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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16
 제목  영지주의 - 말시온주의의 배경
 주제어  [영지주의] [말시온주의] [이단] [초대교회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서   론


초대 교회는 크게 두 측면에서의 공격에 대처해야 했다. 외부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이단 사상들로부터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지켜 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교회는 313년 밀란 칙령으로 박해가 공식적으로 종식되기까지 약 300년간에 걸친 박해를 거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더 확실히 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그 믿음을 지키는 모습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어 이후 복음이 좀더 용이하게  확산되게 하였다. 또 이단 사상들의 공격에 대처하며 기독교 성장에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종교, 철학 사상들과의 혼합적 경향을 극복하고 참다운 복음의 진리를 지켜 냈다.

초대 교회가 겪었던 이런 두 측면의 공격은 교회사 전체를 통하여 교회의 순수성과 진리를 지키는데 있어서 항상 있어 왔던 두 가지 측면의 시험대였다. 교회는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끊임없는 이단 사상들의 공격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왔고 이것이 교회라는 이름 속에 함께 있어 온 잘못된 요소들을 정화시키는 하나의 시험대로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특히 이단적 사상의 내적인 공격은 그 성격이 보다 점진적이고, 지속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교회사 전체에 있어 가장 중대한 도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초대 교회 시대에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의 성격과 그 영향을 고찰해 보고, 이에 슬기롭게 대처했던 믿음의 선조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는 것은, 이단들의 은밀한 공격과 끊임없는 혼합주의적 요소의 침투로부터 예외가 아닌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을 살피고 정화하는데 도움을 얻는 작업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초대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위협이었던 말시온주의 이단 사상과 그에 대처한 교회의 응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말시온주의는 기독교적 영지주의의 배경 아래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말시온주의는 그 성격이 다른 영지주의 사상과는 달리 더욱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도전이 심각했다. 그리고 이에 대처한 교회의 응전의 모습이 다른 응전의 모습과는 달리 교회의 성립에 확실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는 말시온주의 이단 사상의 가장 심각한 도전이었다고 생각되는 정경 확립 문제에 중점을 두고 정경을 확립시킴으로써 말시온주의의 공격에 대처한 교회의 응전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 교회의 응전에 관련한 의문점, 과연 말시온주의가 정경 형성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단들과의 싸움을 이끌어 가시고 자신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 주도권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영지주의 - 말시온주의의 배경


① 영지주의의 생성 배경

1세기에서 2세기의 헬레니즘에서 로마 시대로 이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혼란기에 지중해, 중동 사람들은 개인들의 영향력 상실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개인의 구원과 현실도피를 추구하고 있었다.1)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인 구원에 강조점을 두는 영지주의는 광범위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영지주의의 기원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성경에서 이미 영지주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가 정립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2) 오늘날 대부분의 영지주의적 문헌들은 소실되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자료는 영지주의에 대한 교부들의 반박들에 나타난 영지주의에 대한 설명들로부터 얻어졌다.3)

이런 자료에 의해 생각해 볼 때, 영지주의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 정립된 사상이나 독립된 사상적 경향이었다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대게 추종하던 다분히 종교적인 사상적 경향이라고 여겨진다. 영지주의는 모든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사상들을 적당히 섞어 놓은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4) 영지주의는 유대교와 헬라 철학 동양 철학, 기독교 사상의 혼합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혼합의 양상은 기독교 사상과 헬라 철학, 특히 신플라톤주의적 사상의 혼합이다.5) 영지주의가 기독교 사상을 혼합시킨 것은 당시 가장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던 기독교 사상과의 접목을 통하여 보편 종교화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6)


② 영지주의의 사상

영지주의는 혼합주의적 사상이었고 그 주장되는 범위가 광범위했기 때문에 어떤 통일된 사상적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부분들을 통해 영지주의의 세계관을 살펴볼 수가 있다.

첫 번째로 영지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상은 철저한 이원론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대게 플라톤주의적 영향 아래 물질과 영혼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물질은 악한 것이며 영혼은 선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기독교를 이해할 때, ‘두 가지 신(Two Gods)’ 사상이 대두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악한 물질 세계를 창조한 구약의 하나님을 선하고 완전한 신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창조주인 구약의 하나님을 플라톤의 ꡔ티마이우스ꡕ(Timaeus)에 나오는 데미우르게(Demiurge)라고 생각했고, 이 데미우르게와는 달리 물질 세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더 높고 위대한 지존의 하나님(The Highest God)이 있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신’ 이론의 배경에는 복잡하고 신화적인 우주 창조에 관련한 영지주의적 이해가 있다. 유출설로 정의해 볼 수 있는 이 복잡한 우주 창조의 이론은 지존의 신, 알려지지 않은 신과 그 여성적인 파트너로부터 에온(Eon)이 파생되었다는 영지주의 특유의 파생적 이원론과 유출이 계보학적 순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숫자풀이식 이해로 구성되어 있다.7)

두 번째로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영지주의의 구원론과 기독론이 나타난다. 영지주의에서의 구원은 우주 생성의 질서인 충만으로의 복귀이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천상에 대한 지식인 영적인 지식(γνώσις)이다. 진정한 자아를 망각하고 육체 속에 갇혀 버린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는 영적인 지식을 들음으로서 이루어진다.8) 그리스도는 충만으로부터 유래한 하나의 에온으로서 초월적인 영적 세계에서 우리에게 해방의 계시를 전해 줄 사자(使者)이다. 영적인 본질인 그리스도께서 해방의 대상인 물질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던 영지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다.9)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을 천상의 지식을 받아들인 영적 능력 구비자인 영적인 자(Pnuematics)와 물질주의자로 구분하고 그 사이에 기독교도들이 포함되는 영매(Psychics)가 이미 예정되어(predestinated)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천상의 지식, 영적인 지식은 성경에 나타난 계시와는 별도로 구전(Oral Tradition)을 통하여 은밀히 자기들에게만 전해진 예수의 가상적 교훈이었다.10)

영지주의의 세 번째 특징은 유사한 우주관과 구원관에도 불구하고 교리의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 각 분파별로 극단적인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천상에 지식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구원론은 동일했으나 각 분파들은 자신들만이 신비의 계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분파의 구원을 부정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종교적 신비 의식을 발전시켰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의 윤리는 물질 세계를 부정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의 차이 때문에 금욕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띠었다. 엔크라티데스(Encratites)라고 불리는 다수의 영지주의자들은 물질 세계를 부정하고 결혼과 여성을 천시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했는가 하면, 카포크라테스(Carpocrates)라 불리는 소수의 영지주의자들은 도리어 가치 없는 물질 세계 속에서의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자유방임적인 윤리관을 지니고 있었다.11)

영지주의는 2세기 초반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나 각 분파의 주장이 너무 달라자 각각 자신들의 전승과 의식의 비밀을 강조하며 대적했기 때문에 조직된 공동체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고 뚜렷한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체 사라지고 말았다.12)


말시온주의의 위협


① 말시온과 영지주의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말시온은 흑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폰투스(Pontus;성경에는 본도로 표시됨)출신으로 138년경 상당한 부를 소유한 체로 로마에 왔다. 로마의 교회에 소속되어 나름대로의 교리를 전파하던 말시온은 교회 안에 다수의 추종자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사상이 세르돈(Cerdon)이라는 영지주의자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에 144년 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정죄를 받았다.13)

말시온의 사상은 많은 부분에서 영지주의의 영향을 내포하고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일반적인 영지주의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말시온은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을 답습했지만 그들의 이원론과는 다른 양상으로 자신의 이원론을 정립했다. 말시온은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두 가지 신’의 견해를 수용하여 악한 유대인의 신(Malign God of the Jews)과 궁극적인 선한 하나님(Good Ultimate Father)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그러나 말시온은 두 하나님 이론을 물질과 영혼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영지주의적 견해와는 달리 율법과 복음의 구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제시되었다. 따라서 그의 이원론에는 영지주의와 같은 궁극적인 천상계로의 귀화를 위한 신비적 지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말시온은 영지주의와 같이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영지주의와 같은 가현설적 주장을 폈지만 영지주의자들과는 그리스도를 단지 천상 지식의 전달자로 여기지는 않았다. 말시온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구속적 의미를 부인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말시온 역시 영지주의와 같이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고 영혼만의 구원을 주장하는 면에는 동일했으나 영지주의에서처럼 영혼과 육체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하여 충만에 이르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말시온은 인간에게 있어 육체와 영혼이 모두 본래적으로 악했으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며, 이 때 불완전한 육체는 소멸되고 영혼만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말시온이 상당한 부분에서 영지주의와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이것을 수용했기 때문에 말시온을 영지주의의 한 분파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에서 출발한 독창적인 사상 체계로 볼 것인 지에는 의견이 차이가 있다.14)


② 말시온의 이단성

말시온의 이단성은 정통의 교회에서 인정할 수 없는 영지주의적 신론을 주장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말시온은 다른 영지주의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신, 두 하나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은 물질과 영혼의 대립 선상에서의 두 하나님이 아니라 율법과 복음의 대립 선상에서의 두 하나님이었다. 율법과 복음의 대립 선상에서 구분된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의 구분이라는 교리적 특징으로 나타났으며 이 것은 다른 영지주의자들보다 확연히 이단적인 주장이었다.

또한 말시온은 기독론은 영지주의자들의 복잡한 에온(Eon)으로부터의 유출 이론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가현설(Docetism)적이었다. 말시온이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고 육신으로 죽임을 당하고 부활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역시 일반적인 헬라 사상의 물질, 육체 거부 사상 때문만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분리라는 새로운 국면의 필요성이 전제된 것이었다. 따라서 말시온의 삼위일체론은 이후 이단들의 전형(箭形)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난을 거부하는 말시온의 입장은 이후 성부고난설을 주장한 사벨리우스나 단일신론 이단들의 주장과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말시온은 재림을 부정했다. 말시온은 육체의 구원이나 부활을 부정했기 때문에 인간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충분하게 여겨졌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신약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나 승천과 더불어 몸이 다시 사는 심판이 있어질 재림 역시 그에게는 잘못된 ‘복음’의 왜곡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15)

그러나 말시온의 이단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의 성경 축소 편집이다. 말시온은 앞서 살펴본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고수하려고 했기 때문에 성경의 다양한 국면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으며 자신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성경을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말시온의 이단이 나름대로의 조직을 형성하고 다른 영지주의 분파들과는 달리 치명적인 이단으로 초대 교회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도 편집되어 규정된 정경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6)


③ 말시온의 성경 이해 - 축소를 위한 편집

말시온이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 중시했던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은밀한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그가 복음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한 단순한 신앙이었다.17) 말시온은 성경의 단순한 복음이 비유적인 해석이 아닌 액면 그대로 성경을 봄으로써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또 기독교를 단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교리에 국한시키려는 율법주의적 경향을 단호히 배제할 때에만 복음의 진리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말시온은 복음과 율법의 대립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성경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이 유일한 성경 해석의 법칙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보여지는 것은 성경의 목록 속에서 제외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다. 그는 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성경이 구약을 인용하고 율법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이 율법주의적 성향을 가진 후대 교회에 의해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근원 자료의 재검토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원시적 복음(the primitive Gospel)으로 복귀하여야 한다고 교회에 주장했다.18) 말시온은 그리스도께서 전한 원시적 복음이 구약의 율법을 완전히 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구약의 율법은 구속사적인 성취를 위한 예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신 선한 하나님과는 다른 원래 변덕이 심하고 잔인하며 무지한 구약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19)

말시온의 ‘두 하나님’의 견해는 영지주의와 마찬가지로 가현설(Docetism)로 이어졌다. 말시온에게 성자는 육신이 아닌 ‘구원의 영(the Spirit of the Salvation)이었다. 물질을 창조한 악한 신에게서 나지 않은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으로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은 후대 교회에 의해 날조된 것일 수밖에 없다. 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역시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말시온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드러나는 성경의 부분 역시 후대의 날조에 의한 왜곡이었다.

율법적 요소의 극단적 거부와 성경이 왜곡되었다는 말시온의 견해는 필연적으로 복음의 원래적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성경 편집으로 이어졌다. 말시온이 편집한 성경에서는 구약은 당연히 제외되었고 유대주의자들의 날조로 인해 율법과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는 세 개의 복음서와 공동서신들이 제거되었다. 말시온에게는 율법과 복음의 구분이 바울에 의해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의 10가지 서신과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제외) 바울의 사상이 가장 잘 담겨진 복음서인 누가복음도 역시 잘못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말시온의 성경은 크게 두 가지 부분, 수정된 누가복음서만 포함하는 복음서와 수정된 바울의 처음 10개의 서신으로 구성되는 서신서로만 국한되었다. 

말시온의 성경 편집은 교회사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시온은 우의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던 초기 교회에서 문자적인 해석을 강조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리고 유대주의적 요소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이 있던 시기에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을 부각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또 정경 형성의 역사에 있어서는 말시온이 최초로 정경의 목록을 규정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말시온이 서방 교회에서 여전히 율법이 중시되는 경향을 경계하고자 그리스도를 믿음의 복음을 강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경 이해는 성경의 다양한 면모를 복음과 율법의 분리라는 한가지 법칙으로 단순화하여 성경을 자의적으로 삭제하고자 한 것은 명백히 이단적인 행위였다.20)

말시온의 사상은 다른 영지주의자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기타 영지주의적 이단들이 비밀스러운 의식과 교리를 강조한 나머지 조직적인 성격의 운동으로 전개되지 못한 반면, 말시온의 추종자들은 자기들만의 교단을 교회 내부에서부터 조직하였고, 그 교리의 영향력을 조직적으로 확대하며 2세기 중반에는 정통 교회를 위협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큰 위협으로 등장한 말시온의 이단성을 규명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교부들의 노력은 3세기에 들어 말시온주의 운동이 자취를 감추게 하는데 성공했다. 3세기 이후 말시온주의는 마니교 사상에 융합되어 독립성을 상실하였으며 이후에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교회의 응전


영지주의에 대한 반박 및 비판은 이미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다. 골로새서 1:16-28에서는 당시 초대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의 신비적 지식 및 제의를 좇지 말것이 경고되어 있고, 요한은 자신이 서신 전반에 걸쳐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을 강조하며 영지주의적 이원론을 배격하고 있다.21) 이후 교부들에 의해 이루어진 영지주의, 특히 가시화된 말시온주의의 위협에 대응한 응전은 크게 세 가지로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 각각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① 사도권 계승 옹호를 통한 감독 제도의 발전

첫째로 나타난 교회의 응전은 사도권 계승을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정통성을 변호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계시의 내용을 가감하는 영지주의와 말시온주의의 성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단을 분별하여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할 권위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권위를 획득하는데 핵심이 된 개념은 “사도적 계승권(Apostolic Succession)”이었다. 일찍이 속사도인 이그나티우스는 감독들의 권위가 사도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권위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단을 반박함(Against Heresies)‘라는 저서를 통해 영지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던 교부 이레니우스 역시 사도들이 당시의 감독들을 자신들의 계승자로 임명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사도단에게 맡기신 모든 것이 1세대 감독들을 거쳐 당시의 감독들에게 인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된 모든 것이 사도들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에 만약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기록되어지지 않은 천상의 지식이 있다면 감독들이 그것들을 전수할 수 있는 유일한 계승자들인데 당시의 감독들이 결코 영지주의적 지식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영지주의의 신비적 지식 주장을 논박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이에 덧붙여 바울과 베드로의 사도권이 공히 계승된 로마 감독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다른 교구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다.22)

교부들에 의해 옹호된 감독직의 강조는 이후 군주적 감독 제도 개념이 덧붙여지면서 카톨릭 교회의 조직화된 행정조직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행정 조직화된 감독 제도는 상급 성직자와 세분화된 하급 성직자간의 계급적인 구조로 발전하였고, 평신도와 성직자간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는 등 점점 본래의 동기들이 상충하게 되어 이후에는 도리어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23)


② 신경의 정립

이단들의 이론에 대응했던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정통성을 계승한 감독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 교회 안에서 확인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필요성에서 요청되어 발전한 것이 간단히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 정통적인 신앙의 고백이 담겨진 신경(Creed)의 정립이다. 주후 107년경에 나타난 이그나티우스의 신앙고백을 필두로 속사도들과 초기 교부들의 것으로 보이는 신경들이 등장하였다.24)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며 집약적인 신경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문답 형식에서 오늘날의 형식으로 4세기경 체계화된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의 내용은 당시 교회를 위협했던 이단들의 사상들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사도신경 서두에 등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주 하나님의 동일성을 고백함으로써 영지주의의 보편적인 두 하나님 사상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이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의 고백 역시 결혼을 부정한 것으로 여긴 말시온의 윤리적 견해나 물질적인 것을 악하다고 여김으로 나타난 영지주의적 가현설의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의 성도들의 육체적인 부활의 고백 역시 영지주의적 이원론을 거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 신경이 강조된 것은 그것이 이단적인 사상들을 공격하고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는 데 가장 확실하고 유용한 방법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신경과 신앙률이 감독들에 의해 전수된 것이기에 사도적 전승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터툴리안은 신경이 보다 함축적 직접적이기 때문에 이단들을 논박하는 데는 성경 자체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25) 이후 신경들의 발전을 터툴리안의 지적처럼 함축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③ 정경의 확립

이단들의 공격이 있기 이전 교회는 공식적인 기록된 정경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구전들이 사도들과 그 계승자들을 통하여 여전히 효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들이 공격에 직면하여 교회는 정경을 규정하고 그 권위를 확립할 필요를 느꼈다. 말시온은 기독교 문서를 윤곽이 뚜렷하게 수집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므로 교부들이 정경을 확립하는데 가장 염두에 둔 이단은 말시온주의였다.

말시온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앞서 살핀  말시온의 율법과 복음의 분리라는 기준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었다. 교부들은 말시온의 단순한 기준보다 권위 있는 기준을 세웠는데 그것은 사도적 권위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읽혀지고 예배에 쓰여지는 책들 중에서 사도 또는 사도들의 친구들의 저술 여부가 정경을 인정하는 표면적인 기준으로 여겨졌다. 주후 367년 아다나시우스의 편지에 나타난 정경 목록은 이러한 기준이 적용된 대표적인 정경 목록 기록이다.

구약에 대한 정경 인정은 이미 유대인들이 인정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 있었다. 교부들 역시 말시온이 폐기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구약 율법을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이해함으로써 교회의 정경으로 계속 인정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율법을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외형적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듯이 본래적인 율법의 완성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26) 따라서 율법을 전해 주고 있는 구약은 교회의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신약 성경의 정경의 확립은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졌다.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보다 늦게 정경으로 인정되었다.27) 몇몇 교부들의 목록 중에서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3서 등의 서신이 누락된 것도 발견된다. 반면에 지금은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디다케”, “헐마스의 목자”, “베드로 묵시록”, “클레멘트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바나바 서신” 등은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복음서 문집(Gospel Collection)이 이미 2세기초에 존재하고 있었고, 285년 기록된 클레멘트의 서신에서 바울 서신이 보관되고 있음이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정경 형성은 이미 2세기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28)


사도적 계승의 확립을 통한 감독 제도 중심의 교회 조직화와 신경의 정립, 정경의 확립은 모두 초대 교회가 이단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상호 보완적으로 쓰여진 중요한 수단이었다.29) 결국 교부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곧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진리와 인간의 죄는 육체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진리였다. 이렇게 죄를 지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육체의 몸으로 오셔야 했으며 그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영생은 육체의 부활을 포함하는 것이다.


정경 형성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들


영지주의의 이단 사상, 특히 직접적으로 성경을 편집함으로써 교회의 가시적이고 조직적인 위협이 되었던 최초의 이단인 말시온의 사상에 대응한 교회의 응전은 올바른 성경관의 확립으로 집중되었다. 사도적 권위를 통한 교회의 정통성 주장 역시 어떤 조직의 정통성 주장에서 보다는 그 조직에서 권위있기 정경을 규정할 수 있게끔 하려는데 주안점이 있을 때 효과적이었다. 신경 역시 교회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인정한 정경의 내용을 이단의 잘못된 사상의 대립점을 부각시키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성경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그것은 정경 형성이 이단들의 공격에 응전하기 위하여 몇몇 교부들에 의하여 주장되었다면, 이전에는 성경이란 것이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가 말시온에 대응하기 위하여 후에 사도적 권위를 획득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오늘날 우리가 신앙의 절대적 표준으로 삼고 있는 성경이 2세기와 4세기에 교회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면, 우리가 그 시대나 이후의 다른 기독교 문헌들보다 신약 성경에 더 권위를 실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시온의 위협은 초대 교회가 정경을 인정하는데 있어 하나의 자극이 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성경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말시온의 공격에 직면하여 교회가 행한 것은 쓰여지고 있던 성경의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 있던 책들의 목록을 작성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경 계시의 인정과 정경(Canon) 목록의 인정을 구별하여 생각해야 한다. 특이한 사항은 초대 교회에서는 어떤 것이 계시된 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도나 사도와 함께한 가까운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 성경으로 인정되어 사용되어진 데는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록된 말씀에 기록된 계시의 자증성을 신뢰했고, 예수님의 사역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의 구전역시 확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과 일치했던 기록된 성경의 계시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 기록들은 사도들의 설교와 교훈들을 서면으로 옮겨놓은 것으로서 이에 따라 주님 자신의 특별한 권위를 영속화 시킨 형태로 의심업이 받아들여졌다.30) 마르시온 역시 비유적 해석을 거부하고 문자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기록된 말씀이 있었기에 편집을 가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말시온 역시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성경을 인정하고 그것을 공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31)

두 번째로 말시온의 공격이 있기 이전에 이미 정경을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이다. 기록에 의하면 1세기말에 이미 바울 서신을 수집하여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앞서 인용한 클레멘트의 서신에서 로마 책장에서 바울 서신을 보관하고 있다는 기록이 발견되며, 이미 클레멘트가 바울 서신의 일부 사본을 소유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증거된다.32) 클레멘트 이후의 교회의 바울 서신 수집 노력은 성실히 수행되어서 1세기 말 경에는 적어도 열 개의 책이 포함된 바울 문집(Corpus Paulinum)을 교회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4복음서 역시 1세기 말엽부터 수집되어 2세기경에는 함께 묶여 사용되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말시온주의의 성경에 대한 공격이 교회로 하여금 정경을 확정하게끔 강요하였다기보다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정경 형성을 가속화시키고 정확성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세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정경의 형성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지역적으로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이 이르는 다양한 교회의 지역적, 신학적 특징들이 심화되는 시기에 27권에 이르는 적지 않은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되는 데 1세기가 소요되지 않았다.33) 따라서 신약 성경의 형성이 2세기 중반 말시온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시작하여 4세기 아다나시우스에 의해 종교 회의에서 인정되었다는 하르낙을 포함한 진보적인 입장에서의 이해는 설득력이 없다. 아다나시우스에 의해 확립된 교부들의 정경 목록 확립의 노력은 당시 쓰여지던 책들에다가 계시로서의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권위를 가지고 쓰여지던 책들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이단들의 잘못된 성경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경의 확립은 정경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한 공식 선언이었을 뿐이다.


결    론


영지주의는 기독교회가 최초로 대적해야 했던 이단 사상이었다. 영지주의의 공격은 확산되고 있던 기독교 사상을 자신들의 교리에 혼합시키려는 혼합주의의 공격이었다. 그들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내용 이외에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천상의 지식을 소유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적 세계관이 교회 내에 침투해 기독교 본래의 진리를 왜곡하고 성경과 교회 조직을 잠식함으로써 본격적인 이단 활동을 전개한 사람이 바로 말시온이다. 그의 사상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위해서 명백히 인정되고 있던 성경의 내용을 단순화하려 한 이단 사상이었다. 이렇게 일반적인 영지주의자들은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를 첨가하고자 하였고, 말시온은 자신이 교리를 위하여 성경을 삭제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초의 이단들을 바로 성경의 유일성에 대해서 공격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응전은 성경 계시의 유일성을 확인하고 올바른 정경의 목록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어 진행되었다.

오늘날 성경의 유일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공격도 최초의 이단 사상과 그 근본에 있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계시의 비신화화를 주장한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말시온의 축소주의(Minimalism)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불트만의 뒤를 이은 자유주의자들의 성경 해석은 단순한 율법과 복음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성경을 축소시킨 말시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축소되고 남은 내용마저 자의적인 해석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34) 불트만과 같은 학문적인 도전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도 성경의 계시를 유일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유혹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원칙들로 성경의 다양한 국면을 재단하여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말시온적인 성경 편집 성향도 항존하고 있는 신앙의 위협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들을 대처할 때, 지금도 성경 계시에 대한 공격을 방어했던 초대 교회의 방법은 유효하다.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성경이 유일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성경을 변호함으로 이루어진다다.

초기 이단들의 공격은 이후 교회가 세계 교회로 성장해 나가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교회는 이단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직화되었으며 정리되어 있지 않은 정경 인정 작업도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정경의 형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마치 후대 교회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성경을 취사선택했다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이렇게 자의적인 관점에서 성경이 취사 선택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정경을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볼 때, 단순히 일어나는 현상에 머무르지 말고 그 속에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초대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나 말시온주의의 공격에 대항해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을 지는 몰라도, 어려워 보였을 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를 외적 박해와 더불어 내적인 어려움을 통하여 더 순수하고 발전되게끔 역사하셨다. 오늘날 교회 내에 침투한 잘못된 사상들을 대적함에 있어서도 역사를 통해 나타난 명백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비록 이 싸움이 힘들고 어렵게 여겨지더라고 이 일을 통하여 자신의 교회를 바르게 세워 나가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의 노력이 단순한 학문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귀한 헌신이 될 것이며 이 내적인 싸움의 최후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 고 서 적


Brown, Harold O. Heresies, 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 Company, inc, 1984.

Bruce, F. F. The Spreading Flame, 서영일 역, "초대교회 역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Chadwick, Henry, The Early Church, 서영일 역, "초대교회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Gonzalez, Justo, L.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I, 이형기, 차종순 역, "기독교사상사", 고대편,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8.

Hägglund, Bengt. History of Theology, 박희석 역, "신학사", 서울: 성광문화사, 1989.

Latourette, Kenneth Scott, A History of Christianity, Vol 1., 윤 두혁 역, "기독교사", 상권,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79.

Placher, Willian C. A History of Christian Theology, 박경수 역, "기독교 신학사 입문",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4.

 

>> 연결고리 : 영지주의,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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