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청동기 시대의 등잔은 토기 조각에 동물성 지방을 이용하여 태우는 원시적인 것들이었고 중기 청동기 I시대(서기전 2250-2000)부터 본격적인 별도의 용기로서의 등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등잔은 심지가 나오는 아구리가 사방으로 네 개인 사각 등잔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중기 청동기 II시대(서기전 2000-1550)부터는 납작한 접시형 토기에 가장자리를 약간 구부려 놓음으로써 심지를 꽂게 하였다.
구약 시대의 등잔류는 이러한 아구리의 찌그러진 정도에 따라 그 시대가 판명된다. 즉 후대로 내려올수록 아구리 부분이 점점 깊이 패이게 되어 전체적으로 마치 조개같은 모습을 띄게 된다. 특히 서기전 700년경부터는 등잔 바닥이 더 이상 둥그렇지 않고 받침대가 첨가되어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고체인 동물성 기름이 아니라 올리브유 같은 액체의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페르시아 시대(서기전 539-332)부터 납작한 접시 모양이 뚜껑이 있는 원통 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청동제 등잔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마카비 시대(서기전 154년 이후)의 등잔은 그 크기가 매우 작고 심지 아구리가 그 이전 시대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신약 시대에는 등잔이 많이 필요하게 되면서 더 이상 하나씩 손으로 빚어 만들지 않고 돌판을 파서 만든 두 개의 틀(mold)에 진흙을 눌러서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따로 만든 다음 둘을 이어서 뚜껑이 있는 등잔들을 만들었다. 이 때 여러 종류의 무늬와 문자의 기록들도 틀에 새겨서 등잔 표면에 나타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