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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15
 제목  폴 틸리히의 신학 방법론
 주제어  
 자료출처  허호익 교수  성경본문  
 내용

 

* 자세한 각주와 눈문 전체는 [신학과 문화] 10집, 204-225 쪽  

 

 

1. 머릿말

   

  현대에 신학자 중에서 신앙의 현실과 사유의 현실을 가장 탁월하게 연결시킨 신학자는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이다.1) 그의 신학세계는 기독교 진리를 현대 인간의 삶의 정황과 연결시켜 재해석하는 변증신학으로서 특징지워진다. 그리하여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 문화와 종교, 동양종교와 기독교 신앙, 사회주의 이념과 예언자 사상, 심층심리학과 신학적 인간학 사이의 경계선상에 서서 기독교 진리를 이 시대에 해명하려고 노력한다.

  틸리히는 동부 독일 브란데부르크주의 작은 마을 쉬타르 헤텔에서 1886년 8월 20일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어린시절은 성격이 우울하고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부친과 진취적이고 민주적인 모친 사이에서 삶의 균열을 경험한다.

  틸리히는 1904년 가을학기부터 베를린에서 신학수업을 시작했고 튀빙겐, 할레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10년 브레스라우대학에서 “쉘링의 긍정철학에 있어서 종교사적 구성, 그 전제와 원리”(Die religionsgeschichtliche Konstruktion in Schellings Positiver Philosophie, ihre Vorausetzung und Prinzipien) 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1911년 그는 할레대학에서 “쉘링의 철학적 발전에 있어서 신비주의와 죄의식”(Mystikund Schuldbewutsein in Schellings Positiver Philosophischer Entwicklung) 이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1916년 할레대학 신학대학에서 “초자연적인 것의 개념”(Begrift des Ubernaturlichen) 이라는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틸리히 사상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에게 있어서 19세기 시민문화와 삶의 방식, 자유주의신학과 관념주의적 사고가 붕괴하고 존재론적 사상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세계대전에 틸리히는 4년간 군목으로 참여하고 전쟁의 참혹상을 체험한다. 베드룬 전투에서 그의 주위에 죽고 죽어가는 병사들 가운데서 틸리히는 실존주의자가 된다.

  1차대전 이후 칼 바르트(K. Barth)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과 계시의 유일성 선포하고, 기독교는 종교라 불리울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같은 시기에 트뢸취 (E. Tröltsch)는 모든 종교는 역사적으로 볼 때 상대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교심리학과 맑시즘의 종교비판으로 종교는 죽음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에 대해 새롭게 해명하는 일이 불가피 하였다.

  1920년대 틸리히는 종교사회주의의 지도자가 된다. 전쟁 후 틸리히는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신학사강사(Privatdozent)가 된다. 1924년 아아부르크 대학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의 비정규교수가 되고, 1925년 드레스덴의 공과대학 종교학 교수와 동시에 라이프찌히 대학의 신학명예교수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강의는 신학을 넘어서 철학과 문화까지도 다루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문화철학적 활동은 1929년 틸리히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막스 쉘러(Max Scheler)의 후임으로 철학과 사회학 교수로 청빙받을 때 더욱 강력해진다.

  1933년 비유대인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히틀러에 의해서 면직 당하게 된다. 그의 저서 「사회주의적 결단」 에서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아주 비판하였으며, 사회주의 학생연맹의 테러에 대항한 유대인 학생들의 입장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니버(R. Niebuhr)의 알선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유니온 신학교와 콜롬비아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하였고, 1955년 하바드 대학에서 은퇴하였다.

 

  틸리히는 독일과 미국에서 신학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신․구 두 대륙의 두 문화를 접했기 때문에 자연히 ‘유럽과 미국의 접경’3) 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자유주의자로 알려졌고, 미국에서는 신정통주의자로 알려졌다. 이러한 위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틸리히는 쌍방의 장점만을 취하려고 하였다.4)

   1966년 자서전에서 틸리히는 그의 삶을 경계 선상에 있는 삶으로 규정했다. 그는 항상 삶의 경계에서 살았고, 지나감, 긴장, 투쟁을 경험했다. 이 긴장은 그에게 신앙의 역동성을 형성한다. 그의 사상은 그의 삶의 숙명처럼 두 기질 즉, 도시와 시골, 사회계급들, 실재와 환상, 이론과 실천, 타율과 자율, 신학과 철학, 교회와 사회, 종교와 문화, 루터교와 사회주의, 그리고 관념론과 마르크스론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5) 틸리히는 이 분리된 것을 연합하고자 하였다, 이 양자는 배타적인 대립 속에 있지 않고 내적인 변증법의 관계 속에 있다. 이 분리된 것을 조합하고자 하는 틸리히의 사상 속에서 교육적 사고의 배타성이 깨어지고 세속성의 한 가운데서 존재의 종교적 깊이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는 문화신학적 착상이 싹트게 된다.

  또한 2차 대전 후 유럽과 미국의 신학은 제3대륙의 제3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선교의 장에서 세계 종교와의 부딪힘이 불가피 했으므로 이 문화적인 상황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자기 이해가 불가피 하였다.6) 따라서 역사, 철학, 심리학, 예술, 정치학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요구되었고, 틸리히는 이러한 여러 사상 분야에 거의 정통한 철학자로서 신학자였고, 신학자로서 철학자이었다.

  이 글에서는 우선 틸리히의 독특한 신학적 방법론을 살펴 보려고 한다.  틸리히의 신학방법론은 한국 문화신학이나 종교신학의 방법론으로 수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틸리히의 신학의 몇 가지 방법론적 문제점들을 들추어내어 비판하려고 한다. 이러한 약점과 비판점은 그대로 틸리히 신학의 상관관계의 방법론을 수용하여 한국문화신학의 방법론으로 삼으려는 시도에도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메세지와 상황의 중재

 

  신학의 과제를 무엇이라 보느냐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신학의 방법론뿐만 아니라 그 내용 까지도 크게 좌우된다. 틸리히는 퀠러(Martin Kähler)가 주장한 ‘신학의 과제는 중재이다’(The task of theology is mediation)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신학의 중재하는 과제가 거부되면 신학도 거부된다. theo-logy라는 용어 자체가 신비한 것인 theos와 이해 할 수 있는 것인 logos의 중재임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7) 틸리히는 “자신이 ‘중재의 신학자(theologian of mediation)’로 불리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8)고 하였다.

  이러한 틸리히의 중재신학의 착상은 현대의 세속화 과정 속에서 전통적 종교언어가 그 전달능력을 상실한 현대의 상황 속에서 종교의 실체적인 능력과 재생을 다시 현대인들에게 환기시키고 각성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크나큰 공헌 을 지니고 있다.

  이 중재의 신학은 신학적 내용에 있어서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자유주의와 정통주의의 중재이며 나아가서는 메세지를 강조하는 케리그마 신학과 상황을 강조하는 변증신학(apologue theology)의 중재이다. 변증신학은 물음에서 대답을 끄집어내는 귀납적이고 경험적인 접근 방법을 취한다. 이에 반해 케류그마의 신학은 질문과 상관없이 대답을 제공하는 연역적이고 형이상학적 접근방법을 취한다. 변증신학의 방법론은 구체적으로 자연주의나 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독일의 종교적 민주주의나 미국의 휴머니즘이나 종교적 진보주의에서 나타난다. 케류그마의 신학은 초자연주의와 정통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배타적 초월주의를 고수하는 유럽의 정통주의나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신학을 표방한다.

 

  틸리히는 이러한 변증신학과 케류그마의 신학의 장단점을 비판하고 이 두 주류의 신학을 중재하는 제3의 신학 방법을 모색한다. “그 동안 2세기 이상이나 신학은 크리스챤의 메세지가 그 독자성과 본질을 잃지 않고 현대정신에 적응 할 수 있는가를 주테마로 삼아 왔다”9)고 한다. 그러나 변증신학은 상황만을 강조하여 메세지의 독자성과 본질을 약화시켰고 반면에 케류그마의 신학은 메세지의 독자성과 본질만을 강조하여 상황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틸리히는 이 양자 중 어느 하나도 제외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맺어주는 신학의 방법이 바로 ‘상관관계의 방법(method of correlation)'10)  이라고 한다. 틸리히는 신학의 중재적 과제를 해결하는 신학적 방법론을 ‘상관관계’에서 찾아낸 것이다.

  틸리히는 신학이 역시 기독교 교회의 한 기능이므로 교회의 요구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바르트(K. Barth)가 신학을 ‘교회의 한 기능’11)으로 정의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틸리히는 교회의 기본적 요구는 두 가지인데 그것은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를 말하는 것과 모든 새 세대를 위해 이 진리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바르트는 “교회의 특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라는 관점에 놓여있는 교회에 대한 자기 검정(self-test)을 신학(Dogmatics)"12) 이라고 한다. 틸리히는 두 가지 요구를 말하는데, 반하여 바르트는 한 가지의 요구를 말한다. 이 메시지와 상황이라는 두 가지의 조정을 위해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을 동시에 말할 수 밖에 없었다.


3. 철학과 신학의 변증법적 통일(Philosophical Theology)


  틸리히는 조직신학 1권 서론에서 “나의 목적, 내가 그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목적은 변증법적 관점에서 쓰여지고 철학과 계속적인 상호관계를 통해 수행되는 신학적체계의 방법과 구조를 제시하는 것이다”13)고 했다. 그의 중요한 관심은 신학과 철학(혹은 종교학)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도 일찌기 쉴라이어마허와 헤겔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이다. 쉴라이마허는 「종교론」(Über die Religion)과 「기독교 신앙론」(Der Christiliche Glanbe)이란 두 저서를 통해 이 양자의 종합을 시도했다.14) 그러나 이들의 기독교와 현대정신의 종합의 시도는 실패했다. 19 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은 이 양자의 연결 방법에 실패했으므로 “우리는 다시 시도해야 한다”15)고 틸리히는 말한다. 따라서 “성서의 종교와 존재론 사이의 깊은 곳에는 어떠한 긴장이 숨어있다 하여도 이 양자의 궁극적 통일은 있으며, 서로 깊은 상호 의존해 있다”16)고 한다.

  틸리히는 1940년 9월 25일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제의한 ‘철학적 신학’의 교수직을 수락하는 “철학과 신학”이라는 강연을 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내가 맡은 교수직에 대한 이름은 일반에게는 낯설기만 한 ‘철학적 신학’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적당한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철학과 신학의 경계선이 내 사상과 연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17)라고 하였다. 그리고 1951년 가을 버지니아 대학의 “제임스 리차드 강좌(James W. Richard Lecture)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스칼에 반대하여 나는 말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철학자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며 또한 한 인격으로서의 자신의 부정입니다.”18)


  틸리히의 이러한 진술은 신학과 철학의 변증법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의 신학 방법론의 특징의 웅변적으로 묘사한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틸리히는 신학과 철학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논술함으로써 양자의 상호 의존성과 궁극적 통일을 모색한다. “신학은 기독교 신앙내용의 방법론적 해석이다”19)고 정의한 후 신학은 종교의식, 상징, 신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므로 신학자는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뜻을 심각하게 다루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학적인 신학자와 철학자 사이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신학도 지식의 특수한 영역이므로 특수한 대상을 다루며 특수한 방법을 사용한다. “신학의 대상은 우리에게 궁극적 관심을 일으키는 것”20)이라고 한다. 이 궁극적 관심은 마가복음 12:29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추상적 번역이다. 종교적인 관심은 궁극적이며, 무조건적인 전체적이고 무한한 관심이다. 이 관심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체험의 실존론적 성격을 지적한다. 궁극적 관심의 내용은 일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21)를 좌우하는 최종적인 질문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위협이냐 존재의 구원이냐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관심이다. 따라서 신학의 형식적 기준은 이러한 존재에 대한 관심, 즉 궁극적 관심이라고 틸리히는 이해한다.

 

  물론 철학은 철학의 인식태도나 소재, 내용에 있어서 신학과 차이가 있다. 틸리히는 철학의 정당한 임무는 인식론이나 윤리학, 논리 실증주의가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라고 한다. 철학은 결국 ‘전체로써의 실재’에 대해 질문하고 ‘존재의 구조’에 대해 분석한다.22) 신학이나 철학이 실존적 상황에 궁극적 관심을 가지고 존재에 대해 질문을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점을 가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존재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한다는 점이다. “철학자는 존재의 구조를 다루고 신학자는 존재의 의미를 다룬다”23)는 것이다.

   신학자처럼 철학자도 실존한다. 둘 다 궁극적 관심의 힘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모든 창조적 철학자는 ‘숨은 신학자’이며 ‘학적인 신학자는 종교철학자로 남는다’는 것이다.24) 철학과 신학은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신학자와 철학자는 실존적인 관심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신학과 철학은 그 인식태도나 소재나 내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가지며 서로 의존해 있다. 틸리히는 일평생 철학자로서 신학을 추구했고, 신학자로서 철학을 추구했다. 철학과 신학 사이의 경계선이 자신의 사고와 작업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학을 철학적 신학(Philosophische Theologie)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25) 철학과 신학 사이의 경계선이 나의 사고와 작업의 중심이기 때문에 어떤 다른 표시보다 더 나에게 적합하다.


4. 대답과 질문의 상관관계(Method of Co-relation)


   틸리히는 메시지와 상황의 중재와 신학과 철학의 변증법적 통일의 방법을 상관관계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대립되는 두 요소를 중재하고,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방식이 상관관계의 방법인 것이다.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의 근거를 종교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찾는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과 ‘하나님을 위한 우리’ 사이에는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26)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대한 틸리히의 주장에 대해 바르트는 ‘어떤 종류의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상관관계라도 그것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시킨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틸리히는 물론 하나님은 그의 가장 깊은 본질에서는 인간에게 결코 의존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때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기 명시(Self-manifestation)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의존한다.27)고 했다.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방법으로서의 상관 관계의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래의 체계는 ‘상호관계의 방법’을 빌어 메시지와 상황을 결합시키고자는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상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들과 메시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질문들을 상호관련시킨다. 그것은 문제와 답변, 상황과 메시지, 인간 실존과 신적인 자기 계시를 상호관계시킨다.”28).


  틸리히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신을 인간에 관계시키거나 의존시키지 않으며 또한 인간을 신에 의존시키거나 관계시키지 않는다. “실존적 질문이 신학에 의해 형성된 계시적 진리를 위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29) 또한 “인간은 자신의 곤경의 분석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끄집어 낼 수도 없고,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질문하지 않은 질문에 대해서는 해답을 받을 수 없다” 30) 따라서 틸리히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이나 초자연주의적 이해를 모두 배격한다.

 

  이 신인관계의 상관성의 인식론적 측면을 상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대답과 인간의 질문’사이의 상관 관계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존재하는 인간은 이 질문에 주어진 해답의 충격아래 그 자신이 존재하고 사는 질문을 묻는다. 계시는 항상 질문될 것이고 이미 질문되어진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31) 이러한 대답과 질문은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메시지와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메시지와 상황은 상관관계를 가지며 대답과 질문의 관계는 실존적이다. 이 대답은 내용적으로 계시사건에 의존하고 형식적으론 질문의 구조에 의존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가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악마적 절대주의’에 빠져 그 호소력을 상실하고 반면에 진리를 희생시켜며 상황에 에 순응할 경우에는 ‘공허한 상대주의’에 빠져 세속주의로 넘어가게 된다고 하였다.32)

  틸리히는 ‘상관’이란 용어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33) 상이한 여러 데이타의 상응성, 개념들의 논리적 상호 의존성, 구조적인 전체 속에서 사물들과 사건들의 참다운 상호의존성이 ‘상관’이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신학에서 이러한 ‘상관’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종교적 지식에 관하여, 종교적 경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과 세계에 관한 진술을 결정하는 데에 적용되어 사용된다. 그것은 상징과 상징되어지는 것,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하나님, 궁극적 관심과 궁극적 관심을 주는 것 사이의 논리적이고 실제적 의미로써 상관관계를 맺는 데에 그 의미를 가진다.

   틸리히는 상관 관계의 근거와 ‘상관’의 의미를 설명한 후 기독교 신학이 기독교 신앙과 인간의 실존을 관계시키는데 있어 잘못된 방법을 세 가지 지적하고 이를 거부한다.34)

  틸리히의 이러한 상관의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의 오류를 피하면서, 극복한다. 첫째 오류는 구체 적 인간 상황과는 무관한 초자연주의적인 방법(supranaturalistic method)이다. 초자연주의에는 기독교 메시지를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조정이 존재치 않는다. "계시된 말씀"에 대한 조율이 결핍된 "말씀의 계시"는 인간과는 무관할 뿐이다.

 

둘째는 구체적인 인간 상황만이 고려가 되는 자연주의적 방법(naturalistic method)이다. 자연주의적 인간론적 방법은 기독교 메시지를 인간의 자연적 상태에서 추론한다. “계시된 말씀"이 “말씀의 계시"로 뒤바뀌어질 때 결 국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당하게 된다.

 

  틸리히에 있어서 초자연은 숨겨진 자연이며, 자연은 나타난 초자연이다. 그는 ‘상호 관계의 방법’이라는 묘(妙)를 통하여, 실존의 분석에서 자연신학을 해명하고, 실존에 내포된 질문에 주어진 대답으로 초자연 신학을 해명한다. 이렇게 하여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사이의 괴리는 상관의 방법을 통하여 극복된다

  셋째는 인간 상황과 하나님 사이에 깊은 골을 그은 이원론적 방법(dualistic method)이다. 이원론적 방법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인정하면서도 둘 사이의 궁극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인간 자신의 노력이나 자연계시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함으로서 결국은 질문의 형태 속에서 대답을 끄집어낸다. "계시된 말씀"과 "말씀의 계시"는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자연신학적인 파토스는 결국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영원한 평행선만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오류의 지적을 통해서 틸리히는 다시 한번 상관관계의 방법이 질문에서 대답을 추론하거나, 대답에서 질문을 연역하지 않는 질문과 대답을 ‘상관’시키는 제4의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35)

  상호관계의 방법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실존적 물음들과 신학적  대답들을 상호 연결(interdependence)시키는 것이다. 신의 대답으로부터 출발하는 바르트와는 달리 틸리히의 출발점은 인간의  물음이다. 인간의 물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탐구는 그로 하여 인간  문화의 광범위한 영역을 탐구하게  만든다. 그 까닭은 그는 인간은 문화적 형식들 속에서 스스로를 가장 훌륭하게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문화적 형식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문화적 형식들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이해, 관심 및 불안들을 표현한다.

  따라서 틸리히에게 있어서는 회화, 연극, 정치, 역사, 사회학, 과학, 심층 심리학, 문학, 철학, 삶의 패턴, 이 모든 것들이 인간 상황에 대한 그 분석의 재료가 된다. 문화 탐구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인간이 묻는 물음들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이른다. 오직 이 단계에 이르게 된 때에야 비로소 그는 신학화하고, 인간의 물음들에 대답하는 데 어떤 답변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에 손을 댄다. 그의 과제는 이 양쪽을 상호간의 침투관계(mutual-interpenetration)를 이룩해 놓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신학자의 과제를 이렇게 이해하는 밑바탕에는 “문화의  실체가 종교이듯이 종교의 형식은 문화이다”고 하는 틸리히의 확신이 깔려 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어떤 문명의 문화적 형식들을 연구하는 것은 그 종교적 관심들, 또는 종교적 관심의 결여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달리 표현하면, 종교가 어떤 문화 속에 존재하는 경우 종교는 그 문화의 모든 형식들  속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가 문화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 문화는 어떠한 종교적 함축들도 결여하게 된다.

 

5. 신학의 체계(Systematic Theology)


   틸리히에 의하면 메시지와 상황을 중재하고 신학과 철학을 통일시키고 하나님의 대답과 인간의 질문을 상관시키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조직신학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을 (Summa Theologia)라 불렀고,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이라 하였고, 바르트는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이라고 표명한다. 중세에는 대전(Summa)이 우세했으나 현대에는 에세이(Essay)가 우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는 에세이를 가능하게하는 영적 삶이 혼돈 되어 있고, 대전의 창조는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Summa와 Essay의 사이에 존재하는 조직신학의 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36) 그래서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을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라고 부른다. 신학은 기독교 신앙내용의 방법론적 서술이며, 이러한 정의는 무든 신학적 학문에 타당하다. 틸리히는 조직신학을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조직신학은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신학이므로 조직신학은 변증적 요소, 윤리적 요소, 교의학적 요소를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조직신학의 자료는 성서만으로 부족하다. 성서 이외에 종교사, 문화사, 교회사에 의해 제공된 추가적 재료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37)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은 기독교 신앙이 근거하는 중심사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에 대한 직접-간접의 관계성에 상응하여야만 그 중요성을 갖는다. 이 조직신학의 자료들은 경험을 통하여 그것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만 자료가 될 수 있다. 경험역시 조직신학의 자료를 받아들이는 신학의 매개체라는 것이다.38)

 

   경험의 문제는 신학의 본질과 방법이 논의될 때마다 중심문제가 되어왔다. 신학의 매개가 되는 경험은 세 가지 의미 즉, 존재론적, 과학적, 신비적 의미로 쓰여진다. 그러나 오늘날은 타종교와의 만남, 진화적 사고의 체계, 실증적 방법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제공되므로 신학자는 기독교의 경험을 넘어서는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 조직신학은 인간의 경험을 극소화하거나 극대화해서도 안되며 양자의 폐단을 막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건에 근거하여 이 사건이 경험에 주어지는 의미를 신학의 매개로 하여야 한다.39)  조직신학의 재료의 다양성과 경험의 매개적 기능의 모호성 때문에 조직신학의 규범이 필요하게 된다. 기독교 교회는 내용적 규범으로 교리를 만들고 형식적 규범으로 권위의 계급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시대에 가장 적절한 내용적 규범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이다.40)

 

   조직신학의 자료, 매개, 규범에 대한 신학적 체계를 세우는데 구체적으로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신학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틸리히는 이성을 자기 초월적 환상적 이성과 기술적, 형식적 이성으로 나눈다. 이 둘의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면 문제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신학의 합리적 성격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지라도 몇 가지 원리는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신학은 하나의 학문으로써 이성과 합리성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41) 틸리히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조직신학의 합리적 성격을 결정하는 세 가 지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가 의미적 합리성(semantic rationality)의 원리이다. 신학 언어가 가능한 그 근거는 수학적 형식주의로 언어를 구성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있게 지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학의 언어는 그가 지시하는 내용과 관련된다. 물론 신학 언어의 모든 의미내용이 서로 정합적으로 관계되어야 한다.

 

  둘째, 논리적 합리성(logical rationality)의 원리이다. 틸리히는 변증법과 형식논리학 사이의 충돌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신학적 변증법은 논리적 합리성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는다. 그 예증 이 바로 종교와 신학에서의 역설(paradox)이다. 역설은 논리적 합리성의 원리를 위배하는 모순을 뜻함이 아니고, 모든 인간적인 기대와 가능성을 초월할 때 열리는 전혀 새로운 빛이다. 역설은 하나님의 행위가 유한한 이성을 초월하지만, 부정하지 않음을 지시한다.

 

  셋째, 방법론적 합리성(methodological rationality)의 원리이다. 실로 신학의 방법은 비합리적인 요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학은 합리적인 이성을 넘어선 하나님에 진지하게 접근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원리가 확립되면, 그 원리는 합리적으로 일관되게 수행되어야 한다. 방법론적 합리성을 적용하는 일관성의 최종적인 표현은 신학체계(theological system)이다.42)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 Ⅰ-Ⅲ」에서 질문과 대답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하여 다섯 가지의 주제를 조직신학의 일관적인 방법론적 체계로 다루고 있다. 43)

 

  제1부에는 이성과 계시를 다룬다. ‘존재와 하나님’을 다루기 이전에 인식론적 해답으로써의 이성과 기독교 신앙내용의 궁극적 원천으로서의 계시의 상관관계를 다룬다.  제2부는 ‘존재와 하나님’은 틸리히의 독특한 존재론의 서술이며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존재자체의 관계를 다루고 “존재에의 용기”와 ‘새로운 존재’로 이어지는 관심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제3부 ‘실존과 그리스도’ 역시 그의 ‘실존신학’의 해명으로서  인간의 실존적 자기소외와 이 상황에 포함된 문제를 분석하고 그리스도를 그 대답으로 제시한다.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제4부는 ‘삶과 영’을 다룬다. 여기서는 살아있는 존재로써의 인간에 대한 분석과 삶의 모호성 속에 내포된 질문을 분석하고 성령으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5부는 인간의 역사적 실존과 역사의 모호성 속에 내포된 질문을 분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그 대답으로 제시하는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다룬다. 특히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에선 역사에 대한 독특한 이해와 더불어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관심과 ‘문화의 신학’ 그리고 ‘세계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결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틸리히의 조직신학의 체계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6. 틸리히 신학 방법론에 대한 비판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기독교 메시지가 모든 시대,  모든 문화, 모든 상황에 서로 그 타당성을 갖게 하기 위해 기독교 메시지를 주어진 상황에 상관시켜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조정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그는 ‘상관 관계의 방법’을 도입하였고 대립된 모든 요소들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학방법론은 문화신학적 입장에서 토착화 신학을 전개는 방법론으로서 도입될 수 있다. 특히 김경재는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 100년에 형성된 ‘네 가지 유형의 선교신학적 모델’을 해석학적 입장에서 분석한 적이 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 4:1-32)에 기초한 ‘박형룡의 파종 모델’, 밀가루 반죽의 비유(마 13:33 눅 13:20-21)에 근거한 ‘김재준의 발효모델’,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접목의 비유(롬 11:16-18)에 바탕을 둔 ‘유동식의 접목 모델’, 그리고 최후 심판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상응하는 ‘서남동의 합류의 모델’이다.44) 김경재의 분석에 따르면 이 네 가지는 각각 특징과 장단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접목모델을 가장 적합한 새로운 시대의 선교신학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접목 모델은 가다마의 지평융합의 해석학 및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해석학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45)  

 

  그러나 틸리히의 신학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이 행해졌고 약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약점과 비판점은 그대로 틸리히 신학의 상관관계의 방법론을 수용하여 한국문화신학의 방법론으로 삼으로려는 시도에도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틸리히는 자신의 상관 관계의 방법론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틸리히 역시 쉴라이에르마허 처럼 ‘기독교와 현대정신’을 종합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메시지와 상황을 상관시키는데 철저하지 못했고 상황 쪽으로 기울어져 19C 자유주의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보았다. ‘틸리히는 한편으로는 회의와 의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신앙의 전통 사이에 있는 울타리를 걸어가는 사람과 같다’46) 그러나 결국 그는 한쪽으로 떨어졌는데 상황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틸리히에게 있어서 성서적 기초가 너무나 빈곤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학의 자료로써 성서 이외는 교회사, 문화사, 종교사에 더욱 큰 비중을 둠으로써 양편을 공정히 다루는 중재(mediation)의 임무를 공정히 수행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메시지를 상황에 의존시키는 것이나 상황을 메시지에 의존시키는 것을 모두 반대하면서도, 그의 상관방법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에 메시지를 상황에 의존시키고 만 인상을 주고있다. 그의 상관 관계의 방법 자체가 정당하다고 전제하더라도 그는 상관관계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니버가 “그의 신학이 성서를 토대로 하고 있지 않고 존재론적 추리(ontological speculation)에 치중하고 있다”47) 고 비판한 것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다. 계시를 상징화하고 교회의 지배적 언어가 될 수 없는 생소한 철학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비판은 상관관계 자체에 약점이 있다는 비판이다. 바르트는 ‘나는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답변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다고 보지 않지요, 만일 하나님이 플라톤이나 나의 친구 폴 틸리히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라면요’48) 라고 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질문하고 하나님이 대답한다. 하나님이 질문의 주체이며 대답의 주체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 주어야 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답변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49)고 주장한다. “여기서 질문하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 혼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해답을 요구한다”50)  바르트는 틸리히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을 상관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가령 나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식한다면 나는 나의 한계와 나를 한정하는 그분 곧 하나님과 창조를 인식하여야 한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틸리히에게는 창조주와 피조물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인 상관관계일 수 없기 때문에 틸리히는 훌륭한 철학자 이지만 훌륭한 ‘기독교 신학을 저술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51)고 하였다.

 

  바르트는 또한 ‘모든 방법은 임의적(Methodus est arbitraria)'52)이기 때문에 체계와 구조나 조직은 기독교 진리의 생동성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나의 신학방법론으로서의 ‘상관관계의 방법’도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방법론에 입각한 ‘조직신학’은 생동감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바르트는 결국 틸리히는 ‘바벨탑을 짖는 신학’53) 이며 계시의 특이성을 평준화시키는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은 관념적이며, 변증적인 것에 국한되는 한 인간과 하나님의 인격적 관계 및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는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인간의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식은 불가능하게 된다”54)는 것이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한 또다른 비판이다. 관념적인 상관관계는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을 불가능하며 ‘하나님이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분이라는 성서의 하나님과 거리가 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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