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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이금만_떼이야르_드_샤르뎅의_영성과_통전의_영성_교육_연구.hwp   (67.5K)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21
 제목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영성과 통전의 영성교육 연구
 주제어  
 자료출처  이금만, 한신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기독교교육학  성경본문  
 내용  

1. 여는 이야기


  영혼을 더럽힐까봐 역사에서 도피하여 영성생활과 역사참여를 통전通全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희랍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물질보다 더 선호함으로써 영성생활과 역사참여를 통전通全하지 못한다. 또한 세계로부터의 도피를 중시하는 신비주의 영성은 물질세계를 유혹과 시련의 원천으로 여기고,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이러한 이원론적二元論的 배타성排他性은 그리스도교 영성교육에서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요한은 영지주의靈智主義가 오류임을 명확히 언급한다(요일2:22; 4:2-3)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성생활과 역사참여, 초자연과 자연,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간, 성과 속, 초월과 일상, 기도와 노동 등의 이원론 구조를 넘어 통전通全한다.

  한편 예수회 신학자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영혼과 물질은 본래 둘이 아니고 두 상태, 동일한 우주적 질료의 양면임을 논술한다. 그는 자연과학 관점과 동시에 수덕적修德的 신비의 관점을 통전通全하여 영성을 수립한다. 이에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을 극복한 그의 영성 사상을 통전通全의 영성교육 가능성으로서 탐구하려 한다. 여기에서 논술하는 영성교육은 ‘학습자에게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살아가도록, 계획적이며 지속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의미한다.1)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 순서로 논의하려고 한다. 우선 2장에서는 떼이야르의 세계관과 영성 신학 사상을 논의의 화두로 삼으려고 한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그가 고증한 하나님 영역의 속성은 무엇을 말하는지 고찰할 것이다. 이어서 4장에서는 그러한 하나님 영역의 확장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5장에서는 그가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정리할 것이다.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6장에서는 통전通全의 영성교육 원리와 방향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위의 논의를 요약․정리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이다.


2. 떼이야르의 신학사상


  떼이야르는 우주가 시공간으로 구성된 유기적有機的 통일체로서 다수성․통일성․에너지 등이 그 특성이라고 말한다.2) 그는 우주를 고정된 실재로서가 아니라 변형과정의 큰 덩어리로 보며, 우주의 전체량을 우주생성이라는 말로 표시한다.3) 이어서 우주진화는 생명발생을 거쳐 정신발생에 이른다고 진술한다.4) 물질이 활성화되어 생명이 나타나고, 생명이 활성화되어 정신이 발생하며, 정신발달의 절정에 인간이 위치한다는 말이다.

  우주는 마지막 수렴점收斂點, 곧 오메가0mega점을 향해 나아간다. 떼이야르에게 오메가점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곧 그리스도를 만물을 수렴하는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환언하여 그리스도는 우주의 시작과 끝이고, 진화의 원동자原動者이며 궁극 목적이다. 또한 우주에 내재하며 초월하는 그리스도는 우주의 몸이다. 그리고 우주의 진화과정을 통해 오메가0mega점이 점점 형성되어가고, 진화의 마지막 순간에 그 오메가0mega점이 완성된다.

  떼이야르는 진화과정을 무질서한 연속이나 순환운동, 혹은 분산과정이나 우연발생 등으로 보지 않고 임계점臨界點이라는 최종 수렴점을 향해 창발적創發的으로 진행되는 진화를 진술한다.5) 그는 지각地殼의 각층과 화석연구결과 생명이 지상에 서서히 나타난 것을 보고, 그 의미와 방향을 탐구함으로서 우주진화의 일부만을 다룬 고생물학 진화론을 우주론 진화로 그 지평을 확대한 것이다.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한 지구는 생명권을 덧입는다. 생명은 돌연변이와 상태변화 등 창조적 진화과정을 거쳐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하여 반성의식을 갖게 된다. 떼이야르는 앞으로도 진화가 계속되어 초인간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예측한다.6) 그러면서 사물의 복잡성이 사물이 더욱 많은 구성요소 및 구조상으로 더욱 큰 조밀성稠密性을 나타낸다고 분석한다.7)

  사물은 복잡성과 함께 내면화․의식화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떼이야르는 그 의식의 뜻을 반성사고라고 말한다.8) 그에게는 정신의 완전성과 물질의 통합성은 동일 현상의 양면이며, 복잡성은 사물의 외면성外面性이고, 의식은 사물의 내면성內面性이다.9) 이같이 그는 우주가 비정돈 상태에서 정돈상태로 발전하며, 외적으로는 더 복잡한 물질배열로 발전하고, 내적으로는 더 높은 의식으로 진화한다는 복잡화-의식화 법칙을 세운다. ‘복잡화-의식화’ 법칙에서는 물질과 정신은 대립이 아니라 진화의 두 방향이다.10) 생명은 물질이 최고도로 유기화有機化된 결과물이다. 곧 인간은 생명이 최고도로 복잡화複雜化하여 생긴 생산물이다.

  위에서 살펴본것처럼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고도의 복잡성과 내면화를 지향하는 장구하고 점차적인 진화과정의 특수산물이다. 떼이야르에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을 알 수 있는 자기의식이 있고, 나아가 자신의 인식능력을 알 수 있는 반성능력이 있어 선택․예견․계획․구성 등을 할 수 있다.11) 그 결과 인간은 우주진화의 화살촉 역할을 한다.

  사회 진화는 팽창기와 압축기 둘로 구분된다. 팽창기는 인간출현에서 19세기까지로서 인구증가, 문화․문명의 발전, 장기간의 사회적 복잡화, 기술공학의 진보 등으로 나타난다. 압축기는 19세기 말에 시작된다. 이와같이 떼이야르의 인류진화 사상은 집단화․내면화․전체화를 통해 점차 이루어지고, 미래에는 통합․기술화․지구의 이성화理性化등이 나타난다.12) 그러면 이제 떼이야르가 추적한 하나님 영역의 속성과 본성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자.


3. 하나님 영역의 속성


  이 장에서 살피려는 하나님의 영역은 ‘실재實在’, ‘우주의 중심’, ‘원천’, ‘중심’, ‘모든 존재를 결합시키는 절대적이며 긍극적인 힘’ 등으로 서술할 수 있다. 까닭은 떼이야르가 인간이 사는 땅이 바로 하나님의 영역이며 집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13) 하나님은 피조물의 심혼心魂에서 그 자신을 노출한다. 심혼心魂의 하나님 영역에서 인간은 비로소 그분을 만나뵈올 때 정화 되며, 곧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떼이야르의 생각이다.14)

  인간은 모든 사물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타자가 고통 당하면 자신도 고통을 느낀다. 떼이야르의 ‘편재’사상에 나타나는바와 같이 인간이 의식하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15) 그렇다고 떼이야르의 이런 해석을 만물이 하나님과 똑같고 하나님 안으로 융합되어 그 본래 특성을 잃는다는 ‘범신론’은 아니다. 범신론자汎神論者는 세상에 집착하나 떼이야르는 하나님을 지향한다. 그에게 하나님과 우주는 신비롭게 합일하나 혼돈 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된다. 하나님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사참여에서 중용中庸울 추구한다. 중용中庸은 균형이며 조화이다. 그러므로 관계의 모순이나 고통까지도 하나의 순화과정純化過程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 영역에서 오메가omega점을 향해 진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영혼의 온 힘이 진동한다고 떼이야르는 말한다.16) 영혼의 진동이란 사랑․지성․정열․침잠․충만․황홀 등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떼이야르는 이런 현상 모두를 정열적 불편심不偏心으로 아우른다.17) 원래 ‘불편심不偏心’은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靈身修鍊에 나타나는 개념이다.18) 영신수련 목적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여 영성의 진보를 지향하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떼이야르는 ‘불편심不偏心’이란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 영역에 들어가려면 그 ‘불편심不偏心’이 요청된다.

  떼이야르에 의하면 우주는 말씀에 부딪침으로써 신비로운 몸이 된다.19)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다양성과 차이를 살리면서 창조의 완성으로 이끌고자 한다. 이것을 떼이야르는 ‘타자되기’로 해석한다.20) 그런 해석속에서 떼이야르는 창조주 하나님을 구원자로 풀이하며, 우주 만물의 심혼心魂에서 활동하는 분으로 해독한다.21) 이와같이 떼이야르에게는 역사 사건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경이를 연출하는 장이 바로 하나님의 영역이다.22)

  

  우주 전체와 전체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 속에 있다. 하나님 영역은 인간이 그곳을 향해 나가도록 촉진하는 존재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노력 없이는 도달 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회 사건이 아니라 지속 활동이며, 종말에 완성된다. 창조의 완성은 바로 구원이며, 하나님과 우주의 합일이다. 합일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충만화이다. 여기서의 말하는 충만은 피조물이 하나님 안으로 통합되어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결합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완전한 본질을 획득하는 충만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는 우주와 필연적이고 본질적 관계를 맺으시며 만물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심과 머리이다. 창조는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통일과정이다. 이와같이 창조는 그리스도의 강림 및 구속과 결부된다. 우주의 창조자이며 완성자인 하나님은 창조과정에서 주도역할을 하되 일방행위로 창조하지 않고, 인간의 참여를 배려하신다는 것이 떼이야르의 고찰이다.23) 이러한 그의 창조론은 더 나은 미래건설 도상에서 인간노력의 동기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우주완성에 적극 이바지한다고 하겠다.

  창조는 통일이다. 마찬가지로 창조됨은 통일됨이다. 그것을 떼이야르는 하나님은 통일함으로써 창조한다고 풀이한다.24) 즉 창조는 무한다수가 점차 통일되어 긍극 유일唯一로 되어감이다. 합일인 창조는 복잡화-의식의 법칙에 따라 진행되고, 이에 따라 우주는 더욱 큰 의식이나 정신을 향하는 동시에 더욱 큰 통일성을 향해 진화한다. 창조는 결코 동시행위가 아니고 만물을 종합하는 점진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와같이 창조는 존재의 충만, 곧 신성 및 우주 양자의 충만 또는 하나님의 창조력으로 충일充溢된 전 우주를 지향한다. 따라서 진화는 창조의 표현이자 그리스도의 발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된다(요일1:1-3; 골1:16-17).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그 안에서 통일된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우주의 질료 속으로 잠입潛入함으로써 우주 자체를 그 자신에게 들어올린다. 우주의 상승은 곧 그리스도안으로의 만물통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및 구속활동은 우주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서 뿐 아니라 전 우주의 구속을 위해 오시고, 수난 당하고, 죽으신다(롬8:19-22).

  떼이야르는 그리스도께서 다양에서 나오는 통일을 거스리는 저항, 즉 물질에 내재한 정신의 상승을 방해하는 저항을 구조적으로 극복한다고 본다.25) 그의 오심과 구속은 창조와 연관된다. 결국 창조․강림․구속은 하나님의 세계구원 계획에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진화가 의식의 상승을 의미하는 만큼 반성의식을 지닌 인간은 우주 진화에서 중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창조 마지막에 인간을 만든다. 인간을 자연의 정상에 세우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피조계被造界를 담당하게 한다(창1:28).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되고, 지상만물을 감당하게 한다(시8:1-8). 하나님이 인간에게 우주를 위탁했다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을 위해 역량을 발휘하여 세계완성이라는 과업도 요청 받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따라서 타인과 유기적․인격적 관계 없이는 효과적 과업수행을 할 수 없다(창1:27). 개인의 발전은 인격적 친교로 보완되고, 사회발전은 개체의 인격 성장과 상호 섬김으로 보완된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인간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우주는 진화의 걸작품이자 절정이며,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존재인 인간을 향해 진화해오다 인간출현 이후 그것은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해 계속된다.

  떼이야르 눈에 인간의 환경 자체가 하나님이 현현顯現하는 장이다. 하나님 영역의 본성은 바로 강생降生하신 말씀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영역을 일치시킨다. 사람의 아들, 곧 ‘인자’란 표현은 바울과 요한처럼 만물의 양적 충만이며, 질적 완성이고, 신비한 충만이다.26) 이러한 충만과 통합은 우주의 중심으로 연결된다.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일체가 결합되고 완성되며, 그 안에서 창조된 일체의 구조물이 안정을 얻는 그분, 죽고 부활하신 그는 만물을 세우시고, 만물이 그 안에 존재한다고 떼이야르는 말한다.27)

  그리스도는 긍극적으로 만물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우주적 존재이시다. 하나님의 편재는 만물의 힘을 하나로 엮는 그리스도로 표현된다. 세상을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현현顯現한다. 그리스도는 인성人性으로 온 우주를 하나님께 이끄는 능동적 에너지의 중심이 되신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해서만 하나님 영역으로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편재遍在는 바로 그리스도의 편재遍在라는 정식에 도달한다.28)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편재遍在’라는 말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다. 신앙과 사랑뿐 아니라 죽음과 쇠약등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 속에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는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하나님 안으로 수렴됨’ ‘그리스도안으로 수렴됨’이라는 영성원리로의 승화를 뜻한다.29) 이 원리에 떼이야르는 성찬식을 연결시킨다.30)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신자 개개인에게 육화肉化가 구현되는 셈이다. 따라서 각자의 삶에서 수행되는 모든 친교는 시공을 넘어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완성해간다. 떼이야르가 성찬식의 효험을 강조하듯이, 인간과 우주는 유기적 관계에 있기에 그리스도는 만물을 하나로 통일하는 존재이다.31) 모든 존재는 물질이든 정신이든 과거에서 미래까지 그리스도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성사聖事는 곧 물질을 성화聖化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이며 외적인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32)

  떼이야르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실재는 연속적인 영성적 변화의 영역 안에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것은 풀과 대지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실재는 서로를 자기화自己化한다. 인성人性은 물질세계를 자기화한다. 성찬식의 빵과 잔은 인성人性을 완성한다. 성찬식의 빵과 잔은 세상의 총체성을 대표하고, 창조의 지속은 성화를 위해 필요하다. 이처럼 떼이야르는 사물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현존을 응시한다. 그의 기도이다.


“나의 하나님, 빵과 잔을 모시고자 제단 앞으로 가까이 나갈 때, 주님께서 숨어 계신 빵과 잔의 비소卑小함과 그 가까이에 감추인 무한한 전망을 식별하게 하소서. 주님의 위대한 현자들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이미 저는 움직이지 않는 이 작은 빵속에서 나를 동화하는 힘을 익숙하게 알아봅니다. 그 힘은 결코 저에 의해 동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접촉이 한정되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망상을 극복하도록 도우소서.”33)


  우리는 지금까지 만물이 하나님 편재遍在가 드러나는 장이며, 만물의 중심에 하나님 영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만물이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역임을 살펴보았다. 이와같은 떼이야르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이란 세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이며, 하나님과의 접점이라고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34) 그런 의미에서 만물의 모든 변화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구원사 의미를 가진다. 이제 떼이야르가 말하는 하나님 영역의 확장을 살펴보자.


4. 하나님 영역의 확장


  떼이야르의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라는 말이나 ‘거룩한 현존이 우리 안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라는 표현 속에는 ‘영성신학’ 및 ‘진화’의 개념이 들어있다.35) 인간은 진화의 수렴점收斂點인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기 때문이다. 떼이야르에게 하나님 영역의 현현顯現은 바람처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36)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요3:1-10).

  떼이야르는 존재를 느끼는 순간에 새로운 인식이 발생한다고 본다.37) 또한 새로운 인식이 발생하는 순간 그 존재에 취하게된다고 덧붙인다.38) 이와같은 하나님 현존에 대한 진술은 마치 한 포기 꽃과 줄기를 만지는 것과 같이 감성적이며 심미적이다. 그와 같은 언어는 하나님 체험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나, 심혼心魂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생생한 느낌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하나님의 영역은 인간에게 출현하는 사물의 심층적 변용變容이다.39)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사물의 외형변화와 무관하다. 심리사건은 오직 하나님을 체험하는데 있어서 초기에만 내적 긴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피조물 사이의 관계는 변치 않으며, 같은 의미의 강화만이 일어난다.40) 존재가 본성에 따라 본성을 성취하면 할수록 내면의 광휘光輝는 더 가깝게 느껴지고, 감각적 지각은 심연深淵 속으로 빠져든다. 따라서 떼이야르는 그리스도교 신비를 하나님의 출현이라기보다 하나님의 투명성 및 순수성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41)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역은 존재 내부에서 동터오는 빛이며, 존재의 밖을 감싸는 빛이다.

  우리는 신비의 원천인 중심에서 벗어나 신비가 넘치는 밖을 본다. 하나님 체험은 영성순례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표현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찾아 나설 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자신을 노출한다. 하나님의 영역은 어디에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인간의 모든 노력의 기원이며 원천이다. 따라서 신비 체험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요6:65)


  떼이야르는 하나님 영역을 중심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덕목으로 순수․신앙․충실을 세 가지를 꼽는다.42) 첫째 덕목인, 순수純粹는 일체를 뛰어 넘어 일체 안에서 하나님이 부여하는 공정성과 생명의 약동성을 의미한다. 반대로 불순은 하나님 안에서 우주의 통합과정을 지연시키는 분열주의․이기주의․쾌락주의 등이다.43) 순수는 그리스도의 의지를 만유안에서 완성하려는 태도로서, 하나님 영역이 물질세계 영역까지 침투함으로서 성취된다.44) 따라서 순수는 하나님 영역으로 얼마나 가까이 이끌리는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그리스도인의 순수는 하나님의 영역을 일상 안에서 사건화하는 열쇠이다.45) 열정․기도․일치 등의 순수성은 하나님 영역을 확장하는 내용이 된다. 이런 순수는 믿음으로 완성된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20:29)

  둘째 덕목인, 믿음은 교리에 대한 지성적 수용이라기보다 우주가 하나님 손안에서 계속 창조된다는 실천적 확신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취하는 힘이다.46) 믿는다면 눈이 열리고, 빵의 기적이 일어나며, 사나운 물길을 길들이며, 죽은 사람도 일어난다며 하나님 안에서 자연의 힘이 활성화된다고 떼이야르는 말한다.47).이러한 활성화는 초활성화初活性化하여 기적마저 불러일으킨다.48) 믿음의 효과는 세상 성화로 나타난다. 출생하는 것뿐 아니라 사라지는 것까지 하나님 안에서 성화과정을 거친다. 믿음은 그런 과정의 조건인셈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믿음으로 신비가 성취된다.

  셋째 덕목인, 충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의지와 선을 향하여 자신을 개방하고, 하나님의 영역이 구현되는 장에 우리를 위치하는 태도이다.49) 다시 말해 충실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태도이다. 믿음이 세상을 성화聖化한다면 충실은 세상과 친교를 이룩한다.50) 순수가 내적 상태의 개방이라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이며, 충실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적 노력이다. 떼이야르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발견이며 영원한 성장이다.51)

  하나님 영역은 고정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움직이는 중심이다. 그 중심은 좀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좀더 높은 곳이란 죽음이 삶을 완성하는 곳이며, 더 열정적인 삶이며, 사물에서 초탈超脫하게 하는 하나님 영역을 말한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제거되어갈수록 하나님의 영역은 더욱 빛을 발하고, 투명한 빛으로 충만해진다.

  하나님의 영역에 이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창조계의 모든 사물을 떼이야르는 거부하지 않고 넘어선다.52) 나아가 하늘과 땅과 지옥의 모든 기쁨․진보․고통․고민 등을 하나님 영역의 풍요를 약속하는 것으로 규정한다.53) 따라서 해방과 변형과 활성화를 거쳐 하나님의 영역에 도달한다. 이와같이 순수․믿음․충실은 세상의 최종 얼굴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최상의 힘이며, 세상을 이기는 새 하늘 새 땅을 형성하는 원리이다.54)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발전이나 완성은 우주적 통일성이라는 전망에서 좀더 분명해지며, 발전과 완성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해지므로, 우리가 세상의 성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웃사랑의 깊이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떼이야르의 생각이다.55) 이것은 인간의 행위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우주적 통합과 통일성이라는 차원에서 인간이 세상 전망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영혼 한 영혼이 고유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구축하고, 우주의 조화와 통합을 이루어간다. 하나님이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다양하게 현현顯現한다는 것은 믿음․순수․충실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인지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각자 자신이 성화聖化해야 할 세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성화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떼이야르는 강조한다.56) 개인의 성화와 우주의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영역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완성된다.

  개인의 성화는 시공간의 간극을 넘어 그리스도안에서 일치로 나타난다. 한 개인의 노력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의 노력과 일치를 이룰 때에 비로소 충만에 도달한다. 하나님의 영역은 순수․믿음․충실로 표상表象되는 지상 삶의 단련으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떼이야르는 그것을 발견했다.


“하나님 안에서 살고자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열망에 가능한 모든 순수를, 기도에 전적인 믿음을, 행동에 온전한 충실을 기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우주를 성화聖化할 아주 큰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57)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둘러싼 일체의 요소와 통교하고, 각각의 가치실현을 위해 움직임으로써 개개인을 고립시키거나 단절시키지 않는다. 관계의 단절을 넘어 모든 영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원리를 떼이야르는 사랑이라고 말한다.58) 복음서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으로의 수렴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타자를 향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간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가 살아가는 하나님의 영역은 결합의 일부이며, 이 결합은 그리스도적 충만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 영역들의 결합은 바로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일체의 존재들을 향한 성자聖者들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모든 존재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적 일치를 믿고 갈망한다. 하나님 영역은 모든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일체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새땅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은 분리를 동반하는 집합으로 나타난다.59) 좋은 곡식이 있으면 나쁜 가라지가 있고, 양이 있으면 염소가 있으며, 친구가 있으면 적도 있고, 잔치 집의 흥겨운 마당이 있는가하면 문밖 어둠이 지배하는 마당이 있고, 일치를 이루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부패를 더하는 고통의 불이 있다. 어둠은 단죄나 지옥으로 떼이야르에게 일컬어진다.60) 그러나 그리스도의 힘으로 유혹과 악이 선으로 변화하여 사랑의 불을 지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며 악마저도 사랑이 실현되어야 할 장으로 여긴다.61)


5.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


  우주는 마지막 수렴점收斂點, 곧 오메가점 향해 진화한다. 즉 우주진화의 최종점은 오메가0mega점이라는 뜻이다. 오메가0mega점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우주의 인격적 중심이다. 인격적 중심으로서 만물을 통일하기 위해 자신에게로 만물을 끌어당긴다. 요한과 바울처럼 떼이야르는 오메가점의 특성을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이 존속하고(요일1:1-3; 골1:17),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골2:10; 엡4:9)와 연결한다.62)

  오메가0mega점은 만사가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만물이 그 안에서 통일․완성되는 우주적 중심이다. 오메가점은 강림하고 죽었다가 부활한 나사렛 예수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물질 속에 용해溶解하고, 물질에서 재생됨으로써 우주의 질료를 꿰뚫고 자신을 활기 있는 우주 속으로 잠입潛入시킨다.63) 우주를 초자연계로 상승시키려고 하나님께서 먼저 자연계인 우주로 내려온 것이다. 화육化肉한 그리스도는 전 우주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초생명화 한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인격적 중심이며, 진화과정의 내적 동력이고, 진화방향을 잡아주는 인력引力의 중심이다. 강생降生한 말씀의 현존現存은 우주적 요소로서 만물을 꿰뚫는다.64) 그리스도가 우주의 전 실재를 지니고 있는 한 전 우주는 그리스도안에 잠입潛入되어 있다.65) 이런 의미에서 우주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마치 영혼이 신체 속에서 생명력을 부여하듯이 그리스도는 우주에 편재偏在하시어 자신의 초자연력으로 우주에 초생명超生命을 부여한다.

  하나님과 세계, 초자연과 자연은 구별되면서 동시에 유관하다. 양자는 상호관련을 맺으며, 초자연은 자연 안에 내재함으로써 자연을 완성시킨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목표와 전 진화과정의 수렴점收斂點이다. 만물은 그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그를 지향한다. 그리스도의 충만을 향해 진화하고, 그의 영향력 속에 잠입潛入해 있는 우주는 오직 오메가이며 우주의 완성자인 그리스도안에서만 그 존재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동역자인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 곧 우주를 건설하기 위해 세상수고를 하고, 역사발전과 완성을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안고 간다.

  떼이야르는 영성인식에 있어서 물질세계를 긍정하고, 세계진보를 위한 인간노력의 가치를 인정한다. 따라서 그가 전개하는 영성은 강림降臨하시고 수난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데 토대를 둔다. 그리스도인은 자아포기, 극기, 희생 및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도달한다. 떼이야르는 우주의 물질 성장이 정신을 지향하고, 정신성장은 그리스도를 지향한다고 말한다.66)

  인간은 자신의 일로서 조금씩 그리스도를 완성해나간다. 인간의 현세진보와 그리스도의 점진완성은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새로운 자연 창조를 통해 계속 초자연적인 것을 이룬다. 따라서 진정한 경배敬拜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물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물을 희생한다는데 있기보다는 현세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고된 활동과 지적 탐구를 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모든 일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관련시키며 정진하는데 있다고 하겠다.67)

  그리스도는 만물의 정신에너지에 활기를 주고, 통합하는 오메가omega점으로서 하나님의 우주완성에 협력하도록 신자를 자극․격려하며, 창조활동 과정에서 주도 역할을 하는 동인動因이 된다.68) 그리스도인은 현세를 완성하는데 있어서 참여와 동시에 초탈超脫함으로서 이바지한다. 현세참여와 현세초탈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 둘중 하나는 다른 것을 낳음으로써 결국 동일한 충동의 양면이라고 떼이야르는 본다.69) 다시 말해 현세에 매진하는 그리스도인이 현세를 초탈하는 것은 현세에 집착하여 현세를 사랑하지 않고, 긍극 목적인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협력함으로써 하나님만을 믿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리스도인이 피조물被造物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피조물을 관심 있게 바라볼 때에도 결국 그 안에 현존하는 하나님을 의존하는데 있다.70) 즉 세계 진보에 헌신함과 동시에 오직 그리스도만을 향해 나아가면서 현세를 초탈超脫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현세초탈은 결코 현세 경멸이나 도피가 아니다. 현세 초탈超脫은 현세과업에 충실히 매진하고 극기와 자아포기를 통해 하나님께 도달하는 길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금욕의 관점에서 세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의미에서 세상을 초탈超脫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오메가점을 향하지 않고 물질 그 자체에 집착하는 세계를 싫어하고 대신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는 세계를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탐욕을 내려놓는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뒤따르고, 이기심과 나태와 탐욕을 극복할 의무를 느낀다. 그러한 영성은 현세 집착執着과 동시에 현세초탈超脫이며, 현세초탈超脫과 동시에 현세집착執着이다. 또한 자아발전과 동시에 자아포기이며, 자아포기와 동시에 자아발전이다. 이러한 영성은 현세도피가 아닌 참여를 통해 초탈超脫하고, 현세참여를 통해 하나님께 도달하는 영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탈超脫은 현세활동을 통한 초탈超脫과 함께 개인과 사회의 진보에 장애가 되는 악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것을 말한다.

  진화과정에서 한번 성공하는데 상당한 실패와 낭비가 뒤따른다. 형성도상의 우주에 나타나는 원자세계의 분해, 동식물세계의 사멸, 인간세계의 고통과 죽음 등이 필연결과로 발생한다. 하나님은 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허용하거나 이용할 뿐이다. 하나님을 악을 이용하여 보다 큰 선을 도모한다. 모든 고통은 결국 인간이 하나님과 합일하는데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을 떠남으로써 하나님에게 더욱 집착하고, 인격발전을 이룬다.

  죽음은 최종 악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최종 결함을 완결하는 과정으로 떼이야르는 본다.71) 죽음을 인간 감퇴減退의 총화總和와 완성으로 보는 셈이다. 즉 최종 자기이탈인 죽음은 상태의 변화이며 하나님에게 복귀하는 임계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죽음에 직면할 때 합일의 희망으로 마음을 연다.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극복했다. 죽음은 만사 끝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하며 완전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무엇이나 더 나은 상태와 높은 단계로 발전 성장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도 창조의 짐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상의 예수는 정신을 들어올려 하나님의 깊은 영역으로 이끌어 가는 수고의 상징인 동시에 실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소극적으로는 속죄이며, 적극적으로는 세계의 상승시키는 역동적 능력이다. 그것은 희생과 보상이라는 상향요소와 고된 노력 끝의 진보라는 전진요소의 종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마16:24)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수고와 극기克己의 삶을 자처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속활동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 자체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채우겠다는 바울의 고백이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으며, 그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가고 있습니다.”(골1:24)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안에서 그를 위해 그와 함께 사는 생활이며,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참여하는 삶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는 사랑이다. 떼이야르의 발견과 같이 사랑이야말로 온 세상을 통일하고 인격화할 수 있는 에너지이다.72) 사랑이 진화의 인력引力이 되는 셈이다. 결국 떼이야르의 인식처럼 우주만물은 긍극적으로 오메가omega점을 향하므로 하나님께 사랑스런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먼저 만물 안에서 사랑의 주가 된다.73)

  복음관점의 사랑은 진화의 동인動因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세계의 행복 및 발전을 위해 능동적으로 헌신한다. 그리스도인은 현세활동을 통해 만물을 하나님 안에서 통일시키는 우주완성에 이바지하고 이때 자신은 하나님과 결합한다. 사랑만이 생명을 단합하여 완전케 하며 이행하게 한다.74) 요컨대 그리스도인 생활은 인간활동을 보편적으로 성화聖化함으로써, 스스로 성화聖化되는 생활을 한다.


6. 통전通全의 영성교육


  떼이야르는 영성을 전체성․사회성․유기적 통일성 속에서 더 높은 자원으로 발전․성숙되어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식과 함께 하는 영성교육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몸․정신․영을 통전通全하여 전개될 것이다. 그것은 내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행동에 밀착되어 얽히며, 일생을 통해 성장할 것이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하는 만큼 사랑한다. 따라서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자율과 창의, 자기통합과 명민성 확립, 그리스도 정신으로 행동하는 정의의 인간양성, 타자를 섬기는 사랑의 인간육성 등에 목표를 둔다.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개방성, 자기반성과 자기폭로, 과감성과 용기 등을 추구한다. 신뢰는 개방을 유도하고, 개방은 신뢰를 포함한다. 하나님을 알고 싶고,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는 식욕․건강욕․편안욕보다 더 근본적이며 내밀한 욕구이다. 심혼心魂에는 자신을 철저하게 보여주고, 반성하고, 알고 싶은 열망이 내재해 있다. 이 열망은 일치․자유․평화․진․선․미․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사랑할 때 표출된다. 내면 순례는 유격훈련보다 혹독하다. 반성과 폭로를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사랑이다. 주를 사랑하기에 더 철저히 자신을 보여주고 폭로하려 한다. 부분처방을 넘어 대수술로 근본적  전향을 하려면 과감성․모험이 요구된다.

  통전通全의 영성교육 방법으로는 성서낭독과 암송, 묵상과 기도, 증언과 경청, 학습과 연구, 실천과 생활 등 다양하다. 영성 형성에는 (1) 첫째, 예배기도에만 관심하고 말씀양육과 나눔봉사는 없는 영성이 있다. (2) 둘째, 말씀양육에만 치중하고 예배기도와 나눔봉사는 부재한 영성이 있다. (3) 셋째, 예배기도와 말씀양육은 무시하고 나눔봉사만 전념하는 영성이 있다. (4) 넷째, 예배기도와 나눔봉사에 몰두하고 말씀양육은 소홀한 영성이 있다. (5) 다섯째, 예배기도와 말씀양육은 관심하나 나눔봉사가 미흡한 영성이 있다. (6) 여섯째, 말씀양육과 나눔봉사는 관심하나 예배기도는 등한시하는 영성이 있다. (7) 일곱째, 예배기도․말씀양육․나눔봉사가 통전通全하는 영성 등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일곱 번째이다. 도표로 그려보자.

                                 1     5    2                 

                                   4   7  6                     

                                                                  

                                         3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첫째, 창조주가 주시는 ‘은총’을 받아 누리며, ‘예배․말씀선포 및 경청․기도교육’ 등으로 응답하여 은총의 신앙을 꾀함으로써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기독교 안목과 가치를 지닌 책임 있는 인간을 육성한다(롬12:1-2). 주께서 주시는 해방의 은총을 누리며 예배로 대답한다.(출20:3-8; 롬12:1-2). 주께서 주시는 진리를 깨우치고, 선포와 경청으로 대답한다(시119:105; 요8:31). 주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기도로 대답한다(살전5:16-18). ‘그리스도교 안목과 가치를 지닌 책임 있는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비판 사고와 분별 있는 선택,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즉 베드로의 말대로 ‘선택받은 자, 왕의 제사장, 거룩한 국민, 하나님이 점지한 백성'이다.(벧전2:9)

  둘째,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에 응답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공부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제자를 양육한다. 하는 일과 그 정도가 다를 뿐 신자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섬기는 봉사자로 부름 받고 있다(딤후3:16-17). 섬김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 모두를 제사장직의 봉사와 예언자직의 봉사, 그리고 정치적․왕적 봉사를 하도록 초대하신다(막10:45; 눅4:18-19; 딤전3:8-13). 사랑의 섬김, 정의의 섬김, 평화의 섬김을 보이신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제자를 양육한다, 예수 그리스도 섬김을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제자(고전13:4-7), 정의의 제자(미6:8), 평화의 제자(마5:9), 말씀의 제자를 양육한다(딤후3:16-17).

  셋째,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깨우쳐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응답하여 공동체의 친교와 생태계를 보전하는 삶을 이루고자 ‘협동協同․공생共生’의 삶을 훈련함으로써 수직 관계와 수평 관계가 회복하고, 생명의 영성을 형성하며 생명문화를 창달한다(엡4:11-1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전체․가정․동년배․자기와 다른 연령․교회 밖의 사람 등과 친교를 이룬다.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을 환호하며 생명의 영성을 형성하며(갈5:22), 협동하고 공생하는 생명문화를 창달하며(사11:6-9), 창조세계의 생태계를 보전하며(롬8:19-23), 청지기직을 수행한다(고전4:1-2).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청지기직을 몸과 영성, 물질과 정신, 하나님 인격성과 초인격성, 개체의 고유성과 생명의 연대성, 말씀교육과 성령의 창조적 활동 등을 서로 함께 맞물리는 순환구조와 불가불리의 동시성 속에서 수행한다. 또한 절제와 나눔, 영적 자유와 깊이, 감수성의 순화, 공감능력 심화 등에 주력하면서 청지기 능력을 키운다. 그리고 창조세계와 인간을 유기체의 불가분리 관계에 있고, 만물이 서로 유기적 연대관계에 있음을 인식하며 일한다. 나아가 남녀의 상보성相補性․평등성平等性․고유성固有性을 인식하고, 여성의 상품화 및 소외를 극복하며 일한다.


7. 닫는 이야기


  우리는 지금까지 고생물학적 진화현상을 신학에 도입하여 창조계 변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그리스도가 우주의 구세주이며, 총괄자이심을 논증하고, 역사참여 영성을 고취한 떼이야르의 영성을 고찰했다. 그에게는 영성과 과학이 대립개념이 아니었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자연법칙으로 발견함으로써 인류복지에 응용하며, 영성은 과학의 본래방향을 잡아주는 동시에 횡포를 견제하였다. 영성은 창조세계를 위로 상승시키고, 과학은 앞으로 전진시킴으로서 그리스도안에서 종합된다고 했다.

  떼이야르는 하나님 경배와 역사참여, 영과 육이 서로 유기적 연관성 속에 있음을 고찰함으로써 이원론二元論과 정적靜的 세계관을 극복하고, 일원론적一元論的이며 동적動的인 세계관을 수립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머물러 있는 정적 존재가 아니고 세계를 향해 오시는 동적인 분이며, 시공의 우주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초월자일뿐 아니라 세계에 편재하는 내재자였다. 하나님은 자신을 벗어나 세계를 향하시고, 세계는 자신을 넘어 하나님을 향하시는 분이었다.

  떼이야르는 그리스도를 우주의 위격적位格的 및 물리적 중심으로 놓고 그를 오메가점과 동일시했다. 인간이야말로 진화의 가장 탁월한 산물이며,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그분과의 일치로 존재목적을 달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하나님 영역을 진화의 정점이며 완성의 중심으로 보고, 인간진화의 종착점을 그리스도와의 일치라고 하였다. 그가 밝히려고 노력한 진화의 정점은 하나님 나라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육화肉化가 곧 세계의 성화聖化이자 세계의 그리스도화라는 말이 성립될 것이다. 

  떼이야르 연구에서 우리는 인간 삶이 하나님 일과 결부되고, 자연은 초자연과 관련되므로 하나님을 향한 상향운동과 세계진보 및 인간성숙을 위한 전진운동은 결국 초월자인 동시에 내재자인 그리스도 오메가에서 수렴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하나님 경배와 역사참여, 신앙활동과 과학탐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 인간노력이 세계완성의 원인이 되지는 못하나 인간성숙과 우주완성의 조건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영성을 우리는 그것을 현세참여의 영성, 창조세계 보전의 영성, 집착을 통한 초탈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영성 공동체인 교회야말로 그리스도를 발생을 증진시키는 진화의 내적 원리이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주고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구현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따라서 영성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자신을 위해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있으며, 세상과 격리된 채 존재하지 않고,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함으로써 인간의 전 영역을 하나님 영역으로 변형시키는 기지가 될 것이다. 바울 역시 만물의 전 영역을 하나님 영역으로 변형시키려는 신앙고백을 한다.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롬8:18-25)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으로 우리는 하나님 ‘은총’을 누리며, ‘예배․선포/경청․기도교육’ 등으로 대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리스도 안목과 가치를 지닌 책임 있는 인간을 육성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섬김’에 응답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공부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제자를 양육한다. 나아가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성령에 응답하여, 공동체의 친교와 생태계生態界 보전을 이루고자 ‘협동協同․공생共生’의 청지기 삶을 훈련함으로써 생명의 영성과 문화를 창달한다. 이와 같은 통전通全의 영성교육은 성서를 토대로 하고, 역사의 진보에 참여하며, 에큐메니칼 노선을 견지하고, 공동체 양육 등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원리주의․배타주의․영지주의․신비주의․인본주의 등을 지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요한네스 헴레벤 「떼이야르 드 샤르댕」(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77)

이금만, 「영성교육과 하나님 체험」(오산: 한신대출판부, 2000).

Chardin, Teilhard de, The Future of Man (New York: Collins & Harper, 1964).

___________________, The Phenomenon of Man (New York: Collins & Harper, 1965).

____-_______________, The Divine Milieu (New York: Harper & Row, 1965).

___________________, Science and Christ (New York: Harper & Row, 1968).

___________________, The Christianity and Evolution (NY: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1).

___________________, Hymn of the Universe, (New York: Collins Fontana Books, 1973).

Loyola, Ignatius, The Spiritual Exercises (Loyola University Press, 1951).



A Study on Wholistic Spiritual Education and Spirituality of

Pierre Teilhard de Chardin

                

                                             

Lee, Geum-Man

Professor in Christian Religious Education

Hanshin University

Osan, Korea


        Today’s Christian stands caught in a spiritual dualism, torn in two direction. How can faith in the world and faith in Christ be shown as not opposed but mutually necessary and complementary? This thesis pursue wholistic spiritual education based on Pierre Teilhard de Chardin. He develops a theory of evolution that provides a framework for his theology of Jesus Christ risen. His christology discovers the future focal center of all evolution including human history and progress, is the risen Christ.. Christ risen, the focus of the world’s forward movement, stands as the God of both the ‘forward’ and the ‘upward’.

        In him, the seeming opposition between faith in the world and faith in God finds resolution. Jesus Christ risen is the personal history and all history as a whole is evolving towards him. Christ risen, because of his transcendence, makes the Christian's ultimate future present now, and so Christ acts as the basis of Christian hope in the future.

        Building on his christology, Teilhard works out a contemporary Christian spirituality, a positive moral teaching that takes the form of a mysticism of involvement in the world through love and through the unification and the progressive reconciliation of all things in Christ. The cross is no longer a sign simply of expiation, but the symbol of growth and progress accomplished in pain and through suffering. Detachment means not to reject but to work through. Resignation becomes the final form of the fight against evil, the final transformation in Christ of inevitable defeats.

        Christian faith includes faith in the world. Christian hope involves us more deeply in this life. And Christian love moves us to build a better world. Teilhard’s central contribution to Christian spirituality is a contemporary understanding of the age-old problem of the antithesis between prayer and action, and the solution to that problem: a vision of Christian life centered on Jesus Christ risen in a world moving towards him.

        Teilhard identifies the Christ of revelation with the Omega of evolution, and by so doing gives to human progress not some vague completion but the well-defined reality of the historical Jesus, whose second coming in the Parousia has always been for Christians the goal of God’s creation. For him, Christ is both the physical center of the evolutionary movement and its Omega, the source of that love energy needed for the process to reach its eventual goal in the Parousia. He derived a spiritual vision of creation and creativity in which human beings are summoned to collaborate with God’s creative action in and through dedication to the human task; for efforts to build the earth also build up the body of Christ, who by his redemptive death and resurrection has triumphed over the passivity of life and the mystery of evil.

        The wholistic spiritual education is the cultivation of sense of shame and sorrow for one’s life. During this time one is to deprive oneself of light, warmth, contact with one’s fellows and unnecessary material goods. For student, Christ is presented the Leader one is to aid in reconquering the world from the dominion of sin and the devil. The student is encouraged to penance and mediation on the passion of Christ. The students is allowed oneself rest and refreshment while mediating on the Resurrection and the joys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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