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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01
 제목  현대 선교학 총론
 주제어  [선교]
 자료출처  김성태 지음  성경본문  
 내용
현대 선교학 총론 
 

Ⅰ. 선교학의 신학적 위치와 정의
 
        교회의 존재 의미는 선교이다.
마틴 헹겔은 선교란 단순히 교회의 기능이 아니라 본질이며 교회의 시작이 선교의 시작이라고 한다.
  
1. 선교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를 일반적으로 교회사가 들은 AD 500년으로 정한다.
이 기간에 선교란 복음의 본체론적 생명력이 교회의 자발적인 헌신과 순종으로 역동성 있게 각계 각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적으로 전파되어지는 양상이었으며   중세는 교회사의 암울한 시기였지만, 선교의 공백 기간은 아니고 수도원 운동을 중심으로 한 교회 개혁과 갱생의 몸부림이 있었다.
또한 독일의 경건주의와 모라비안 선교 운동이 개신교 선교의 효시로 평가했다.
  
2. 선교학의 신학적 정립

        선교학이란 삼위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 계시인 성경 66권을 통해서 구원받은 그의 백성인 교회에게 이 세상 속에서 모든 종족들과 모든 문화권 속에서 총체적인 복음을 전달케 함으로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관련된 모든 학문의 영역을 의미한다.



Ⅱ. 현대 선교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 학자들
  
1. 구라파의 선교학자들

        1) 레슬리 뉴비긴은 선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통한 총체적인 복음을 전 세상을 향해서 전할 것을 주장하고  기독교 계시의 유일성과 독특성, 보편성을 강조하였다. 교회의 말씀과 행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간성의 공동체를 통한 총체적인 선교를 주장한다.
        2) 한스 요켄마글은 전도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의 참여이요. 종말론적 교회 공동체의 행동을 통한 희망의 변혁이다. 전도를 하나님의 선교에의 참여로 규정하고 행동을 통한 희망으로 정의함으로 세계교회 협의회의 전도 내용이 바로 하나님 선교 개념에 입각한 사회변혁, 사회정의구현이요. 인간성 회복이라는 인본주의적 수평주의 차원의 전도개념을 낳는데 기여함.
        3) 칼하텐스타인은 칼바르트의 영향을 통해서 선교에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해 왔고, 선교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참여하는 것인데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인간의 영역고 상관이 없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오스카 쿨만의 영향을 받아 선교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는 유일한 하나님의 수단이요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선교 목표를 하나님의 나라로 규정하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한다.
        4) 월터 후라이탁은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요 전 세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외적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선교관은 하나님의 선교 사상에 부합하는 요소가 있고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 한 부분이요. 하나님의 선교는 그보다 더 큰 전 세상을 향하신 사역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5) 피터 바이엘하우스는 전통적인 선교의 목표로서 복음 선포와 이방이의 개종 그리고 교회 설립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교의 목표는 절대 타협되거나 변질될 수 없는 내용임을 천명했다.
        6) 헨드릭 크레머는 성경의 규범성과 권위를 토착화나 타종교와의 대화에 최종적인 표준으로 삼고 이것을 절대 양보하지 않아야 하지만 타종교인들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있어서는 저들의 실상을 이해하는 동정적 접근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복음주의적 접근이라는 하는데 복음 선포와 문화적 적응과 섬김의 접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7) 요한헤르만 바빙크는 타문화와 타종교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통은총이 없다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전혀 없기에 선교의 교량 역할을 하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음으로 선교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학적인 분야와 선교역사 분야와 타종교를 문화의 핵심으로 보아서 타종교를 선교의 주요 대상으로 하여 연구하는 엘렝틱스1)가 있다는 것이다.
        8) 요한네스 호켄다이크는 교회가 세상 속의 사도적 교회로서 모든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변혁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샬롬의 변화를 가져올 것을 주장하였고, 사회변혁과 인간성의 회복을 가져오는 수평적이고 인본주의적 사상이 되는 것이다.
        9) 요한네스 버카일는 성경에서의 선교의 동기를 네가지로 보았다. 신구약 아울러서 보편적인 동기, 구출과 해방의 동기,선교적 동기, 대립의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이 올수록 종말의 한 징조로서 유대인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전형적인 개혁주의 종말관을 반영하였다.

       2. 미주 대륙의 선교 신학자들

        1) 케네스 스코트 라토렛의 선교관은 교회병행 선교단체와 제도적인 교회가 서로 연합하고 일치하여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그것을 바람직한 교회의 선교 모습으로 결론을 내린다. 선각자들의 운동을 영적인 갱생과 각성과 연관시켜 교회 역사를 살펴보는데 일종의 부흥사관이 되는 것이다. 선교 역사를 통해서 대위임령이 명령대로 종족들을 중심으로 복음이 확산됨으로 선교가 진행되어 왔다는 선교 역사에 대한 해석이다.
        2) 도날드 앤더슨 맥가브란는 전통적인 선교 방법인 선교가지 중심의 개인주의적 전도방법을 비판하고 사람들의 삶의 근저인 문화 속에 들어가서 문화변혁의 메커니즘을 인식하여 문화속의 사람들의 공동체를 변화시켜 스리스도께서 인도한다는 사람들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대위임령의 성경적 선교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3) 허버트 케인은 구약과 신약에서 선교의 메시지를 찾는데 구약에서는 선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선교 사명를 구심력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그의 공생애의 메시아로서의 사역이 선교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를 추적한다. 선교의 역사적 측면을 부활과 승천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네 부분으로 나누고 각기의 구속사적 상황이 선교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를 논한다.
        4) 조지 피터스는 성경의 성서신학에서 성경의 핵심을 구속사적 측면의 기독론적인 것으로 보아서 먼저 구속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명하며 구속의 실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이요. 사역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회복과 우주적인 구속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교 과제를 수행하는 하나님의 지상도구가 교회임을 명시하고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서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고 정의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역할과 기능을 선교적인 면에서 규명하며 대위임령을 선교의 핵심으로 놓고 지역 교회의 선교가 중요함을 일깨운 역장이다.
        5) 로버트 피어스 비버는 본국과 선교현지에서 선교 연합의 필요성으로서 선교 기구들의 연합모임의 역사를 소개하고 각 선교지에서 어떻게 선교 지역 담당제로 결실을 맺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6) 유진 나이다는 관습과 문화는 선교 인류학에 관된 책으로 문화의 본질과 특성을 성경적 문화관을 성경적 상대주의, 즉 성경은 어느 특정한 문화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측면의 정의를 내였다. 또한 문화 중립주의를 표방하고 그리스도의 주재권 아래 모든 문화가 종속되어서 성경적 문화 변혁이 일어남으로 토착교회가 설립이 된다고 주장을 한다.
        7) 제럴드 앤더슨은 기독교 선교학에서는 선교의 성서적 기초, 역사적 고찰 기독교와 타종교.일반 선교이론 등을 언급 문서비평학을 자유롭게 사용한 칼 바르트의 선교 논문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선교 사상에 입각하여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폴 드바난단과 부켓 등의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8) 아더 글라서는 제자를 삼는 일의 시작이 교회 설립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자 삼는 일의 시작은 바로 전도자의 일을 함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것을 사도행전 26:18의 말씀과 연결시킨다. 전도자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삶을 파악하고 저들의 어두움에 적절하게 복음의 빛을 비추임으로 사탄에게 매여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나라의 유업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신앙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이다. 또 성경의 성서 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선교에 관련된 단편적인 구절들을 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성경은 다양성 속에서도 통일성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주제는 신구약을 서로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통일적 주제이다. 구약에서는 창조와 보존과 통치 그리고 선택과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재권을 강조한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공생애의 복음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재권을 회복하시고 이를 증거하시는 주님이 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신구약에서 있어서 동일히 그리스도의 초림과 승천 그리고 재림을 내포하는 종말론적 사건이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세적인 사건이다.
        9) 데이비드 헤셀그래이브는 선교를 문화권을 교차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전달의 과정이었다. 세계관은 문화의 핵심으로 종교형태에 절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0) 하비 콘은 언약의 주체자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언약의 대상이 되는 언약 공동체와 그들이 준수하고 수행해야 할 언약 책임과 언약 증인의 삶을 구별한다. 언약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고 행위로서 증거하는 삶이다. 또한 그는 선교학의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일종의 페러다임적 접근을 통해 분석을 한다.
        11) 폴 히버트는 피터 와그너와 찰스 크라프트식의 영적 전쟁의 여러 중요한 이슈들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성찰하고 위험성을 지적하며 지상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의 통치권의 영역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영역 즉 세계관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2) 올란드 코스타드는 선교의 신실성에서 대위임령의 핵심은 제자화와 모든 것을 가르켜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다. 제자화를 선교의 동력화로 해석하면서 동력화는 교인들의 내적 성장을 통햇 이루어지는데 넓이 성장, 깊은 성장 그리고 톺이 성장이 있다. 선교는 이런 과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전인적인 해방의 열매를 맛보게 되며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축복을 체험하게 한다.
        13)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가 유일하게 대변한다고 보지 않고 사회정의와 인간성의 회복과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는 타종교인들과 모든 사회변혁기구들의 배후에서 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인 선교를 이룬다고 하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해방의 모델이요. 케리그마를 보고 인간 해방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배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계신다는 소위 해방신학적인 우주론적 기독론은 주장하고 있다.

    3. 세계 삼분의 이 지역의 선교학자들
        1) 데이비드 부쉬는 선교의 성서 신학을 논함에 있어서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하나님 나라로 보되 그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동인이 됨을 강조한다. 또 성경의 계시 역사를 중요시 여긴다. 하나님의 구속계시는 역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증거되어진다. 성경 전체의 선교 핵심적인 메시지를 대위임령에서 찾는다. 구약서에서의 선교 특징은 구심력적이요. 신약에서는 원심력적이라고 이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의 계시의 역사성과 점진적인 계시를 논하면서도 성경 전체를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에큐메닉의 선교학과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학을 논하면서 특유의 조정주의적 태도로서 양자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서로가 겸손하게 상호 배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2) 폴 데이비드 데바난단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복음의 유일성을 분명하게 강조하며 힌두교와 구분하고 있지만 후기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화해되고 통일 된다는 이중적인 예정론의 입장을 가진 것처럼 동일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4. 한국의 선교학 
        한국의 선교학의 특징은 외국의 선교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가 번역되어 한국 교회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선교학자들의 이론과 글을 거의 옮기다시피 하여 모자이크 식으로 조합하여 한국 교회에 외국 선교학자들의 선교 사상을 대변하였다. 선교의 경험을 가지고 선교의 실제적인 면이나 한국 교회의 실제적인 선교에 통찰력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신학적인 주관과 학문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외국의 선교학자들의 이론이나 글도 신학적으로 성찰하며 한국 교회 상황에서의 창의적이고 한굴교회의 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선교학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Ⅲ. 현대 선교학에 있어서의 선교 개념


        선교학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선교 용어의 의미가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다.

   1. 선교 용어의 성경적 근거
        선교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시작이 되었다. 요한복음20장21절의 예수님의 보낸다의 어원인 아포스텔로와 마태복음28장19절의 가서의 어원인 펨포의 뜻이 상호결합이 되어서 선교라는 용어 의미를 결정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라틴어로 번역하면  Missio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교의 역동성과 선교 목표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대위임령의 선교명령에서 가라는 펨포의 의미를 결부시켜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윌리암 에임스는 대위림령의 가라라는 말씀은 타문화권에서 이방 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비고정된 사역이요. 지키게 하라는 지역 교회가 세워져서 목회자가 지역 교회를 목양하는 고정된 사역이라는 것이다. 광의적 입장에서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로서의 삼위 하나님의 주재권을 강조하면서 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씀과 행위로 이루어지는 복음증거의 삶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의 사명이 있는 것이요. 그들의 삶의 현장이 선교지가 된다. 


    2. 선교와 전도
        데이비스 부쉬는 선교의 의미를 서구 지역과 비서구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요 전도는 서구 교회 내의 명목 신자나 이웃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 증거의 운동으로 해석하였다. 선교와 전도에 대한 신학적인 측면은 하나님의 주재권과 그분의 구속 의지와 그리고 구원의 대상이 되는 전 세상을 내포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전도는 기쁜 소식이다.
모국 문화권을 뛰어넘는 교차 문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증거의 운동으로서 유사문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이다. 타문화권에서 외국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계로서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다. 선교와 전도를 이해할 때 교회의 선교 사명이 광의적이고 실제적인 선교사명으로 인식하여 이 모든 과정이 교회의 선교를 가능케 한다는 총체적인 차원에서 선교를 이해해야 한다.

  3. 전통적인 선교 개념에 대한 도전
        선교 역사를 통해볼 때 선교의 주된 강조점은 교회설립이었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함은 로마교회의 교회관과 병행하여 더욱 강조되고 강화되었다. 반동종교개혁운동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예수회 선교 운동은 복음전파를 통한 교회설립과 교회의 확장을 제일 중요한 선교의 목표로 세웠다. 보에타우스는 선교를 이교도 개종과 교회설립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1968년 스웨덴의 움살라에서 선교를 정의하길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새로운 인간성에의 참여인데 실상 그리스도의 모델의 신학적 내용이 하나님의 선교 사상과 부합이 됨으로 선교는 인간화가 되고 말았다. 1973년에 선교를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선교 사상에 입각해서 여기에다가 해방의 주제를 포함시켜 선교를 경제 정의구현과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인간 소외에 대한 결속 등으로 규정하였다.

   4. 총체적인 선교 개념의 등장
        스토트는 왕국 신학적 측면에서 선교를 교회의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보았고 이것은 전도적인 명령과 문화적인 명령의 동등한 비중으로서의 총체적인 선교를 의미한다. 로잔대회에서 그는 복음전도를 우선으로 하지만 문화명령을 선교의 본질로 보는 선교 개념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선교 개념의 차이는 결국 선교 현장에서 선교 전략이나 선교정책을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전도명령과 문화명령
        카이퍼는 인간 삶의 총체적인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고 각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영역 주권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칼빈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특별 은총으로서의 성령의 구속적 사역이 필요하며 성령의 특별한 역사 속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구속적 사역으로서의 전도명령이 문화명령보다 우선권이 있지만 문화명령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로잔느 언약문을 문화명령을 선교의 본질적인 사명으로 보았고, 말씀과 행위의 관계로 보았다. 전도명령 수행은 교회 공동체를 통한 말씀의 선포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인간 삶의 제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재권을 더욱 분명하게 증거하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6. 선교현장과 선교 개념
        교란 물질적인 부요함이나 문화적인 삶의 풍요로움이 선교하는 조건이 아니라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자세이요. 사랑을 실천하는 말씀과 행위가 일치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교회 중심의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관에 붙들린 바 되게 하고 그 성경적 세계관을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재능과 은사에 따라 구현하도록 계속적인 동기부여와 격려를 해야 한다. 교회는 불의한 세상에 대하여 선지자적인 사명을 다할 뿐 아니라 교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현하도록 저들을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즉 칼빈은 신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요. 카이퍼가 말한 영영 주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요. 반틸이 말한 왕국의 변혁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7. 결여
        문화적 명령도 선교의 본질적인 명령인 것이다. 말씀과 행위의 문제요 신앙과 삶의 문제이다. 전도적 명령과 문화적 명령을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기며 우선권을 논하지 않고 총체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선교현장에서 선교전략과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게 된다. 한국 교회는 교회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선교 개념을 성경적인 신학적으로 바로 이해하고 혼란없이 국내든 국외든지 최선을 다해서 선교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Ⅳ. 선교의 성서신학 연구
        선교의 성서신학적 이해없이 실용적인 선교방법론이나 현장을 중심한 선교학의 제 신학적 이론들은 상대주의나 실용주의의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1. 연대기적 고찰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통하여 선교 사상을 나타낼 때 구약에서의 메시아 예언과 관련된 구절들의 보편주의적 특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신약에 있어서 메시아의 오심으로 성취되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부르고, 창조세계를 실질적으로 포괄하는 통치영역으로서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왕국으로 불렀다. 1928년 예루살렘 국제 선교 대회에서 기독요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교의 동기요. 선교의 목적이 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20세기 초 기독론 중심으로 한 선교의 성서신학적 접근 방법은 점차로 삼위일처론적 관점에서의 성서 접근 방법으로 바뀌어져 갔다. 조지 비세돔은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성을 철저히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왕국 개념으로 발전시켜서 왕국의 통치를 구원사적으로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할을 논한다. 20세기 중엽, 아카드는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의 메시지를 메시아와 연관하여 미래적인 것으로 보며 고나느이 종이 이스라엘 민족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보편주의가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오심으로 원심적인 선교의 결실을 나타남을 주장하고 있다. 조지 피터스는 선교 특징을 구심력적인 보편주의로 보고 원심력적인 선교 메시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신약성경은 선교의 책이요. 선교학의 책이라고 주장한다.
1975년 나이로비 대회까지 교회론 중심으로 한 선교릐 성서신학을 주로 다루었다.  요한네스 버카일은 보편적인 주제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시작이 되는데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자이며 이스라엘의 선택은 열방을 위한 것임을 말한다.또한 구출과 해방의 주제는 보편적인 주제를 기반으로 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다. 선교적인 주체는 선교적인 주제는 보편적인 주와 구출과 해방의 주제에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대립의 주제가 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데 핍박과 고난이 있으나 성령의 능력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찰스 반 엥겐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선교의 성서신학을 요약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성을 강조한 하나님의 선교. 인간을 도구로 삼으셔서 그의 뜻을 이루는 인간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는 개인적인 헌신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과 협력을 통해서만 성취되어진다. 선교대상이 전세계와 인간을 총제적 삶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전 우주적 통치의 선교이다. 1971년도에 리차드 드 뤼더가 언약신학을 주제로 선교의 성서신학을 접근하였고,창조언약과 구속언약으로 나누고 있다. 창조언약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문화명령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측면의 전도적 명령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구속 언약을 통해서 창조 언약을 회복하시고 완성하신다. 창조언약의 불연속성이 구속 언약 안에서 연속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속 언약을 창세기3장 15절에서 나타났다. 새언약은 렘31:31,34은 성령의 말미암는 내적 중생의 역사와 복음의 세계적 확산 등을 언급하고 있다. 새 언약의 시작이요. 완성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대위임령이 주어졌다. 교회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속에서 언약책임과 언약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창조언약과 구속언약의 연속성이 줄이 되며 전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이 되는 것이다.

   2. 신학적 유형 고찰
        교회론적 관점에서 선교의 성서신학을 접근할 때 구약에서는 구심렬적 선교이요. 원심력적인 선교는 없고 신약은 마치 원심력적인 선교만 있는 것처럼 도식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이원주의적 올무에 걸리기 쉽고 성경의 다양성을 강조하나 통일성에 손상을 주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인간의 전통이나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성경 진리를 왜곡되이하여 성경보다 우선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성경의 영감은 믿으나 성경의 무오는 믿지 않는 소위 신복음주의적 신학의 유형이다.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으로 이 입장은 받아들이지 않기에 선교의 성서신학을 접근하는데 있어 성경진리의 유기적이고 통일적인 메시지를 왜곡시키거나 손상시킬 위험성이 언제나 상주하고 있다. 1972년 로잔대회에서 성경의 무오와 영감설을 확증하고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정확무오한 규범이 됨을 천명하였다. 선교를 삼위일체적 관점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접근이다. 선교에 있어 삼위 하나님의 역할과 주권을 인식하며 복음의 핵심을 진술하고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데 있어서 분리하지 않고 왕국신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규범적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총체적 삶의 현장에 관련을 맺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변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성경진리의 부요함을 나타내며 상호 조화되고 말씀으로 귀착이 될 때 그것을 해석학적 나선형의 다면적 전망이라고 말한다. 다면적 전망에는 기독론적, 삼위일체론적, 교회론적, 언약신학론적, 왕국신학적 선교의 성서 신학 접근이 가능하고 이것은 상호 모순되거나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Ⅴ. 오순절주의가 현대 선교학에 미친 영향

        오순절주의 운동은 신오순절주의와 카리마스틱(은사주의)운동 등이 있다. 이들은 고전적 오순절주의자와는 다르게 성령세례의 증거로서 방언말함만을 요구하지 않고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오순절주의자들은 초교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축복으로서 중생과는 다른 체험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기적과 이사를 수반하는 성령의 제3물결 운동이 있다. 피터 와그너는 신앙을 네단계로 나누어서 구원을 일으키는 신앙과 거룩케 하는 신앙, 적극적 사고를 낳게 하는 신앙과 4차원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오순절주의의 3가지 물결로서 고전적, 카리스마틱 신오순절, 성령의 제3물결 운동 등은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 개신교회 성장에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1. 오순절주의 성령론이 선교학에 미친 제 영향들
        마스 홀드크로프트는 성령 세례로 인한 힘의 수여가 사도들로 하여금 선교 사명을 가능케 하였다고 주장한다. 가이 두필드는 성렬 세례의 결과가 은사를 수여하고 증인이 될 수 있은 보다 위대한 능력을 부여하낟고 말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도 성령세례는 성령의 인치는 역사로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증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제임스 던은 기독론적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언약의 표징이요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더 핑크는 성령의 사역을 중생을 포함한 연속적인 사역으로 내재성을 강조하며 구원의 확신과 인침의 표증, 증거의 능력을 논하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중생 이후의 성령의 이중적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총이 성화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주장한다.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의 단회적 사건 속에서 신약교회를 탄생시켰고, 교회에 강림하셨으며 개인의 중생 및 성화를 일으키시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써 영적 은사들을 부여하셔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와그너와 포머빌레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능력을 성령의 외적 은사로서의 표적과 기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벤자민 워필드도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는 성령의 은사들은 사도들에게 주신 사도적 교회의 표징이요. 사도시대로 마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개인의 중생과 성화에 연결시킬 뿐 아니라 교회에 주신 영적 은사들에게도 연관지어 은사들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정상적 은사들과 비상한 은사들이다.
오순절주의 성령론에 있어 성령의 외적 은사들을 인정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으나 위험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성령의 은사 체럼이 본질적으로 복음주의 교회의 경험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잔성한 분량에 자라남이 없는 성령의 은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요. 성경적인 은사 모습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전인적인 성장과 신학의 균형과 성숙이 요구되는 것이다.
와그너의 믿음의 수준에 대한 네단계의 구분은 성경적인 믿음의 정의가 아니다 삼차원의 믿음을 적극적인 사고의 수준으로 보는 것과 사차원의 단계를 표적과 기사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기적은 표적과 기사로서 소위 사차원의 신앙 세계에서 나타나게 된다. 성경적인 힘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고 개인적이면서 구조적이고 궁극적인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위에서의 성숙을 지향하는 준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지역 악마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복음 선교의 첩경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카슨은 바울에게 있어서 힘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성도의 전인적인 성장을 가져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것과 그에 따른 성도의 견인, 시련속의 인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것이다.


    2.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성령론과 선교의 상호 관계성

        성령은 선교의 영으로서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데이비드 왓슨은 사복음서와 바울의 서신들 속에 나타난 선교명령은 직접적인 성령의 역사하심과 즉각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헨드리쿠스 벌코우프는 요20:21~22을 근거해서 부활의 주님이 신약 교회를 탄생시키기 전에 성령강림을 약속하셨고 바로 이 바탕 위에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는 점을 들어서 선교의 영으로서의 성령과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역임을 말한다. 칼빈도 교회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하심과 중재하심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은총의 수단을 통해 개인이 구원받으며 성령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아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인 유기체적 공동체인 교회가 형성이 되며 성령께서 교회의 영적 은사들을 직분과 더불어 수여하심으로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케 하심을 확신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교회 부흥은 선교의 열매를 가져온다. 팩커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그의 교회에 허락하시는 주요 이유 네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교회를 갱신시키고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돼버린 교회를 긍휼히 여기심과 그의 백성들의 굳은 심령을 진리로 새롭게 하심과 특별한 하나님의 주권적 경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폴히버트는 기도회, 성경공부모임, 전도, 선교 운동으로 시작되어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성령의 쏟아 부어 주시는 부흥과 연관됨으로 전 교회적인 변혁과 사회 윤리 향상 및 세계적인 선교 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내에 부흥의 의미는 샤머니즘과 세계관과 교묘히 혼합되어진 깁ㄱ신앙적이며 알미니안 신학이 바탕되어진 프로그램화될 수 있는 부흥의 잘못된 개념. 부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부흥의 의미를 부흥주의로 규정하여 무조건 부흥을 부정적으로 보려하는 경직되고 고답적인 교조주의적 경향이다.
        성령의 일반 역사로서의 보통은총은 선교의 예비적 토양을 마련한다. 찰스 핫지는 인간을 포함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성령께서 창조의 영으로서 통치하시고 섭리하신다고 말한다. 칼빈은 보통은총을 인간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부여하시는 은총으로 보았으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알 만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의 계속적인 통치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보통은총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특별은총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보통은총의 보편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은총의 존재 자체가 핫지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되며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총이 선교의 접촉점이 될 수 있지만 보통은통 그 자체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려는 그 어떠한 신학적인 시도도 반정립 원리에 대한 성경 진리의 도전이요. 인간의 전적부패에 대한 거부이기에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는 용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보통은총을 통한 선교의 접촉점이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선교의 담대함과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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