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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05
 제목  성서시대(간추린 이스라엘사)
 주제어  [이스라엘]
 자료출처  이스라엘문화원  성경본문  
 내용

1. 성서시대

 

유대인의 역사는 약4000년 전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기원전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기록으로 그들의 유목생활의 양상이 창세기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여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민족의 시조로, 또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신앙의 종으로 부름 받았는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기근이 나라를 덮치자 야곱과 열 두 명의 아들과 그 가족들은 이집트의 나일 삼각주 동쪽 지방인 고센에 정착했다. 그들의 후손은 노예로 전락하여 강제 노역을 했다.

 

■ 출애굽과 정착
400년 동안의 노예 생활 후에 이스라엘은 모세에 의해 자유를 찾았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모세는 하느님께 선택받아 그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땅 (에레츠 이스라엘)으로 인도(기원전 12~13세기)했다. 이스라엘인은 시나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십계명을 포함한 모세 5경을 받고 국가를 세웠다. 출애굽(기원전 1300년)은 유대인들의 국가에 대한 기억 속에 유일신에 대한 신념을 담은 위대한 흔적을 남겼으며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과 율법을 받은 날, 그리고 광야의 방황을 기념하는 날을 당시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경축하고 있다. 다음 두 세기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그 땅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유목 생활을 청산, 농민과 장인으로 변신하면서 경제적 , 사회적으로 다소 기반을 잡았다.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가 마감된 것은 사람들이 '사사'로 알려진 지도자들 주위에 몰려든 전쟁의 시대가 시작되면서였다. 사사들은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능력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으로 역량을 발휘하여 이러한 지위로 추대되었으며, 적을 정복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간 동안만 헌신하였다. 이어서 블레셋(해안에 터를 잡은 소아시아 민족) 의 위협에 직면하자 부족 조직의 타고난 나약함은 부족들의 통합과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왕권의 지위를 가진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었다.

 

■ 왕국 시대 ( 기원전 1020년)
초대 왕 사울은 흐트러진 부족 시대와, 그의 후계자 다윗에 의해 정비된 완전한 군주 시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다윗 왕 ( 기원전 1004~965년경 ) 은 블레셋 정복을 끝으로 군사 원정에 성공하고 주위 나라들과 우호 동맹을 조직하여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어서 그의 왕권은 이집트 변경과 홍해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확장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행정 제도를 확립했으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12부족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하여 예루살렘과 국왕이 국민 생활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성서에 의하면 다윗 왕은 많은 재능을 가진 인물로,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편에서 그의 시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알 수 있다. 솔로몬 왕 (기원전 965~930년경)은 부왕 다윗이 세운 제국을 계승하여 그의 능력을 왕국의 부흥에 쏟았다. 정략 결혼을 하여 힘을 증강한 이웃 나라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왕국 내부의 평정을 유지하고 당시의 열강들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솔로몬은 외국과의 통상을 강화하고 동을 채광, 철을 제련하는 등 주요 사업을 발달시켜 경제를 부흥 시켰다. 솔로몬 왕은 전략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들을 요새화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솔로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왕궁과 예루살렘 신전의 건축인데, 신전은 국민의 국가적 종교의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성서의 잠언과 아가서는 솔로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왕국의 분열
솔로몬의 치세는 민중들의 고조된 불만으로 파국을 맞았는데, 그의 계획이 백성들에게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부족과 다른 부족에 대한 차별은 왕국과 부족 분리주의자들 사이의 적대감을 높였다. 솔로몬이 죽자(기원전 930년) 반란이 일어나 북쪽의 부족들이 떨어져나가 나라는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0개의 이스라엘 부족의 영토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왕국은 수도를 사마리아로 정하고 19대 왕까지 200년 동안 이어졌다.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 부족으로 구성된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다윗의 대를 이어 같은 수의 왕에 의해 350년 동안 이어졌다. 앗시리아 확장으로 바빌로니아 제국의 영토확장으로 이스라엘이, 유다가 차례로 정복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 제국에게 점령되었고(기원전 722년), 백성들은 유배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그로부터 백년 후에 바빌로니아는 유다 왕국을 점령하고 신전을 파괴하였으며 (기원전 586년), 주민의 대부분을 유배하였다.

 

■ 바벨론 유수 ( 기원전 586 ~ 538년)
바빌로니아의 정복으로 제 1 유대왕국은 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정복이 유대인들의 땅에 대한 애착은 끊지 못했다. 그들은 바빌론 강가에 앉아 밤낮으로 고향을 기억하자고 언약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시편 137장 5~6절) 1차 성전 파괴(기원전586년)후에 바벨론의 유수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독특한 이상의 체계와 이스라엘 땅 밖에서 유대교의 체계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민족의 생존과 정신적인 동질성이 확고해 지고 한 국가로서 민족의 장래를 보장하였다.

 

>> 목차고리 : 간추린 이스라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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