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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7-03
 제목  [신론] III. 하나님의 속성 / 3. 도덕적 속성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3. 도덕적 피조물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하나님 (도덕적 속성)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된다.

 

      (a)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출15:11,레11:44,45,20:26,수24:19,삼상2:2,시5:4,111:9,145:17,사6:3,43:14,15,렘23:9,눅1:49,약1:13,벧전1:15,16,계4:8,15:3,4). 하나님의 성결은 그의 절대적 도덕상의 순결을 의미한다. 그는 죄를 범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허용치도 않으신다. "거룩"의 근본적 의미는 "격리"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격리되어 있는가? 공간적으로 그는 인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들은 지상에 있다. 본질과 인격에 있어서 그는 인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하다. 하나님은 신성을 지니고 계시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성을 갖고 있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 그러나 인간은 죄악되다. 그러면 우리들은 성결이야 말로 하나님과 인간을 구별짓는 속성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결은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신성으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그는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겔36:22,38:23).

 

 곧 그는 자기 자신을 거룩한 자로 계시하신다. 스랍들이 보좌에 앉아 계신 여호와로 부터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부르짖었다.(사6:3)
  인간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서 경외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거룩케 하는 것이다 (민20:12,레10:3,사8:13).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함으로써 그를 모욕할 때에 그들은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에 반대는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마6:9). 하나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다. 거룩한 백성이라든가 거룩한 건물이라든가 거룩한 목적이라고 할 때에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은 거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룩"이라는 말을 사람이나 물건에 적용하였을 때 이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곧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따로 구별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렇게 따로 구별된 물건들은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렇게 구별된 사람들은 거룩한 법을 쫓아 살려고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사실들  로써 성결의 교리에 기초를 이루고 있다.

 

      (b)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의와 거룩의 차이는 무엇인가? "의는 행위로 나타난 거룩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으리라. 의는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함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18:25). 의는 옳은 표준과 일치하는 것이다. 곧 의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옳은 행위를 말한다. 언제 하나님께서는 이 속성을 나타내시는가?

 

  (1)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악한 자를 벌하실 때에 정의가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재판관들이 다른 사람들이 그들 앞에 제시한 증거에 의거하여 재판하듯이 판단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증거를 발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메시야는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고"정으로써 판단하신다.(사11:3)

  (2)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는 용서할 때 그의 정의가 나타난다 (시51:14,요1서1:9,히6:10).

  (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계하고 심판하실 때에 그의 정의가 나타난다(사8:17,암3:2).

  (4)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에 그의 정의는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간섭하시는 것을 그의 의하고 칭한다(사46:12,45:24,25). 구원이 소극적인 면이라고 하면 의는 적극적인 면이다. 그는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와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가 마음의 의가 되는 것이다(사60:21,54:13,61:10,51:6).

  (5) 하나님께서 그의 진실한 종들에게 승리를 주었을 때에 그의 정의는 나타난다.(사50:4-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 후에 우리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의를 쫓아 살게 될 것이다. (벧후3:13).

   하나님께서는 올바르게 처리하실 뿐만 아니라 의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만일 인간이 범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그는 회개하는 자를 은혜 스럽게도 의로 여겨주신다. (롬4:5). 이것이 칭의의 교리의 근본이 된다.
  하나님 본질은 인간과 그의 관계의 기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답게 행동하신다. 거룩하신 분은 신성하게 하며 의로우신 분은 의롭게 하신다.

 

       (c) 하나님은 성실하다.
 그는 절대적으로 믿을 만하며 그의 말씀은 틀림 없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들은 그의 약속을 굳건히 믿을 수 있다(출34:6,민23:19,신4:31,수21:43,-45, 23:14,삼상15:29,렘4:28,사25:1,겔12:25,단9:4,미7:20,눅18:7,롬3:4,15:8,고전1:9,10:13,고후1:20,살전5:24,살후3:3,딤후2:13,히6:18,10:23,벧전4:19,계15:3).

 

       (d) 하나님은 자비스럽다.
  "하나님은 자비심은 그의 피조물의 비참에 대하여 표명된 하나님의 선과 그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만일 그들이 개과 천선의 가망이 있는 죄인들이라면 그들을 구제하려고 오래 참으신다. (Hodges)(딛3:5,애3:22,단9:9,렘3:12,시32:5,사49:13,54:7). 하나님의 자비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에 하나를 시 103:8-18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비심에 대한 지식이 소망의 근거와(시130:7)신뢰의 근거 (시52:8)가 된다. 하나님의 자비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일 가운데 현저하게 나타났다. (눅1:78).

 

       (e).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그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특별히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창조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라(신7:8,엡2:4,습3:17,사49:15,16,롬8:39,호11:4,렘31:3).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살펴 보라 (요3:16,요1서4:9,10,롬9:11-13,요1서 3:1,사43:3,4, 사63:9,딛3:4-7,사38:17,엡2:4,5,호11:4,신7:13,롬5:5).

 

       (f) 하나님은 선이시다.
    하나님은 선이시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그의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그밖에 다른 축복들을 주신다. (시25:8,나1:7,시145:9,롬2:4,마5:45,시31:19,행14:17,시68:10,85:5). 죤슨 박사 (Dr,Howard Abnew Johnson)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수년전에 나는 어느 가정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집 주인은 나에게 식기도를 드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요청에 있은 다음에 나는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선물들에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더니 그는 다소 무뚝뚝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나는 기도의 진의를 알 수 없는데요. 왜 그러냐 하면 이 식사는 내가 친해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일 파종이나 추수가 실패되어 온 지구에 흉년이 들어 인구의 반이 다음 추수기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만일 이와 같은 흉년이 이년 동안 계속된다면 전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고 말게 되리라는 것도 생각해 보신 적이 계십니까?
 곧 그는 정색을 하면서 이와 같은 흉년이 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못한 점을 시인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그가 장만하였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과 또한 능력을 주어 이와 같은 음식을 장만케 하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음식물로 사용하는 곡식과 동물 속에 생명을 넣어 주셨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암시하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 것을 선물로 줄 것 같으면 당신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루에도 이와 같은 선물을 두세 번 받게 되면 받을 적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는 곧 나의 말이 옳다고 동의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됐을 겁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흥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이제야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고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고통으로 가득찬 세계를 창조하셨는가"라고 그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 이 될 것이다.

 

  (1) 하나님은 악에 대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만일 조심성 없는 직공이 부주의하여 아주 섬세한 기계 속에 모래를 집어넣었다면 그 기계를 제작한 사람이 책임을 짊어져야 하겠는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망쳐놓았다. 이 세계 가운데서 인간들이 고의로 범한 죄악에 기인된 모든 고통을 제거해 버리고 나면 별로 남는 고통이 많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 때문에 악은 그의 허락을 받아 존재하다. 왜 하나님께서 악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지 그 이유를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지나치게 사색적인 사람에게는 "네 사색이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길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곧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과오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한 작가인 스트븐슨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비록 내가 한 눈을 감고 다른 한눈으로 들여다보는 적은 구멍으로 우주의 적은 단편을 살펴보아도 나는 나의 자신의 운명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신호의 단편적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알아 볼 수 없다고 미칠 듯이 불평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와 같은 광대한 계획 가운데서 믿음을 격려해 줄 수 있는 적은 것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경의 가운데서 감사함이 마땅치 않을까?"

 

   (3) 하나님은 대단히 위대하시기 때문에 선을 위하여 악을 억압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제들과 바로와 헤롯과 그리스도를 못박은 사람들의 죄악을 어떻게 억압 하셨는가를 기억하라. 어떤 고대 학자는 다음과 같은 매우 지당한 말을 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업에 악이 조금이라도 개입하도록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악도 선으로 만들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고통과 시련의 불길 가운데서 인격을 정화시켰으며 믿음을 공고히 하였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품속 깊이 안길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이란 불로 연단 된 인격을 사는데 필요한 대가이다.

 

  (4) 하나님은 이 우주를 자연 법칙에 의하여 조정하셨다.
 그런데 이 자연 법칙 속에는 우발적 사고의 가능성이 개재되어 있다. 가령 예를들면 만일 어떤 사람이 부주의로 인해서 또는 고의로 낭떨러지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는 중력의 법칙을 범한 결과로 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법칙이 있음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왜 그러냐하면 만일 이와 같은 법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온통 혼란한 상태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5) 우리들은 항상 이 세상이 완전한 질서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것도 주관하신다. 하나님께는 "하늘 나라의 표준시 (Heavenly Standard Time)에 의하여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가 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실 것이다(눅18:7,8). 


  이 세대라는 극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막이 나릴 때까지는 결코 하나님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어주실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목차고리 :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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