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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7-03
 제목  [신론] I. 하나님의 존재 / 2. 입증된 그의 존재
 주제어  [교리] [신론] [하나님]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2. 입증된 그의 존재

 

  만일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논리적으로 입증된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시도해 보는가 ?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하나님을  성실히 찾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이다. 즉 다시 말하면 어떤 어려운 회의로 말미암아 신앙이 흐려져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죄와 이기주의 속에 살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에게 증명할 테면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들은 어떠한 많은 증거로도 납득시킬 수는 도저히 없다. 결국 신앙은 도덕의 문제이지 지성의 문제는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희생을 무릅쓰고 믿고자 하지 않는 다면 그는 어떤 증거라 할지라도 회피할 것이다(눅 16:31).

 

  둘째로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기 위하여 증거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겐 이와 같은 신앙이 대단히 존중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신앙을 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환영한다. 끝으로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지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에 관한 연구보다 더 중요한 연구와 사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들을 우리들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는가 ? 창조와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역사 이 세 가지 영역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증거들을 끌어낼 수 있다.

 

  우주는 제일 원인 (a First Cause)또는 창조주를 갖고 있다. (우주론의 논의에 의할 것 같으면 헬라어의 "코스모스 (Cosmos)는 "세계" (World)을 의미한다. 우주의 분명한 설계는 하나님을 지적하고 있다. (목적론의 논의에 의할 것 같으면 "테레오스" (teleos)는 "설계" 또는 "목적"을 의미한다.) 포부와 충동을 동반하는 인간성은 인력적 통치자를 지적하고 있다. (인류학상의 논의에 의할 것 같으면 "앤튜로포스" (Anothropos)는 "사람"(man)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는 통치하는 하나님의 증거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역사적 논의). 신앙은 보편적이다 ("고통적 동의" 의 논의)

 

        (a) 창조물로부터의 논증
  이성은 우리들에게 우주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모든 결과는 반드시 적당한 원인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하나의 결과이므로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주의 크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죠지.그레이 (George.W.Grey)의 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 볼 수 있다.
  " 우리들이 보는 바와 간이 우주는 수천 수백만의 은하의 체계이다. 은하의 체계는 각각 수천 수백만의 별들로 이루어진 성군이다. 은하수의 외곽 쪽에 상당히 열도가 높고 보통 크기의 별이 있는데 이는 연령적으로 상당히 노쇠하였다. 이 별을 우리들은 태양이라고 부른다. 지구보다 태양이 수 백배 더 크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같은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언급하였다.

 

   " 태양은 은하수 외곽을 일초에 12마일의 속도로 회전하면서 지구와 기타 유승의 뒤를 따르고 있다. 동시에 태양계는 마치 은하수 자체가 하나의 큰 별의 바람개비 마냥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일초에 200마일의 속도로 큰 원호를 이루어 회전하고 있다..... 하늘의 여러 부분을 사진을 찍어 별의 수를 조사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 관측소에서 나는 넓이 14인치 길이,17인치의  사진판에 기록되어 있는 200여 은하수의 영상이 들어있는 사지을 보았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은하 수 대략 500억으로 추산된다." 우리들의 적은 지구와 지성과 설계를 계시해 주고 있는 생명의 무수한 형체들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라. 자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발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가 ? 이와 같은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은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우주는 제일 원인 또는 창조주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이에 대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소박한 모양으로 묘사된 것이 있다.

   " 어떤 젊은 회의주의자가 한 나이 많은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한 때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철학과 수학을 연구한 후로는 하나님이란 다만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부인은 '그런데 사살 나는 이와 같은 것들 (철학과 수학)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배웠다고 하였으니 이 계한이 어디서 생겼는지 말해 주실 수 있을 까요?' 라고 물었다. '암 물론 암닭에서 생겼지요.' 라고 젊은이는 대답하였다.

 '그러면 암닭은 어디서 생겼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그 청년은 "암 그거야 계란에서 생겼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러면 암닭과 계란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지 안아요?'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이 청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아 아니 그러면 계란이 먼저 있었다고 말해야 하겠군요.' 먼저 청년은 말했다. '그렇다면 암닭에서 나오지 않은 계란이 있어야 하겠지요?' 라고 부인은 말했다. 그 때에 청년은 머뭇거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그러면 아시다시피 암닭이 먼저 있었지요.'
 '자 그러면 모든 계란이나 암닭을 만드신 분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겠니요. 하나님이 없이는 계란이나 암닭의 존재에 관하여 설명할 수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고하고 하나님이 없이도 이 전 세계의 존재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나에게 납득시키고자 하시는 것이지요!."

 

        (b)  설계로부터의 논증
  우주에서 그 설계와 그 아름다움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설계와 아름다움은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는 이 우주의 설계와 아름다움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지성과 지혜를 갖고 있는 설계자의 작품이다.

  스트라스버그에 있는 큰 시계는 보통 다른 시계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이외에 이 큰 시계가 시간마다 칠 때에 꼭 같이 규칙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숫자와 천체의 정확성을 갖고 날과 달을 통하여 운행되고 있는 유성과 달의 숫자 맞추기 자물쇠를 갖고 있다.

 만일 이와 같은 시계의 설계자가 없고 우연히 생겼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성과 이성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가 "우연히 생기게 되었다"고 가정하거나 또는 과학적인 용어로 우주는 "원자의 우연한 결합에 " 기인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천로역정이란 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기로 가정해 보면 저자가 인쇄 할 재료를 삼으로 공중에 내던졌다. 그랬더니 그 재료가 자연히 땅에 떨어져 차차 번연(Bunyan)의 유명한 이야기책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논할 것 같으면 가장 단호한 불신자는 "어리석은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무신론의 억측에 대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계를 살펴 볼 것 같으면 어떤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몇 가지 부속품들이 조립된 까닭에 설계의 특정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속품들은 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조립되었는데 이 운동은 시간을 알려 줄 수 있도록 조절되어 있다.

 

 우리들은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시계가 있으면 그것을 만든 제작인이 있다는 것이요, 둘째로는 이 제작인은 시계의 구조를 잘 알고 있으며 또 시간을 알려 줄 수 있도록 이 시계를 설계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설계를 살펴보면 자연히 이 우주는 창조주를 갖고 있으며 이 창조주는 우주가 성취해야 할 목적을 위하여 현명하게 우주를 설계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결론은 비록 우리들이 시계를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거나 또는 시계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드래도 하등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주에는 그 설계자가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 우리들의 신념이 우리들이 우주의 창조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 설계자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하여 크게 악영향을 받아 흔들이지 않을 것이다. 거듭 우리들의 결론을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살펴보자.

  " 시계는 기계학상의 법칙의 작용의 결과이다. 그리고 물질의 성질에 의하여 설명되어진다." 시계를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이 법칙들과 성질들을 활용하는 능숙한 시계 제작인의 작품으로 시계를 우리들은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는 단순히 자연 법칙의 작용에 그 원인을 돌려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될 때에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 이 장연 법칙들을 설정하고 사용하는 분은 누구이신가?" 왜 그러냐 하면 법이 있으면 입법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곤충의 생활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특별히 스타그혼(Staghorn)이라는 곤충이 있는데 두 종류가 있다. 즉 암컷과 수컷이다. 수컷은 아주 훌륭한 뿔을 갖고 있는데 그 뿔의 길이는 자기 몸집에 두 배나 된다. 이에 반하여 암컷은 뿔을 갖고 있지 않다. 유충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땅 속에 파묻고 어둠과 침묵 속에서 변태 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는 유충들이다. 그러나 이중에 한 종류는 자기 자신의 위하여 다른 것보다 구멍을 두 배나 깊이 판다. 그 까닭은 자기의 뿔이 상하지 않은 채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이 유충들이 왜 판이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누군가 스타그혼에게 암컷보다 두 배나 깊이 땅을 파도록 가르쳐 주었는가? 스타그혼 자신이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그 곤충 속에 그 곤충을 위하여 본능적 지각력을 넣어주시었다.

 

 이 작은 유충은 어디서 이와 같은 지혜를 얻었을까? 이 유충은 그 지혜를 자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령 예를 들면 훈련받은 개는 자기의 자손에게 그의 재주를 전해 줄 수 있을까? 만일 이 곤충이 그 재주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드라도 어느 누군가  맨 처음의 스타그혼에게 그 재주를 가르쳐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 인정치 않으면 안 된다.

 이 곤충의 놀라운 본능에 대한 설명을 창세기 1장에 있는 말씀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의지이다. 시계가 움직이는 것을 살펴 볼 것 같으면 지성이 시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계를 만든 제작인에게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 시계를 만든 제작인에게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적은 유충 속에 있는 굉장히 훌륭한 본능을 살펴 볼 때에 그 지성이 유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충의 창조주에게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생명의 적은 세세한 부분까지 지배하는 최고의 지성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의 학회의 전 회장 이였으며 또 미국 예술과 과학 협회의 회원 이였던 휘트니 박사(Dr.Whitney)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자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다른 자석을 튀긴다. 오늘날 아무도 이에 대하여 보다 정확하게 대답할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휘트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빛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 미립자 설이 있고 파동설이 있고 양자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들은 학구적 추측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이와 같은 이론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빛이 전해진다고 말하는 것과 매일반입니다. 우리들이 발견한 법칙인 하나님의 뜻은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것만이 최종의 것입니다."

  선데이 스쿨 타임즈 (Sunday School Times)의 만화가인 에이.제이.페이스(A.J. Pace)씨는 확대 사진의 전문가였던 고(故)윌슨.제이.벤틀리(Wilson.J.Bemtley) 와의 인터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사십 년 이상 눈송이의 결정체를 사진을 찍어왔다. 그리고 수천 번 이상이나 사진을 찍어본 후에 그는 현저한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하였다. 


 첫째로, 두 개의 눈송이가 똑 같이 생긴 것은 없다는 점이요,
 둘째로, 눈송이마다 아름다운 모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요.
 셋 째로, 눈송이마다 변함 없이 육각이라는 점이다. 이 육각의 조화미에 관하여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론 하나님 이외에 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눈송이의 결정체는 빙점 이하의 온도에서 수증기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은 세 개의 분자 즉 두 개의 수소 분자와 한 개의 산소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분자는 양전기와 음전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반대쪽에서 상극 작용을 일으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삼(三)이라는 숫자는 맨 처음부터 작용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점들과 동그라미들과 우아한 곡선들과 점으로 미묘하게 쫀듯한 사삭의 끝들이 한데 어울려 완전한 조화미를 이루고 있습니까?"라고 페이스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 움츠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그것들을 설계하여 만든 예술가(하나님)만이 어떻게 그렇게 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이라는 숫자는 맨 처음부터 작용하였다." 는 그의 말은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였다. 마치 어떤 예술가가 그의 걸작품에 그의 이름을 사인하듯 피조물에 온갖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삼위 일체의 하나님께서 그의 "삼위 일체성을"을 별 모양으로 된 가냘픈 어름의 결정체 속에 사인한 것이 아닐까? 누구나 자세히 살펴보면 눈송이의 구조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원리를 육각의 구주로서 기하학의 영역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며 외접원의 반경의 길이는 육각형의 여섯 변의 길이와 꼭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 개의 완전한 이등변 삼각형들이 하나의 중심을 이루어 형성되는 데 모든 각은 육십 도이다. 삼각형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에 관한 얼마나 적절한 상징이  되는가! 하나의 통일체인 삼각형은 전체의 통일에 절대 긴요한 삼변으로 이루어졌다.

 

  호기심 때문에 나는 성경에서 "눈"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더니 다행스럽게도 동일한 "삼위성"이 성경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령 예를 들면 구약 속에 있는 "눈"이라는 명사를 포함한 21개의 참조문 (3*7)가 신약 속에 있는 3개의 참조문을 합하면 모두 24개의 참조문이 되는 셈이다. "눈과 같이 흰 문둥병" 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세 개의 인용구를 찾아 볼 수 있으며 또 죄의 씻음을 눈에 비유한 것도 세 곳이나 있다.

 "눈과 같이 흔" 옷에 대하여 언급된 곳도 세 번이다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눈이라는 히브리어가 전혀 삼이라는 문자들(thress)로써 구성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드라도 히브리어나 헬라어에는 수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알파벳을 숫자로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브리어의 쉘레그(sheleg)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눈"이라는 뜻이다.)
  얼핏 한 번만 살펴 보드래도 그 말이 "눈"이라는 뜻과 동시에 333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의 "SH"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첫 글자는 300이고 둘째 자음인 "L" 은 30이요, 마지막 글자인 "G"는 3이다. 그러므로 이 셋을 합하면 333이라는 숫자가 생기게 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러나 완전히 영감 된 책 속에서 수학적 정확성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나변에 있는가 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같이 놀라운 것이 아닐까?
  하나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진 곳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일들을 행하신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눈에게 명하여 땅에 나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욥37:5,6).
 여섯 개의 눈의 결정체를 본 따서 그리는데 이틀 꼬박 걸리고 나니 매우 피곤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쉽게 눈의 결정체를 이루게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눈에게 명함으로서 그렇게 되게 하셨다. 한 시간에 한 에이커의 땅 위에 수백만, 수억의 눈송이가 나리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리고 어떠한 폭풍우 속에서도 눈송이가 이그러지지 않고 독자적 특징과 모형을 지니고 있음을 상상해 보라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139:6) 어떻게 사식 할 줄 아는 사람이 무수한 변화에 의하여 증가된 하나님의 섭리의 증거를 보고 섭리자의 존재와 그의 솜씨와 무한한 그의 능력을 의심할 수 있으랴 ?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일도 하실 수 있으며 어떤 일도 하실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들의 생명까지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c) 인간성으로부터의 논증
  인간은 도덕적 성품을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의 생활은 정의와 불의의 관념에 의하여 규정되어지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따라야 할 정의의 길과 피해야 할 불의의 길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지식의 주체를 "양심"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이 올바르게 행할 때에 그의 양심은 그의 행동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릇되게 행할 때에 그의 양심은 그의 행동을 정죄 한다.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안 하거나 양심은 권위를 갖고 말한다. 양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만일 양심이 권위를 나타낼 때에 능력을 갖고 있으면 양심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만일 양심이 그가 명령하는 바를 강제로 실행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 양심은 세계를 혁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은 자유의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양심의 소리를 거역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잘못 인도되거나 깨닫지 못한 때라 할지라도 양심은 권위를 갖고 말해주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할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마음을 경의로서 채워주는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이들은 나의 머리 위에 찬란히 빛나는 별빛 하늘과 나의 속에 도덕률이다."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는 보편적 양심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끌어 낼 수 있을까? 인간을 위하여 행위의 표준을 정하고 또한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 표준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양심은 다만 그 표준을 증거 할 뿐이다.
 그리고 행위가 그 표준에 부합하는가 또는 않는가를 나타내 준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정의와 불의에 두 개의 강한 관념을 만들어 놓았는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입법자이시다! 죄가 양심을 흐리게 만들어 인간의 율법을 거의 말살시켜 버렸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생애를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율법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돌비에 새겨 주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율법을 이해하게 되며 책임감을 느끼게 되며 이 모양으로 자기를 창조한 입법자의 존재에 관하여 논의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감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는가? 입법자는 또한 심판자로서 선인에게 상을 주고 악인에게 벌을 준다. 법을 부과한 분이 법을 최종적으로 변호할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온갖 성격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한다. 몹시 타락한 종교들도 인간의 영혼이 열망하는 것들을 암중 모색하고 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굶주릴 때에 그는 그것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여 사모할 때에 그는 고의 영적 굶주림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요구하게 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는 부르짖음은 (시 42: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논증이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영혼은 존재치도 않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사람을 기만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당신 속에 안주할 때까지는 우리들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d) 역사로부터의 논증
  세계사의 일련의 사건들은 지배하는 신과 섭리자의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모든 성경의 역사들은 역사 속에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기록되어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도덕이 원리를 인가의 경험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도 나타나 있다"라고 클라크 (D.S.Clarke)씨는 말하였다.(시75:7, 단2:21). "영국의 개신교는 스페인의 무적 함대의 패배를 하나님의  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다. 개신교의 이민들이 미국에 정착함으로서 이를 남미의 운명으로부터 구출하였다.
 또한 세계의 민주주의를 이에 의하여 구하였다. 하나님의 손길이 이 모든 사건에 개입했다는 것을 누군가 감히 부인할 수 있을까?" "바벨론이나 로마 같은 나라들의 흥망성쇠 같은 인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때에 발전이 따랐고 불복종할 때에 국가의 쇠망과 부패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D.L.Pierson). 피어손 (A.T.Pierson)씨는 그의 저서 "새로운 사도행전" (the New Acts of the Apostles) 속에서 현대 선교 사업 가운데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섭리의 증거들에 의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별히 개인들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인간의 일들 속에 하나님께서 실제로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 때 영구의 현저한 무신론자였던 촬스 부래드라우 (Charles. Bradlaugh)는 기독교의 교역자였던 촬스 휴 푸라이스 (Charles Hugh Price)씨에게 도전하여 토론을 전개해 왔다. 이 교역자는 이 도전을 받아드려 다음과 같이 그 자신의 토론을 전개하였다.

 

  "부리드라우씨, 사람이란 자기의 의지를 굽히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의견에 관하여 확신을 갖게 되지 않는다는 것과 정신적 수양으로서의 토론으로 사람을 개종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영향력에 의하여 죄와 수치스러운  생활로부터 구원을 받은 남녀들과 기독교의 주장에 관한 확고한 증인으로서 데려올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나는 이러한 남녀 백 명을 데려오겠습니다 당신은 무신론의 영향을 받은 남녀의 백 명을 데려오시오."
  "부래드라우씨, 제가 데러고 올 백 명과 경쟁할 수 있는 백 명을 만일 데리고 올 수 없다면 당신의 무한론적 교훈의 영향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생활로부터 향상 된 것을 증거 해 줄 수 있는 남녀의 오십 명만을 데려올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오십 명을 데려올 수 없는 경우라면 당신의 무신론적 교훈의 결과로서 자존심의 생활을 새로운 기쁨으로 누리고 있다는 것을 빛나는 얼굴로 증거 할 수 있는 이십 명을 데려올 것을 제의합니다.

 만일 이십 명도 데려올 수 없다면 열 명만 데려와도 만족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부리드라우씨, 당신의 무신론적 교훈의 영향력에 관하여 증거 할 수 있는 단 한 명이라도 데려 올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나의 구속받은 남녀들은 죄와 수치의 속박으로부터 구속받은 자의 생활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하여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부래드라우씨,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주장의 유효성에 대한 실질적 증거가 될 것입니다.." 부드래라우씨는 그의 도전을 취소하고 말았다!

 

                 (e)  보편적 신앙으로부터의 논증
  비록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은 때때로 곡해되고 괴상한 형체 속에서 발견 할 수 있고 도 미신적 개념들로써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실제적으로 인류의 모든 종족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논리는 어떤 종족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도전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 문제와 비교 전문가인 제본즈(Jevons)는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모든 인류학자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논의는 거의 생명이 없는 쓸데없는 논제의 지경에 이르렀다....아무리 잔인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종교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는 종족은 없다고 하는 점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만일 예외가 나타난다고 하드래도 그 예외가 정칙을 반증할 수는 없다. 가령 예를 들면 인정과 동정심을 전혀 결여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본질적으로 냉정한 동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장님이 있다는 사실이 인간은 볼 수 없는 피조물이라고 입증할 수는 도저히 없다.

 

     윌리암 이반즈이 말을 빌리면,
  " 어떤 나라들이 구구표룰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수학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보편적 신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현명한 신학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하나님의 개념을 만들어 이것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고 상상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이 별을 발명할 수 없듯이 별을 발명할 수 없듯이 또 식물학자가 꽃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신학자가 하나님을 만들어 낼 수는 도저히 없다. 확실히 고대인들은 천체에 관한 그릇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천체의 존재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인류가 하나님에 관하여 그릇된 관념을 갖고 있었다면 이는 그릇된 관념의 대상자이신 하나님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 지식은 반드시 추리를 통하여 오게 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추리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놀라운 자연을 만드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통하여 그 자연의 창조주를 볼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의 창조물의 암시와 증거를 남겨 두셨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죄는 사람들의 환상을 흐리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은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는 대신에 하나님은 무시하고 피조물을 경배한다. 이렇게 되어 우상 숭배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인간의 종교적 동물로서 예배할 대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 신앙은 무엇을 입증하고 있는가? 인간성이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어떤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이다." 이와 같은 뿌리깊은 신앙은 "종교"를 산출하게 하였다. 이 종교라는 말속에는 다음과 같은 가장 넓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1) 자연의 세력을 지배하는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 드리는 것.
  (2) 인가의 운명을 지배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의존심 즉 다시 말하면 이 의존심은 인간 자신의 나약성과 왜소함과 우주가 거대하다는 사상에 의하여 각성되어진다.
  (3) 정다운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 이와 같은 결합 속에서 안전과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또 이와 같은 결합 속에서 안전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본래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를 경배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종교 의식"은 하등 동물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가령 예를 들면 아무리 지능이 놓은 원숭이에게 종교를 가르치려고 노력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지능이 낮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에 관하여 가르칠 수는 있다. 동물은 종교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배의 대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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