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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8-14
 제목  기독론
 주제어  [기독론]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제1장 : 서론

Ⅰ. 기독론의 정의, 신학적 위치, 그리고 주제의 차원들

1. 기독론의 정의
기독론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다.” 라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고백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해명하여 밝히기 위한 시도이다. 가장 원초적인 기독론적 도식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고백이라고 일컬어지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8:29)로 단지 자연인으로서의 역사적 인물 예수에 대한 제 삼자적인 탐구의 산물이 아니라 예수라는 실재와의 인격적 만남에 의해 생성된 고백이다. 기독론의 사고의 범주는 신학적이며, 역사적이며, 실존적이며 또한 객관적이며, 신앙적이며, 학문적이다.

2. 기독론의 신학적 위치
기독론은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다.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신론, 성령론, 창조론, 인간론, 교회의 존재와 삶, 이 세상의 역사와 종말에 대한 이해, 성서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되어질 때에만 기독교 성서해석학일 수 있다. 성서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증거 함에 있다. 신학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그리스도 중심성은 관념주의적 기독론이나 역사주의적 기독론에 있어서나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모든 사실들은 기독론이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의 중요성과 중심적인 위치를 잘 드러내 준다.

3. 기독론 주제의 차원들
기독론의 과제로서 다루어져야 할 주제에는 몇 가지 차원이 있다. 전통적으로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져 왔다. 존 매퀴리가 주제화 하여 더욱 세분화한 네 가지의 물음은 “예수는 누구였는가?”, “그는 누구인가?”, “예수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가 무엇을 하는가?”이다. 이는 현재적 그리스도의 현존의 양식에 관한 질문과 과거의 예수의 현실을 향한 질문들인 것이다.
현재적인 그리스도의 인격적 현존과 사역에 대한 교의적 집중이 전통적인 정통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이라면, 그리고 과거의 역사적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자유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이라면, 오늘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실천적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타자 중심적인 인격적 구조 안에 참여하고 그분의 해방시키는 섬김과 희생의 삶과 사역의 길에 동참함으로써 종말론적인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향하여 역사를 변혁적으로 창조하는 것을 궁극적인 기독론적 과제로 인식하는 것은 해방신학의 패러다임이다. 과거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나 현재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해방의 투쟁을 위하여 요청된다. 따라서 기독론은 상호긴장관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세 가지 차원 또는 패러다임의 주제들에 의해서 수행된다. 기독론은 현재적인 신학적, 고백적 신앙과 과거 지향적인 역사적, 학문적 탐구를 통한 앎과, 이것들 위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해방적 실천, 이 세 개의 교각 위에 정립되고 이것들을 통하여 완성된다.


예수님 산상수훈


Ⅱ. 기독론과 구원론

1. 구원론적 기독론
중세교회와 16~17세기의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과 구원사역을 구별하였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기독론은 구원론, 또는 속죄론의 주제가 되는 그리스도의 사역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품격, 인격, 또는 본성을 탐구하는 영역에 국한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는 19세기의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리츨, 바르트 등의 많은 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격과 사업에 대한 인위적인 구분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분리되어질 수 없다. 다만 편의상 그 둘 즉 “그가 누구냐?”하는 물음을 “그가 무엇을 하느냐?”하는 물음과 구별하여 생각할 필요는 있다. 구원론적 기독론의 극단적인 유형은 불트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는가? 아니면 나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가?” 전자는 존재론적 의미규정이고 후자는 실존론적 의미규정이다. 물론 불트만의 입장은 후자이다. 그러나 모든 기독론은 구원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들처럼 기독론을 구원론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는 대립된 입장을 정당하게 고수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판넨버그이다. 그는 예수의 신성을 단지 우리를 위한 예수의 구원의 의미성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를 일방적인 객관주의적, 합리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한 역사주의적 기독론이라고 비판한다.

2. 구원론적 기독론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
기독론에의 접근에 있어서 구원론적인 관점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구원론적 관점으로부터 만의 일방적인 기독론 구성은 자칫하면 인간적인 구원에의 욕구와 열망의 투사가 될 위험성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아니한 의미나 현실에 기초하지 아니한 관념은 공허한 것이다. 기독론(넓은 의미의)은 구원신앙의 역사적 기초인 예수의 역사로부터 출발해야지 예수의 의미성으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많은 신학자들과 기독교인들의 일방적인 공감대이다. 기독론과 구원론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으며 상호순환적인 상관성 속에 하나의 단일한 실재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론적 접근에 있어서 과거의 사실로서의 역사적 예수와 현재의 의미로서의 신앙의 그리스도는 상호순환적 연관성 속에 있는 기독론(넓은 의미의)의 타원의 두 초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기독론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와 기독론적(좁은 의미의) 접근과 현재의 신앙의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구원론적 만남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가? 전자는 주로 역사비평적 연구를 포함한 성서연구를 통한 예수의 역사적 현실의 탐구를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으며, 후자는 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과 성령 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임재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실에의 접근은 그것에 대한 신앙고백적 증언인 성서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역사적 탐구자도 신앙의 눈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케리그마적 선포와 신앙적 응답은 역사적 현실에 기초한 성서의 증언에 근거하여 의존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은 상호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상호교정적인 순환관계에 있다.


Ⅲ. 기독론의 방법

1. 고전적 기독론 방법
고전적으로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 즉 신성에서 인성으로의 기독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독론의 방법은 연역법적이다. 고전적 기독론의 역사적 맥을 살펴보면,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들의 신약성서에서 발원하여 고대, 중세, 종교개혁, 개신교 정통주의를 거쳐 현대의 칼 바르트와 초기의 에밀 브룬너 등의 변증법적 신학자들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런 방법론으로 기독교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단도직입적으로 강력하게 선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신앙의 응답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불러일으켜 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고전적 기독론은 다음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비판되어질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오직 ‘아래에’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며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둘째, 육신을 입으신 로고스가 아닌 육신이 없는 로고스로서의 계시 이전의 하나님, 즉 숨어 계신 하나님은 단지 사변적인 하나님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적 기독론은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를 인간의 역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역사적이고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만듦으로써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와 삶의 모습이 아니며 신적 존엄성과 영광에 모순된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따라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판넨버그의 지적대로 특히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그 당시의 유대주의와 전승사적 관련성이 여기서는 간과되어지기 쉽다. 넷째는 믿음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의문으로서, 케리그마와 믿음 속의 그리스도가 실제로 갈릴리와 유대 땅을 거닐었던 예수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근거에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한 믿음은 주관적 환상이나 전통 속에 화석화되어 버린 교조주의적 도그마일 수 있다.

2. 현대적 기독론 방법
현대의 기독론의 방법은 대체로 ‘아래로부터’ 위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신성으로 나아가는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 방법은 귀납법적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아니하고,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그분의 삶, 사역, 죽음, 부활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통하여 종국적으로 성육신 사건과 신성의 고백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고찰함과 아울러 그 신학적 의미와 타당성을 숙고한다. 귀납적인 기독론은 크게 두 가지의 근본적인 가정 위에 서있는데, 첫째는 인성과 신성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으며 이 연속성 때문에 인성에서 신성으로 옮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두 번째로, 귀납법적 기독론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관심을 복음서에 묘사된 인간 예수에게 모아졌는데, 이들은 역사의 예수 위에 기독론적 상부구조을 세우기 위한 기초인 하부구조로서의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역사적 모습을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의 가정은 각각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첫 번째 가정은 위가 존재론적으로 아래에,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윤리적 의미에 종속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근본적으로 이미 역사 안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관념적으로 투사하여 확증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두 번째 가정은 복음서 설화들의 형태에 대한 역사비평적 탐구의 결과, 이들 설화가 기독론 형성 이전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안에서 기록된 초대교회의 증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신학자들이 찾아 그려보고자 했던 “역사적 예수”의 상은 성서의 설화들로부터 재구성해 내기 어려운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기독론적이었다. 슈바이처에 의해 결정적으로 초래된 19세기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퇴조는 불트만의 양식사 비평으로 인한 성서의 사실성에 관한 심각한 회의주의로 인하여 더욱 가속화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득세하였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말씀의 신학과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해석은 위로부터 기독론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에 들어서서 케제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후기의(변화된) 에밀 브룬너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잘 대변하고 있다. “예수 인식의 길은 인간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께 이른다.”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에 따라 기독론을 전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판넨버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스킬레벡스의 해석학적 표현을 빌면 구원의 제공과 그리스도인의 응답이라는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

3. 통합적, 통전적 기독론 방법
그러므로 바람직한 통전적인 기독론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상호배타적이고 모순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파악하며 양자를 비판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론에 의해 가능하다. 오늘날 기독론의 접근방식에 있어서 연역법적인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부활의 주님으로서 오늘 교회의 설교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삶과 역사의 현장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고 그 길로 인도해 주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귀납법적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성서 안에 그려진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나사렛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고침과 이적을 행하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지상의 예수의 모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두 가지 기독론적 접근방법이 상호순환적으로 통합되어질 때, 올바르고 통전적인 기독론이 구성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 연역법적이냐 귀납법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조화롭게 종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적인 접근방법은 또한 “미래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의 방법에 의해 보완되어져야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변혁적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말미암는 실천적 기독론이다. 기독론적 과제는 미래의 인간 실존과 세상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변혁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실천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지 역사적 현실을 아는 것만도, 성육신 교리를 아는 것만도, 또한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만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더불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연대성으로부터 삶의 “바닥”에서 창조적인 변혁과 구원의 “미래를 향한” 실천적 행동과 헌신의 결단을 기독론의 출발점과 궁극적인 목표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온전하고 통전적인 기독론의 이론과 실천을 지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제2장 : 성서의 기독론

Ⅰ. 성서의 중심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성서해석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며, 동시에 신구약성서가 지향하는 초점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본질ㅈ거인 차이가 아니라 관리기능적 차이이다. 성서를 해석하고 신학적 과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영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말인 성서의 문자 안으로 성육신하신다.


Ⅱ. 기독론의 역사적 맥락
제자들은 예수를 히브리 민족과 유대교의 맥락 안에서,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적, 종교적 전통 안에서 개념과 사상적 틀거리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로부터 예수에 대한 기독론적인 신앙고백을 위한 신앙과 해석의 근거를 발견하였다. 정치적 제왕으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기대를 반영하는 구약의 예언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자들의 신앙고백적 해석이 직선적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구약의 계약과 기대와 예언들은 신약성서 기자들의 기독론적인 해석을 위하여 모종의 변화와 의미의 전환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구약의 메시야 사상, 지혜, 고난의 종 등의 칭호들과 더불어 헬라문화의 로고스, 구주 등의 칭호들을 개념적, 은유적 도구로 삼아, 그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체험했던 예수와의 만남의 경험에 대한 기억의 빛 안에서 기독론적인 이해와 해석을 발전시켰다.

Ⅲ.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기독론적 칭호들

1. 메시야, 그리스도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는 구약 히브리어의 ‘메시야’의 번역으로 메시야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본래 왕을 가리켰다. 구약에서 이어 내려오듯 예수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신의 대리자로서의 이상적인 정치적 왕에 대한 것이었다. 제자들은 승리의 상징인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 명칭을 어떻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 적용시킬 수 있었을까? 보른캄은 예수는 실제로 자신의 존재와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야적 기대를 일깨웠으며 자신이 약속된 구원자라고 믿는 믿음을 불러일으켰음이 틀림없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2. 인자
예수께서 즐겨 사용하신 ‘인자’라는 용어는 구약에서 사람의 아들로 일반적으로 단순히 인간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니엘 7:13-14에서는 인자는 묵시적 종말에 새로운 시대를 가져올 신적인 천상의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신약에서 인자개념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가리키는 비공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졌다. 예수가 스스로 인자라고 불렀을 때, 인간적 존재의 의미로서 사용했는지 아니면 초월적 천상의 인물의 의미로서 사용했는지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가 인자명칭을 사용함에 있어서 특이한 특징은 그가 자신의 굴욕과 고난을 인자명칭과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그리스도의 낮춤, 겸비와 높이 들리움, 영광의 상태에 관한 기독론의 두 상태의 교리로 발전되었다.

3. 하나님의 아들
구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명칭은 천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헹엘은 이 용어가 보다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 다윗 왕과 그 계승자들, 그리고 미래의 메시야적 통치자들. 이런 의미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은유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계되어 있는 품성적, 인격적 명칭으로 이해되어 왔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람 이상으로서 믿어지고 고백되어져 왔다. 즉 그는 단지 기능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4. 지혜화 말씀, 로고스
지혜를 의미하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호크마’는 평범한 일상용어로 차츰 윤리적, 종교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고, 마침내 율법,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그 개념이 발전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잠언과 같은 지혜문서 안에서 이 지혜의 개념은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요한복음에서 ‘말씀’이라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의 근원은 헬라철학의 헤라클리투스에게까지 소급된다. 이 헬라의 로고스 개념을 유대주의의 사상과 결합시켜 보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였다.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가장 성공적으로 기독교의 신학적 사상을 로고스의 언어적 개념으로 재해석했던 사람이다. 육신을 입고 세상 안에 들어오신 “선재하는 창조적 능력”과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한 요한의 로고스 기독론은 독창적이고 독특한 기독교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기독론이 후대의 서구의 기독교 교회의 정통주의 기독론 정식을 위한 규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5. 주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야웨 대용으로 ‘아도나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다. 이는 헬라어로 ‘주’(퀴리오스)로 번역했는데 이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보다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님과의 동등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칭은 기술적(記述的)표현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함께 함축하는 실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6. 야웨의 종, 하나님의 종
이사야 후반부의 “야웨의 종”은 고난을 당하는 주의 종, 즉 고난의 종을 의미한다. 이 개념에는 메시야의 고난, 죽음과 더불어 종국적인 승리와 영광이 함께 내포되어 있어서 예수가 자기 이해를 위해 사용하기에 적합한 칭호였다고 보여진다. 이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주된 주제로 발견되면 특히 바울의 풍부한 기독론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 중 하나이다.

7. 구주
구약에서 ‘구주’에 해당하는 명사는 ‘모쉬아’ 즉 ‘구원자’라는 하나님의 별칭으로 나타난다. 신약에서도 이 명사는 여전히 직접 하나님에게 또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백성들을 구하도록 세워진 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기독교 초기부터 구주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칭호는 특히 후기 문서인 목회서신에 많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구주’라는 칭호는 헬레니즘 전승층의 기독론 명칭이라고 여겨진다.

8. 하나님
신약성서 안에서 예수는 간접적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한 주님으로 칭송되어졌지만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거의 하나님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예는 도마의 고백(요20:28), 요한복음 서두(요1:1), 히1:8 등이 있다.

신약성서에는 이상 살펴본 기독론 칭호들 외에도 대제사장, 예언자, 선생, 다윗의 자손, 나사렛 사람, 마지막 아담 등의 다양한 명칭들이 예수를 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제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기독론의 내용과 특징들을 좀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Ⅳ. 신약성서의 기독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즐겨 부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직분명칭으로가 아니라 고유명칭으로 사용하였다. 바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결합한 통전적인 기독론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단지 자신의 개인의 주가 아니라 온 우주의 주로 고백함으로써, 우주적 기독론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바울의 기독론이 비교적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지만 바울의 기독론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은 순수한 역사적 사실들이라기보다는 그의 신학적 사고구조 속에서 해석되어진 역사들이다. 비의도적이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시작한 기독교의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적 해석을 유대적 기독론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책들은 공관복음서이다. 신약성서의 헬라적 기독론은 요한의 기독론에 의해 대표된다. 그의 사상은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상호배타적으로 이해하는 헬레니즘이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는 대조적인 요한 자신의 독특한 기독교적 사상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유사점보다는 차이점들이 더 두드러진다.
신약성서 안에는 다양한 기독론적 은유들과 상들과 명칭들과 접근방식들이 나타난다. 바울의 둘째 아담론,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킬 메시야(그리스도)로서의 예수론, 특히 마가의 이적 행위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상과 마태의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요한의 영생을 가져오는 선재 로고스 기독론,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 에베소서의 우주적 화해자 기독론, 요한 계시록의 영광의 어린 양 기독론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러한 은유와 개념과 칭호들은 서로 쉽사리 조화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어느 하나만 옳고 다른 것은 그르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느 하나만 규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것들은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과 다원성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보다 풍요한 인식과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제3장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예수의 생애의 과정과 그의 사역의 지리적 배경, 탄생년도와 장소에 대해서는 단지 윤곽만 파악될 뿐 상세한 것들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특히 탄생년도는 B.C. 4년경이라는 가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동정녀 탄생은 기독교 교회의 전통에서 성육신의 신비를 설명해 주는 유일한 길로 믿어왔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서 성서비평학이 발달되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브룬너와 달리 처녀 탄생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강조하였다. 성육신은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바와 같은 성령으로 잉태된 동정녀 탄생설화는 그 역사적 사실성에 관한 논의는 불투명한 안개 속에 있지만, 그 이야기 자체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확보를 의도하는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증하기 위한 신학적 해석은 바울과 요한에게서 성육신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바울의 성육신 사상은 갈라디아서와 빌립보서에 잘 나타난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라는 사상과 현실이 오직 그 선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빛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되어질 수 있듯이, 예수의 인격과 활동은 그가 선포하고 실천한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성 안에서만 파악되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하나님 나라는 서로를 해석해 주고 조명해 주는 해석학적 순환관계 안에 있다. 특히 공관복음서의 공통적인 관점과 지배적인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러므로 공생애 동안의 예수의 존재론적 인격과 실천적인 모든 사역은 하나님 나라라는 일관된 주제의 빛 안에서 조명되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통치는 무력적, 혁명적 정치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가난하고, 고난당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자기 희생적 사랑과 섬김을 통한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강제적인 지배의 통치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통치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를 위하여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는 통합적 또는 종합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객관주의가 십자가를 단지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과 영예의 회복을 위한 배상 또는 속성으로서의 인간의 사건으로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거절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유화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사건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학은 본질적으로 십자가의 신학이다. 십자가는 단지 절망이거나, 부활을 기다리며 부활로 가기 위한 전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의 힘이며 부활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현실성과 이에 근거한 기독교 부활신앙의 구원론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는 자들의 부활을 위한 보증이 된다는데 있다. 종말론적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의 궁극적 완성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 새로운 변혁과 생명의 시작을 가져왔다. 진정한 부활의 신앙은 단지 예수의 부활의 현실성과 그에 대한 기독론적, 구원론적 의미를 신앙 안에서 인지적으로 믿느냐 아니냐의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참다운 부활의 신앙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의 개인적 삶의 실존과 사회 정치적 차원의 역사적 현실 안에서, 그리고 자연적 우주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변혁을 위한 실천에 참여하느냐 않느냐하는 윤리적 결단의 문제이다. 부활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의 영광이며,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부활의 영광을 향한 소망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실천적인 용기와 힘을 얻는다.



제4장 : 초기 교회에서의 기독론적 해석의 발전과정에 대한 하나의 역사
비평적 접근

최초의 사도들의 케리그마가 예수의 선포와 일치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하여서는 여전히 신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우리는 불연속성과 함께 연속성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원시교회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론적 해석을 명시화하고, 복음을 전파하게 된 직접적인 배후에는 무엇보다 먼저 부활현현 체험사건과 성령강림 체험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사후에 초대교회 삶의 자리에서의 부활과 성령체험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적 해석을 가능케 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의 지상생에 대한 기억들에 근거한 고백적인 해석들이 이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부터 다양한 형태로 형성되고 존재해 왔다. 스킬레벡스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기독론의 유형에 있어서 네 개의 신조적 모델들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마라나타 또는 파루시아 기독론, 신인 기독론, 지혜 기독론, 그리고 부활 기독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단지 예수의 메시지나 부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킬레벡스에 따르면 이상과 같은 초기교회의 네 가지 기독론의 모델 중에서 성서적 파샤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대속의 죽음, 부활을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초기 신약시대 이후 점차 교회의 신앙고백의 신조와 규칙으로서 규범화되어 갔다. 스킬레벡스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는 역사적으로 메시야 사상이 형성됨과 더불어 그에 대한 세 가지 사상적 해석모델이 존재해 왔다고 한다. 첫 번째 모델은 종말론적 예언자, 또는 ‘마지막 때의 예언자’로서 ‘성령이 충만한 자’로서의 모델이다. 두 번째 유대적 모델은 마지막 때의 메시야적 다윗의 자손 모델이다. 세 번째는 인자개념이다. 스킬레벡스는 신약성서 안에서 “예수의 신학”이 기독론으로 변천되어 가는 모든 과정과 그 이후 교부시대에서의 기독론의 형성, 전개의 과정은 불가피성에 의한 것이었다기보다는 하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니케아 이후 오직 요한적 모델만이 규범적이 되어 기독론의 역사를 지배해 왔으며, 공관복음서 모델들 안에 내재해 있는 가능성들은 개발되지 않은 채 잊혀져 왔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삶은 니케아 기독론과 이 기독론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요한 복음적인 기독론의 선택으로 인하여 간과되어 왔던 본질적인 측면들을 치유하고 보완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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