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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신학용어사전  작성일  2007-07-20
 제목  아다나시우스 신조(Athanasios, A. D.420-450)
 주제어  [신조]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주의의 종속설(Subordinationism)을 배격하였고 후에 알렉산더(Alexander) 후임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아타나시우스(296년경 -373)의 삼위일체에 대한 입장이 드러난 ‘아타나시우스의 신조’가 있는데 작자 미상으로 5세기 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다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Creed)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세계교회의 신앙을 보유해야 한다. 이 신앙을 완전무결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없이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아다나시우스 신경 (The Athanasian Creed)원문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세계교회의 신앙을 보유해야 한다.이 신앙을 완전무결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없이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교회의 신앙이니,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하나이신 삼위 하나님을 예배한다.
인격을 혼동해서도 안되고, 본질을 분리해서도 안된다. 한 분 성부와 또 다른 분 성자와 또 다른 분 성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한 신성과 동등한 영광과 함께 영원한 위엄을 가진다. 성부의 본성이 바로 성자와 성령의 본성이다. 성부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자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령도 피조되지 않았다. 성부도 무한하고, 성자도 무한하고, 성령도 무한하다. 성부도 영원하고, 성자도 영원하고, 성령도 영원하다. 그러나, 영원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그와 같이, 피조되지 않은 본질이나 무한한 본질도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성부도 전능하고, 성자도 전능하고, 성령도 전능하다. 그러나 전능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주님이고, 성자도 주님이고, 성령도 주님이다.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기독교 진리가 우리에게 세분이 각기 신이며 주님임을 인정하도록 요구하지만, 동시에 세계교회의 신앙은 우리에게 세 신이나 세 주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금한다.
성부는 타자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피조되거나 출생되지 않았다. 성자는 만들어지거나 피조되지 않았지만, 오로지 성부에 의해 출생되었다. 성령은 만들어지거나 피조되지 않았지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세 아버지가 아니라 한 아버지가 있으며, 세 아들이 아니라 한 아들이 있으며, 세 성령이 아니라 한 성령이 있다. 이 삼위일체에서 선후나 대소가 없다. 세 분 모두 다른 분과 같이 영원하고 동등하다. 따라서, 상술한 대로, 일체가 삼위로, 삼위가 일체로 예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그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삼위일체를 믿어야 한다.

또한, 영원한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신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신과 인간임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신으로서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출생하였으며, 인간으로서 시간안에서 그 어머니의 본성을 가지고 탄생하였다. 그는 완전한 신이며, 이성적 영혼과 인간의 육체를 가진 완전한 인간이다. 그가 신성에 있어서는 성부와 동등하지만, 인성에 있어서는 성부보다 열등하다. 비록 그가 신과 인간이지만, 그는 둘이 아니라 하나의 그리스도이다. 그가 하나인 것은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성이 신에게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인 것은 본성의 혼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에 의한 것이다. 이성적인 영혼과 육체가 한 인간인 것처럼, 신과 인간이 하나의 그리스도이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어 음부에 내려갔으며, 사흘만에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거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가 오시면, 모든 인간이 자기 육체와 함께 부활될 것이며, 자기 자신의 행동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다.
선행을 한 사람은 영원한 삶에, 악행을 한 사람은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세계교회의 신앙이다. 모두가 그것을 확실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아멘.
1)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작성배경
 이 신조는 사도신경처럼 저자가 명확하지 않다. 9세기 이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정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가장 두드러지게 옹호했던 아다나시우스(296-373)가 이 신조의 저자로 알려져 왔으나, 17세기 중엽 이후로는 이 견해가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
  "이 신조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되었는데, 제 1부는 삼위일체론으로 사도신조와 니케아 신조보다 더 분명하게 아우그스티누스적인 삼위일체를 고백하면서 삼위 사이에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종속은 없게 되어 있다. 제 2부는 기독론인데 아폴리나리우스와 네스토리우스와 유티케스 등의 이단설들을 반격하고 있다"
  2)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특징 및 영향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제4차 에큐메니칼 회의 때까지(325-451)의 교리적 결정들과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어거스틴의 사상을 매우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요약하고 있으며, 간결한 문장들은 기술적으로 배열되었고 리드미컬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비논쟁적이고 평화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삼위일체와 성육신 등을 믿는 공교회의 신앙은 구원의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며, 이 신앙을 반대하는 자는 영원히 멸망을 받으리라고 하는 엄숙한 선언으로 시작하고 또 끝을 맺는 저주문이 있다. 이런 저주문이 후기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아다나시우스 신조에 대한 평가
  Philip Schaff의 글에 의하면 제 3차와 제 4차 세계 교회 회의는 니케아 신조 이외에 다른 신조를 작성하거나 출판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였음에도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범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아 "정통 교리의 아버지"란 찬란한 이름을 얻었다고 평가한다.
고대 신조 결론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 본 바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신조

채택

지역

다른이름

주요내용

이단

사도신경

 

서방

 

신앙의 규범, 진리의 규범 사도적 전통, 신앙의 상징

유대교

이교주의

니케아

325년에 318명의 동방교회의 감독들이 니케아 회의에서 채택(아다나시우스)

동방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 본질 문제

아리우스

(아리안주의)

콘스탄 티노플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인 에큐메니칼 공회에서

150명의 감독들이 채택

동방

나이신 신조(Nicene Creed)

105교부의 신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신조

삼위일체

(성령에 관한 내용 추가)

유노미우스,

마케도니우스

칼케돈

451년에 칼케돈에서 회집

되었던 제4차 세계종교회의

에서 채택

동방

 

기독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문제)

네스토리우스,

유티케스

아다나시우스

 

 

퀸쿤케 신조

삼위일체+기독론

 

이와 같이 각 신조가 작성 되게 된 배경에는 성경의 진리를 파괴하는 이단들이 있음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여기에 대항하여 초대 신조들은 교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반복하여 언급하지만 초대 신조들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고백하기 위해서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단을 대항하여 기독교의 본질과 원리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빙크의 표현처럼 우리의 적들은 "대문밖에 있는 적"들과 "기독교 안에 있는 적"들이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이후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해서 잘못된 주장을 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귀한 유산들이 남겨진 오늘날에도 우리가 잘못된 주장을 펴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개혁주의 신조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자 하는 노력들은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다음 칼빈의 글을 통해,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진리를 찾기 어려워도, 우리는 진리가 승리할 것을 확실히 믿도록 하자.
  "우리는 아다나시우스와 바실이나 카릴루스 같은 진정한 교리의 옹호자들을 주께서 모든 시대와 모든 곳에서 일으키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진리는 교회 안에서 죽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 회의가 진리를 억압할지라도 주의 놀라운 보호를 받아, 때가 오면 진리는 다시 일어나 승리한다.

>> 목차고리 :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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