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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21
 제목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과 알프레드 화잇드헤드(A.N.Whitehead)
 주제어  [조직신학자] [신학자]
 자료출처  김경재 교수  성경본문  
 내용

떼이야르 드 샤르뎅19세기 후반기에 태어나서  20세기 전반기에 큰 영향을 국내외 기독교계에 미친 사상가들 중에서,  예수회 신부요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뎅과 저명한 수학자요 철학자였던 알프레드 화잇드헤드가 나의 신앙과 사상형성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두 분을  독립된 항목으로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칼 바르트 신학이 나에게, 만유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면, 그리고 폴 틸리히가 만유 안에 내재하시는 존재자체로서의 하나님의 '내재성'에 관한 깊은 가르침을 주었다면, 떼이야르 샤르뎅과 화잇드헤드는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과정성'에 관하여 내게 깊은 가르침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떼이야르 샤르뎅에 관한 과정사상을 만나게 된 계기는 기초신학 학부시절, 서남동교수가 "떼이야르 샤르뎅"을 국내 학술지 및 월간지에 소개한 1960년대 초였다. 사실 그 이전에 이미,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제 1장, 역사-하나님-해석-진화과정등의 상호관계성 해명에서 함옹은 떼이야르 샤르뎅의 영향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함옹이 떼이야르 샤르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훨씬 뒤에 함옹의 종교강연 속에서 예수회 신부요 걸출한 고생물학자인 떼이야르 샤르뎅의 '창조적 진화'사상에 관한 언급을 자주 하시는 것을 보고  새삼스럽게 놀란 적이 있었다.


   떼이야르에 관한 정보는  한국사상계에서  개신교보다는 한국 카토릭게에서 더 일찍 부터 시도 되었다.  국회의장을 지낸적 있는 이효상씨가 카토릭 신자인고로, 떼이야르 전집 일부를 그의 후원아래서 번역된 것을 알게 되었고, 카토릭 분도출판사에서 떼이야르에 관한 연구서 한두권이 번역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떼이야르 샤르뎅에 관한 본격적 연구와 총체적 이해를 하게된 계기는 1975년 미국 첫 유학시절 때였다. 아이오아주 듀브크대학 신학부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을 때, 듀뷱(Dubuque,Iowa) 도시 안에는 신학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세가지 기관이 있었다. 장로교 계통의 듀북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루터교 계통의 와트버그 신학대학원과, 진보적 로마카토릭 신학교 아퀴나스 인스티튜드(Aquinas Institute)가 있었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정신안에서 각각 학사관리면에서 행정적으로는 독립하되,  켐퍼스가 넓고  기숙사 시설이 완비된 아퀴나스 인스티튜드에서 대학원 레벨의 연합교과과정이 펼쳐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학점교류, 세미나 교류등록, 도서관 이용등등 참으로 활짝열린 신학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그 곳 처럼 성실하게 피어난 곳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나는 그 때, 아퀴나스 인스티튜드 소속 신부교수의 "떼이야르 샤르뎅" 세미나에 참석하였고, 그 때 떼이야르 샤르뎅의 신학논문 대부분을 읽게 되었다. 특히 인상에 남은 책들은 그의 주저인 <인간현상>을 비롯하여 <진화와 기독교>,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 <신적 환경>등이 인상에 오래 오래 남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 자연과목 교과과정 을 정상적으로 잘 배운 학생으로서 지구 자연사에 관한 기초지식을 다 갖추고 있으며, 진화라는 과학적 진실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갗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 접하고 창세기의 창조설화를 읽으면서도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무언가 깊은 종교적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종 동네 장로교 교회에서 유명한 신학박사가 주강사로 되어 있는 사경회에서 창세기를 '축자무오설'적으로 해석하고 "성경대로 믿어야 잘 믿는 믿음이다"고 강조할 때, 나는 비록 중고등 학생시절이었지만 그 강사의 말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계의 보수적 신앙에 일말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설화와 과학의 진화설, 종교와 과학, 태초의 문제에 관련된 철학적 근본문제를 풀어낼 지적능력이 없었기에 항상 큰 숙제로서 맘에 품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신하는 신념은 진정한 종교적 진리와 정직한 과학적 진실은 결코 서로 충돌되거나 다툴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고, 평생 항상 과학적 진실의 소리에 경청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신학 사상이 우주와 생명에 관한 근원적 문제 곧 저 태초의 신비에 관한 모든 종교철학적 문제를 다 해명해 준것은 아니지만, 나의 신앙과 신학형성에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첫째, 떼이야르 샤르뎅은 '청조적 진화' 또는 '진화적 창조' 사상을 내게 분명하게 가르쳐 줌으로써, 진화론과 창조론의 갈등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진화설에는 다양한 전문적 입장이 있겠고, 진화설도 끊임없는 이론 수정과 새로운 발견이 이뤄져 가겠지만,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이 근본적 사실이 뒤바꿔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구생명계의 생태계는 무수한 세월에 걸친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체의 진화과정이 있었고, 종의 분화과정이 있었고, 종(種)의 다양화 과정이 진행되어 왔다는 이 엄연한 사실에 대하여 아직도 눈을 감으려고 하는 신앙인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흔히 생명체의 기원과  종(種)의 진화가 아주 기계론적인 생화학 과정으로서 다 해명된다는 기계론적 생물학 입장이 있겠지만,그런 단순화는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의 기원과 종의 진화가 타율적인 창조주의 일방적 개입이나 정신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하는   관념론적이거나 신화론적  세계관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다만 떼이야르 샤르뎅의 견해, 곧 종의 기원과 생물종의 진화는, 생물출현 이전의 지구진화 과정도 마찬가지 이지만, 신비하고도 신묘한 하나님 영의 활동요소와 물질적 토대인 생화학구조 상호간의 깊은 창조적 융합의 연속과정으로서 '창조적 진화' 또는 '진화적 창조'가 있을 뿐이라는 사상에 나는 동의 한다.

   달리말하면, 떼이야르 샤르뎅은 '진화'라는 현상에 대한 기계론적 단순이해야 말로 가장 비과학적임을 내게 가르쳐 주었으며, '진화' 그 자체를 깊이 연구하고 드려다 보면 볼수록 그것은 '창조'라는 측면을 여백으로서 남겨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상태로 완결시킨 복덩망망이를 손에 쥔 요술장이가 아니라, 창조과정을 통하여 '만유의 창조적 과정'에 깊이 깊이 연루되어 있는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엡4:6)임을 알게하여 주었다.
 

    둘째,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신학' 사상은 내게 우주를 구성하는 근원적 '우주재료'(universal stuff)가 일방적으로 물질적인 실체이거나 정신적인 실체가 아니고,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으로서 현성(現成)될 수 있는 두가지 속성을 그 안에 지닌 '내면성과 외면성의 양가적 실재'(兩價的 實在)라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갈등을 넘어서게 해주었다.
     떼이야르에 의하면 태초에 창조적 실재로서 출현한 이 근원적 우주질료는, "의식-복잡화법칙"(The Law of Complexity-Consciousness)이라고 그가 명명한 법칙에 따라, 사물의 외면적 형태 구조는  더욱 복잡화해가고, 그에 상응하여 동시에 사물의 내면적 기능구조는 더욱 심화과정을 밟아가면서 지구진화는 지질계 형성- 생명계 형성- 정신계 형성이라는 삼단계를 거쳐왔으며, 정신계형성의 극점에서 '반성적 사유능력'이 가능한 인간정신 현상이 출현함으로서 지금부터 약 250만년전에 지구 지표 위에 인간 현상이 꽃피어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떼이야르의 이러한 세계관은 물론 서구사상사에서 처음있는 일은 아니고, 중세기 신비가 외탕거(Oetinger)를 비롯하여, 동일성 철학자 쉘링, 창조적 진화를 말한 사상가 베르그송등에 의하여 제창되었지만, 체계적으로 내가 영향받은 사람은 구체적으로 떼이야르 샤르뎅 이었던 것이다.

     셋째,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사상'은 나에게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를 좀더 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열어주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을 실존주의자들 처럼 신앙인 내면의 사건으로 내면화시키지도 않고, 시한부 종말론들과 보수주의 신앙인들처럼  우주물리사건으로 외면화 시키지도 않고, 좀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부활하신 영 그리스도'로서 초월적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다"는 신앙고백처럼 창조세계의 주권을  관장하시면서, 동시에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 현존양식으로 우주진화의 방향과 목적과 그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자로서 지금 우주진화과정의 중심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떼이야르 샤르뎅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가리워진 형태로서 일하시는 '부활의 그리스도'가 만유를 '그리스도의 우주적 몸 안에서 수렴 완수하는 '오메가 포인트'에서, 홀연히 하늘에서 강림하는  그리스도처럼, 만인의 눈에 영광의 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떼이야르 샤르뎅의 종말론과 그리스도의 재림론은 지금 창조세계 안에서 구원과 속량과 재창조의 일을 지속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결승점을 신학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넷째, 떼이야르 샤르뎅의 신학적 비젼이 내게 준 참신한 충격은, 매우 거시적인 사고를 하는 그의 눈에게, 역사적 기독교는 이제 막 시작한 초기운동에 불과하고,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의미와 그 창조적 능력이 다 발휘 되려면 이제야 막 시작하는 초대교회 시대에 불과하다는 관점이다.


     서구신학과 서구교회가 그 창조적 에너지를 상실해가면서, 동양사상으로부터 그 영적 자양분을 보충받아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일반적 경향성에 대하여, 떼이야르 샤르뎅은 전혀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구문명사  전체를, 거시적 관점에서  지구진화과정 맥락에서 보기 때문에, 기독교는 복음이  지닌 엄청난 정신적 보화를 아직 한번도 역사 속에서 실현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지금까지는 겨우 라틴적 기독교, 헬라적 기독교, 엥글로색슨적 기독교 해석이 시도되었을 뿐이지만, 전체 지구문명사를 해석학적 눈으로 삼고서 이해할 때, '기독교 복음'의 능력과 그 창조적 에너지는 아직 시작단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떼이야르 샤르뎅의 사상은 19세기 기독교 문화 제국주의적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동양적 기독교 이해가 곁드린 새로운 복음의 진리조명이 이뤄질 때, 새로운 선교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사상'은 그의 사제로서의 영성과 결부되어 나에게 오래 오래 깊은 정신적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여성에 의하면, 지구의 대지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성화되기 전의 '성례전의 준비물'인 것이며,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서 진지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곧 '성스런 미사행위'에 준하는 '우주적 예배'라고 보는 것이다.
   
   떼이야르 샤르뎅이 '과정사상'에 있어서 내게 거시적 자연세계 안에서 인간현상, 그리스도, 창조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하는 눈을 열어주었다면, 알프레드 노스 화잇트헤드는 같은 '과정사상'을 내게 가르쳐 주지만 '미시적'세게 안에서 창조의 신비를 보게해 주었다.  여기에서 '미시적 세계'라 함은 물론 양자물리학이 다루는 극미세계를 포함하지만, 전자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극미세계의 '창조적 생성'운동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보여주는 그의 형이상학적 현미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화잇드헤드는 본시 버트란트 럿셀과 함께,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뉴톤을 낳은 영국인의 후예답게 수학 잘하고, 합리적 사고에 투철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나이 60세될 무렵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가 되었고, 신실재론, 신자연주의 철학, 혹은 유기체 철학이라고 부르는 20세기의 새로운 형이상학 구축을 이룬 대학자였다. 


    내가 화잇드헤드 유기체 철학 그의 '과정사상'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1985-86년 두 해 동안 미국 켈리포니아주 클레아몬트 시에 소재한 '클레아몬트 대학원' 종교학과에 적을 두고 박사학위과정을 밟을 때였다. 그 이전부터 관심은 있었으나, 너무나 어렵고 자료부족으로 손을 못대던 참이었다. 클레아몬트 대학원과 쌍벽을 이루는 클레아몬트 신학교에는 당대 미국 최대 과정신학자 죤 캅  (John Cobb.Jr.)교수가 있었고, '과정사상 연구소'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죤 캅의 제자 데이비드 그리핀(David Griffin)이 인도하는 화잇드헤드 과정철학 세미나를 내리 3학기 이상 등록하여 연구하면서 비로소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을 어느정도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의 중요 저서들 중에서 특히 <과정과 실재>, <과학과 현대세계>,<사고의 유형들>, <관념의 모험>,<이성의 기능>,<형성중의 종교>등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매우 신선한 사고지평을 열어주었다.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사고의 구조나 설명방식은 전혀다르지만 사고의 발상법에 있어서는 화잇드헤드이 유기체 철학, 불교의 인연생기설에 기초한 화엄사상, 유교의 이기론에 입각한 음양오행설들과도 서로 깊이 통하는 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동양학도로서 친근감도 느낄 수 있었다. 화잇드헤드 과정사상이 나의 신앙과 신학형성에 끼친 시간적 길이는 바르트나 틸리히의 그것과 비교할 때 비교적 15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짧은 것이지만, 지울 수 없는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초창기 화잇드헤드 과정사상에 대한 나의 관심을 표현했던 논문들은 한신대 철학과 교수 김상일교수와 공동편저로서 <과정철학과 과정신학>이라는 논문집으로 도서출판 전망사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첫째, 화잇드헤드는 내게 동양학도로서 항상 내 사고세계 안에 부정할 수 없이 자리잡고 있는 '자연'이라는 실재에 대하여, 다시한번 큰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거의 평생  서구신학을 하면서, '역사'라는 주제가 나의 사고 지평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고, '자연'이란 그냥 저기에 그렇게 있는 '낯선 그러나 무시해버릴 수 없는 실재'로서 자리잡고 있었다. 1980년대 초, 내가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잠시 동양사상에 관하여 공부 할 수 있는 시기에,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하면서 '자연'을 모든 덕과  존재의 모태로 이해하라는 노장적 사유세계에 접하였지만, 자연과학적 세계관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노장철학은 나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가철학의 적극적이고도 다소 인위적  세계관을  노장철학의 무위자연철학과 '道法自然'이 보완해서 균형감각을 갖도록 조정해주는 기능정도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을 통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연철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나는 비로소 '자연'이라는 그 엄연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실재 곧 모든 존재론과 가치론의 근원이 되는 '자연'을 제대로 제자리에 놓고서 사유하는 지평을 되찾게 되었다. 왜냐하면, 화잇드헤드의 유기체 철학에서 보면, 물질 정신 이데아 정령 신(神)등 그 모든 현실적 실재들은 창조적이고도 과정적인 '생성적 자연 '을 떠나서는 관념이 되거나 아직 비 현실적인 추상적 원리의 자격밖에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은 자연의 창조적 진화과정 속에서 어떻게하여 진실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 '조화로운 것', '창조적이고도 가치있는 것'이 출현하는 가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 합리적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화잇드헤드 자연철학은 매우 난해하고 합리적인 논리성을 지니면서도 매우 감성적인 언어와 미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분화된 심미적 직관'에만 관습적으로 젖어있는 동양사람들에게, 분별력, 정합성, 논리적 사유습성, 분석적 사고등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난후, 그 전체가 이뤄내는 통합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화잇드헤드의 미적 세계는 '미분화된 심미적 직관'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이 타자성과 차별성을 인지하면서 유기적 통일성을 놓치지 않는 미적 감각이었던 것이다.

   셋째,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은 전통적인 초월적 유신론과 내재적 범신론을 동시에 극복하면서 초월성, 내재성 과정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범재신관'(Pan-en-theism)을 내게 이론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나는 화잇드헤드의 자연철학, 유기체 철학, 그의 다원주의적 세계관이 기독교의 근본적 신앙교의에 부합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신관을 나는 그대로 받아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톤이 기독교 철학자가 아니었지만, 플라톤의 풍성한 철학적 사유세계가 그 뒤 기독교신학 형성에 긍정적으로 공헌했듯이, 화잇드헤드의 유기체 철학은 앞으로 21세기 기독교 신학 형성에 긍정적으로 공헌하리라고 믿는다. 물론 기독교적인 근본적 사유세계와의 창조적 '지평융합'을 통해서 말이다. 화잇드헤드의 '과정사상'은 합리론과 관념론의 두 사유전통을 그의 독특한 '유기체 철학'안에서 창조적으로 통전시키고 있다고 말해서 잘못은 아닐 것이다.


   화잇드헤드는 상상력이 메말라 버린 교리주의적 신학이나, 도덕적 엄숙주의애 굳어진 도덕종교나, 고대사회 군주론적 통치이념이 투영된 일사불란한 수직적 성직질서를 모두 탈피하고, 본래 갈릴리의 목수 아들 예수가 보여주고 가르쳐준 '갈릴리의 복음'에로 기독교가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 하였다.여하튼 미학적 상상력,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것의 중요성,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영성간에 항상  불가분리적 상호관련성이 있다는 진실을 내게 가르쳐준 20세기의 큰 사상가였다. 


   떼이야르 샤르뎅과 화잇드헤드는 다 같이 넓은 의미에서의 '과정사상' 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지만, 내용적으로는 공통점 못지 않게 다른점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물론 다함께, 과학과 종교를 화해시키고 진리를 밝히는 두가지 핵심축으로 생각한다는 점, 창조적 진화를 강조한다는점, 두 사람 모두 서구기독교적 사상의 시간관의 영향을 받아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을 강조한다는 점, 창조과정에 있어서 신(神)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는 점, 유물론과 관념론을 동시에 부정하고 제3의 길로서 통전시키려는 점등은 공통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떼이야르 샤르뎅이 우주적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만물의 수렴과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영화롭게 되는 만물의 영화(榮化)"를 강조하는 정통적 기독교적 신앙을 나타낸다면,   화잇드헤드는 보다 다원론적이고, 다중심주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다 포스트모던니즘 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나는 어느 한 사람은 옳고 다른 한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 천재적 사상가들 속에서 내게 필요한 영적이고도 지적인 참신한  통찰력을 흡수하여 나의 신앙성숙과 신학형성에 도움되는 유익한 자양분으로 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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