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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17
 제목  본회퍼의 평화 윤리
 주제어  [본회퍼] [윤리]
 자료출처  유석성 교수(해석학과 윤리, Vol.3 No.-, [1999])  성경본문  
 내용

1.서론

 

본회퍼는 평화주의자였으며, 현대 에큐메니칼 평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본회퍼는 1934년 8월에 이미 평화를 위한 세계교회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창한 바 있다. 본회퍼의 평화회의 구상은 그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50년이 지나서 실현되었다. 1990년 3월 5-11일 서울에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을 주제로 평화에 관한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983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 총회에서 독일 대표에 의하여 제안되었고 그후 몇 차례의 협의 과정을 거쳐 1988년 8월 10-20일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실행위원회에서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1) 본회퍼의 평화에 대한 구상과 사상은 1945년 2차대전 후 핵시대를 맞아 평화의 문제를 생각하는데 출발점이 되었다. 2차대전중 '아우슈비츠'의 대학살(Holocaust)과 히로시마-나가사끼에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인류의 참사에서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도 평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관심이 놓은 것은 일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의 개발과 자연환경 오염에 따른 생태학적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2) 본회퍼의 평화 사상은 65년의 시대의 변화를 넘어서 오늘의 평화 문제를 생각하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 본회퍼와 평화를 논의할 때 제거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본회퍼는 과연 평화주의자였는가. 본회퍼가 평화주의자였다면 어떻게 평화주의자인 목사요, 신학자가 사람을 죽이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본회퍼의 평화 사상과 그의 정치적 저항의 문제와 평화의 오늘의 의미를 다루고자 한다.

 

 

2. 평화 강연과 평화 설교

 

본회퍼는 193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평화에 관한 그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첫 번째는 1932년 7월 체코슬로바키아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Cernohorske Kupele)에서 개최된 청년평화회의에서 "세계연맹사업의 신학적 근거"라는 제목으로 행한 강연이다.3) 두 번째는 1934년 8월 덴마크 파뇌(Fan?)에서 에큐메니칼협의회때 행한 강연과 평화에 관한 설교가 남아 있다.4) 1)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 강연 본회퍼는 1932년 7월 26일 체코슬로바키아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Cernohorske Kupele)에서 개최된 청년평화회의에서 "세계연맹사업의 신학적 근거를 위하여"하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5) 이 강연을 할 당시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으로 세계적 경제 공황의 시기에 경제적 위기와 좌우익의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대결하는 혼란기였다. 본회퍼는 이러한 내적인 정치적 위기가 국제적인 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작용된다고 보았다. 본회퍼 교회의 평화에 대한 관심과 그 운동의 전개도 개교회적인 것보다 전세계적인 접근 방법을 시도하였다. 이 강연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내용의 주안점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본회퍼는 이 강연에서 평화 운동의 신학적 근거는 교회론적·기독론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본회퍼는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교회의 자기 이해의 새로운 모습을 위하여 새로운 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6) 본회퍼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신학적으로 이해할 대 이 운동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에큐메니칼 기구를 목적조직(Zweckorganisation)으로 만들어 정치적 경기 변동에 종속시키게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젊은이들에게 압도적으로 흥미를 끌며 정치적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민족주의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7) 에큐메니칼 운동을 교회의 새로운 모습으로 이해한 본회퍼는 세계연맹사업을 영역을 "전세계"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전세계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장소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주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전세계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하여야 하는 위탁을 받았다. 교회는 그리스도 현존이다. 따라서 오직 전권을 가지고 복음과 계명을 선포한다.


계명은 구체성을 띤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바로 "오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리고 지금(hier und jetzt)하나님의 계명의 인식은 하나님의 계시의 행위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의미한다. 산상설교 역시 성서적 법이 아니고 우리의 행위를 위한 절대적인 규범도 아니다. 우리는 산상설교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현실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신적인 계명에 대한 순종이다. 산상설교는 바로 오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명일 수 있는 그의 계명들 안에서 예종(Voranschaulichung)이다.8) 둘째, 본회퍼는 질서를 이해할 때 창조질서((Sch?pfungsordnung)를 거부하고 보존질서(Erhalurngsordnung)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모든 주어진 질서는 단지 타락한 세계의 부분이기 때문에 창조질서가 아니다. 타락한 세계의 질서들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새로운 창조를 향하여, 미래로부터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9) 우리는 전세계를 타락한 세계로서 그리스도로부터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세계를 타락한 세계로서 그리스도로부터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10) 본회퍼가 1932년 사용한 이 보존(Erhalten)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증한다는 것을 뜻한다.11) 보존은 타락한 세계와 더물어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의미한다.12)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를 위하여 개방되지 않는 것은 파괴되어야 한다.13)


본회퍼는 1932년경 몇 년 동안 보존질서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나 그후 신루터교의 요용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본회퍼는 이 질서로부터 세계연맹의 평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국제적 평화의 질서는 오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명이다."14) 셋째, 평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본회퍼는 잘못된 평화주의 이해를 비판하고 있다. 본회퍼는 세계연맹 안의 앵글로 색슨계의 신학적 사고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복음의 현실로서 평화를 "지상에 건설된 하나님 나라의 일부"로 이해하였다. 여기서부터 "평화의 이상"은 정대화되었다. 그것은 국제적 평화를 보존질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성돈 가치질서 속에 궁극적인 것으로서, 타락된 세계 속으로 피안의 질서가 침투하는 것으로서 오해되었다. 이러한 평화에 대한 이해는 평화주의적 인도주의인 것으로서 광신적이며, 따라서 비복음절이기 때문에 거부될 수밖에 없다.15) 본회퍼는 평화주의(Pazifismus)라는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궁극적인 평화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재량에 맡기고 우리는 "전쟁의 극복"을 위한 평화의 실천을 하여야 한다. 16) 본회퍼는 보존질서로서의 국제 평화는 진리와 정의가 확립되는 곳에 건설된다고 하였다. 진리와 정의가 유린되는 곳에 평화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17) 2) 파뇌강연과 평화설교 (1)파뇌강연 본회퍼의 파뇌(Fan?) 강연 "교회와 민족들의 세계"는 강연의 원고는 남아 있지 않고 7개항의 테제(These)만 남아 있다.18) 이 강연에서 본회퍼는 세계연맹(Weltbund)의 신학적, 교회론적 의미와 평화를 위한 세계연맹사업의 방향(테제 1,2), 전쟁의 특성(테제3), 전쟁의 정당성(테제4), 세속적 평화주의와 전쟁의 거부(테제5), 전쟁과 평화의 세계관적 평가에 대한 기독론적 비판(테제6), 기독교 교회적 대답(테제7)에 관하여 논하였다. 본회퍼는 세계연맹의 성격에 대하여 분명하게 교회론적으로 밝힌다.


세계연맹은 자기 스스로를 교회로서 이해하는가 아니면 목적단체(Zweckverband)로서 이해하는가에 세계연맹의 운명이 결정된다. 세계연맹은 자신을 목적단체가 아니라 교회로서 이해하여야 하고 순종 가운데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데 그의 근거를 가진다. 세계연맹은 교회로서 이해할때만 교회와 민족들에게 전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연맹사업이라는 것은 민족들 가운데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일을 뜻하며 전쟁의 극복과 종식을 위하여 전력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평화 사업의 적(適)은 전쟁이라고 전제하고 전쟁의 수단을 가지고 인류의 평화적 복지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한다.19) 본회퍼는 세속적 평화주의(der s?kulare Pazifismus)와 기독교의 평화를 구별한다. 세속적 평화주의에서는 인간 행위의 척도는 인류의 복지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이다. 평화를 위한 기독교 교회의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산상설교의 예수의 말씀이다. 본회퍼는 전쟁을 통한 국가 안보, 평화 창출 등을 거부한다. 전쟁은 평화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멸절을 가져온다. 평화를 위한 세계연맹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조직을 통하여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악마의 세력들은 조직을 통하여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파괴시킬 수 있다.(막 9:29). 지옥의 악령들은 오직 그리스도 자신을 통하여 몰아낼 수 잇다. 따라서 숙명론이나 조직이 아니라 가도가 중요하다. 기도는 조직보다도 더 강하다고 하였다.20) 본회퍼는 이렇게 1934년의 긴급하고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정열적으로 산상설교의 정신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단순한 순종을 하는 행위로서 평화를 주장하였다. (2)평화설교 1934년 8월 유틀란드 서해안에 위치한 덴마크의 작은 섬 파뇌(Fan?)에서 에큐메니칼협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협의회는 청년협의회가 8월 22-23까지 개최되었고 본회의는 8월 24-29일까지 열렸다. 본회퍼는 1933년 10월 17일 이후 영국 런던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8월 28일 아침 예배시간에 본회퍼는 "교회와 민중들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평화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이 설교는 평화설교(Friedenspredigt)라고 일컬어진다.


이 설교는 청중들에게 깊은 감명과 공명을 일으켰다고 한다.21) 28세의 본회퍼가 행한 이 설교는 그후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협의회(?umeuische Konzil)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설교는 앞의 강연과 함께 민중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평화의 계명을 연관시켜 선포한 것이다. 평화의 설교는 시편 85편 8절 말씀이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평화설교에 나타난 본회퍼의 평화 사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계명(Gebot Gottes)으로서의 평화이다. 본회퍼는 평화 문제를 신학적을 ㅗ접근하고 있다. 평화는 민족주의나 국제주의에서 말하는 정치적 필요성과 가능성에서 말하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으로서의 평화이다.22) 평화를 향한 하나님의 부름은 토론이 아니라 엄격한 계명을 듯하며 이 계명은 그리스도 자신이 자타나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평화를 향한 그리스도의 부름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평화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말한다. 계명은 고려함없이 세상의 한가운데로 부른다.23) 따라서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 기독교인과 교회의 의무이자 신학의 과제이다. 본회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은 본질적으로 신앙과 순종안에서 성립된다.24) 둘째, 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현존으로서의 평화이다. 평화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인의 의무는 이 그리스도의 현존(Pr?senz Christi)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상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나타남으로써 주어진 계명이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여기에서도 또 한번 평화에 대한 기독론적이며 교회론적 근거를 말한다. 평화는 이상주의나 휴머니즘에 의해 기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에 기초되어 있다. 평화는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와 오직 전세게를 생존하게 하는 그리스되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이 그리스도 교회는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고 있다.25) 이 세계안에서 거룩하고 신성한 영역만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스리스도의 영역이다. 셋째, 평화는 어떠게 이루어질 것인가? 본회퍼는 사회복음적 전통에서 하나님 나라가 차안의 세계에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세속적 평화주의를 거부한다.


본회퍼는 정치적 계약이나 제도같은 정치적 방법, 국제자본의 투자 등의 경제적 수단, 군비 확장같은 군사적인 방법을 통하여 진정한 평화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것들은 평화(Friede)와 안정(보장)(Sicherhert)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안전 보장의 길에는 평화에로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는 안보와 반대이다. 안보는 불신이라는 것을 요구하면 이런 불신은 전쟁을 초래한다. 안보는 자기를 지키려는 것을 뜻하며 평화는 신앙과 순종안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명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26) 이것은 1933년 10월에 히틀러나치정권은 국제연맹을 탈퇴하였고 재군비에 착수하였다. 본회퍼는 여기에서 간접적으로 히틀러의 재군비 착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는 평화는 민족중심주의적인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방법이 아니라 신학적 신앙적 방법으로 이룰 것을 촉구한 것이다. 본회퍼는 여기에서 평화는 하나의 위대한 모험(eine groβe Wagnis)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행하지 ㅇ낳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27) 본회퍼는 여기에서 무기와 군비 확장, 안전 보장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하여 평화를 추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전쟁은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에 교회에 의해서 거부되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싸움은 무기를 가지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이기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싸움은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는 곳에서 승리하게 된다.28) 본회퍼는 평화를 위하여 성스러운 그리스도 교회의 거대한 세계교회회의(eine groβe ?kumenische Konzil)를 개최할 것을 촉구하였다. 개개 그리스도교 신자도 아니고 개개의 교회도 아니고 다만 세계 모든 곳으로부터 모인 세계교회회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소리높여 갈파하였다. "시간이 급박하다.(Die Stunde eilt) . 세계는 무기를 가지고 노려보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무섭게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 아침 전쟁의 나팔소리가 들릴 수 있다."29) 본회퍼의 촉구하는 말은 그 당시 개신교, 가톨릭교회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본회퍼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7개월 후 히틀러는 독일의 재무장을 정당하게 하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과 교회의 저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개병의무를 선포하였다.30) 그로부터 5년 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1939-1945)이 일어나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인간의 불행과 고통, 정치적 혼란, 경제 질서의 붕괴, 재산의 손실을 가져온 전쟁을 겪게 되었다. 넷째, 보회퍼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의 방법에 감명을 받아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였다. 본회퍼는 평화설교에서 "우리는 동쪽에 있는 이교도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질문을 한다.31) 이것은 간디를 두고 한 것으로 짐작된다. 본회퍼는 1933년 10월 이후 영국 런던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인도에 가서 간디의 평화주의에서 비폭력적 방밥을 배우기 위하여 간디를 만나러 갈 계획을 세웠다. 간디에게 편지를 보내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였고 간디로부터 1934년 11월 1일자로 환영의 답신을 받았다. 그러나 독일 고백교회에서 세운 목사연구소인 핑켄발데 신학교 책임자로 부름을 받아 인도행을 포기하였다.32)

 


3.신앙의 결단과 정치적 행위로서 평화의 실천

 

지금까지 본회퍼가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와 파뇌에서 행한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1930년대 본회퍼의 평화 사상을 고찰하였다. 본회퍼는 세속적 평화주의를 거부하고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피악하고 평화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대한 신앙의 순종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 여기에서 본회퍼의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4월 처형 당하기가지 슨 그의 저서《나를 따르라》Nachfolge 《윤리》Ethik 《옥중서간》Widerstand und Ergebung을 중심으로 본회퍼의 평화 사상을 밝혀보기로 한다. 본회퍼는 파뇌강연 이후 1935년 독일 로 돌아와 고백교회에서 세운 목사 후보생을 위한 신학교의 책임을 맞게 된다. 이때 본회퍼느 신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 《나를 따르라》에서 Nachfolge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본회퍼는 이 책에서 평화 사상을 비폭력과 원수 사랑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또한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평화를 제자직(Hachfolge/discipleship)과 연관시켜 다루고 있다. 본회퍼는 예수의 부름에 순종하는 신앙, 자기 십자가를 자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평화를 건설해 가는 모습에서 평화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나를 따르라》에 나타난 본회퍼의 평화 사상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에 근거한 제자직의 평화론이다. 본회퍼는 산상설교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평화를 위하여 부름바았다. 예수가 그들을 불렀을 때 그들의 평화를 발견하였다. 예수가 그들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평화를 소유할 뿐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평화의 나리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는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예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보다 스스로 고난을 당함으로써 평화를 지킨다. 예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파괴하는 곳에서 그들의 사귐을 유지하며 저기 주장을 포기하고 증오와 불의에 대하여 참는다. 이렇게 그들은 선으로 악을 극복한다. 이리하여 증오와 전쟁의 세상 한가운데서 신적 평화의 창설자가 된다. 평화 수립자들은 그들의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진다. 십자가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렇게 그리스도 평화작업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로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로 일컬어진다."33) 본회퍼는 제자직의 주제를 중심 주제로 부각시키는데 공헌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제자직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추종함으로써 성립한다. 본회퍼는 제작직에로 부름은 예수의 수난 선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였다.34)


예수의 십자가의 종합적 표현은 수난과 버림받음을 뜻한다.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결합이요, 십자가를 의미한다. 수난을 위한 제자직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이 십자가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tm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35)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제자직에서 평화의 원천을 발견하고, 십자가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절대적 비폭력을 통한 비폭력 저항의 평화주의이다. 본회퍼는 평화를 만들어 가는데 "폭력이나 폭동을 포기"할 것을 강조하며 폭력이나 반란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결코 도울 수 없다고 하였다.36) 그러나 그는 "예수도 악인을 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37)고 하면서 무저항이 세상적 삶의 원리가 된다면 하나님이 은혜로 보존하는 세상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나를 따르라》에서 본회퍼의 평화주의는 비폭력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동적 저항이다. 그 후 《윤리》 Ethik, 《저항과 복종》 Widerstand und Ergebung, 한역 《옥중서간》등에서 그의 사상적인 발전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파악된 평화는 《윤리》 Ethik 에서는 계명의 구체성과 상황성, 현실, 책임의 개념과 연관되어 파악될 수 있다. 1938년 이후 독일에서는 모든 독일인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적인 유대인 배척주의, 군국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본회퍼는 더 이상 원칙적 평화주의를 고수할 수 없었고 상황에 의존하는 상황적 평화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평화주의적 준칙(die pazifistische Maxime)은 더 이상 비폭력이나 무저항일 수 없었다.38) 하나님의 계명인 평화는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합하게 정치적·책임적 모습으로 실현된다. 평화는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현실이 이 세계의 현실로 들어온"39) 그 그리스도의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현실은 그 자신 안에 세계의 현실을 포함한다."40) 본회퍼의 "직접적·정치적 행동"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까지 나아갔다. 이 저항은 기독교인의 신앙의 결단에서 오는 정치적 책임의 행위였다. 구체적 상황에서 내린 그의 결단은 평화의 실천을 위한 이웃과 오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적 행위였다.41)

 

 

4.본회퍼 평화주의 발전과 그 문제점


여기서 문제가 제기된다. 본회퍼의 신학 사상은 어떻게 발전했으며, 근본적 변화는 없었는가? 다시 말하면 그의 신학에서 단절인가 연속성인가? 즉, 1930년대 평화를 통한 기독교인과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비폭력적 방법으로 평화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평화주의자가 어떻게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본회퍼는 평화주의를 포기하였는가? 본회퍼의 평화주의에 사상적 변화가 온 것일까? 본회퍼의 신학적 사고와 정치적 행동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인가? 본회퍼는 신학에서 행위로, 교회에서 세상으로, 성찰에서 행위의 길로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본회퍼에게는 신앙과 행위, 성찰과 행동이 일치를 이룬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참여하면서 같은 시기에 그의 필생의 저작이라고 생각한 《윤리》를 쓴 것은 가장 인상 깊은 증명이 된다. 본회퍼는 정치적 현실에 관계하면 할수록 더욱더 신학적 사색이 깊어졌다. 그는 그가 참여하였던 행위의 모험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윤리적 성찰을 철저하게 하였다.42) 본회퍼가 1930년대 초에 평화주의를 주장하거나 1940년대 초에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것은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의미한다. 본회퍼는 일찍이 말하였다. "계명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지금 우리로부터 아주 특별한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회중에게 전파하여야 한다."43)본회퍼는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한다"44)고 말한 바 있다. 평화를 위한 기독교 교회의 일이 전쟁의 종식과 극복을 뜻한다면, 본회퍼의 결단의 행위는 구체적이고 신적인 계명에 순종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회퍼 신학과 평화 사상은 그의 삶 속에서 전기 후기의 단절이 아니라 "일치 속의 다양한 모습의 결단"이었다.

 


5.본회퍼 평화 사상에서 저항권과 책임 윤리의 문제

 

평화주의자인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한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첫째, 폭력과 비폭력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저항권의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평화 연구에서 또 평화실현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가 폭력의 문제이다. 폭력의 문제는 이야기할 때 두 가지 핵심적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폭력적 방법인가 아니면 원칙적 비폭력인가, 둘째, 폭력과 저항권의 문제이다.45) 이 문제를 논의할 때 원칙적인 폭력의 포기인가, 아니면 폭력 사용이 최후의 비상 수단(ultima ratio)으로 허용되는 문제인가 하는 것이 논의되어 있다. 평화는 궁극적으로 폭력, 구조적 폭력의 제거에 있다. 평화는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즉 폭력으로부터 자유한 곳에 있다. 이폭력으로부터 자유는 탈정티와(Entpolitisierung)나 권력(power, Macht)은 아주 분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권력은 힘의 정당한 사용을 의미하고, 폭력은 힘의 정당하지 못한 사용을 의미한다.46) 폭력의 문제는 폭력인가 또는 비폭력인가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권력의 사용인가 아니면 정당치 못한 권력의 사용인가에 따른 판단의 표준 문제이다.47)폭력의 대립(Gegensatz)은 비폭력에서가 아니라 정의(Gerechtigkeit)에서 성립된다. 폭력의 척도(Maβstab)는 정의가 있다. 폭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문제를 놓고 서구의 신학자들은 예수의 산상수훈(마 5:38-48)의 말씀에서 그 해결 방법을 찾는 논의를 하여 왔다. 예수의 산상설교의 중심은 비폭력을 통한 폭력의 극복, 폭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이다. 원수 사람을 통한 적대감의 극복이다. 평화를 창조함으로써 적대 관계의 극복을 말한다. 보복을 하지 말라(마5:38-42)는 예수의 말씀은 그동안 폭력의 포기(Gewaltverzicht)록 간주되어 왔으나 이것은 폭력의 포기가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자유스러운 것(Gewaltfreiheit)을 의미한다.48) 따라서 평화의 실현은 비폭력적 방법에 있으나, 이 비폭력의 방법은 비폭력 무저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본회퍼의 결단과 행위도 저항권의 관점에서 보아야한다.49) 저항권(Widerstandsrecht/right of resistance)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저항권은 "민주적 법치국가적 기본 질서 또는 기본권 보장의 체계를 위협하거나 침해하는 공권력에 대하여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민주적 법치국가적 기본 질서를 유지 회복하고 기본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저항할 수 있는 비상 수단적 권리인 동시에 헌법 제도를 말한다." 50) 중세의 교회에서는 기독교의 자연법에 근거하여 저항권을 받아들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계 상황에서 폭군 살해를 허락하였다. 루터도 극단적인 경우 저항할 것을 언급하고 저항을 위한 신적 계명을 말하였다.51)1560년 작성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14조에도 "무죄한 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폭적에 저항하며 억압을 받는 자를 돕는다."52)고 말하고 있듯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폭군이나 폭정, 불의에 대해서는 항거할 의무가 있다. 칼 바르트도 이 14조 "폭정에 저항하는 것(tyrannidem opprimere)"의 해설에서 무죄한 자의 피흘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성취하는 것에 속한다고 하였다.53) 사랑 안에서 수행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우리의 적극적(정치적) 저항을 불가피한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54) 정치적 권력의 오용에 저항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의 폭력 사용은 이웃과 국가를 위한 책임의 틀 속에서 계명이 된다.55) 명백한 폭정과 폭군에 대하여 기독교 전통에 따라 세운 신학적 근거에서 저항에 대한 의무와 권리가 정당화된다.


본회퍼의 저항과 폭력 사용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상화에서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비상시에 행하여진 것이다.56) 처음의 수단(prima ratio)으로 한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으로 한 것이다. 둘째, 본회퍼의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행위를 책임윤리적 시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책임의 개념은 본회퍼가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참여한 모반 행위를 이해하는데 열쇠가 되는 개념이다.57) 본회퍼는 신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책임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1941년 여름부터 1942년 초 사이에 슨《윤리》 가운데 "책임적 삶의 구조"에서 책임윤리 문제를 다루었다.58) 본회퍼는 이때 히틀러 암살 음모계획의 과정에 있었으며 모반이 행위 정점에 있을 대 책임과 책임윤리 문제를 썼다.59) 본회퍼는 그의 책임윤리를 신학적이며 그리스도론적으로 해명하는데, 여기에 중심 개념은 대리 사상(Stellvertretung), 현실적합성(Wirkoicheitsgem?βheit), 죄책을 받아들임(Schulk?dernahme), 자유(Freiheit)이다.60) 본회퍼는 추상적 법칙 윤리, 결의론, 의무론적 윤리를 거부하고 책임윤리를 주장하였다.


그의 책임윤리는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이 세상의 현실에서 세상을 위한 책임적인 삶을 말한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책임의 영역"이기 대문이다.61) 본회퍼의 책임은 철저하게 신학적이요, 그리스도론적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응답함으로써 사는 응답 구조이다. 본회퍼에 의하면 책임적 삶의 구조는 인간과 하나님에게 속박(Bindung)되어 있다는 것과 자기의 삶이 자유(Freiheit)하다는 것의 이중적으로 규정된다.62) 본회퍼는 책임이란 속박과 자유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을 때 존재하게 된다고 하였다. 63)속박은 대리 행위와 현실적합성의 형태를 취하며, 자유는 삶과 행위의 자기 검증과 구체적인 결단의 모험에서 증명된다. 책임은 대리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대리적 삶과 행위로서 책임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에 대한 관계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었고 따라서 인간을 위한 대리적 책임을 지셨다. 64)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책임적 삶으로 대리 행위의 근원과 본질과 목적이다. 책임은 타자를 위한 삶과 행위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책임은 죄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형제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형제에 대한 사심없는 사랑이며 책임적 행위이다. 이 책임적 행위는 본회퍼에 의하면 현실에 적합한 행동이다. 이것은 주어진 구체적 책임의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현실적 상황에 적합한 행위여야 한다. 본회퍼의 책임 윤리는 개인 윤리가 아닌 공동체의 윤리이며, 사회 윤리이다. 본회퍼는 교회의 정치적 책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말에 극명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 뿐 아니라 바퀴 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65) 따라서 본회퍼가 히틀러의 암살 음모에 가담한 행위는 저항권과 그의 책임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66)

 

 

6.결론


지금까지 본회퍼의 평화 사상의 전개 과정을 고찰하였다. 본회퍼의 평화 사상과 윤리를 해석학적 의미를 찾아보면 한편으로 그리스도론적이며 교회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 대한 책임과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순종과 십자가적 제자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본회퍼는 평화를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으로서 평화는 구체성을 띠고 있으며, 신앙의 결단의 문제로서 책임적·정치적 행위였다. 본회퍼는 평화주의자였고 동시에 저항의 투사였다. 본회퍼가 기독교인과 교회에 남긴 오늘의 과제는 평화를 위한 의무와 책임을 인식하고 평화를 증언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평화는 주어진 상태가 아닌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다. 본회퍼가 평화를 위대한 모험이라고 말하였듯이 오늘 평화를 위하여 기독교인과 교회는 과감히 행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기독교인과 교회는 과감히 행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기독교인과 교회는 불평화의 구조적 원천인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비원인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헌신하여야 한다. 그뿐 아니라 정의로운 평화가 실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 정의가 행해지는 곳에 평화가 실현된다. 평화는 인권이 보장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인 사회 정의의 실현, 문화적 소외감의 극복, 자연과의 화해와 조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구체화한다.67) 본회퍼가 참된 교회의 모습을 타자를 위한 교회(Kirche f?r andere)에서 찾았듯이 오늘 교회는 평화를 위하여 평화를 건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회퍼는 나치 하에서 박해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교회가 침묵하거나 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있을 때 "유대니을 위하여 소리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불를 수 있다."고 갈파하였다.


본회퍼는 책임적인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과 교회의 참모습을 가르쳐주었다. 오늘의 교회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당파성"을 고려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그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인구 폭발,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속에서 폭력 제거를 위한 당파성"을 고려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그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인구 폭발, 자원 고갈, 환경 파괴 속에서 폭력 제거를 위한 제도 확립, 경제적 남북 문제 해결, 지구 환경 보전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평화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오늘날처럼 핵무기의 위협, 생태학적 위기. 제 1세계 국가들에 의한 제3세계 국민들의 착취,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는 인권 침해, 경제적 불평등, 성적 차별, 종교간의 갈등의 상황에서 평화만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본회퍼는 기독교인과 교회에게 평화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었다. 오늘 본회퍼가 남겨준 과제는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제자로서 그리스도에 순종하는 행위로 평화를 이루어가기 위한 평화의 사명과 책임 속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신 국제질서로 개편되는 대변혁의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신 국제질서는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탈 냉전, 탈 이념의 시대를 의미한다. 한반도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 국가로 남아 탈 냉전시대에 냉전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평화는 세계와 한민족과 교회와 이 시대에 부여된 절대적 명령인 정언 명법이다.68) 헌팅턴(S.P Huntington)이 말한 대로 21세기는 종교에 의하여 "문명 충돌"이 일어나는 세기가 될지 모른다.69) 이러한 때 평화실현의 과제는 평화의 문화(Culture Peace)를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70)

 


각 주

1)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세계대회자료집, 서울, 1990,31. Vol : Martion Bogdahn,(Hrsg.) Konzil des Friedens Aufruf und Echo, M?nchen, 1986. Frieden in Gerechtigkeit, Die offiziellen Dokumente der Europ?ischen ?kumenischen Versammlung, 1989 in Basel, Basel/Z?rich, 1989.
2) 유석성, 《현대사회의 사회윤리》, 서울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9.
3) Dietrich Bonhoeffer, Gesammelte Schriften I, (이하 GS I) M?mchen, 1978 3Auflage 140-161.
4) GS I. 212-219.
5) GS I, 140. 158 ;테제 159-161.
6) GS I, 140.
7) GS Ⅱ, 141.
8) GS I, 148.
9) GS I, 149ff.
10) GS I, 160.
11) H. E. T?dt. "Dietrich Bonhoeffers ""kumenische Friedenscthik", in : Frieden das unumg?ngliche Wagins, IBF 5, M?nchen, 1982, 96.
12) GS I, 151.
13) GS I, 131.
14) GS I, 152.
15) GS I, 152f.
16) GS I, 155f.
17) GS I, 160.
18) GS I, 212-215.
19) GS I, 212.
20) GS I, 214.
21) 청중의 그날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Moning, striking speech by Nonhoeffer", E. Bethge, Diefrich Bonhoeffer, Eine Biographie M?nchen 1983(이하 DB).
22) GS I, 216.
23) GS I, 216.
24) Yu, Suk-Sung, Christologische Grundentscheidungen bei Dietrich Bonhoeffer(이하 CGDB), T?bingen. 1990. Diss. 183.
25) GS I, 217.
26) GS I, 218.
27) GS I, 218.
28) GS I, 218.
29) GS I, 219.
30) H.E. T?dt. "Dietrich Bonhoeffers ?kumenische Friedensethik", in: Frieden-das unumg?ngliche Wagnis, M?nchen, 1982,106.
31) GS I, 219.
32) 본회퍼와 간디의 평화주의 비교에 관하여: W.Huber/H.R Reuter, Friedensethik, Stuttart, 123ff)
33) Nachfolge, 88.
34) Nachfolge, 61.
35) Yu, Suk-Sung, CGDB, 174. 유석성, "그리스도 현실의 신학", in: 조성논 편, 《현대신학개관》(서울:현대신학연구소,1994),305f
36) Nachfolge, 87f.
37) Nachfolge, 117.
38) E. Bethge, "Dietrich Bongoeffers Weg von "Pazifismus" zur Verschw?rung", in: Hans Pfeifer(Hg.), Frieden-das unumg?ngliche Wagnis, M?nchen 1982,126. 39) Ethik, 207.
40) Ethik, 210.
41) Vol. : Widerstand und Ergebung, Neuausgabe, 16.25.
42) W.Huber, Protestantismus und Protest, Hamburg. 1987.40.
43) GS I, 149.
44) E. Bethge, DB,446.
45) Yu, Suk-Sung, CGDB, 88.
46) J. Moltmann, Der Weg Jesu Christi, Christologie in messianischen Dimensionen. M?nchen, 189,150.
47) J.Moltmann, Das Experiment Hoffnung, M?nchen, 1974. 153.
48) Ibid
49) Vgl., Yu, Suk-Sung, CGDB, 88ff.
50) C.Creigelds, Rechtsw?rterbuch 3.Aufl M?nchen 1973. 1315참조 ,권영성, 《헌법학원론 》(서울:법문사 ,1995)76 재인용. 저항권에 관하여
51)J?rgen Moltmann, Das Experiment Hoffnung, 154f.
52) K. Barth, Gotteserkenntnis und Gottesdienst nach reformatorischer Lehre, Z?rich, 1938.21.
53) Ibid., 213.
54) Ibid.,214
55)J Moltmann, Das Experiment Hoffnung, 156.
56) W. Maechler," von Pazifisten zum Widerstandsk?mpfer. bonhoeffer Kampf f?r die Entrechteten" in :Die M?ndige Welt, I,92.
57) W. Huber, Protestantismus und Protest,40
58) 본회퍼의 책임 윤리에 관하여 다음을 참조할것. Yu, Suk-Sung.a.aO. 131-136
59) Vgl., E. Bethge, "Bonhoeffers Weg von 'Pazifismus' zur Verschw roung", in: H. Pfeifer(Hg.), Friede-das unumigangliche Wagnis, Die Aktualuat der Friedensethik Dietrich Bonhoeffers, Munchen, 1982, 119ff.
60) Dietrich Bonhoeffer, Ethik,238-278
61) Ethik,247
62)Suk-Sung.a.aO. 127-136
63)Ethik,238
64)Ethik,240
65) Gesammerlte Schriften II,48
66) Suk-Sung.CGDB. 185
67) 바이츠제커의 다음 명제를 참조할 것. "평화 없이 정의 없고, 정의 없이 평화 없다. 정의 없이 자유 없이 정의 없다. 인간들 사이에 펴오하 없이, 자연과의 평화 없고, 자연과의 평화 없이, 인간들 사이에 평화 없다." C. F. von Weizsacker, Die Zeit drangt, Eine Weltversammlung der Christean fur Gerechtigkeit, Frieden und die Bewahrung der schopfung, Munchen, 115f.
68) Suk-Sung.a.aO. 185
69) Samuel P.Huntington, the Clash of Civilization and Remaking of World Order, 1996, 이희재 역《문명의 충돌 》(서울:김영사) 1997.참조
70) UNESCO and a Culture of Peace, Promating a Global Movement (Pafis:UNESCO publishing,1995) :From a Culture of Violence to a Culture of Peace(Pafis:UNESCO publishing,199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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