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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7-30
 제목  간추린 루마니아 역사 3. 헝가리 인들의 침입
 주제어  
 자료출처  루마니아 소망교회  성경본문  
 내용 3. 헝가리 인들의 침입

트란실바니아 Transilvania 지방

아르파드 Arpad 왕이 이끄는 우그로-핀족의 헝가리인들은 알타이 산맥을 기원으로 하여 896년경 판노니아 평원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 서부지역으로 원정을 나서지만 955년 레크펠드 Lechfeld에서 게르만족의 오토Otto 대제(936∼973)에게 대패함으로써 서부지역으로의 진출은 무산되었고 그 이후 남·동부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남부지역에서 헝가리인들은 비잔틴인들을 만나 970년에 아르카디어폴리스 Arcadiopolis에서 패하였고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는 헝가리인들이 그곳에 이미 정착하고 있는 루마니아인들과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1210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문헌 - "Cronica notarului anonim al regelui Gesta Hungarorum" - 에서는 헝가리인들이 트란실바니아로 진출한 900년경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이미 많은 루마니아 영주(루마니아어: voievod, cneaz)들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 메누모루트 Menumorut 영주는 트란실바니아의 북·서부지역(특히 발레아 크리슐루이 을 그리고 글라드 Glad 영주는 트란실바니아의 남·서부지역인 바나트 Banat 지역과 중앙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고 또한 젤루 로므눌 Gelu Romȃnul 영주는 소메슈 계곡 지역에 더브체아 Dăbȃcea 라는 강한 요새를 갖고 있었다.

1000년에 카톨릭을 신봉하기 시작한 헝가리의 왕 이스트반 I세는 질라 Gyla 영주와 아후툼 Ahtum 영주 - 젤루 영주와 글라드 영주를 계승하였다 - 가 이끄는 루마니아·슬라브 민족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차츰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였고 1222년 헝가리인들은 트란실바니아의 동부지역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마자르 왕국 중에서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마니아 영주가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고 귀족회의도 루마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헝가리 귀족들은 루마니아 농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비옥한 농토를 몰수하면서 그들을 농노(iobag)로 전락시켰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자치권은 헝가리가 터키인들에게 패하여 터키 제국의 관할권 안으로 들어가는 1541년까지 유지되었다.

헝가리의 왕들은 트란실바니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이주 민족들로부터 왕국을 방어하기 위하여 식민지 건설에 착수하면서 다른 민족들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정착시켰다. 헝가리인들에게 처음으로 식민지화된 민족은 인종학적인 관점에서 여러 민족이 혼합된 민족인 세쿠이 secui 족으로 현재 헝가리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 세쿠이인들은 그들이 루마니아 민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던 비호르 Bihor 지역에서 트란실바니아 남·동부지역으로 이주되었는데, 연대기 편자 시몬 데 케자 Simon de Keza는 세쿠이족이 루마니아인들에게서 글쓰는 법을 배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헝가리의 왕들은 필란드라 Filandra와 라인강 중류 그리고 독일의 작센 지방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작센인(루마니아어: 사스 sas)들을 트란실바니아로 이주시켰는데, 이들은 제자 II세(1141-1162년)가 통치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이곳에 이주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작센인들은 주로 시비우 Sibiu와 비스트리짜 로드나 Rodna 그리고 브라쇼브 지역으로 이주되었는데, 당시 이들은 트란실바니아 지역뿐만 아니라 헝가리 전역으로 이주되었다.

루마니아인들과 이들 이주민들은 서로 화합하면서 다른 이주민들의 약탈로부터 이 지역을 방어하였다. 작센인들은 루마니아인들의 도움으로 시비우 시와 브라쇼브 시 그리고 비스트리짜 시를 방어하기 위하여 요새를 건설하는 동시에 상업과 수공업을 발달시켰다. 헝가리 왕들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봉건적 특권을 허용하였고, 비 헝가리계 민족들에 대한 헝가리 화를 착수하였다.

헝가리 화 과정은 15세기까지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우선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헝가리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인구수가 적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헝가리인들 외의 다른 민족들은 폐쇄된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헝가리인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카톨릭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 특히 루마니아 민족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도브로제아 Dobrogea 지역에서는 대귀족들이 통치하던 몇몇 작은 공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10세기 이 지역은 디미트리에 Dimitrie와 게오르게 Gheorghe가 통치하였고, 11세기에는 타토스 Tatos, 사트자 Satza, 세스틀라즈 Sestlaz가 통치하였다.

카르파치 산맥의 남부 지역에도 루마니아의 소공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1247년에 집필된 "요한교 신도들의 증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나툴 데 세베린 Banatul de Severin 지역에 있던 공국들과 이오안 Ioan 영주와 파르카쉬  영주가 통치하던 올테니아 Oltenia 평원에 위치한 공국들 그리고 리토보이 Litovoi 영주와 세네슬라우 Seneslau 영주가 통치하던 올트 Olt 강 왼편에 있던 공국들이 그것이다.

슬라브 역사문헌들에서는 시레트 Siret 강의 왼편, 즉 몰도바 지역에서 베르라드닉 berladnic 민족과 브로드닉 brodnic 민족 그리고 볼로호벤 bolohoven 민족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헝가리인들이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을 당시, 트란실바니아 지역 외의 다뉴브강 북부지역은 여러 이주 민족들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페체네그 peceneg 민족은 900년경에 등장하여 서기 1000년 이후에야 비로소 이 지역을 지배하지만 11세기 중엽 유목민인 우드 ud 족에게 패하여 다뉴브강 남부로 추방되었고 흑해 북부의 스텝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쿠만 cuman 민족도 11세기에 이 지역에서 출현하여 세력을 확장하지만 1241년 가장 잔인한 이주 민족인 타타르족에게 패하였다. 타타르족은 헝가리인들이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한동안 저지하였지만 루마니아 공국들은 계속해서 헝가리 왕국의 영향하에 있었다.

문테니아 Muntenia 지방

1277년 문테니아의 리토보이 Litovoi 영주는 헝가리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 바사랍 Basarab 영주(1310-1352)는 쿠르테아 데 아르제쉬 Curtea de Argeş에 도읍지를 정하면서 국가 건설의 기초를 마련하는 동시에 헝가리로부터 독립을 꾀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헝가리의 카롤리 로버트 왕(1308-1342)은 군대를 이끌고 현재의 루마니아로 진입하지만 1330년 11월 9일에서 12일까지 포사다 Posada 지역에서 대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크로니카 데 라 비에나 Cronica de la Viena(Chronicon Pictum Vindobonense)"에 기술되어 있다.

포사다 Posada 지역에서 승리함에 따라 루마니아인들은 쿠르테아 데 아르제쉬 를 수도로 하는 문테니아 공국이라는 신생 독립국가를 건설 할 수 있었다. 문테니아 공국의 수도는 1364년까지 쿠르테아 데 아르제쉬 와 큼풀룽 무스첼 로 번갈아 가며 정해졌고, 그 이후에는 트르고비쉬테 로 옮겨졌다. 또한 1431년 이후에는 트르고비쉬테와 쿠르테아 데 아르제쉬 가 번갈아 가며 수도로 되었다.

몰도바 Moldova 지방

헝가리로부터 해방되고 독립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위와 비슷한 시기에 카르파치 산맥의 동부지방에서도 일어났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타타르인들의 약탈이 자행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헝가리와 폴란드인들도 이 지역을 지배하려 했기 때문에 루마니아인들은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헝가리의 왕 라조스 Lajos I세(1342-1382)는 헝가리의 동부 국경선을 지키기 위하여 몰도바 지방 중부지역의 국경선을 확실히 구분하였고 이 지역의 통치권을 마라무레쉬  출신의 루마니아의 귀족인 드라고쉬 에게 맡겼다. 그 이후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하는데, 주로 흑해와 할리치울 Haliciul 공국 사이에 있는 바이아 Baia(1334년), 시레트 Siret(1340년) 그리고 수체아바 (1345년)를 중심으로 상업권이 형성되었다.

1359년 루마니아 봉건 영주들은 헝가리를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또한 그들을 카톨릭으로 개종하는데 불만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의 주역은 당시 마라무레쉬 지방을 통치하던 보그단 Bogdan 영주였다. 그는 헝가리 왕인 루도빅 데 안조우 Ludovic de Anjou와 수 차례(1342년, 1343년)에 걸쳐 접전을 하였다. 이들간의 전투는 1364년에서 1365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은 루마니아 군주 보그단 Bogdan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렇게 하여 몰도바 Moldova라 불리는 새로운 독립국이 세워졌고, 수도는 바이아 Baia로 정해졌다. 그리고 1375년 이 후에는 몰도바 공국의 수도가 수체아바 Suceava로 옮겨졌다.

한편 도브로제아 지방에서는 당시 비잔틴 제국에 종속되어 있던 작은 공국들이 있었다. 이 공국들은 주로 루마니아인, 불가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브로제아 지방은 1346년에서 1354사이에 비잔틴 제국의 집정관인 발리카 Balica가 통치하였고, 그 이후 1354년에서 1386년 사이에는 도브로티치 Dobrotici가 지배하였다.

이렇게 하여 10세기에서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루마니아 지역에서는 트란실바니아, 문테니아, 몰도바, 도브로제아라는 공국이 건설되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루마니아인들은 본질적으로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았다. 루마니아의 교회조직은 다뉴브강 남부지역의 교회조직과 관련이 있는데, 실제로 당시 루마니아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의 영향하에서 그리스정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14세기에 문테니아와 몰도바가 독립함으로써 이 지역 영주들의 거주지에는 수도 대주교구(mitropolie)가 설치되었다. 즉, 1359년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는 헝가리·발라흐인들의 수도 대주교로 이아친트 데 비치나 Iacint de Vicina를 인정하였고, 1401년에는 이오시프 Iosif를 몰도바 지방의 수도 대주교로 인정하였다. 당시 루마니아의 봉건국가인 문테니아와 몰도바 공국은 처음부터 헝가리와 폴란드의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을 신봉하던 이들 두 국가는 루마니아 공국의 내부문제에 까지 개입함에 따라 종종 정권을 바꾸는 등 정치적인 불안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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