중의 반동으로 설명한다. 헤겔은 유태주의의 메시아적 요소를 신학적인 개념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맥락으로서 설명한다.
S. Avineri, Hegels Theorie des modernen Staates. Suhrkamp Verlag. 1976. s. 31.
2) 사랑을 매개로 하는 도덕적 사랑은 유한과 무한의 통일인 정신으로 고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멸각을 통해 십자가에 걸리는 사람,부활하는 사람으로, 즉 영적 존재로 형태를 변화됨을 의미한다.
이부현, 이성과 종교. (서광사 1995) 67∼68쪽 참조.
3) 헤겔을 이 느낌에 대해 종교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느낌은 내가 느낌 속에서 나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관계이며 그 자체 나의 직접적 관계이다. 다시 말해 나의 이러한 모습의 개별자로서 경험적 자기의식인 것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규정되는 한 나 일반은 곧 느끼는 나이다. 느낌은 직접적으로 바로 이 경험적인 것 가운데 들어 있는 나의 것이라는 규정성이다. 나는 대상을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대상을 느끼므로 이 대상은 나에게는 나 밖에 있는 타자이다. 바로 이 푸른색을 이렇게 보는 것, 바로 이 따뜻함을 느끼는 것, 이것은 동시에 나의 주관적 규정성이며, 나 속에서 나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섬세하게 느끼는 자연일반과 같이 느낀다. 느낌은 바로 이러한 유동성이며 나에 대한 직접적 반성이다. "
G.W.F. Hegel, 종교철학, 최신한 역, (지식산업사 1999) 64∼65쪽. 이하 '종교철학'으로 표기함.
4) G.W.F. Hegel, Werke, in zwanzig B?nden. Bd, 1. Suhrkamp Verlag. Frankfurt am Main, 1970. s. 245∼246 참조.
5) 헤겔이 의미하는 표상은 기적의 역사로부터 한 인격에 대한 신앙으로 향하는 것이다.
같은 책 s. 118.
6) 같은 책, s. 246.
7) 같은 책, s 90.
8) 종교철학, 85쪽 참조.
9) 종교철학, 86쪽.
10) 종교철학, 86쪽 참조.
11) 종교철학, 46쪽.
12) 종교철학, 47쪽.
13) 종교철학, 91쪽.
14) 물론 헤겔이 이 오성적 사유를 통해 진리에 대한 인식에 이르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진리에 대한 인식이 궁극적으로 가능한 것은 사변적 사유 내지는 사변적 철학일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서 진리는 표상의 형식 안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일 것이다.
15) 종교철학, 95쪽 참조.
16) 종교철학, 98쪽 참조.
17) 종교철학, 98쪽.
18) H, Marcuse, Vemunft und Revolution, Sammlung Luchterhand, 1990. s. 44∼45참조.
19) 사실 헤겔은 종교가 개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개인의 구원만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의 복음적 기능만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헤겔은 기독교를 세계사의 근본적 기능을 지닌 종교로 해석했다. 즉, 기독교가 인간에게 새로운 절대적인 중심을 부여하고 생에 궁극적 목표를 제시하는 기능을 지닌 종교로 해석했다. 하지만 헤켈은 확장하고 있는 세계의 정치, 사회적 현실에 복음의 계시적 진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본질적으로 사회, 정치적 관계와 단절된 개인에게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복음의 본질적 목적은 개인의 구원이지 사회나 국가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신학도 자유와 통일을 회복시킬 원리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로 이해 헤겔은 점차 신학에서 철학적 문제와 개념으로 이행하게 된다.
H, Marcuse, Vemunft und Revolution, Sammlung Luchterhand, 1990. s. 42 참조.
20) 법철학에서 헤겔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 헤겔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격의 자유가 그리스도교를 통해 피어나면서부터 비록 인류의 한 작은 부분에서나마 이것이 보편적인 원리가 된지도 거의 1500년이 흘렀다. "
G.W.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Bd. 7. Suhrkamp Verlag. § 62.
21) 헤겔이 보았을 때 예수는 유대 민족의 국가를 해방시키려 한 것이 아니며, 유대교의 율종적인 성격과 율법으로부터 도덕을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예수는 정치체제에 예속되어 있는 종교를 해방시키려 하였는데, 이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됨으로서 유대교가 역사적으로 율법적인 종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헤겔에 따르면 예수는 유대교가 지니고 있던 원래의 도덕적 내용들을 회복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가 이루려고 했던 것은 주체를 통한 도덕법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주체 속에서 법칙은 그 자체가 입법자가 되며, 그 주체의 내면적 의식으로부터 이 도덕법칙이 나온다.
S. Avineri, Hegels Theorie des modernen Staates. Suhrkamp Verlag. 1976. s. 32 ∼33 참조.
22) Bd, 1. s. 304.
23) 같은 책, s. 304 참조.
24) 종교철학, 42쪽.
25) 헤겔은 이 신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은 근본적으로 그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공동체를 소유한다. 신은 스스로 대상적이며 오로지 의식 안에서 참되게 존재한다. 신의 최고 규정 자체는 자기 의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개념은 그 자체 필연적으로 종교가 된다. 신의 개념은 불완전 하지만, 완전하게 되며 이때 비로소 진리를 소유한다. 따라서 신은 절대적 이념인데, 이 이념은 신의 실재성의 측면이 대자적으로 정립된 것이며 또 실재성과 개념의 동일성으로 정립된 것이다" 종교철학, 42쪽.
26) 종교철학, 42쪽.
27) 종교철학, 42쪽.
28) 종교철학, 43쪽.
29) 종교철학, 45쪽.
30) 종교철학, 46쪽.
31) 종교철학, 49쪽.
32) 종교철학, 243쪽.
33) 종교철학, 244쪽 참조.
34) G. W. F. Hegel, Enzyklop?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Ⅲ. Bd, 10. s. 372~374.
35) 종교철학, 247쪽 참조.
36) 종교철학, 247쪽.
37) 기독교는 구원의 표상을 사변적으로 규정함으로서, 세계의 신성화가 내면적인 방식으로,즉 정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며, 자연과 정신의 화해가 실현되는 곳이 되는 것이다.
R, Kroner, 헤겔, 유헌식 역. 청아출판사 1990. 115쪽 참조.
38) 종교철학, 262쪽.
39) 종교철학, 307쪽.
40) 종교철학, 307 쪽. 여기서 예수가 의미하는 사랑을 헤겔은 이웃과 특별하게 관계하는 도덕적 사랑이며. 사도들의 관계와 결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41) 종교철학, 329쪽.
42) 종교철학, 329쪽.
43) 종교를 감정의 형식에서 개념의 형식으로 구별함으로써 헤겔은 기독교에 대한 실증적 변호와 비판을 동시에 행한다. 헤겔 이후의 일체의 종교 비판은 이 비판적 구별의 모호성과 맺여 있고 헤겔 학파가 좌 우로 분열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1830년대 일어났던 논쟁의 문제는, 아직 헤겔의 국가나 세계사에 대한 관계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관계, 즉 그가 신을 인격으로 이해했는지, 세계 운행으로서 이해했는지, 또한 불사성을 일반적으로 이해했는지, 개인적으로 이해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칼 뢰비트, 헤겔에서 니체에로 강학철 역 서울 민음사 383쪽 참조.
44) 종교철학, 330쪽.
45)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유일자인 하느님이 아버지와 아들(예수 그리스도)과 성령이라는 세 개체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의 본체를 공유하면서 연합을 이룬다고 한다. 즉 신은 그 본성에 있어 하나이며 각각의 위격을 지니고 있다. 이 신의 관계는 계시에 의해서 알려지며 서로 다른 신성을 갖는다.
성부는 스스로 존재하고 성자는 성부로부터 나오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성자로부터 나오는 것을 부인함. 즉 성령의 발현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임).
46) 종교철학, 245쪽 참조.
47) G. W. F. Hegel, Enzyklop?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Ⅲ. Bd, 10. s. 375 참조.
48) G. W. F Hegel, Werke in zwanzig B?nden 17. 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Ⅱ. Suhrkamp Verlag. s . 203.
49) G.W.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Bd. 7. Suhrkamp Verlag. § 62.
50) G.W.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Bd. 7. s. 24.
51) 하지만 헤겔은 철학의 내용, 요구, 관심을 신학과 완전히 공통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즉 헤겔은 종교의 대상과 철학의 대상이 영원한 진리의 객관성 그 자체의 모습인 하나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의 설명으로 파악한다. 칼 뢰비트, 헤겔에서 니체에로 강학철 역 서울 민음사. 38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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