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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6-26
 제목  히파티아(Hypatia.370?∼415)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이집트 신(新)플라톤파의 대표적 철학자. 알렉산드리아 출생.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ㆍ천문학자이던 테온의 딸이다. 학습과 과학을 기호화하여 형이상학적인 경향보다 실증적인 경향이 강한 알렉산드리아 신플라톤주의를 구현하였다. <수다(Suda)> 사전에 의하면 몇 개의 수학ㆍ천문학적 저작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주교가 된 그녀의 제자 시네시오스의 편지가 전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가 이교(異敎)의 선포자라 하여 그리스도교도에게 참살당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주교(主敎)가 된 키레네의 쉬네시오스는 그녀의 가장 저명한 제자이다.


   이집트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여성 수학자로는 주목할 만한 첫 인물이다. 역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테온의 딸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신플라톤주의 학파의 지도자로 인정받았으며 뛰어난 지적 재능과 달변·품위·미모를 두루 갖추어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주교(410경)가 된 그중 한 사람이 히파티아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히파티아는 학습과 과학을 기호화했는데, 당시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이교신앙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를 여러 차례 휩쓴 그리스도교인과 비그리스도교도 사이에 벌어진 긴장과 폭동의 초점이 되었다. 412년 키릴이 알렉산드리아의 수장이 된 뒤 히파티아는 니트리아 수도사들과 키릴을 따르는 광신적인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그녀가 이교도인 그 도시의 장관인 오레스테스와 가깝게 지냈기 때문인 듯하다. 살해의 정확한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 사건 직후 많은 학자들이 이 도시를 떠나게 되어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학문의 주요중심지라는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

   <수다(Suda)> 사전에 따르면,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의 <수론(數論)>,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의 <기하(幾何)>,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문학설에 대한 해설서를 썼다. 이 책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제목과 그녀에게 천문관측의와 물시계 만드는 법을 물었던 키네시오스의 편지를 종합해볼 때 그녀가 천문학과 수학에 특히 몰두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녀가 엄격한 의미의 철학 저서를 남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의 철학은 아테네 학파의 철학보다 관심면에서 더 학문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덜 신비적이고 이교도적인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신플라톤주의를 구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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