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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7-30
 제목  집시민족의 기원에 대하여 -루마니아를 중심으로
 주제어  
 자료출처  루마니아 소망교회  성경본문  
 내용 집시와 로마의 어원

집시와 로마의 어원
집시는 그들의 삶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여러나라에서 각각 다르게 불려지고 있다. 러시아어로는 찌가니, 루마니아어로는 로미노르혹은 (찌가니), 불가리아어로는 찌가닌, 폴란드에서는 Ciganie, 독일과 네델란드에서는 Zigeuner, 스웨덴에서는 Zinenaren, 이탈리아에서는 Zingari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집시 (Gypsy)는 아마 알바니아어의 'Evgjit', 또는 그리스의 'Ejiftos', 'Giftoi', 마케도니아어 'Egyuptsi', 스페인어 'Gitanos' 등등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보흐미안,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사라신 등으로 불리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집시라는 단어의 기원은 최초로 집시가 유럽에 도착했을 무렵으로 올라간다. 집시를 최초로 본 유럽인들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외모 역시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어떤 집시들은 스스로를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이들을 라틴어식으로 하자면, '에집션(?)' (이집트인) 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차츰 '집시'로 불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확인할 만한 문헌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시들은 자신들을 그들의 언어로 롬이나 로마로 부른다. 롬이나 로마는 집시어로 남자나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들의 언어적 기원이 산스크리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집시의 지역적인 기원인 인도북서부를 가면 아직도 사람이나 민족을 일컬어서 '돔 (dom)'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초기에 집시 자신들은 그들을 사람이라는 뜻으로 '돔 (dom)'으로 불렀으나, 다른 언어와의 교류속에서 이는 변화하게 된다. 즉, 산스크리트어에서는 d의 발음이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혀말린 음의 'd'의 발음이 'r'의 발음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전 어휘에 걸쳐 일어난 변화이다. 이후의 집시들은 그들이 속한 언어문화권에 따라서 dom, lom, rom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롬이나 로마는 그들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민족의 명칭으로서 사용하고 있다. 집시 자신들은 그들을 집시라고 불리우는 것을 대체로 싫어한다. 집시라는 단어는 인종차별적이고, 명예를 훼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대해서, 국제 집시 연맹는 그들 자신의 명칭을 통일 시켰는데, 그것은 rrom, 혹은 rroma, rromani 로 통일해서 공식적인 서류나 회의석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명칭이 이탈리아의 로마의 명칭이나, 루마니아라는 나라와 혼동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r을 두 개 겹쳐쓰게 된 것이다. 결코 롬이 로마나 루마니아와는 상관없기 때문에. 그리고 1995년 11월, 유럽의회에서는 국제 집시 연맹의 권유에 따라서 그들의 공식 서류상에 있어서 rroma의 사용을 승인하였다.
그래서 이 사이트에서도 국제집시연맹이 정한 바와 같이 로마로 통일해서 호칭해야 하지만, 읽는이에게의 의사소통을 우선으로 해서 집시를 쓰기로 하고, 언젠가 이 rroma가 집시를 뜻한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곧 사이트의 모든 집시라는 어휘를 다시 rroma로 통일하도록 하겠다.

집시의 민족적 기원
집시에 대한 연구
우선, 현재 가장 정확한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집시의 인도 기원설은 1763년 헝가리 출신의 신학생 쉬테판 발리가 비엔나의 한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그는 네델란드 라이덴에서의 학생시절, 인도에서 온 세명의 힌두교도와 사귀게 되는데, 그는 이들 말이 자기 고향의 집시언어와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약 1000개의 발음을 받아적어 고향에 사는 집시들에게 보여주자 이것을 이해하더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신문에 기고했는데, 이후 언어학자 그렐만이 집시의 언어를 수집해, 산스크리트어 및 다른 인도어와 비교연구를 해서 집시들의 기원이 인도 북서부의 펀잡지방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그 연구결과에 의하면, 숫자나 친족과 관련된 단어, 신체구조를 나타내는 단어나 행동 등등을 나타내는 언어에 있어 집시와 인도어, 힌두어와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집시들의 인도 기원설에 대한 이견들

사실 여기까지만 확실한 것이고, 그들이 왜 인도의 펀잡지방 (북서부지방)을 떠났는지 부터는 정말 많은 학설이 분분하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의 인종적인 편견과도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뚜렷이 이 두 입장이 대별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구분은 순전히, 내자신의 자의적인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이 두입장간에는 대체로 11세기에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데에는 동일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동한 원인과 그 구성에 대해서는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집시 출신의 학자들은 11세기 이전의 집시 기원설, 그러니까 1차 이주(5-6세기), 2차 이주(7-8세기) 등에 대해서 대단히 적대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1차, 2차 이주를 운운하는 것은 집시들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과 멸시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대별되는 두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집시출신 학자들의 의견
집시출신의 학자들 역시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11세기에 인도 북서부 펀잡지방에서 기원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종적인 구성이나 그들이 가진 성격 면에서는 유럽의 학자들과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 잠시 집시사회의 모태가 된 인도사회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에서는 이미 B.C.1500-B.C.1000 년 경 사이에 카스트 제도가 완비된다. 이 카스트 제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시대별로 그 형태를 달리 했지만, 대체로 4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군사와 정치 귀족 신분) , 바이샤(서민), 수드라(노예계급) 등의 4계급이 주된 뼈대를 구성하고 있고, 이들의 신분차는 현재까지도 대단히 극심해서, 이주영역이나 혼인제도에 있어서도 많은 사회적 구속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계급 집단은 대단히 폐쇄적이고, 몇천년간 유지해온 탓에 그 인종적, 문화적 차이는 현재까지도 대단히 심하다.
그런데 11세기경 펀잡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구르자라 왕국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라즈프트 연맹하에 있었다. 이 사회는 전사와 지주들의 카스트로 이뤄진 사회였다. 이 커스트 제도에 의해서 부양하는 계급은 일꾼과 노동자, 노예들 등등으로 이뤄졌다.
이를테면, 이런 피지배계급 중 어떤 사람들은 농부로서 가축을 기르거나 농경에 종사함으로서 말을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만들어 전사계급에 바쳤다. 또 어떤이들은 전사들이 사용할 창과 방패를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의 역할을 하고, 세탁이나 연예, 수공업등에 종사하였다. 이들이 모두 하나의 사회권을 유지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또한 하위 카스트에 소속된 사람들은 상업에도 종사했는데, 이것은 마누법으로 불리우는 힌두교의 종교 교리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하나의 카스트에 소속되면 카스트에 속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종교교리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시들이 과거 유럽에서 각각의 가정들이 특정한 기술을 한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예를 들어 음악이나 말교역, 벽돌만들기, 구리, 대장장이 등등의 특정직업을 한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전수시켜준 이유가 된다.
또한 현재 집시사회와 관련해서, 이 나라에서 민중이나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돔바'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위에서 밝히 바와 같이 집시를 나타내는 로마나 롬의 어원이 된다. 그 나라에서는 왕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그리고 선출된 왕은 일체의 책임을 갖고 국사를 책임지게 되는데, 이점은 현재 집시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이동하며 사는 집시들은 4-5가족이 한 그룹을 형성하고,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해서 그에게 일련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의 모태가 된 것이 구르자라 왕국과 카스트제도인 셈이다.
한편 11세기 무렵 시아파 중심의 이슬람세력이 인도 북서부 지방으로 세력을 넓힌다.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지방에 셀주크투르크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 왕국이 건설되었는데, 이들은 곧 인도 북서부 지방으로 침공해 들어왔다. 그리고 이들은 구르자라 왕국과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구르자라 왕국은 이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몇세기 전부터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사회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던 아리아계를 제외한 모든 인종을 포괄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는 인종 뿐만 아니라 언어조차도 틀렸다. 어떤이들은 로하르어와 구야르어를 사용하고, 어떤이들은 탄다스어, 라이푸트어 등을 사용했는데, 이들 중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동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주로 이슬람의 탄압에 도망쳐 나온 사람들로 인도에 와서 다시 이슬람 세력과 대결하려 했던 것이다.
11세기에 이슬람의 장군, 무하메드 가즈니가 침공해 왔다. 이는 곧 집시의 이동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두가지 학설이 갈리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막기위해 구르자라왕국은 전사와 그들의 병참업무를 담당할 하층민중을 함께 히말리아산맥을 넘어서 파견했는데, 그들은 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계속 서쪽으로 진군해가서, 결국 세대가 지나감에 따라서 유랑하는 집시가 되었다. (그들의 나라가 이미 망해서 돌아갈 고국은 없어졌으므로).
두 번째 학설은 1192년 까지의 끊임없는 이슬람의 공격으로 구르자라 왕국이 파괴되어 그 유민들이 동서남북으로 떠돌다가, 중국으로 유입되기도 하고, 남부 인도로 유입되기도하고, 흘러흘러 유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집시의 기원이 되었다는 학설이 그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이 학설에 의하면, 집시들은 먼저 카슈미르에 도착해서, 페르시아로 향하는 실크로드를 타고, 페르시아제국에 머무르다, 흑해 연안의 제국(트레디 제국(?))과 비잔틴 제국에까지 유입되기에 이르렀다.
이쯤되자, 인도지방에서 살고 있을때의 카스트제도는 붕괴되었고, 부족이나 카스트나 인종들이 혼합된 새로운 그룹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전 집시부족을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집시의 전신이 되었다. 이 사회에서 특징적인 것으로는 사람들중 다수를 구성했던 평민들이 주도권을 쥐게되었다는 점이다. 왜냐면 그들은 인도를 벗어나고 나서는 무능해질 수 에 없는 전사계급이나 사제계급과는 달리 그들의 기술과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고향을 떠나서 유랑하는 생활중에 실리적인 직업과 기술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이런 경향은 그들의 직접적인 생존권을 위해 점차 이미 정착한 타민족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나, 기술제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남의 미래를 점쳐준다거나, 대장장이 기술을 발휘해서 농기구를 고쳐준다거나, 무용이나 음악을 통해서 유럽의 농노들에게 유희를 제공함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점차 이런 기술집단은 그들 집단전체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이들은 오늘날 집시의 모태가 된다.
그들의 문화적인 특징은 이런 역사의 특수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의 가설에 가깝다. 15세기 이전에 집시에 대한 기록된 문건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이러한 추측은 인종적이고, 혈연적인 연관관계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고, 집시언어의 영향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이뤄진 것이다. 즉, 각 지방에 분포해서 사는 집시들의 언어를 서로 비교함으로서 (집시간에도 공통된 언어는 없으니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한 시기를 추측하거나, 그들 집단의 성격을 역추적한 결과이다. 또한 혈액형과 유전자 조사를 통해서, 집시들과 현재 인도의 크샤트리아 계급 (전사계급)과 대단히 유사서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실은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이주해간후 몇십세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시가 유럽에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에 유럽에 나타나서 유럽인들이 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그들 자신도 이것에 대해 확실한 답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유럽인 역시 당시에는 중동에서온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곡예사나 마술사, 주술사, 음악가, 춤꾼, 연금술사 등에 대해서 대충 이집트인(에집시언)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2. 유럽학자들의 의견

유럽학자들은 계속해서 11세기 이전에도 몇차례나 집시들의 이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서 집시출신의 학자들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으로 볼때에도 역시, 집시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이 들어있다. 유럽의 학자들은 그들의 기원이 하층민이기 때문에 춤과 음악에 능숙하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가지 집시들을 폄하하는 논조의 학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대충이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중세 유럽에 집시가 처음에 나타났을 때,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함(HAM)의 자손이거나, 또는 성경속에 나오는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되기 이전에 그곳을 빠져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집시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도망온 유목민과 로마제국의 후손이 섞여서 생긴 혼혈족라고도 생각했고, 가장 보편적인 주장으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 일화에 의하면 처음 집시들이 서유럽에 나타났던 얼마동안은 집시들은 매우 환대받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집시들이 서유럽사람들에게 존경심을 사기 위해 자신들이 소이집트에서 온 독실한 기독교인들로서, 소이집트가 사라센인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개종을 했다는 이유로 교황이 자신들에게 7년간 떠돌아 다니도록 벌했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일종의 순례를 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신자들과 성직자들은 집시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대는 얼마가지 못한다. 집시들은 방랑생활중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자, 인심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이후 집시들을 추방하거나 잔혹한 살해가 계속되고, 국왕에 의해 추방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특히 마녀사냥이 극심한 시기에는 생매장이나 화형을 통해서 집시들이 살해된다.
집시가 인도를 떠나 전세계각지로 퍼지게 것은 몇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기원후 5-6세기로 이때 중앙아시아로부터 훈족의 공격을 받은 인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자, 굽타왕조가 멸망하고 도시가 파괴되고, 농업이 침체하면서, 기아 및 질병의 만연으로 대량으로 고대 인도를 떠난 시기 이다.
두 번째 이동은 7-8세기로 인도가 아랍인들에 의해 침공에 의해 사회, 경제적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권진 교수의 논문에 근거하는데, 시대추정이 약간 틀린 것 같다. 아무래도 11세기를 약간 혼동한 듯 하다.)

집시들의 첫 번째 이주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인 피르두시가 쓴 [왕들의 책]이라는 서사시에서는 집시유랑에 대한 기원에 대한 서사시에서 다음과 근거한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세기경 페르시아의 왕이 인도의 왕에게 자신의 백성을 즐겁게 해줄 음악사들과 광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인도의 왕은 1만명의 남녀노소의 악사를 보냈고, 페르시아 왕은 이들을 무척 반겼다. 페르시아 왕은 집시들의 각 가족들에게 소와 당나귀 한 마리씩과 곡식(종자용)을 주어서 지방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고, 그들이 한가할 때 무료로 주변의 백성들에게 연주하여 즐겁게 해주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집시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페르시아의 왕은 일년 후에 그들을 다시 모았다. 그런데, 집시들은 이미 종자용으로 준 곡식을 다 먹어치웠고, 가축 역시 식용으로 전부 먹어치웠다. 화가난 왕은 집시들에게 자기나라에서 떠나라고 명령했고, 후로 집시들은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이런 관점은 아무래도 집시에 대한 일종의 인종적인 편견이 숨어있다. 그들이 원래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일삼았다는 둥, 생계를 꾸리라고 준 가축과 곡식을 몽땅 먹어치웠다는 둥, 원래부터 그런 인종으로 규정하는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보다는 그들이 현재의 이런 직업과 지위를 고대 인도사회의 카스트제도나, 그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보는 집시출신 학자들의 견해가 오히려 집시를 이해하는데 타당할 것 같다.


3. 종합해 볼 때

위와 같은 유럽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집시출신의 학자들은 증거와 맞지 않는 학설이라고 부정한다. 그들은 집시언어 분석을 통해 그들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어에 바탕을 둔, 언어라는 것을 밝히고 (예를 들자면, 벵갈어나 힌두어 와 같이 말이다.) 집시 언어는 이런 언어와 같은 발전을 해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언어적 증거를 통해서 보자면, 집시어가 11세기까지는 이런 언어들과 같이 발전해왔고 이후의 발전에 있어서는 집시어와 인도어는 상당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벵갈어나 힌두어의 경우는 인도에 남아있었기에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집시어는 언어적 혼혈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집시들은 11세기에 인도를 떠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일 집시의 어떤 그룹이 500년 전이나 후에 인도를 떠났다면, 현재의 집시언어와 인도의 언어간에는 지금과는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여하간에 그들은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인도에서부터 이미 다르게 형성된 인종이 섞여있었고, 또한 차츰 그들의 고향과 멀어짐에 따라 그들 자신의 인종적인 자의식을 잃게 되었다. 또한 언어와 혈연적인 혼혈을 통해,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언어와 인종들에 혼혈되어 서로 다른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곳 루마니아 살고 있는 집시만 약 3백만이 살고 있고 왕족과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살고 있는모습이 아주 편만하게 다르다. 루마니아는 앞으로 집시문제가 가장 사회 문제로 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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