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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21
 제목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 머리말
 주제어  [판넨베르크]
 자료출처  정용섭  성경본문  
 내용

책을 집필하는 이들이 교의학이라는 개념을 피하고 싶을 때 󰡒조직신학󰡓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제목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선택된 것이다. 따라서 교의학의 자료는 그것에 해당되는 모든 부분에서 기독교 신관이 전개될 때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제1장은 신학 개념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서술하는 작업은 기독교 교리의 체계적 단일성을 훨씬 명료하게 전체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교의학적 주제와 맺고 있는 실질적인 관계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런 교의학에 담긴 역사적 질문이 다층다기하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이러한 서술 형식이 기독교 교리의 학문적 연구에서 기대되고 도달 가능한 정확성, 차이, 그리고 객관성 배후로 유보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확인해야만 했을지 모른다. 기독교 교리는 사실 철저한 역사적 구성물이다. 기독교 교리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형태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에 기인하며, 또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만 가치가 인정되는 원시 기독교의 선교적 선포의 증언에 기인하는 게 틀림없다.

 

그러나 사도 시대 이래로 예수의 인격과 역사 안에 있는 신적인 행위가 어떤 보편적 효력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서 발전된 기독교 교리의 용어도 역시 이런 노력의 역사적 자리와 무관하게 이해되면 안 된다. 이것은 신학 자체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며, 또한 모든 신학의 기초 개념에 해당된다. 이런 개념이 도입되는 역사적 장소가 분명해지면,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서 그 사용과 위치의 변화가 권위 있는 근거에 따라서 조망된다면 그 모든 기초 개념의 기능들이 완전히 이해될 것이다. 날카로운 비판 의식 없이 교의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상호간의 협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기독교 교리의 전승된 언어에 이미 담겨있는 사태의 하중을 망각한 채 단지 형해화 된 󰡒교의학적󰡓 사고방식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도된 조직적 구성은 자의적이고 무책임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 구성 안에서 때때로 옳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 내용이 다른 차원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의는 흔히 지나치게 단편적인 것을 목표로 한다.

 

왜냐하면 그 역사 과정의 복잡성과 그것에 연결된 비판가의 해석 능력이 충분할 정도로 명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의학적 개념의 역사적 자리에 대한 반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대한 보편적 본질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유용성과 한계를 판단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작업이다. 기독교 교리와 그 무게가 갖고 있는 실질적 내용을 확보하는 일은 이런 반성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고 서술할 때에 반드시 진리론적 요청이 수반된다는 사실에서 역사적(historisch) 성찰과 체계적(systematisch) 성찰은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기독교 교리 내용을 순수하게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아무런 밑받침 없이 저자의 취향이나 시대의 정취에 따라서 체계화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암시된 여러 종류의 연구가 가져올 결과를 추가적으로 요약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이런 작업은 기독교 교리를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를 기독교 교리의 고유한 실체적 문제에 근거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어지는 장(章)의 논증 양식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서, 또한 독자들의 책읽기 준비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세세한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논증 과정이 전개될 때는 주로 핵심적인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이와 달리 개별적인 설명이나 논의는 그것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될 경우에 논증 과정을 좀 더 손쉽게 전망하기 위해서 가볍게 다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태에 대한 논의가 단지 역사적 골동품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니다. 당시의 문헌과 벌인 논쟁과 마찬가지로 이런 전반적인 선택은 체계적 논증의 발전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또는 최소한 해명되어야만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에 한정되었다. 참고 문헌을 철저하게 다루는 작업도 역시 유보되어야만 했다. 역사적이고 실질적인 논쟁은 체계적 논증을 전개할 수 있게 한다. 모든 논증의 목표는 매 장의 마지막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과를 그것의 확증연관에 상대적인 것으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주제 자체로 받아들이면 오해될 수도 있다.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끌어나간다는 사실은 극히 명백하다. 더구나 이번에 이 책을 찍어내는 출판사에서 형이상학에 관한 내 강의를 동시에 소책자로 출판한다는 사실에서 이 점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루어진 서술이 이런 저런 철학적 체계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 지적할 수 있다. 즉 그것이 바로 나의 고유한 작업인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나는 철학적 신학의 과업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로부터 무언가 생각할만한 결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지 주의력이 깊은 독자는 방법론적 수단들이 각 장마다 대상에 따라서 여러 형식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제2장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한 근대의 연구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또한 제3장에서는 이와 달리 종교 개념의 역사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제4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성서 주석적 서술이 상세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차이들은 각각의 대상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라는 점에서 아주 명백하게 추구되기 때문에 방법론적 논의가 상세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장이 바뀔 때, 특히 제1장이 끝날 때와 제4장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독자는 거듭해서 이런 서술의 과정에 대한 방법론적 숙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방법적 성찰은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또한 한 서술에서 다른 서술로 넘어가기 위한 그 토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 방법적 성찰은 결코 추상적으로 전개되면 안 된다. 특히 신학 문제에 대한, 그리고 그에 해당되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 동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신학의 학문 이론에 대한 내 저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종교적 입장과의 논쟁 가운데서 그 문제를 다루는 기독교 교리의 서술을 나에게서 기대할 것이다. 여기서 다루어진 것 보다 훨씬 확실하게 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로 인해서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종교의 세계나 종교를 반대하는 진리 요청의 세계에 배열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제4장에서 계시 주제가 종교적 주제에 대한 앞서의 설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논증의 연속성은 교의학적 작업으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는다. 물론 다음 장은 기독교 교리의 자명성을 명확히 하고, 또한 성서 계시의 해석인 진리 요청을 명확히 하는 것에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해명은 다른 종교의 주장과 모두 대립적인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점에서 신학 주제는 제4장 마지막에서 논의된 방법적인 수단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경우에 명확한 종교 비교를 통해서 앞서 제시된 것보다 훨씬 보강된 기준에서 기독교적 계시 내용의 자기 해명에 이르는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계 종교들 사이의 경쟁을 체계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아마도 조직 신학이 미래에 훨씬 중요하게 다루게 될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이 이런 점에서 특별하게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도 역시 어쩌면 제삼세계의 교회로부터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기독교 교리를 해명하면서 제기된 비판은 주로 기독교 사상의 유럽 역사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단순히 유럽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비판은 모든 기독교인의 역사적인 유산에 속한다. 더구나 유럽 이외의 거의 모든 교회의 뿌리가 오늘날 궁극적으로 유럽 기독교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지리적 기원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종파적 기원도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핵심이 루터 신학이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예컨대 라틴 아메리카 신학과 대비되는) 유럽 신학도 그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교리의 진리와 기독교 신앙고백의 진리가 핵심이다. 이로 인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우리의 주님을 섬기게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내 비서 가비 베르거에게 감사해 마지않는다. 그녀는 교정과 색인 작업을 위해서 내 조교들인 크리스티네 악스트와 발터 디이쯔와 함께 애를 많이 썼다. 또한 각주 부분을 전체적으로 점검해준 마르크 바르트 헤르초크 씨에게도 감사한다. 뿐만 아니라 프리데리케 뉘쎌 양과 올라프 라인무트 군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다시 한번 이 책의 사전 준비 작업과 원고 작성에 필요했던 여러 해를 참고 기다리면서 초지일관되게 나를 도와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1988년 2월
뮌헨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목차고리 :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판넨베르크  

>> 연결고리 :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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