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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03
 제목  그리스도교 절대성 주장의 역사와 유형들:트뢸취와 바르트를 중심으로
 주제어  [트륄취] [바르트]
 자료출처  채수일 교수  성경본문  
 내용

들어가는 말

Ⅰ. '그리스도교 절대성' 개념의 역사

Ⅱ. 유형들

Ⅲ. 평 가

Ⅳ. 에른스트 트뢸취와 칼 바르트의 입장





들어가는 말


어느 역사적 종교도 오늘날 자신을 절대적 종교라고 주장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국가종교가 된 후, 그리스도교라는 이름과 결부된 마녀사냥, 식민주의, 노예제도, 인종주의, 제국주의 시대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적 서구에서도 이미 지배적 종교가 아니다. 계몽주의, 산업화, 세속화는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을 자신의 정신적, 정치적, 경제적 고향에서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역사를 알고 양심적인 서구인이라면 누구라도 역사적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가 범한 범죄를 시인할 것이다. 또 그리스도교가 자신을 절대적 종교라고 주장했던 시절의 제국주의적 경향성을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피선교지 교회들의 경우는 달랐다. 군사력과 폭력으로 뒷받침된 식민주의 체험, 서구의 침입 앞에 힘없이 무너진 전통적 신들의 무력함, 전통문화를 열등하게 생각하고 토착종교를 우상숭배로 여기도록 강요한 근본주의적 선교의 결과는 그리스도교를 절대적 종교, 아니면 최소한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한 종교로 인식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서구교회보다 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교회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피선교지 교회라고 할지라도 역사적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중심적, 혹은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의 배타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교적 진보적이고 다른 종교와 전통문화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그리스도인은 물론 역사적 그리스도교의―서구 그리스도교건 현실의 제도적 그리스도교건―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결부된 신앙고백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은 대부분 타종교에 비해 그리스도교가 위계적으로-그 근거는 다양하지만-우월하다는 것이다.

한국 신학계에서도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규정하는 신학적 작업은 오랫동안 또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신학적 작업은 대부분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켜 학문 외적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또 학문적 작업도 대부분 개별연구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필자는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맺어온 관계의 역사를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의 측면에서 유형별로 제시함으로써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하나의 논의의 틀을 정리하려고 한다.

부사 혹은 형용사로서의 '절대적', 또는 동사로서 '절대화하다' 등은 의미적으로 볼 때, 명사로서의 '절대자', '절대성'의 두 형식에게로 소급될 수 있다. 같은 어군에 속하지만 물론 '절대자'와 '절대성'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 '절대자'는 독자적인, 어떤 질적 주체를 지칭하는 반면, '절대성'은 그 주체의 질적 성격을 나타낸다. 이 두 표현이 내용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단어의 라틴어 뿌리, 'ab-solvere'를 살펴보면 드러나는데, 이것은 '분리하다'를 의미한다. 고전적 라틴어 'absolutus' 역시 '상대적'(relativus)의 반대개념으로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학과의 관계에서 '절대자'는 역사를 초월한 실재로서, 세계와 시간, 역사에 대해 부정적이고 분리된 형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적 필연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자를 말한다. '절대성'이란 절대자에게 주어진 성격을 의미하는데, 꼭 초월적 절대자와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권력의 절대성,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성은 절대적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주체를 다른 대상으로부터 구별하는 도구라고 하겠다.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은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가 자신을 다른 종교로부터 특정한 방식으로 구별하는 외적 관계를 말한다.




I. '그리스도교 절대성' 개념의 역사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개념이 발생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역사 전체를 소급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이고도 신학적 의미에서 이 개념이 등장한 것은 낭만주의, 독일 이상주의, 역사주의 등에 의해서 그리스도교가 위기에 부딪치면서부터였다. 이 위기는 계몽주의에서 마침내 폭발하였다.

계몽주의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넓은 세계, 특히 그리스도교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과 민족들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혔다. 동시에 역사의 깊이에 대한 조명은 현실을 다양한 요인에 의해 규정된 긴 발전과정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에 의해 위협을 받거나, 혹은 선교적 동기로 다른 종교와 정신적으로 대결하는 상황은 물론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권위와 우월성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자명성이 그리스도교 문화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계몽주의와 함께 연결된 중요한 네가지 경향성이 이런 변화의 바닥에 놓여있는데, 역사화, 일반화, 합리화, 인간중심주의가 그것이다.

발전이념이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되었을 때, 르네상스 시대의 순환론적 역사이해가 해체되었을 때,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은 시간개념과 발전개념이 역사 이해에 도입되었을 때, 모든 지상적 존재는 역사적 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진보적인 사건들의 연속선 상에서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을 때,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절대적 신의 영역은 역사 속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세속화와 세계관의 역동성은 계몽주의의 결과였다. 절대성이란 역사의 피안, 초월적 영역, 혹은 인간의 내면으로 붸겨나게 되었다. 세계의 역사화는 종교적인 것의 정신화와 탈역사화를 추동했다.

계몽주의가 역사적인 것을 단순히 특수한 것과 동일시하고, 그에 반해 본질적인 것을 초역사적인 것, 무시간적이고 무역사적인 보편적인 것에서 찾는 한, 계몽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종교가 배타적으로 유일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은 적어지고 일반적 개념인 종교의 보편성에 대한 관심이 더 중요해진다. 역사적이고 특수한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뒷전에서 계몽주의는 이성적 능력을 가진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종교를 찾는다.

자연과학의 부흥과 함께 발전한 합리성은 모든 정신적 삶의 영역에서도 범례적 기능을 획득한다. 지식은 신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이성은 교회의 권위로부터 자신을 해방한다. 스콜라주의적 전통에 순응하는 것보다 일반적인 합리성이 진리의 기준이 된다.

사고의 중심에는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자유를 실현하는 인간이 서있다. 신학적 사고도 교회가 중재하는 계시를 객관적 기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신학의 대상은 인간적 본질의 종교적 성향에서 찾아진다. 여기에서 계몽주의를 넘어서는 발전이 등장한다.

신의식으로도 이해되는 인간의 종교적 의식은 신학의 출발점이 된다. 초월적인 존재, 그의 현현 자체가 더 이상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신앙을 가진 인간에 대한 신의 관계가 인식대상이 된다. 이에 상응하여 진리이해도 달라진다. 진리는 독립적이고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요청된 것이 된다. 이런 주관화 경향은 신학이론 형성에서도 보여진다. 계시 개념 자리에 비역사적인 자연종교라는 의미에서의 종교개념이 등장한다. 그런 인간중심적 종교이해는 쉽게 종교적 실천의 개인주의화, 사유화, 내면화로 인도한다.

계몽주의와 결합된 이런 네가지 경향은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의 모든 근거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지극히 자명한 것으로 여겨왔던 다른 종교와의 차이성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일성, 독점성, 궁극성, 무조건성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는 그리스도교의 한계성을 지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을 상대화했다. 지금까지 의문시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의 가치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린 것이다.

이런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중심한 논쟁을 연 사람은 19세기 초, 헤겔과 슐라이어마허였고, 이 문제는 19세기를 관통하는 유럽 신학사상의 중요한 논제였다. 이 논쟁을 절정으로 인도한 사람은 에른스트 트뢸취였다. 트뢸취는 그 때까지 제기된 논점들, 특히 헤겔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발전시켰다. 그 후 변증법적 신학은 절대성 개념과 그것을 주장하는 여러 유형들을 비판했지만, 그들이 출발했던 문제점은 사실 같은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세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신학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문제가 그것이었다. 가톨릭 신학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칼 라너의 신학적 작업도 대단히 개방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영미권의 신학자들을 중심한 종교신학의 활발한 전개도 19세기에 제기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이 여전히 현실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필자는 아래에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을 유형별로 정리하는 역사를 가능한 19세기까지로 제한하려고 한다. 각 유형들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한 후, 트뢸취와 바르트를 중심으로 19세기의 쟁점을 더 부각시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논의는 제외하기로 한다.




II. 유형들


1. 이원론적-배타적 유일성 유형


이 유형의 특징은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들과 철학적, 세계관적 진리로부터 질적으로 구별하는데 있다. 즉 진리와 비진리, 바른 그리스도교와 틀린 종교들,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교와 죽음을 주는 종교들, 빛과 어둠, 구원과 심판 등으로 이원론적으로 대립시키는 특징이 있다.

이 유형의 또다른 특징은 비그리스도교적인 종교를 심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유일성을 주장하는데 있다. 이 유형의 중심에는 계시 개념이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이 자신을 계시했다는 '계시의 특수성', 또 그 계시는 인간의 구원을 원하는 절대적인 신 자신의 참여이기 때문에 사람이 계시를 받아들이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관계없다는 '계시의 객관성', 하나님의 본질은 변할 수 없기 때문에 계시도 영원히 변할 수 없다는 '계시의 비변화성', 계시는 신적인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에 그 권위를 훼손할 수 없다는 '계시의 절대 권위성' 등이 이 유형의 계시 이해라고 하겠다.

이런 이원론적, 배타적 유일성 유형은 다시 교회 중심적 유형과 그리스도 중심적 유형으로 구별될 수 있다. 이 구별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었는데, 종교개혁은 교회중심적 유형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이해될 수 있다. 종교개혁은 절대성 주장의 주체를 그리스도교로부터 그리스도로 옮겼다는데 그 의미를 가진다.


(1) 교회 중심적 유형


위에서 언급한 계시이해는 결과적으로 쉽게 교회중심적 교회개념을 강화한다. 그리고 교회가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보관된 계시의 관리인으로 이해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진리를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게 된다. 이런 주장과 함께 보이는 교회는 하나님이 기초를 놓은 초자연적인 기구로 자신을 절대화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교회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예비자이며 안내자라는 것을,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단체라는 것을, 그리고 잠정적이고 시간 사이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교회는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의 구원행동의 관리자이며, 그 구원을 실현하며 가져다 주는 기관으로 이해한다. 성례전적 절대화와 함께 교회적 제국주의의 기초가 놓이게 된다.

이런 교회중심적 유형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을까? 이 유형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적용되었다.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 것이다. 마르시온(Marcion, 주후 2세기)은 반유대교적 경향성을 가지고 대단히 엄격하고 배타적인 그리스도교적 계시론을 가정한다. 시프리안(Cyprian, 주후 258년경 사망)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salus extra ecclesiam non est)고 말해, 교회를 유일한 구원의 기관으로 선언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 주후 253/54 사망)의 전체개념에 반대하여 전형적으로 가톨릭적으로 생각한 시프리안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를 위협하는 그리스도교 분파주의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받은 후, 테오도시우스 (Theodosius, 379-395) 대제 1세는 391년 개인의 집 안에서 이교적인 제사행위를 하는 것도 모두 금지했다. 지금까지도 처벌대상이 되지 않았던 이교도의 성전과 성물의 파괴도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 때부터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정당성 주장은 제도화되었고, 사람들은 종교를 신학적이고 법률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종교와 거짓된 종교로 나누기 시작했다.

아우구스띠누스(Ausrelius Augustinus, 354-430)는 반펠라기우스적인 방어태도에서 바울의 선택사상을 채용, 마태 22,14을 따른 예정론과 함께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선언한다. 아우구스띠누스의 이런 구별은 그리스도교 내부의 관계에서 적용되었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서 적용되지 않았을지라도, 그에게 비그리스도교인들은 영원한 지옥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루스페의 훌겐티우스(Fulgentius von Ruspe)도 펠라기우스파들과의 논쟁에서 아우구스띠누스의 입장을 더 발전시킨다.

그리스도교는 마니교(Manichäismus)를 극복한 후부터, 이슬람교가 탄생하고 확대될 때까지는 타종교에 의한 어떤 진지한 위협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자신의 절대성을 주장함으로써 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빠른 속도의 전파를 통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유일성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써 십자가의 신학이 발전되었다. 이슬람교는 그리스도 이후에 발생한 종교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 이전의 종교를 평가했던 기준을 가지고 이슬람을 평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마스쿠스의 요한네스(Johannes von Damaskus, 675 경-749?)는 종말론적이고 묵시문학적으로 이슬람교를 해석했다. 즉 모함메드는 요한계시록 19,20이 말하는 '거짓 예언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슬람교와의 대결에서 생겨난 이런 유형의 십자가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와의 대결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유형이 되었다.

이런 태도가 고도의 신학적 입장으로 표명된 것은 교황청에서 1302년에 발표한 칙서, 'Unam sanctam', 1441년 플로렌즈 교부회의의 훈령(Konzilsdekret von Florenz), 1566년의 로마 교리문답서(Catechismus Romanus) 등이다.

이른바 신대륙이 발견된 후, 하나님의 복음은 세계의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불신앙에 책임이 있는 것은 개인적인 완고함 일 뿐이라는 신념이 포기될 수 밖에 없게되자 선교적인 과제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6-17세기 프란치스카너와 도미니카너의 식민지 선교 속에서 십자가 신학의 기본적 태도가 다시 부활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 교리의 배타적 타당성 주장은 1870년 교황의 무오설이 교리화하는데서 절정이 이르렀다.


(2) 그리스도 중심적 유형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 중심적 유형은 종교개혁까지 소급된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의 타당성 주장의 근거를 교회의 본원이며 중심적 내용인 그리스도 사건으로 되돌려 놓았다. 절대성 주장의 실체가 바뀐 것이다. 구원론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와 신앙인 사이의 실존적 관계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추상적인 계시개념의 의미를 재조명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단 한 번 유일하게 자신의 말씀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계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유일한 진리의 종교(vera et unica religio)이다.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로부터 구별하는 것은 구원의 방법인데, 다른 종교들은 구원을 선한 업적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반면(선한 업적을 통한 자율적 구원),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타율적 구원).

그 후,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경건주의와 부흥운동의 전통에서도 배타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회심의 체험이 강조되었고, 이런 입장은 이들에 의해서 진행된 개신교 선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영적인 절대성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미 고린도 교회에서 논쟁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영적 절대성 주장은 중세기의 이단적 운동과 종교개혁 좌파 운동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중세 교회가 진리와 구원을 성례전을 통해 보유한다고 믿었다면, 영적 운동가들은 진리와 구원이 영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믿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종교비판적인 시각에서 이원론적 배타성의 모델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도 계시와 종교 일반 사이의 수직적 절대성 관계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의 수평적 절대성 관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복음의 절대성은 단순히 주장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완성된다. 칼 바르트는 계시를 모든 종교성과 구별한다. 바르트의 입장은 종교에 대한 개신교의 신학적 이해에 그 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종교개념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심지어는 그리스도교를 종교로 이해하는 것까지도 거부하였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더 나아가서 역사적으로 규정된 종교현상마저도 이미 죽은 것으로 여겼으며, 완전히 종교없는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리스도 신앙을 본회퍼는 반종교적일뿐만 아니라, 무종교적으로 이해하면서 종교적 겉옷을 그리스도교에서 벗겨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단지 인간의 약점, 세계로부터의 도피, 사후세계, 신화와 형이상학에 대한 믿음, 인간 내면에 있는 경건한 종교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종교에 반대하여 본회퍼는 구약성서의 창조신앙과 차안성, 신약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적 하나님 나라 선포와 하나님의 지배현실을 대립시킨다. 본회퍼는 바르트의 공헌이 종교비판의 문을 연데 있다고 보지만, 그의 종교비판은 결국 '계시실증주의'로 대체되었다고 비판한다.

본회퍼가 바르트를 비판적으로 받아드렸다면, 요한네스 빗테(Johannes Witte)는 바르트를 왜곡하여 좁은 시각에서 해석하고 무비판적으로 바르트 사상을 종교신학에 적용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것은 다른 종교들의 주장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다른 종교들은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며, 진리없는 망상일뿐이며, 구원의 준비나 이 전 단계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 단지 인간을 상실에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그리스도교를 포함하여)에 대립한다는 바르트의 주장을 빗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비그리스도교적인 종교에 대립한다고 확대한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선교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실천의 장에서 다시 등장시킨 사람은 헨드릭 크레머(Hendrick Krämer)다. '비그리스도교적 세계 안에 있는 그리스도교적 사신'(The Christian Message in a Nonchristian World, London 1938)이라는 책에서 크레머는 바르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비판한다. 그의 비판은 바르트의 신학적 철저성이 순수한 교리의 삭막한 지성주의 속에서 경직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성서적 현실주의의 자유로운 공기를 통하여 다시 활기를 찾아야 한다는데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과 인간의 이성을 신학적으로 평가절하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심판이 변증법적인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역시 종교들의 세계에 대하여 변증법적인 긍정과 부정의 관계에 서 있다는 것이다. 크레머에게 경험된 그리스도교는 다른 위대한 종교들 가운데 하나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절대적 종교인가?'라는 질문에 크레머는 분명히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크레머의 이런 태도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독특한 종교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도 하나의 인간적인 종교, 문화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배타적 유형은 복음주의에서도 확인되는데,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는 1970년에 발표된 '후랑크후르트 선언'을 들 수 있다. 선언은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을 날카로운 형식으로 전개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만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약속되었다'는 것이며, '이 구원은 단 한 번 결정적으로 일어난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근거한 것이다'. '또 신앙이 회개와 세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아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신앙은 구원의 소식을 거부함으로써 파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2. 위계적 우월성 유형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위계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유형은 계몽주의에 반응했던 낭만주의 운동과 독일 이상주의, 역사주의의 운동에서 발전했다. 이원론적 배타적 유형이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도전을 어느정도 무시하거나 부정한 반면, 위계적 우월성 유형은 학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성찰하려고 노력했다.

계몽주의는 종교를 비본질적이고 우연한 종교와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종교로 분리했다. 변할 수 있고 특수한 것, 즉 모든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종교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본래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이성적 진리에서 본질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이들은 생각했다. 이들은 변하는 현상과 변하지 않는 진정한 본질을 나눈 그리이스 형이상학을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한 인물은 렛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이다.

영원한 이성적 진리와 우연한 역사적 진리를 구별하면서, 렛싱은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그리스도교 종교의 절대적인 본질의 핵심을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적인 이성종교와 인간성의 종교 안에서 본다. 이성적 종교와 실증적 종교 사이의 긴장을 극복하기 위해서 렛싱은 발전개념을 도입한다. 즉 끝없는 접근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순수한 이성의 종교로 승화될 수 있으며, 자신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모든 종교에게도 이런 과정은 원칙적으로 열려 있다. 그들도-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진정한 종교가 되는 과정에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불완전한 발전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렛싱은 이런 과정을 신이 인류와 함께 이끌어 가는 교육과정이라고 이해한다.

계몽주의 신학과 종교철학에 대한 비판은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구체화되었는데, 비판의 초점은 상대주의가 아니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성종교 개념을 향한 것이었다. 또 실증적 종교를 삶과 멀리 떨어진 추상적 개념 아래 둔다는 점도 비판했다. 특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비역사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역사적으로 독특한 것, 유일회적이고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되돌아 오면서 역사적 현상의 본질을 더 이상 일반화한 추상에서가 아니라, 현상 그 자체 안에서 역사적이고 독특한 것에서 찾는다. 그는 '종교에 관한 강연'에서 당시 계몽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에게 초자연적인 신학개념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런 초자연적인 신학개념에서 유래한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배타적인 결과를 거부한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이런 전제주의를 경멸하며, 그리스도는 자기가 유일한 구원의 중개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교가 자기만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시대를 포괄하는 최후적이고 최종적인 종교로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까닭은 종교의 역사는 계속되고, 종교의 역사는 또 언제나 새로운 종교적 적극성을 탄생시킬 것이며, 역사적 그리스도교 역시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성을 양적으로 규정하는 종교간의 계층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또 모든 종교의 가치가 대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 행동의 원칙 등에 의해 종교의 가치가 판단된다는 것이다. 예컨데 유대교가 죽은 문자 속에서 화석화되어 일반적이고 직접적인 복수를 중심사상으로 삼는 반면에,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우주관은 성숙한 인간성에 적합하며, 조직적인 종교의 정신에 더 깊이 개입해 있으며, 전 우주에 확대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종교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적인 중심사상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즉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어떤 다른 종교들에서도 종교가 완전하게 이상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위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하고 우주적인 타당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절대성을 슐라이어마허가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적응한 것은 아니다. 단지 역사적 그리스도교 안에서 실현된 종교의 본질이 우월하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가 우주, 세계와 인류 안에 있는 영원하고 총체적인 차원에게 절대자의 역할을 부여했다면,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정신'(Geist)에게 절대자의 역할을 주었다. 절대자는 자기 소외를 넘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해서,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의 합일에서 스스로가 인식되기 위해서 역사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헤겔에 따르면 역사는 곧 정신의 역사이며, 정신의 자기실현이며, 변증법적인 발전과정인 것이다.

헤겔에게 종교의 역사는 정신의 역사에 내포된 구성부분이다. 긍정적인 종교들 안에서 정신은 어느정도 자신을 발견하고 종교개념이 어느정도는 실현된다. 그러나 정신의 완전한 실현은 절대적 종교에로의 질적인 승화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절대적 종교의 개념적 내용은 '종교 그 자체, 곧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는 개념이 주체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것과 상대적인 것,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관계가 완전한 종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신적 본질의 인간화, 혹은 자의식의 형태를 직접적이고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절대적 종교의 단순한 내용이다. 절대적 종교란 신의 자의식인데, 이것은 신 안에서 인간이 자신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신이 자신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에 따르면 신적 정신은 5개의 종교적 단계를 거쳐 이런 자의식에 이른다. 첫째는 자연적 종교인데 여기에는 자연종교가 포함된다. 둘째는 본질의 종교인데, 유교,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가 포함된다. 세 번째 단계는 자유의 종교인데, 여기에는 페르시아, 시리아, 에집트의 종교가 포함된다. 네 번째 단계에는 정신적 개인성, 혹은 자유한 주관성의 종교가 있는데, 여기에는 유대교, 그리이스 종교, 로마 종교들이 포함된다. 끝으로 절대적 종교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교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헤겔이 그리스도교를 절대적 종교와 일치시킨 것은 그리스도교가 완성된 종교, 종교가 자신을 그 안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낸 종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정신의 종교, 진리의 종교, 자유의 종교로 여겨져야 한다. 그리스도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실현했는데, 바로 이것이 종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정신의 필연적인 자기소외가 절정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이런 위계적 우월성 유형은 그후 루돌프 옷토(Rudolf Otto)에 의해서 발전되는데, 그는 주로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을 따르면서 종교심리학적이고 종교사적인 기초를 더 확고히 한다. 힌두교적인 박티(Bhakti)종교를 그리스도교와 비교하면서 한편으로 옷토는 이 두 종교가 함께 대변하는 이념의 동일성을 확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정신', 특별한 '중심'이나, 주변을 맴도는 고유한 '축'을 인정한다. 이로서 옷토는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의 차이점을 인정하는데, 그것은 거짓 종교에 대한 진리의 종교, 종에 대한 주인의 종교라는 도식이 아니라, 플라토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 즉 맏형이 동생들에게 가지는 태도의 도식에 의한 차이이다.


3. 내포적 이원성 유형


내포적 이원성 유형은 종교들이 질적 차이로 나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배타적 이원론 유형과 반대로 내포적 이원성 유형은 정적인 대립에서 출발하지 않고 역동적인 대극성(dynamische Polarität)에서 출발한다. 즉 종교들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으면서 자기폐쇄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포적 이원성 유형은 전 신학사를 통해 다양한 형식으로 등장했다. 그리스도교 밖에서, 그리스도교 이 전의 종교에서 신실하고 선한 신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고 이들을 그리스도교 계시에 적극적으로 관계시키려고 했던 이들은 변증론자들(Apologeten)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활동의 우주성의 근거를 성서에서 찾았다. 이들은 그 성서적 전거로 창 1, 6-9장, 지혜문학, 마 7, 21f:8, 11f:25, 31ff:28, 18ff;눅 13, 29;요 1, 9;행 10, 34f:14, 17:17, 22-31;롬 1, 18ff:2, 14ff;딤전 2, 4;벧전 3, 18-22;계 7, 9 등을 즐겨 인용했다.

이들 변증론자들은 당시의 철학과 그리스도교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철학적 가르침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중심부에는 유스틴(Justin)이 개발한 플라톤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성의 씨앗'(Logos spermatikos) 이론이 있다. 이성, 곧 세계이성, 세계원리, 세계구조 등으로 계시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자기 씨앗을 인간의 이성의 영혼에 뿌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이 전의 세계 속에 로고스 계시는 자신의 진리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 안에 들어있는 로고스가 신적 활동의 보편성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의 씨앗이 인간적 영역 안으로 들어 올 때, 어리석고 악마적인 것에 의해 침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성육신한 로고스의 총체적이고 순수한 진리에 의해서 인간의 로고스는 순화되고 성취되며 완전해 진다는 것이다.

이런 로고스 씨앗 이론은 먼저 그리스도교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데만 이용되었는데, 후에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이스 철학적 전통과의 관계를 규정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데 이용되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von Alexandria)는 구원사 이념을 채용, 하나님이 비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과 진리의 성취에로 인도하는 교육적 과정을 만들어 가신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그리이스인을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교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 히브리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과 마찬가지다.

로고스 씨앗론을 받아들이면서 비교종교학의 방법과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을 연결하려고 시도했던 후리드리히 하일러(Friedrich Heiler)는 계시의 보편성, 모든 종교의 궁극적 통일성,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 등의 개념을 '준비와 성취'라는 개념을 통하여 이해했다. 이것은 다른 종교들이 정상에 이르는 길의 전단계라는 것을 전제한다. 즉 성탄절을 향하여 진행되는 강림절과 같은 것이 다른 종교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내포적 이원성 유형은 '자연과 은총', '이성과 계시'라는 도식에 의해서도 전개되었다. 스콜라 철학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는 신을 인식할 수 있는 공동의 근거가 주어졌는데 그것은 이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성이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연속성을 근거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다른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을 구원없는 타락한 종교로 보지 않는다. 이성의 자연스러운 빛에 의해 가능한 자연스런 신인식은 전단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개신교 전통에서는 로고스 씨앗 이론을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다. 인간적 이성과 이성의 계시인식능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신학에서 형성된 입장은 '율법과 복음'의 대립형식이다. 종교들은 여전히 율법의 틀 안에 있다. 그런데 라쵸프(C.H.Ratschows)는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 사이의 관계를 루터교적 의인론의 틀에서, 즉 복음과 율법의 긴장 속에서 규정하지만, 이 율법을 복음으로 해소시키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율법과 복음이 신적 행동의 두 표현 양식이라고 한다. 즉 구원의 행동과 세계의 행동이 그것이다. 만일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로서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면 인간이 세계에서 경험하는 파멸과 부정의는 신적 행동의 상호충돌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동일한 대상에 대한 반대감정의 병존, 거기에서 유래하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동경과 시련은 모든 종교의 주제이며 중심동기이다. 그래서 라쵸프는 모든 종교를 구원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 사이의 공통성은 더 넓다. 모든 종교들은 그들의 실천에서, 즉 종교적 행동, 경건, 구원에 이르는 길 등에 있어서 일치한다. 종교는 신과 신의 의지에 공간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근본적인 태도로 산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 사이의 광범위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는 대단히 깊고 근본적인 차이점이 놓여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구원의 구성요인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라쵸프는 루터교적 대립명제를 도입한다. 자율적 구원과 타율적 구원, 자기 자신의 경건노력을 통한 구원의 성취시도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의인화의 대립이 그것이다. 라쵸프의 이런 입장은 종교학적 입장을 신학과 조화시킨 것으로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III. 평 가


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절대성 주장'의 세 유형을 라인홀드 베른하르트의 입장을 따라 살펴보았다. 첫 번째 유형인 '이원론적 배타적 유일성 유형'은 다른 종교들과 경계를 두면서 배타적으로 종교들을 거부한다. 두 번째 유형인 '위계적 우월성 유형'은 종교들을 구별하여 적극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의미가 다른 종교에서는 없는 것으로 본다. 세 번째 유형인 '내포적 이원성 유형'은 비교적 수용적이고 내포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외형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세가지 유형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모두 절대성 주장의 주체를 근본적으로 역사적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원론적 배타적 유일성 유형에 포함되는 루터와 바르트는 절대성 주장의 주체는 그리스도이지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부각시켰다. 위계적 우월성 유형에서도 우리는 절대성 개념의 정신사적 고향이 한 역사적 종교의 우월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유형은 그리스도교가 종교의 본질을 가장 좋게 실현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의 본질을 절대성 주장의 주체로 내세운다.

아래에서 필자는 트뢸취와 바르트의 입장을 중심으로 19세기 그리스도교 절대성 주장의 신학적 유형을 더 깊게 분석하려고 한다. 까닭은 이 두 신학자의 입장이 개신교 영역에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종교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IV. 에른스트 트뢸취와 칼 바르트의 입장


1.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öltsch, 1865-1923)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이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드러난 때는 19세기 중엽이었고, 이 개념이 꽃을 피게된 것은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에게서 였다. 트뢸취는 전승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이해와 현대의 세계관, 특히 자연과학과 비교역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세계관 사이의 깊은 심연을 경험했고, 이 심연을 극복하는 것을 그의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는 한편으로 교회의 초자연주의적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관념적인 이상주의를 경계한다.

초자연주의적 교조주의는 그리스도교의 타당성을 하나님의 특수한 세계내 행동에로 소급한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자연적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일과 평일, 거룩과 세속이라는 이원론이 생긴다. 그러나 트뢸취는 그리스도교에게 절대성을 부여하는 기적을 외적이고 물리적인 자연의 기적이 아니라, 내적이며 심리적인 회심의 경험으로 본다. 물론 트뢸취는 초자연적인 신적인 계시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객관적으로 역사와 인간의 영혼에 예속된 공간, 어느 특정의 한 종교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한편, 헤겔에게로 소급되는 절대성의 근거는 마치 그리스도교의 절대적 타당성이 종교사에서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헤겔의 실제적인 출발점은 역사적 증거가 아니라, 절대성의 형이상학이었다. 트뢸취가 비판하는 것은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 성격만이 아니라, 그것이 서있는 총체적 구조이다. 헤겔의 보편개념, 가치기준, 운동법칙, 절대적 실현 등의 동일화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헤겔의 이론은 절대성의 형이상학으로부터, 모순의 변증법으로부터, 종교에 대한 특수한 논리적 이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트뢸취도 역사를 이상적으로 정신사, 이념사, 심지어는 신적 이성의 확대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실재를 그것의 독자적 의미에서 이해하고, 개별적 사건들은 개별성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뿐, 역사철학적 체계 안에 강제적으로 짜맞추지 않는다. 역사적 진화론적 틀을 논리적이고 변증법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은 실제적인 역사를 교조적으로 강간하는 것과 같다고 트뢸취는 말한다. 실제의 역사 속에서는 너무 많은 비이성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들은 자기를 실현해 가는 세계이성의 틀에도 모순된다는 것을 트뢸취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 안에서 인간의 결단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지키려고 했다.

트뢸취의 그리스도교 이해의 배경에는 발전개념이 서있다. 그러나 그는 자연과학적 발전개념을 역사에 도입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반대한다. 자연법칙적으로 기계론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태도, 모든 내적인 것은 외적 영향에 의존한다는 입장,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적 사고에 대립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인과율적으로 확정된 원자론으로 해석한다면, 이념이나 신적 계시의 자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트뢸취는 자연과학적 유물론과 사회과학적 실증주의로부터 역사의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를 충실하게 따르는 트뢸취에게 모든 세계종교들은 서로 평등한 위치에 있다. 어느 종교든 종교사의 어느 시대든 그들은 그들 고유의 문제와 고유의 대답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종교는 자신 안에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더 나은 발전을 위한 단순한 전단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를 절대적 종교로 본다는 것은 역사적 사고에 의해서도 또 역사적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적 신 계시와 다른 종교들에서 나타나는 신 계시 사이의 가치관계는 검토할 가치가 있고, 이로써 역사와 규범성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트뢸취는 역사와 규범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종교사에 적용한다. 트뢸취는 자연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의 관계는 종교들의 가치를 비교하는데 표준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정신화되면 될수록, 자연과 세계로부터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인격적이 될 수록, 대중으로부터 해방되면 될 수록, 자유로운 개인에게 뿌리를 내릴수록, 윤리적일수록, 제의나 신비적인 자아구속, 신비적인 탈세계성으로부터 해방될수록 종교는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정신화, 인격화, 윤리화가 종교의 가치를 판단하는 트뢸취의 기준인 셈이다.

트뢸취는 종교를 또 율법종교와 구원종교로 구별한다. 율법종교에는 유대교와 이슬람이 속하고, 구원종교에는 그리스도교 외에 인도종교, 특히 브라만(힌두교)과 불교가 포함된다. 율법종교는 구원종교에 비해 열등하다고 트뢸취는 보는데, 이유는 이들이 두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높은 상태로 인간 스스로 올라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힌두교와 불교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정신적인 명상과 피상적인 세계로부터 물러남으로써 구원을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격적 종교성이 가장 강력하고 총체적으로 계시되었다고 트뢸취는 본다. 예언자적 구원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모든 높은 종교적 가치들이 총체적으로 결집된 종교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뢸취의 입장은 그리스도교가 인격적인 구원종교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종교라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이라는 단서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평가의 주관성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교의 높은 가치를 받아드리고 주장하는 것은 서구 그리스도인의 특수한 입장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트뢸취는 후기 저서, 특히 1922년에 발표한 논문, '세계종교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위치'에서 최고의 가치라는 개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인격성이라는 개념도-이전의 비교종교학에서는 중심적인 판단기준이었지만-지금은 단지 시간과 문화적 제약을 받는 개념, 즉 유럽의 정신사적 영역에서만 타당하고 제한된 기준으로 이해된다. 또 그리스도교가 모든 종교의 수렴점이라는 주장 역시 트뢸취는 수정한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비교적 절대성을 과학적으로 수용할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가 '막대한 내적 힘과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 번도 트뢸취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인격적으로 최고의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다만 가치판단의 보편적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버린 것이다.

트뢸취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주장의 원천을 절대자와의 만남 그 자체에서 찾는다. 직접적인 종교적 경험의 감성적 대표자로서 이 절대성 주장은 신의 압도적인 개방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예언자적 종교의 원천일 수도, 개인적으로 경험된 신경험일 수도 있다. 절대성 주장은 그러므로 과학 이전의, 생동적인 종교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며, 깊은 의미에서 감성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결국 트뢸취는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신앙의 우선성을 선택했다. 자신의 종교적 진리성을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관찰보다 앞세운 것이다. 트뢸취의 이런 근본적인 선택은 그의 입장이 주관주의적 결정론과 상대주의에 빠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한다.


2.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바르트의 종교이해는 그의 전 신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원리에서 유추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주님성, 즉 하나님의 지배가 그것이다. 이 사실이 바르트의 존재의 질서와 인식의 질서를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규정한다. 바르트에게 계시는 인식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인식의 길이다. 모든 신학은-바르트에 따르면-인간세계에서부터 계시진리에 이르는 길은 없다는 것을 숙고해야 한다. 신학은 인식의 출발에서부터 인간의 현실보다 더 앞서 있는 하나님의 진리에 상응해야 한다. 신학은 종교적 인간, 종교적 인간의 경험과 감성, 신앙에서부터 출발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바르트의 이런 신학적 프로그램을 간단히 살펴보아도, 우리는 바르트가 이원론적 유형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위와 아래), 인간학과 신학, 계시와 종교, 신앙과 우상숭배 등 신학적으로는 물론, 철학적으로도 존재와 인식, 존재와 과정, 인식과 행동(이론과 실천), 주관성과 객관성, 가능성과 현실성 등 양극적인 방식으로 사고한다.

바르트의 이런 입장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발전한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시작된 '신개신교신학'에 대한 도전에서 발단된 것이었다. 그는 신학적 인간중심주의, 인간의 종교적 능력, 종교소유에 대한 인간학적 가능성의 전가, 계시를 받아드리고 신앙 안에서 응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등에 대하여 도전했다. 바르트는 인간이 자기 영혼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내적 종교적 능력을 종교의 '본질'로 본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이런 인간적이고 비신학적인 입장에 대립하여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세운다. 그의 근본입장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비연속성에 있다. 이 관계는 다만 신으로부터만, 즉 위에서 아래로만, 성령의 중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계시의 실체만이 아니라 계시의 객관적, 주관적 가능성도, 계시의 은총만이 아니라 계시의 수용도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이 되었고, 계시 수용의 가능성은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행동에 기초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의 계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은총과 구원 수용의 주체이며, 또 하나님 인식의 주체인 것이다. 바르트는 신을 찾는 인간에 대하여 인간을 찾는 하나님을 대립시킨다.

물론 바르트는 인간이-하나님의 피조물로서-근본적으로 불의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안에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르트는 인정한다. 또한 인간이 본래부터 계시에 대해 눈이 먼 것은 아니며, 인간에게 신인식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죄의 현실, 곧 인간의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고 타락시키며 도착시키는 죄의 현실을 급진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죽음의 선'을 통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신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심연은 너무 깊어 인간이 자기의 가능성을 가지고서는 전혀 인식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다.

인간이 신에 이르는 적극적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계의 현실성이라는 일방적인 길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가능성이다. 하나님 만이 인간의 불가능한 가능성을 선택의 행동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적 가능성의 주님이시기도 하다. 바로 이런 입장에서 바르트는 자기의 종교론을 전개한다.

트뢸취의 종교론을 그의 역사철학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바르트의 종교이해도 그의 신학적 뿌리에서 분리할 수 없다. 바르트가 종교 일반에 대하여,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의 다른 종교들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말할 때, 그것은 그의 기본적인 신학적이고도 그리스도론적인 입장을 적용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르트에게 종교는 순전히 인간학적이며, 내재적이고, 세속적인 현상이다. 종교는 완전히 인간의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아니, 종교에서, 종교적 인간에게서 인간학의 문제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 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종교는 '인간적 불신앙의 집약적인 표현이다'. 종교는 배타적이고 신적인 계시의 행동에 정반대되는 자리에 서있다. 이 둘 사이에는 질적인 모순, 급진적인 비연속성이 놓여 있다. 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계시뿐이다. 종교는 오직 계시에 의해서만 규정되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와 계시 사이의 관계는 변증법적으로만 규정되어야 한다. 즉 존재와 되어감의 사이의 긴장 속에 있는 변증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종교도 진실하지 않다. 다만 종교는 진실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파악할까?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종교에 대해 바르트가 언급할 때에 그것은 역사적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으로 가득찬 영혼을 말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신학적 개념이지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바르트는 구체적인 여러 종교들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바르트에게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모든 종교적인 것은 똑같이 사악하기 때문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어떤 종교도, 어떤 계시종교도, 어떤 은혜의 종교도, 그리스도교도 본래부터 진정한 종교는 아니다. 유일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계시를 선물로 받아드리지 않는 종교는 다른 종교들보다 더 죄된 종교로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종교는 불신이며, 행동을 통한 의인화이며, 우상숭배라는 비판은 다른 어떤 종교들보다도 그리스도교에 적용되는 비판이다. 바르트의 이런 그리스도교 비판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비판에서도 드러난다. 교회를 지배해 왔던 주류에 대항했던 것이 하나님의 구원과 계시행동에 대한 회상이었고,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질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도 죄의 역사이다. 불교나 이슬람의 역사보다 낳을 것이 없는 죄의 역사라는 것이다. 낙관적으로 역사를 이해했던 트뢸취와 달리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미래의 역사도 더 낳아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런 계시신학적 관찰은 그리스도교도 결국 인간적 종교일뿐이며, 어떤 형식으로도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계시의 빛에서 볼 때, 우상숭배고 자기의인화이며, 불신앙으로 판단되어야 할 같은 종교도 신적 은혜를 통하여 의롭게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담는 그릇이 될 수도 있다고 바르트는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은총에 의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죄가 용서를 받게되고, 선택되어 의롭다 인정받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실현되었다.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의 역동성만이-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신성에서 이미 나타난 것처럼-종교에 계시의 담지자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 곧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를 자신의 인간적 본성과의 사귐에로 인도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자신 안에 두지 않는다. 계시를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실재하며 진리일 수 있다. 종교도 죄인인 인간과 마찬가지로 의로워진다.

하나님의 선택과 의인화를 통하여 진정한 종교로 만들어진 그리스도교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신학적, 교회적 현실은 하나님의 진리의 표징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거룩해진, 계시를 대변하는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들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될 수 없다. 다른 종교들과 같이 평가될 수도 없고,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평가될 수도 없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에 대하여 질적인 효소로 대립해 있다. 다른 종교들 사이에서, 다른 종교들보다 더 약하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아가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는 그리스도교는 종교들의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판단과 심판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다른 종교들보다 그리스도교에 처음으로 주어졌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들로부터 구별되고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신의 계시가 드러났다는 것을 근거로 그리스도교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다른 종교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또한 신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선교의식을 가지고 다른 종교들을 그리스도교로 회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바르트는 진정한 종교,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종교로 만들어진 종교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절대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바르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은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그리스도교에 내재한 종교적 질을 근거로 다른 종교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자율성, 절대성에 참여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절대성은 하나님 자신이 원한, 그리고 하나님이 행동을 통해 전해준, 즉 하나님의 자기전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성은 하나님의 선택과 의인화의 선물이다.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교회를 진정한 종교로 승화시키지만, 이 명칭을 교회가 소유할 수는 없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한편에서는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주어진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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