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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14
 제목  칼 바르트의 시간이해와 영성
 주제어  [칼바르트]
 자료출처  조현철 박사  성경본문  
 내용

인간이 시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시점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통하여 이 세상의 삶을 마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종교에서는 윤회를 말하기도 하기에 이 세상의 삶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종교들 역시 인간이 개별적 존재로서 시간의 제한성 속에서 가지는 일회적인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기에 인간이 가지는 시간적인 한계성이 윤회를 인정하는 타 종교에서보다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간과 영성의 관계성이 사람들에게 생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장으로서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시간이 영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리 거북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시간에 대하여 칼 바르트는 그의 교회 교의학(Die kirchliche Dogmatik: KD)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기에 그가 말하고 있는 신학적 시간 개념이 가지는 영성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인간에게 시간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면 가장 흔한 대답이 ‘영원’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죽지 않고 영원하시다는 말이다. 일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교회의 부패와 대 사회적인 기독교의 역기능에 중점을 두고 하나님의 죽음,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의 침묵 등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폐기시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아무튼 하나님의 시간을 영원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기독교 내에서는 이의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이해에 심각한 문제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이 인간의 시간과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영원이라는 것이다. 단지 인간에게는 초월적으로, 이 세상 저편에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영원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시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느낄 때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조금 부드럽게 말하면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칼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시간은 무시간적인 영원이 아니다. 물론 인간의 시간과는 구별되지만 인간의 시간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영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시간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으로 설명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우선 관계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선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관계가 있지 않다면 선물을 준다는 행위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은 철저히 시간을 창조하시며 인간에게 시간을 부여한, 인간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영원이다. 이러한 영원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일직선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 내적으로 통합되어 연결되어진 영원이다. 영성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이 무시간적이지 않고 인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2. 인간의 시간이 가지는 특성 하나님이 만드셔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부여하셨던 시간과 현재 우리의 시간은 구별된다. 처음 부여되었던 시간이 하나님 시간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의 범죄 이후 시간은 그러한 유사성이 파괴된 시간이다. 그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의 시간은 기간이 정해진 시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출생으로 시작되며 죽음으로 끝이 나는 순차적인 시간의 일직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이다. 결국 인간의 시간은 시작되어진 시간이며 끝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작되었다는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시작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끝난다는 것 또한 자신이 자신의 시간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시간이 마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시간은 사실상 인간의 소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여한 선물이며 인간은 부여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관리하며 통제하는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과학과 의학의 발전을 통한 생명의 연장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복제 또한 한 개인의 삶을 끝없이 연장하는 측면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현실들이 인간에게 제한된 시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는 자리가 바로 영성의 자리이다. 인간 홀로 설 수 없는 자리,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영성의 자리이다. 따라서 인간의 제한된 시간성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시간을 인식하며 그러한 제한성으로 인해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3. 인간의 시간이 되신 예수의 시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과는 관계없는 무시간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스스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시간이 되기까지 인간과 관계를 맺길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시간은 물론 과거의 시간이다. 역사적 예수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를 단지 영적인 존재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의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예수를 역사적인 예수로만 생각한다면,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었던 존재로만 평가한다면 예수는 현재와 미래에 아무런 관계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예수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과거는 과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미래의 내적 상호 통합 속에 존재한다. 만약 과거의 존재로만 남은 예수라면 지금 이시간 나와는 아무런 관계를 가질 수 없으며 대화의 존재가 될 수 없다. 예수의 시간이 미래의 완성된 시간의 시작이기에 예수의 시간에서 하나님 왕국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채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시간의 본래적인 모습으로 회복시키며 하나님의 시간으로 인간 시간의 한계성을 극복시킨다는 의미이다. 바로 예수 자신을 통하여 이것이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시간이 아님을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셨다. 이는 인간의 시간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다. 예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적인 시간으로 인간의 시간이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수의 시간을 통하여 분명하게 인간의 시간을 취하며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인간의 시간을 영원에 동참시키길 원하시는 하나님, 초월적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이 바르트에게서 강조되고 있음은 영성을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4. 인간의 시간을 재창조하는 성령의 시간 바르트에게 있어서 전통적으로 평가되어지며 강조되어졌던 것은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은 바르트 사고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는 시간론을 통하여 극복되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주제만큼 성령의 역할과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게하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성자를 통하여 인간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면 그러한 가능성을 기초로 죽음 이후의 삶만이 아닌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시간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시간에 동참하며 새롭게 창조되는 시간을 매순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성령의 시간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만약 누군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영원은 자신에게 보장된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죄악에 무관심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그는 그러한 죄악은 영원에 반대되는 인간의 시간에 속한 것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러한 잘못들을 하나님의 영원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말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기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영원한 삶이 보장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누군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산다든지 자포자기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시간이 개입되지 않은 내용들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허무주의의 내용들이 때론 기독교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성령의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시간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재창조한다. 그리스도의 시간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시간에 동참시키며 그 시간으로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게 한다. 단지 미래에 있을 급격하게 영원으로 변혁될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시간을 살게 하신다. 그러한 성령의 요청에 인간들이 반응하길 원하신다. 따라서 성령의 시간 없이 영성을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간 인격적으로 인간을 만나시는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성령의 시간을 민감하게 느끼며 인정하며 받아들이며 그 시간의 요청에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 시간 이해와 영성의 관계 영성을 이해함에 있어서 인간 자신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올바르게 인식함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의 시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영성을 위한 기초가 된다. 인간의 시간을 잘못 해석하면 하나님 없는 인간 중심의 유토피아만을 목적으로 가지게 되든지 아니면 허무주의로 빠져들게 된다. 하나님의 영원을 무시간적인 영원으로 오해하게 되면 인간들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항상 이 세상 건너편에 초월적으로만 존재하는 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러한 초월적인 신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단지 파괴되어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에서 잘못된 종말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이 단지 인간 자신이 만들고 마음대로 통제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성부 · 성자 ·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간이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 이 시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길 원하시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원에 동참하며 살아가길 원하신다는 인식이 바로 영성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르트의 시간 이해는 영성을 위한 중요한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질문 몇 가지 1) 나는 하나님을 인간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저 세상에 무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2)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시간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며 관리하고 있지 않는가? 3)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4) 나는 날마다 나의 시간 속에서 나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영원을 느끼고 있는가?


* 칼 바르트의 시간이해에 관한 내용은 본인의 논문 참조: Der theologische Zeitbegriff bei Karl Barth. Studien zur Bedeutung der Lehre von der Zeit fur die Eschatologie, Erlangen 2000.

 

>> 목차고리 :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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