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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7-30
 제목  간추린 루마니아 역사 8. 루마니아의 통일 전쟁
 주제어  
 자료출처  루마니아 소망교회  성경본문  
 내용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국가들의 국경선을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당시 루마니아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세계대전을 맞이하였고,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처음에 루마니아는 이탈리아처럼 중립을 선언하였다. 루마니아가 중립을 선언한 것은 전쟁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3국 열강은 루마니아에게 바사라비아 지방과 부코비나 지방을 주겠다고 약속하였고, 반면에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루마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든 지역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1914년 10월 10일 카롤 I세가 죽고 난 이후 카롤의 손자인 페르디난드 I세가 즉위하였다. 페르디난드 I세는 카롤과 같은 정치적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내인 마리아 Maria와 자유당의 당수인 브러티아누 I. C. 의 영향하에 있었다. 당시 마리아와 브러티아누는 3국 협상을 지지하고 있었다.

루마니아는 연합국이 제안한 약속을 문서로 공식화 할 경우에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공포하였다. 이렇게 하여 6월 17일 부쿠레쉬티에서는 루마니아와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사이에 협상이 체결되었고, 1916년 6월 28일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독일에게는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루마니아 군대의 군사 장비는 열악하였고 전쟁을 한 경험도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을 선포한 첫째 날 카르파치 산맥을 지나 브라쇼브를 점령하였고 그 이후 시비우까지 진격하였다. 루마니아 남부지역에서는 불가리아가 독일의 지원을 받아 실리스트리아 와 콘스탄짜 그리고 체르나보드 를 점령하였다. 당시 러시아는 헝가리와 부코비나 지방으로 진격하겠다고 루마니아에게 약속을 하였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장군이 이끄는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의 연합군은 지우  지역에 설치한 루마니아의 방어선을 뚫고 크라이오바 를 점령하였고 12월 6일에는 부쿠레쉬티를 점령하였다. 따라서 루마니아 정부는 이아쉬 로 후퇴하였다. 루마니아 북부지역에서 오스트리아-독일 연합군은 루마니아의 에레미아 그리고레스쿠  장군의 저항으로 카르파치 산맥을 넘지 못하였다. 하지만 12월 말경 루마니아 영토의 2/3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그리고 터키 군대에게 점령되었고 이들 군대는 독일의 원수인 막켄센의 지휘하에 있었다.

1917년 봄 루마니아는 프랑스의 장군인 베르텔로Berthelot의 지원으로 군대를 다시 조직하였다. 같은 해 여름, 루마니아 군대는 막켄센이 이끄는 군대를 저지하였다. 전투는 머러쉬티와 머러쉐쉬티 그리고 오이투즈 Oituz에서 치러졌다. 사실상, 루마니아 군대는 위에서 언급한 이 이끄는 군대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러시아 군대는 대패하였다. 1917년 12월 3일 러시아의 장군 스쩨르바체프는 독일과 휴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 루마니아도 독일과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적 은 다름 아닌 러시아 군대였다.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고 난 이후 러시아 군대는 몰도바 지방에서 철수하면서 수많은 건물들을 파괴하면서 온갖 약탈과 만행을 자행하였다.

1918년 5월 7일에는 부쿠레쉬티에서 러시아와 삼국동맹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고, 루마니아에게는 불리한 조건들이 부과되었다. 따라서 루마니아는 도브로제아 지방과 석유, 밀 그리고 목재를 양도해야 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유리하게 설정된 카르파치 산맥의 국경선을 인정하였고 또한 오데싸 로 진격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가 카르파치 산맥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상황이 루마니아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지만 루마니아는 바사라비아 지방을 통일하는 한 가지 행운을 얻었다.

1916-1917년 사이에 루마니아는 러시아에게 문화재를 맡겼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환 받지 못하고 있다.

1917년 10월 18일 카롤 황제는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연방국가로 변경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연방국가로 되기 이전인 10월 12일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루마니아 국민당은 민족 자결주의를 선언하였다(선언문은 바실레 골디쉬 가 작성하였다). 그리고 1918년 11월 3일 루마니아 민족 중앙위원회는 트란실바니아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부코비나의 루마니아 민족 위원회는 1918년 11월 28일 루마니아와의 통일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 사이에는 경계선이 설정되었고, 현재 루마니아 지역 내에 있는 사투 마레 나 오라데아  그리고 아라드와 같은 도시들은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12월 1일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 민족 위원회는 트란실바니아와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던 루마니아인들이 참석하는 국민 대회를 알바 이울리아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 모였던 대표자들은 트란실바니아와 루마니아의 통일을 결정하여 선포하였다. 알바 이울리아에서는 이울리우 마니우가 통치하는 임시 정부가 설립되었고, 이것은 "트란실바니아 통치위원회"라고 불려졌다. 또한 같은 해 12월 24일 페르디난드 왕은 루마니아가 부코비나 지방, 바사라비아 지방과 통일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열강들은 루마니아의 통일문제를 놓고 힘겨운 외교 전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브러티아누를 주축으로 하는 루마니아 대표위원들은 파리 평화회담에 참석하여 회담의 결과를 루마니아에게 유리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회담의 결과는 루마니아인들이 원하던 것과는 상이하였다. 즉, 세계 열강들(프랑스와 영국)은 제1차 대전 초 루마니아에게 트란실바니아를 반환해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대신에 루마니아가 단지 바사라비아와 부코비나와 통일하는 것만 인정하였다.

1919년 4월 헝가리 군대는 트란실바니아에 주둔해 있던 루마니아 군대를 공격하였다. 이에 루마니아 군대는 8월 4일 부다페스트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 불가리아와 조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1920년 6월 4일에는 헝가리와 트리아농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 루마니아는 1920년 8월 28일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조약에서 루마니아와 트란실바니아의 통일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렇게 하여 대 루마니아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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