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말 텍사스 공군 기지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군복무를 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미들랜드에서 석유사업을 시작했다. 1978년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원의원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근소한 차로 떨어졌다. 1986년 석유사업을 매각하고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어 참모로 활약했다. 그는 1989년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팀을 인수한 투자 그룹의 업무집행인이 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당시 주지사였던 앤 리처드를 물리치고 주지사에 당선되었는데, 전임 대통령의 아들로는 최초로 주지사에 당선된 사례였다. 텍사스 주지사 재임 당시 복지제도 개혁, 세금 감면, 교육비 증액,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엄격한 대처 등의 정책을 펼쳤으나, 그가 제안했던 세금제도 개선안은 의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8년에 주지사에 재선됨으로써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텍사스 주지사가 되었다.
1999년 6월 12일 그는 공식적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전통적인 경제정책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절충한 '동정적 보수주의'로 규정했다. 그는 즉시 많은 공화당원들의 지지를 얻어 각종 선거에서 선두를 유지했다. 또한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단연 두드러졌는데 1999년 첫 9개월 동안 다른 공화당 후보와 달리 혼자서 6,000만 달러를 모금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치른 민주당의 앨버트 고어 후보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그는 전국 득표수에서 뒤졌으나 선거인단수에서 앞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4년 11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의 정치가. 미국 제43대ㆍ44대 대통령.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에서 출생하였다.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시 부시와 바바라 부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석유사업을 하던 텍사스주 미들랜드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의 출신교인 매사추세츠주의 명문교 필립앤더버 학교를 나온 후 예일대학교에 진학하였다. 1968년 졸업 후 텍사스주로 돌아가, 텍사스주 공군 방위군에 입대하였다. 중위 계급으로 제대한 후 1975년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MBA(경영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업에서도 부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사업 분야에 손을 댔다. 미들랜드로 돌아간 부시는 석유와 가스 탐색을 주업무로 하는 '부시 탐색회사'를 설립하였다. 사업이 한창 바쁘게 돌아가던 중 연방의회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공화당 후보인 켄트 핸스(Kent Hance)에게 6%의 표차로 패배하였다.
그가 다시 사업 분야로 돌아갔을 무렵에는 1980년대 초반의 석유값 하락으로 부시 탐색회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부시는 기민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회사를 스펙트럼사와 합병한 후 회사에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매각하였다.
1986년 대통령 후보로 선거전을 치르던 아버지의 참모로, 또 연설 초안자로 대통령 선거전에 참가하였다. 그는 곧 아버지의 가장 충실하고 유능한 조언자가 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바로 부시는 댈러스로 가서 몇 사람의 동업자와 함께 4,600만 달러에 프로야구단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을 매입하였다. 홈구장에서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는 항상 팬들과 함께 스탠드에 나와 경기를 즐김으로써 텍사스 주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1993년 부시는 텍사스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 후보 앤 리처즈(Ann W. Richards)를 35만표 차로 누르고 승리하였다. 처음에는 그는 유능하고 인기가 있는 주지사였으며, 민주당 의원이 우세했던 주의회와도 원활한 협조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97년 텍사스주의 세법을 재조정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함으로써 그는 공화당은 물론 진보주의자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그의 법안은 의회에서 부결되었으며, 이것이 그에게 하나의 시련이었다. 그러나 1998년 11월에 치른 주지사 선거에서 다시 승리함으로써 텍사스주 최초의 재선 주지사가 되었다.
1999년 6월 부시는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한때 상원의원 존 맥케인이 그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기 했으나, 2000년 3월 소위 '수퍼 화요일'의 승리를 계기로 공화당의 지명을 획득하여 민주당 후보 앨 고어와 대통령 선거에 출마, 2000년 11월 7일 치러진 선거에 승리, 제43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11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는 아버지 조지 부시와 함께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재임 1797∼1801)와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재임 1825∼1829)에 이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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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가. 조지 W 부시 택사스주지사는 40세를 전후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1986년 7월 28일 ‘만 40세 기념 파티’를 마친 다음 날 아침 주위 사람들에게 금주를 선언하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전까지 부시에겐 ‘아버지만 못한 아들’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예일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마쳤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후광에 따른 기여 합학 덕이었다. 31세에는 하원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 거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눈총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조부는 상원의원, 그리고 부친은 대통령을 지냈으며, 동생(젭 부시)도 현직 플로리다주지사로 일하는 등 정치 명문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1986년 그는 새롭게 재기했다. 원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서 10달러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소유하고 있던 석유회사를 거대 석유회사 하켄에 30만 달러 상당의 주식과 이사직을 넘긴 것이다.
이듬해엔 파산 직전의 텍사스 레인저스 포로야구단을 인수했다. 94년 레인저스 구단을 매각할 때 60여만 달러의 투자금은 약 1천5백만 달러로 늘었다. 그는 그 해 텍사스주지사직에 오르고 이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의 새로운 정치 인생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자질에 대해선 끊임없이 시비가 제기되고 있다. “부시는 세부적인 문제를 믿직한 참모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큰 그림에만 신경을 쓰는 전형적인 최고 경영자”라는 핵심 참모 클레이 존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철학 빈곤 및 아이디어 부재 등 지도자적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출생지 : 텍사스주
▲종교 : 감리교
▲학력 : 예일대 학사, 하버드대 MBA
▲정치 경력 : 77년 하원 출마 낙선, 88년 부시 전대통령 선거 참모, 95년 텍사스주 주지사
▲군경력 : 69년∼73년 텍사스 공군 방위사 조종사
▲사회 경력 : 석유ㆍ가스 그룹 창립자 및 CEO, 텍사스 레인저스(프로야구) 구단 운영
▲가족 : 부인 로라와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