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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15
 제목  폴 틸리히와 프로테스탄트 원리(Paul Tillich and the Protestant Principle)
 주제어  [폴틸리히]
 자료출처  윤동철 (聖潔神學硏究, Vol.1 No.-, [1996])  성경본문  
 내용

  I. 서론

 

이 소논문의 주제는 폴 틸리히(1886-1965)의 사상가운데 나타난 "프로테스탄트 원리"이다. 이 사상은 그가 1919년 4월 16일 독일 베를린의 칸트학회에서 "문화신학의 이념에 대하여"(ber die Idee einer Theologie der Kulture: On the Idea of a Theology of Culture) 그의 첫 번째 공식 논문 발표회를 가졌던 이래 계속 발전시켜온 주제이다. 1) 그는 이 논문 발표에서 인류문화의 다양한 영역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 차원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2) 틸리히는 삶의 다양한 영역 속에 종교적 차원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원 리가 있다고 보았고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그것이다. 이 소논문에서 필자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형성 배경과 이해를 네 가지 측면에서 다룰 것이다.


첫째는 역사적 종교를 관찰함으로써, 특별히 종교개혁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통하여 이 원리를 전개하는 과정 을 살펴 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실존주의 사상과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관하여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틸리히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과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프로이드 이후에 등장한 심층심리학에 대한 그의 이해를 다루게 되는데, 여기서 이 원리의 아주 중요한 부분인 "용납"과 "상징"의 교리의 발전과정을 다루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이 원리와 그의 신학의 토대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하므로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Ⅱ.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종교 틸리히는 역사적으로 나타난 "프로테스탄트 주의"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원리로서의 프로테스탄 트 주의"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그가 주로 "프로테스탄트 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보편적이고 중 요한 원리가 특별히 역사적으로 구체화된 형태"으로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해서 종교개혁기에 나타난 "프로테스탄트 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나타난 한 형태이며, 이 정신이 원리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프로테스탄트 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 주 의를 이루는 이 원리는 전 역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으며, 인간들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대교의 예언자들에 의해 구체화 되었고,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모습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교회의 삶 속에 계속 재발견되며 종교개혁기의 교회들이 바로 이러한 원리위에 세워지게 된다.

그리고 교회가 이러한 원리를 벗어날 때면 언제나 이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교회에 도전하게 된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3) 그렇다면 틸리히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요약하여 표현하면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무조건적인 것과 조건적인 것 사이의, 또는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관계의 신학적 표현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유한자 또는 조건지워진 자가 생각이나 행 동안에서 조건의 제약없는 자(the Unconditioned)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도에 대항하고 지키는 원리이다. 4) 틸리히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무조건적인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원리, 즉 프로테스탄티즘의 근거와 심판을 독일 관념론의 "절대 자"(Absolute) 나 고대 및 최근 철학의 "존재"(Being)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프로테스탄트 원리란 존재 전체에 관한 분석에서 추론해 낸 최고의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조건적인 것과 무조건적인 것, 혹은 종교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관 계에 대한 신학적 표현이다. 5) 틸리히는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역사적으로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에게서부터 시작하여 사도들 에게서 그리고 종교개혁에서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민족 종교의 하나님으로 제한하려고 할 때에 저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종교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교리나 의식에 의존하는 것에 저항하였다. 정의의 원리가 바로 그들에게는 기준 이 되었는데, 이 원리는 무제약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 정의의 원리 없 이는 국가도 그리고 선민사상도 존재할 수가 없었다. 6) 틸리히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이 원리의 외침 속에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유대인의 민족주의는 궁극적 관심 을 때때로 국가에 대한 관심으로 왜곡시키려고 한 적이 있지만, 이 관심의 내용은 국가가 아니고 정의의 하나님이다. 모든 개인과 모든 국가에 대하여 정의를 대표하기 때문에 정의의 하나님이며, 또 보편적인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이라고 일컬어진다." 7) 틸리히는 바로 이러한 예언 사상의 탄생은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 속에서 찾는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국과 조상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한 것은 곧 흙과 피의 신들, 가족과 부족, 그리고 국가 의 신들을 떠나라는 명령을 의미했다.


이 신들이란 공간의 신들, 이교의 신들, 다신교의 신들, 서로 이웃하고 있는 신들--비록 그 중의 하나가 가장 힘 있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런 신들을 의미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참 하나님은 한 가족의 하나님, 한 도시의 하나님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이와 같은 동일시가 생겨나는 경우에 참 하나님은 그를 예배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자신'을 분리시켜야 했다. 이 분리를 대표한 사람들 이야말로 예언자였다. 그 들은 조산들의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이 하나님이 흙과 피, 부족과 국가의 제사 장들에 의해 악용될 때 그들과 맞섰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로부터 하나님의 분리를 선언했다. 이것은 국가가 이교의 윤리나 정치와 함께 이교적 예배를 계속할 때, 그 국가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거부된다고 선언하는 예언자들에게서 명백해 진다. 8)


틸리히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서 무제약적 하나님의 사상을 발견함과 동시에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하 나인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신앙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다. 궁극적 관심의 참 의미의 신앙을 잘 표현한 구절은 신명기 6:5절의 말씀으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틸리히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사도시대이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마찬 가지로 사도들도 새로운 실재의 이름아래 있는 종교를 대항하여 싸웠다. 기독교는 그 자체를 결코 하나 의 종교로 여기지 않았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종교라는 이름안에 가두기를 거부했던 것처럼, 사 도들도 이에 대항하였다. 기독교는 그 자체를 종교에 대한 심판으로 일어났던 무엇에 관한 메시지로 여 겼다. 그 증명으로 기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못밖아 처형한 십자가를 지시한다.


종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데려갔고 바로 이런 사실에 의해 그는 모든 종교의 영원한 심판자이다. 9)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종교개혁에 다시 나타난다. 종교개혁에 대한 통찰은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중심인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차이와 더불어 신앙의 해석이다. 그의 "신앙의 다이내믹스"(Dynamics of Faith)를 보면 이에 대한 그의 통찰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의 해석은 그의 선생 마틴 쾰러의 영향 이 지대하다. 틸리히는 [프로테스탄트 사상사]에서 마틴 쾰러를 소개하면서 그로부터 "의심의 문제를 이 해"했다고 말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그는 "의인(칭의)의 메시지를 인간의 내적인 도덕적 행위 뿐 아니 라, 인간의 내적인 지적 행위에도 적용"했으며 또한 "사상에도 적용"했다고 말한다. 10)


이러한 적용은 이신 득의의 원리를 종교-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지식적 삶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11) 이것이 어떻게 의심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는가? 틸리히에 따르면 신앙은 의심없이 받아들일수 없다. 신앙의 가장 깊은 곳에서도 의심은 살아있고 이러한 의심은 지적 신앙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적 무력함에 신앙하게 되고 다 시 의심을 품게 되고 계속적인 긍정과 부정의 형태를 거쳐 긍정을 향해 나아간다. 심각한 의심의 상태는 조건지워지지 않는 것의 중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12) "이러한 무조건적인 심각성은 그로부터 극도 로 분리되어 있는 경험안에서 신의 존재의 표현이다." 13) 이것은 틸리히가 1924년에 발표한 소논문 "칭의 와 의심(Rechtfertigung und Zweifel)"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의심하는 자는 하나님, 진리,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분실의 상태에서 견딜 수 없어서, 그가 무엇을 잃었는지 찾으려고 노력한다. 명백히 이것은 무의미의 심연에서 삶의 무조건적인 의미 안에 참여하려는 투쟁이다. 14)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의심하는 자는 그의 생각가운데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신앙의 구조로서 자리잡고 있으며 항상 현존하는 것으로 보았다. 15) 또한 유한한 존재는 이 신앙 가운데 불확실성의 요소를 제거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기이다. 신앙이 유한자 안에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의심 은 단지 용기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틸리히에게는 "용기는 신앙의 한 요소로서 비존재의 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과감한 긍정이다." 16) 명백하게 이러한 급진적이고 보편적인 칭의론의 해석 은 틸리히가 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도록 만들었는데 그의 역설적인 논문, "Die Uberwindung des Religionsbegriffs in der Religionsphilosophie (Overcoming the Notion of Religion within the philosophy of Religion)"에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종교의 보다 넓은 의미를 소개한다. 17)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일 이러한 칭의론적 해석이 유효하다면, 삶의 영역은 무조건적이고 궁극적 관심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종교는 하나님처럼 편재하고; 하나님처럼 그 현존은 잊혀지거나 무시되거나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영향을 주고있으며 삶의 헤아릴수 없는 깊이를 주고 모든 문화적 창조의 끊임없는 의미를 준다. 18) Mackenzie Brown이 지적한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는 궁극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것을 향한 움직 임 또는 인도이다. 19) 그러나 좁은 의미의 역사적 종교는 역설적으로 종교적인 삶을 사는데 가장 위험한 것중에 하나로 보았다. 종교가 굳어짐에 따라 초음 종교를 가능케 하였던 의심, 역동성, 사랑, 그리고 통찰 력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20) 틸리히는 종교 의식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의식이 신조가 될 때는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역동적인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성과 속의 차이를 극복하고 제사장과 평신도 사이의 차이를 극복한다.


프로테스탄트 원리 안에서 모든 것이 성스럽고 모든 것이 세속적인 것이 잠재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며 바로 무제약자는 모든 삶의 순간 에 스며들어 그것들을 성스럽게 만든다. 21) 여기서 틸리히는 세속적인 것을 성스러움으로 만드는 프로테스 탄트 원리에 있어서 조건지워지지 않는 하나님과 조건지워진 인간 사이의 화해를 도덕이나 율법에 두지 않고 신앙에 두었던 종교개혁운동에서 찾는다.



Ⅲ.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실존주의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있어서 신인(God and human being) 사이의 무한한 간격과 인간의 궁지 (predicament)에 대한 이해는 실존주의 철학으로부터 온다. 그의 신 개념은 쉘링으로부터 시작된다. 1909- 1912년 사이에 틸리히는 베를린에서 있을 때에, 쉘링(1775-1854)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쉘링으로부터 틸 리히는 하나님, 창조, 타락, 그리고 무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 중에서 한 예를 들면, 없음(無)은 두가지로 분리해서 me on의 가능성의 없음과 ouk on의 절대 없음으로 분리한다. 22) 틸리히는 창세기의 무로부터의 창조란 절대 없음의 ouk on이 아닌, 바로 존재의 가능성을 수용하고 있는 mo on으로부터의 창조라고 주 장한다. 23) 틸리히가 쉘링으로부터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은 개념은 신개념이다. 쉘링에 따르면, 하나님은 존 재 곁에 있는 한 존재가 아니며 더욱이 지존자도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개체적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존재가 아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物과 연관되어 있으나 단지 그는 보편적 본 질(allgemeine Wesen)이다." 24) 쉘링의 하나님은 존재에게 속하는 무가 결여된 완벽한 존재이나 보편적 본 질로서의 온전한 존재이지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쉘링의 사 상으로부터 하나님은 존재의 힘이라는 개념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J. A. Stone은 "쉘링이야말로 틸리히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일 것이다 25) 라고 주장하였다. 어쨋든 틸리히는 1926년 파리에서 그의 에세이집 "마성"(Dans Damonische)를 탈고 하였을 때 그는 쉘링의 하나님안에 비 합리적 잠재성으로서의 마성의 개념에 깊이 빠져 있었다. 26) 쉘링의 사고 가운데 하나님의 개념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락의 개념에 있어서도 틸리히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The 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Religion in Schelling's Positive Philosophy"라는 논문에서, 창조론에 있어서 "구체적인 과제는 창조를 세계의 진보가 자유롭게 시작되는 것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타락은 종교의 잔화의 시작이며 계시의 정점이다" 27) 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쉘링의 글 "On Human Freedom"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인간의 초절적 타락을 "존재의 본성의 존재조건" 또는 "깨어진 연합" 혹 은 "조각과 유적물들"로서 말한다. 28)


그러나 비록 쉘링이 처음으로 실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실존주의 에 실마리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는 본질주의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키에르케골이 실존주의를 열게 된 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쉘링은 그가 시작했던 실존주의 사상에 대한 노력을 덮어버리고 관념론으로 되돌아갔다. 키에르케골은 바로 본질론의 관념론적 철학의 닫혀진 체계를 뚫고 나온 첫 번째 사람이다. 그의 삶의 불안과 절망의 근본적인 해석 은 하나의 철학체계를 실존주의로 불리도록 이끌었다. 전후 독일의 신학과 철학에 있어서 그의 철학의 중요성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나의 마지막 배움의 시기(1905-1906)에, 나는 그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29) 그는 어쨌든 실존주의의 양쪽 계열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첫 번째 계열은 쉘링으로부터 키에르케골, 그리고 하이데거와 샤르뜨르로 이어지는 개인적 실존주의이다. 이러한 사상가들과 더불어 틸리히는 개인 적 실존의 이해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틸리히가 이해한 개인적 실존주의의 이해는 무엇인가? 실존의 근본 적 의미는 비존재와 구별하여 '존재'의 전체 속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데, 특별히 하이데거에 이르러 '특정한 처소에 있는 존재' 또는 '거기 있다'는 구체적인 요소를 더하고 있다고 틸리히는 설명한다. 30)


틸리히는 또한 참된 '실존'은 우리의 본성이 자기를 계속 소유하는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실존을 이해하려면 개인적 경험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개인적 '실존'의 비극적 상실의 결과인, 불완전하고도 인간 이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1) 이러한 실존적 이해는 바로 '유한성과 소외'의 이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러한 실존적 세계를 쉘 링은 "산산히 부서진 통일체로서, 부서진 조각으로서 그리고 괴멸된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러한 실존적 유한성은 '소원'(alienation)또는 '소외'(estrangement)와 구별하여 생각할 수 없다. 유한성과 소외는 실존철학을 위하여 근본적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불안"이란 심리학적 언어로 이해한 사람은 키에르 케골이다.


틸리히는 또한 예언자적 계열의 집단적 실존주의자들인 칼 막스와 프레드릭 니체, 그리고 그들을 넘어 서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 계열과 더불어 틸리히는 역사적, 정치적 상황의 이해에 도 달했다. 32) 틸리히는 이 두 번째 계열의 학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세기 예언자 정신은 두 곳에서 돌출했는데 각각 그들은 기독교와 갈등구조에서 생겨났다. 칼 막스와 프레 드릭 니체이다. 막스에게서 우리는 구약의 유대교적 예언의 정신을 그의 글과 행동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니체에게서 루터의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이 투쟁이, 한 경우는 정의를 위해서 다른 경우는 창조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운동력으로 그 형태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한 입장에 묶여있는 한 하나님을 대항한 공격이었다. 33) 틸리히는 기꺼히 그가 막스에게 빚지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는 키에르케골에게 빛진 것처럼 막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34) 누구보다도 틸리히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대한 통찰력을 막스에게서 배웠다. 이념뿐만 아니라 사고의 모든 체계에 있어서도,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면에서도, 그리 고 무의식의 세계에서조차 이데올로기적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루터의 만들어진 하나님을 대항한 경고가 바로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35) 또한 막스로부터 틸리히는 집단적 실존의 소외를 배우게 된다. 막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으로 행동 하게 생산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의 실재는 인간성의 완전한 상실로 규정짓는다. 산업사회의 원리는 거대한 투쟁이다. 사유재산의 자본주의 형태는 인간의 자기 소외의 완벽한 표현이다. 돈의 힘이 사랑을 미움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덕을 악으로 악을 덕으로, 종을 주인으로 주인을 종으로 바꾸어 놓는다.


모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소모품의 관계가 되었다. 그들은 참된 인본주의를 위하여 싸웠다. 이러한 자기 소외를 그복하고 승리를 위한 희망은 산업사회에서 대중들을 새롭게 자신과 화해하고 그들의 인성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혁명은 현대 사상을 화해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막스가 참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 한 것이다. 36) 틸리히는 이러한 막스의 집단 실존의 사상과 저항운동 그리고 화해의 상징을 배웠다.



Ⅳ.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심리학 틸리히는 실존주의와 심층심리학 혹은 정신분석학은 처음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심층 심리학(depth psychology)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신학자들이 심층 심리학자들의 주장들을 의심과 경 계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틸리히는 이들을 오히려 환영하였다. 다른 신학자들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종교 적 신앙이나 예배를 인간 심리의 내적구조로서 그리고 무의식적 형태의 자기 방어적 부산물로 보았을 때, 틸리히는 심층심리학의 무의식의 활동이 신학을 위협하기 보다는 오히려 존재의 모호성에 대한 신학 적 분석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37) 그는 "비록 프로이드(Freud)가 비록 반종교적인 주장을 폈을지라도 그로 인한 지적인 기후의 변화는 기독교의 중심적 메시지, 즉 용납의 메시지의 재발견을 돕 는 가장 큰 지적 협조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38)


실존주의나 심층심리학의 공통분모는 헤겔에서 정점을 이룬 의식의 철학이 현대 산업사회에서 힘을 얻고 강성해지는 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이라고 틸리히는 말한다. 39) 그리고 실존주의와 심층심리학의 초 점은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소외된 실존과 이러한 소외의 특징과 증후군과 실존의 조건들을 밝히는 것이다. 40) 이것은 집단적 실존주의가 분석한 산업사회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실존과 같은 맥락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심층심리학과 심층사회학적 통찰은 상호의존적이라고 틸리히는 말한다. 41) "인간의 그 자신의 세계를 세웠으나 그는 그자신이 만든 생산품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세운 세계의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그가 세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존재라는 망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은 자신이 만든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그 세계 가운데 자신의 무의미성과 무기력함에 대한 강함 느낌이 가득 차있다" 42) 는 에리히프롬의 말을 그 한 예로서 틸리히는 설명한다.


심층심리학으로부터 틸리히는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또는 사회로부터 집단적으로 자기 소외된 인격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체가 자신과 화해하는 방법도 배운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정신치료학적인 심리학은 인간론의 형이상학적 체계가 교리가 아니라 경험에 근거한 자기 소외적인 인간, 자유를 상실한 인간을 다루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소 외적인 인간이 자신과 어떻게 화해를 이루는가의 방법이다. 융은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이란 그의 유명한 책에서 인간의 노이로제적 자기 소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노이로제는 내적 분열이다 --자기 자신과 전투 중에 있는 존재의 상태이다.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전쟁으로 몰아 넣는 것은 그들이 서로 반대되는 두 인격을 형성하고 있는 직관이나 지식이다. 노이로제는 인격의 분리이다. …현대인은 그가 어떻게 그 자신의 본성과 그 자신을 화해시킬 수 있는가를 배우기를 원한다. 어떻게 그가 그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 있는 적, 곧 그의 형제의 늑대라 불리우는 이 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원한다. 43) 틸리히는 이와 같이 실존주의와 심층심리학이 인간의 본질적 존재로부터 인간 소외와 내적 분열의 모 습 그리고 자신이 만든 사회로부터 자신이 소외당하는 집단적 실존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신학 은 그 동안 망각되었거나 가리워져 있던 바로 이러한 심층심리학적 소재를 재발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44) 그는 EH한 신학이 심층심리학으로부터 재발견하여야 할 것은 '죄'라는 단어의 의미이며, 이 '죄'라 는 단어의 의미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범주보다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죄라는 말은 여러 가지 죄와 동일시되건, 또는 인습적이지 못하거나 승인할 수 없는 어떤 행위와 동일시됨으로써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죄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죄는 모든 인간 존재의 자유와 운명 에 근거된 보편적이고도 비극적인 소외이다. 그리고 결코 복수(the plural)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죄는 인간의 본질적 존재로부터의 분리이며 소외이다. 45)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틸리히는 기독교 신학에서 도덕주의는 극복될 수 있으며, 도덕주의를 요청하는 신학은 건전한 신학으로부터 신학이 자기 소외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는 "신학이 착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은총의 의미, 용서의 의미를 정신분석의 방법 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46) 틸리히는 오늘날 개신교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도덕을 매우 강조하는 펠라기우스의 인간론과 연합"되었다고 보고, 바로 심리학이 이러한 펠라기우스주 의의 형태를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정신의료학자나 목회상담자들은 환자나 죄인을 치유할 때에 도덕적 요구들과는 관계없이 환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틸리히는 이것이 바로 은총이라고 말한다. 목회 현장에 서 이것이 바로 어거스틴 전통의 종교개혁 신앙을 따르는 것이며, 동시에 로마 카톨릭의 합법주의자들 그리고 개신교 도덕주의자들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47) 프로테스탄트의 원리를 형성하는 두 축,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님과 실존적 인간의 개념위에 정신치 료학과 목회상담학의 영향은 신인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였는데 이는 "신의 용 납의 교리(the doctrine of divine acceptance)"와 "종교적 상징의 교리(the doctrine of religious symbol)"라고 틸리히는 분석한다. 48) 신의 용납의 교리는 전통적으로 '이신득의-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음'의 교리로 불리웠으며, 사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교리를 교회가 서고 무너지는 중요한 문구로 여겼다. 이러한 용납의 교리가 개신교의 설교와 가르침에서 잊혀져 왔고, 그리고 도덕적 율법주의가 이러한 흐름을 부추겼다고 틸리히는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동안에 정신 분열이 대 중화 현상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은 목회자가 아닌 정신치료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때에 비로소 교회는 설교와 가르침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용납의 교리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신학은 다시 용서 받을 수 없는 자를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는 것이 기독 교 메시지의 중심이 되었고 설교와 목회상담의 신학적 기반이 되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49) 신학이 무의식의 심리학에 대한 반응을 보인 다른 방법은 종교적 상징의 새로운 평가이다.


이러한 새로운 평가는 의지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였다. 결국 지적이고 도덕적인 설교는 믿을 만한 상징에 의해 열려질 수 있는 개인적 삶의 영역에 도달하는데 실패하였다. 이 상징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무의식적 깊이 안에 뿌리를 두고 나타나고 있으며 개인적 삶의 전체성에 상징의 영향 이 드러나는 것에 따라 치료의 힘을 준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은 곧 그의 예술에 관 한 이해에도 연관된다. 내가 프로테스탄트교의 설교를 하면서 얻었던 것은 가장 초기의 경험은 프로테스탄트의 도덕적 특징이었다. 혹은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것의 개인적 중심에는 계속 짐을 지우는 경향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계속적이고 의식적인 결단과 경험들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의약 심리학(medical psychology)에서 무의식의 회복과 대중 정신 의 무의식적 추진력에 대한 통찰력은 나에게 프로테스탄트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열쇠를 주었다. 50)



V.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예술 1921년 틸리히는 "Religious Style and Religious Material in the Fine Arts"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 나타난 틸리히의 사상은 그의

첫 번째 공개발표 "문화신학의 이념에 대하여"라는 글에 기초하고 있다. 틸리히는 "모든 예술은 종교적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깊이의 내용을, 무제약적인 것을 향한 입장에서, 드러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51) 내가 프러테스탄트 원리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인간의 주장을, 이것은 모든 종교적인 주장을 포함하여, 반대하 여 신의 권위의 인식으로서 정의될 수 있다. …이것(프로테스탄트 원리)은 물론 교회의 자기 예술적 표현을 포함한다. 교회의 모든 자기표현의 진실이다. 그것은 모든 자기 표현의 진실이다. 52) 틸리히는 교회의 자기표현을 위한 예술과 건축의 세 가지 일반적인 점을 지적한다. 첫째로 예술과 건축은 반드시 성결의 표현이어야 한다. 틸리히는 "프로테스탄트 예술가는 그림에 있어서 어떠한 원칙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단지 한 가지 원칙만 만일 그림이 예배의식의 그림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궁극적 관심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성결(거룩)의 표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53)


두 번째 점은 바로 프로테스탄트 원리에서 파생되는 데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세속세상의 밀접한 관계 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세상에서는 신과의 관계속에서 아무것도 절대적인 것이 없다. 어떠한 종교적 표 현도 절대성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영역도 바로 그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고 세속주의보다 우월권을 주장할 수도 없다고 틸리히는 주장한다. 54)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란 세속을 향한 관심이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좀더 넓은 의미에서 종교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성결한 중의 성결한 곳으로 가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원리로부터 일어나는 두 번째 요소이다. 55) 프로테스탄트 원리로부터 파생된 세 번째 요소는 복합성(manifoldness)이다. 개신교 정신의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하며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연합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 사건 안에 동참해야 한다. 틸리히는 기독교의 사건을 그리스도로서 예수 안에 새로운 실재의 나타남으로 규정지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는 프로테스탄트 원리로 부터 온다. 틸리히는 두 가지 방법, 예술은 종교를 표현할 수 있고 종교는 예술로 나타날 수 있다고 규정짓고, 그리고 종교와 예술의 관계를 네 가지 차원으로 구별을 하였다. 56) 그의 분류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는 궁극적 관심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간접적으 로 표현된 양식이다. 소위 세속적 예술 가운데 거기에는 종교적인 내용, 상징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종교 적 의식이 없다. 두 번째 단계에서도 종교적 내용이나 성스러운 장면들은 없다. 그러나 그 양식에는 의미를 표현하는 형태가 있다. 어쨌든 이 양식의 특징은 깊은 곳에서부터 표면을 뚫고 나오는 무엇이 담겨있 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는 비종교적인 양식의 종교적인 형태의 단계이다.


네 번째 단계를 종교적 양식과 종교적 내용이 함께 하는 것이다. 가장 구체적인 의미에서 이 예술을 종교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57) 한편으로 틸리히가 모든 특별한 종교적 예술이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표현주의라고 고려할 때, 그는 가장 자연적이고 이념적인 예술에서도 신성이 결여되지 않았다고 보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비종교적인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비종교적 양식과 비종교적 내용 가운데, 예를 들면, 자연주의 예술 가운데, 유한한 형태와 유한한 세계의 관계를 통하여 신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58) 틸리히는 이러한 예로서 두 그림을 선택하였는데; 첫 번째 그림은 Jan Steen의 "거꾸로된 세상(The World Upside Down)"이고 두 번째 그림은 Rubens의 동물과 풍경을 주제로한 "탕자의 귀가(Return of the Progidal)"이다. 이 그림에서 누구도 종교적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틸리히는 간접적으로 종교적 그림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종교적 양식도, 또한 온전히 세속적 양식도 없으며, 또한 종교적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거기에는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있는데, 하나님 이 신성한 실존 가운데 존재하시는 것과 다름없이 세속적 실존가운데 존재하신다. 거기에는 더 이상 신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것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 나 는 이것을 종교와 예술의 관계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라고 부르고 싶다. … 세속적 양식 가운데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이 없이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존재의 힘이 넘치고 있다. 59) 종교적 양식을 지닌 그러나 종교적 내용이 없는 두 번째 단계에서 틸리히는 이 단계를 실존주의적 단 계로 보았다. 미술에서 실존주의 사상은 항상 조직적인 형태의 표현과 연관된 관념론을 대항한 프랑스의 세잔느(Cezanne)와 함께 시작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우리 존재의 형태를 조직적이라기 보다는 파괴적으 로 보여준다. 어쨌든 이 단계에서 예술가들은 이 형태가 단순히 무조직적이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이 무조직적 형태안에 구성된 것은 존재자체의 힘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것은 실재의 깊 이와, 표면과 그리고 표면의 미화작업과 그리고 조직적 결합 밑에 감추인 깊이를 보기를 추구한다. 60) 틸리 히는 이러한 개신교적 종교 그림은 오늘날 피카소의 Guernica에서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구에르니카는 북부 스페인의 한 지역으로 파시스트 국가들이, 독일과 이태리, 스페인 파시스트들이 당시 스페인 정부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좌파이기에 그들을 타도하기 위해 도왔던 지역이다. 바로 바스퀴스의 나라 안에 작 은 도시 구에르나카는 이태리와 독일의 공습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것은 끔찍한 단어 "폭탄 세례"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번째 실제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폭탄을 퍼부었을 때에 거기에는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 도 없었다. 거기에서 피카소는 엄청난 끔찍함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실재의 조각 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집들의 비조직적인 조각들을, 이러한 방식은 우리 실재의 조각난 특성들이며 아마도 근대 미술의 어떤 것보다 우리 의 실재를 더 끔찍하게 보여 주는 것일 것이다. 61) 틸리히는 구에르니카에서 20세기에 처한 인간의 곤경의 표현을 발견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비록 그 그림이 종교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종교적 양식을 바로 그 깊고 넓은 의미에서 담고" 있으며 피카소는 이 그림을 통하여 부정적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62) 거기 에는 우리 존재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없다. 거기에서는 질문을 불러일으키지만 답변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틸리히는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적 실존주의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63) 틸리히가 말하는


세 번째 단계는 비종교적 양식 그리고 종교적 내용이다. 그것은 극적으로 미를 추구 하고 있기에 내용이나 양식에서는 종교적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종교적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고, 예를 들면 라파엘(Raphael)의 "마돈나와 어린아이"(Madonna and Child)는 간접적으로 종교적이지만 종교 적인 양식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64) 틸리히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그림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차이를 드러내는 종교적 상징을 감소시킨다. 라파엘의 그림은 매우 비종교적이며, 오히려 모두가 이해하고 싸워야 하는 우리 시대의 상황에 반대하고 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인간의 시야를 아름다운 광경으로 흐트러트리며 인간 상황의 깊이를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의 그림에서, 종교적 형식은 종교적 내용과 연합된다. "이 형식은 일반적으로 표현주의라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면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하여 파괴되어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이러한 단계의 미술은 초기 기독교 시대와 비잔틴 문화에서 특별히 찾아 볼 수 있으며, 혹은 초 기 나 후기 로마와 고딕 그리고 바로크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65) 어쨋든 틸리히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종교와 기독교 안에 있는 종교예술의 위대한 전통에 따르면 표현주의의 특징은 예술가의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토대를 표현하고 있다. 틸리히에게 상징적 체계의 그림, 즉 인간의 실존을 나타내주는 그림은 상징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다. 여기서 틸리히는 다시 종교적 상징을 드러내는 프로테 스탄트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VI. 결론 지금까지 틸리히와 종교, 실존주의, 심층심리학, 그리고 예술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는 철저하게 종교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모든 문화 속에서 종교의 원리가 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틸리히는 말한다. "개신교 정신은 역사적 종교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 다, 그것은 종교개혁이나 초대교회의 구조와 동일시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종교적 형태와도 동 일시 될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모든 문화의 형태를 초월하는 것처럼 모든 종교의 형태를 초월 한다. 다른 한편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모든 종교와 문화의 영역에 나타난다. 그것은 그것들 가운데 생명체이며, 동력체이며, 끊임없는 원동력이다." 66) 이 원리는 그가 종교 사회주의에 가담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후에 조직신학을 쓸 때에도 토대로 작용 하였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의 조직신학 2권과 3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 차이가 2권에서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이 3권에서는 성령론 중심으로 이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3권을 저술하면서 그의 신 학이 종교대화를 향하여 열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Pan-Chiu Lai는 틸리히의 이러한 차이를 삼위일체론 적 접근으로 해석하며 극복하려고 한다. 67)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차이가 그의 언표화된 문장들 안에서 극 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프로테스탄트 원리에서 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이미 1919년 4월 16일 베를린에서 "문화신학의 이념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할 때에 프로테스탄트 원리가 그의 신학안에 작용 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는 이미 종교의 넓은 의미를 말하고 기독교를 넘어서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입각한 종교를 소개하고 있다. 그의 모든 신학은 이 원리 안에서 이루어 졌으며 타종교와의 대화도 이 원리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심지어는 프로테스탄트 시대가 끝나더라도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그의 보다 넓은 의미의 종교가 성서적 기독교인가 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의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철학적이지 성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결국 실존주의로 묻고 성서적으로 답한다고 는 하지만 본질주의 철학의 구조로 답하고 있다.(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지면상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는 실존주의와 본질주의의 경계에 서있다고 말한다. 결국 틸리히는 기독교로 시작해서 나 름대로의 넓은 의미의 철학적 종교인이 된 것이다.


각 주

1) Wilhelm and Marion Pauck, Paul Tillich: His Life and Thought, Volume I: Life(New York: Harper and Row, 1975) 64,

2) Paul Tillich, Theology of Culture(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9) v.

3) Tillich, The Protestant Era xi.

4) Tillich, 163.

5) Tillich, The Protestant Era 221.

6) Tillich, The Encounter of Religions and Quasi-Religions ed. Terence Thomas(Lewiston, New York: The Edwin Mellen Press, 1990) 10.

7) Tillich, Dynamics of Faith 2.

8) Tillich, Theology of Culture 35-36.

9) Paul Tillich, The Encounter of Religions and Quasi-Religions 16-17.

10) Paul Tillich, Perspectives on 19th and 20th Century Protestant Theology(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8) 213-15.

11) Tillich, The Protestant Era xiv.

12) Tillich, Dynamics of Faith 22.

13) Tillich, The Protestant Era xv.

14) Paul Tillich, Rechtfertigung und Zweifel, in Main Works(MW) volume 6, 85.

15) Tillich, Dynamics of Faith 17.

16) Tillich, 17.

17) John Calyton, "Tillich, Troeltsch and the Dialectical Theology" Modern Theology 4.4 (1988): 325.

18) Tillich, The Protestant Era xv-xvi.

19) D. Mackenzie Brown, Ultimate Concern: Tillich in Dialogue(New York: Harper & Row, 1965) 2.

20) Brown 3.

21) Tillich, The Protestant Era 174-75.

22) Victor Nuove. Introduction, The 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Religion in Schelling's Positive Philosophy: Its Presuppositions and Principle, By Paul Tillich (London: Associated University Presses, Bucknell University Press, 1974) 16.

23) Tillich, The 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Religion in Schelling's Positive Philosophy 67.

24) F. W. Schelling, Philosophy of Mythology and Revelation, M ncher Jubil umsdruck of Schellings Werke, Edited by Manfred Schr ter (1959) V:455.

25) Jerome Arthur Stone, "Tillich and Schelling's Later Philosophy." Kairos and Logos: Studies in the Roots and Implications of Tillich's Theology Ed. Joh J. Carey. (Marcon, GA: Mercer University Press, 1984) 17.

26) Pauck 107.

27) Tillich, The 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Religion in Schelling's Positive Philosophy 65.

28) Tillich, Theology of Culture 102.

29) Tillich, On the Boundary: An Autobiographical Sketch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66) 84.

30) Tillich, Theology of Culture 94.

31) Tillich 93.

32) James Luther Adams, Introduction, Political Expectation, By Paul Tillich (New York, Evanston, Sanfrancisco, London: Harper amp; Row, Publishers, 1971) ix.

33) Paul Tillich, ed. "Ideen zur Geisteslage der Gegenwart," in Kairos: Zur Geisteslage und Geisteswendung, (Darmstadt, 1926) 4.

34) Tillich, On the Boundary 84.

35) Tillich 85.

36) MW6 263-264.

37) William R. Rogers, "Tillich and Depth Psychology": The Thought of Paul Tillich, Eds James Luther Adams, Wilhelm Pauck, Roger Lincoln Shin (San Francisco: Harper & Row, Publishers, 1985) 103.

38) Tillich, "The Impact of Psychotherapy on Theological Thought" Pastoral Psychology(Great Neck, New York), Vol. 11, No. 101. 1960. 7.

39) Tillich, Theology of Culture 114.

40) Tillich 117.

41) MW6 264.

42) Erich Fromm, Escape from Freedom(New York: Farrar and Rinehart, 1941) 117-18.

43) MW6 273.

44) Tillich, Theology of Culture 123.

45) Tillich 123.

46) Tillich 124.

47) MW2 310.

48) MW2 311.

49) MW2 312-22.

50) Tillich, The Protestant Ear xxiii-xxiv.

51) Tillich, On Art and Architecture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John Dillenberger, in collaboration with Jane Dillenberger (New York: Crossroad, 1989) 52.

52) Tillich, "Theology, Architecture and Art," Church Management 33.1 (1956) 55-56.

53) MW2 264.

54) MW2 264.

55) MW2 264.

56) Tillich, "Existentialist Aspects of Modern Art" 133.

57) Tillich 133-34.

58) MW2 265.

59) Tillich, Existentialist Aspects of Modern Art 135.

60) Tillich 274.

61) Tillich 137-38.

62) Tillich, "Protestantism and the Contemporary Style in Visual Arts," Christian Scholar 40.4 (1957) 307.

63) Tillich, Existentialist Aspects of Modern Art 141.

64) Tillich 142.

65) MW2 265-66.

66) Tillich, The Protestant Era xii.

67) Pan-Chiu Lai, Towards a Trinitarian Theology of Religions: a Study of Paul Tillich's Thought (Kampen, The Netherlands: Kok Pharos Publishing House, 1994)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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