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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성수주일의 생활화
 주제어  [한국 교회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6. 성수주일의 생활화

 

1) 성수주일의 맥

 

신앙을 가진 기독교들인이 세상 한 복판에서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성수주일(聖守主日)을 첫 손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천되면서 철저한 성수주일에 대한 신앙적 자세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매우 유감스런 현실이다. 더욱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주일(主日)을 [주님의 날]로 생각하지 않고 [휴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졌고, 주일성수의 신앙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나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며 예수의 부활을 찬양하는 신앙의 결집이다.

성수주일의 전통은 초대 기독교회가 수립한 것이며 칼빈주의 신앙의 뿌리다. 이런 정통적 신앙 위에 서 있는 소래교회는 초창기부터 이 일을 잘 감당하였다.

물론 주민의 대다수가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주일에는 농사도, 장사도 할 수 없어 자연적으로 모든 생업은 폐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주일성수는 분위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고 내면적 신앙에서 흘러나오는 진실한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믿음의 샘이 솓는 고장이 바로 소래였다.

 

2) 성수주일의 사례

 

소래교회를 중심한 대구면 일대는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까지도 주일을 성수하는 고장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대구면지]의 기록을 통하여 느껴 보도록 한다.

첫째, 주일이 되면 거리의 상점은 문을 닫고 철시를 하였으며, 바쁜 농사철이라도 주일이 되면 모두 일손을 놓고 교회에 나가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다. 저들은 세속의 일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우선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주일 예배에는 지주(地主)로부터 소작인과 머슴까지 한 자리에 합석하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갖는다. 평일에는 주인이며 머슴이지만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형제요 자매였다.

그러기에 저들은 주일이 기다려졌고 한 주일간의 노동으로 지쳤던 심신이 예배를 통하여 안식을 누리며 새로운 힘으로 충만해질 수 있었다.

셋째, 만일 이 날 상점문을 열거나 들에서 농사를 한다면 이웃의 안목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본인 자신이 [남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신앙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하게 주일성수를 시행할 수 있었다.

넷째, 가난한 사람들이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소래로 머슴살이 가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소래의 주민들이 빈부를 초월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신앙안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주일 아침 소래교회에서 울리는 황금종소리는 영혼의 안식을 선포하는 소리였고, 소래의 주민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기쁨의 소리였다. 이 종소리는 소래교회가 개척한 인근의 여러 교회와 산골 마을의 처소회(處所會)까지 울려 퍼지므로 소래를 중심한 대구면 일대는 주일만 되면 희망과 축복의 종소리로 가득차게 되었다.

여섯째, 1893년 9월부터 수요일 저녁예배를 실시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그래서 소래를 [제 2의 예루살렘] 혹은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렀으며 성수주일이 일반 민중의 삶 속에까지 깊이 스며들게 된 신앙의 고장이 되었다.

 

3) 신앙의 면모

 

초대 한국 교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을까? 이것은 매우 궁금한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에 대하여 서경조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소래교회와 초대 한국 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이때 교우의 수는 二百餘名이라. 칭찬 아니 할 수 없난 일이 몃가지 잇스니 一은 금식 긔도니 금식하고 밤새도록 긔도 함이오, 二는 시졔니 교회로는 교우들이 농사 지은 것의 十一됴를 교회에 밧쳐 三·四月에 교내 교외를 물론하고 시졔하고 개인으로는 서로 다토아 가며 남의게 뒤떠러지난 거슬 붓그러이 녁임이오, 三은 근농이니 숑쳔은 본래 토박하고 따이 흔한 곳이라. 동리가 극빈하더니 교회가 선지 삼사년에 박토가 옥토가 되고 젼에 허비하던 술과 노름과 위신하던 거슬 모도 바림으로 풍죡한 동리가 되니라. 四는 열심 젼도니 두 사람식 자비하야 책을 사가지고 각각 자긔가고 십흔 곳에 가셔 혹 한 쥬일동안 혹 삼사일식 그 곳에 교회가 니러나도록 단녀스니 쟝연·송화·은율·豊川·문화·해주·옹진·칠읍경내 교회가 차뎨로 수십쳐가 니러나고 해셔는 다 숑쳔으로 말매암아 된지라"

4) 칭찬과 격려

이상에 기록된 서경조의 글은 결코 소래 교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언더우드 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가 소래를 떠나기 전에 기독교인들의 연례 추수 감사절 예배를 올렸다.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교회가 너무 작아서 바깥에 천막을 하나 쳤다. 가멸진 수확과 날로 늘어나는 재산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주신 정신적인 수확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렸다.

이 한 해 동안 이 작은 교회의 선교사(저자주; 평신도 전도인)들과 일꾼들을 통해 그 곳과 가까운 마을에서 이 백 오십 명이 넘는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교리 문답을 받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셈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회와 학교 교실을 늘리고 수리했으며, 교사용 주택을 지었고, 전도사용 숙소와 먼 지방에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러 오는 손님이 묵을 숙소도 지었다.

그들은 손이 큰 사람들이다. 인도에 기근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오십 원에 이르는 돈을 거두었다. 그들의 하루 수입이 십 센트를 채 넘지 않고 마을은 아주 작으니까 이것은 무척 큰 기부이다.

돈이 없는 여자들 몇은 연보 접시에 묵직한 은반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반지들은 대개의 경우 그들이 지닌 유일한 장식품이며 가장 값비싼 것이다. 그래서 이 반지들을 내놓았을 때 우리는 신도들이 깊이 생각한 끝에 그것을 내놓은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전 해에는 여러 지방에 심한 흉년이 들었었는데, 소래는 많은 이웃 사람들을 도와 주었으니 더욱 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보면서 예수사랑의 고귀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소래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는 차원을 넘어 이웃과 타 국민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통하여 사랑을 베푸는 차원까지 발전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저개발 국가를 돕고 많은 곳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유는 이런 신앙의 원천적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5) 사경회

 

이 당시의 부흥회는 사경회였다. 이 사경회는 일 주일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계속되는 사경회에 초·중·고로 반을 나누었으며 사경회에 참석한 회수에 따라 반이 결정된다.

소래교회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사경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서경조는 1895년 소래교회가 새로운 예배당을 지은 후 3주간의 사경회를 가진 것으로 기록하였다.

"원목사가 숑쳔교회를 맛흔후 셔울셔 여러 사람을 다리고 내려와 숑쳔셔 대사경을 삼쥬일이나 함으로 셔울 사람즁에 새로되여 간 사람도 만코 해마다 각군에 다니며 대사경을 삼쥬일식 하며 대젼도를 함으로 교회들이 왕셩하니라."

이상에서 한국의 초대교인들은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금식기도와 전도 그리고 십일조와 구제에도 열과 성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성경공부도 열심히 참석하여 배우고, 생활에 적용하는 착실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모두 받고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신앙의 줄거리는 그 후에도 한국 교회와 황해도 지역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즉, 총회가 조직되면서 각 노회는 해마다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그 내용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교회 다사리는 것은 책벌한 즁에 쥬일범한 사람이 만싸오며 출교인는 잇스나 만치아니 함내다"

소래교회가 세우고, 그 후의 교회가 따른 전통에서 현재를 조명해 보자.

조국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지금까지 애써 쌓아 올린 신앙의 전통을 아스라히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현실은 한국 교회도 신앙적 공동화(空洞化)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역사가 남긴 한 줄의 기록을 거울삼아 다시 영적 각성을 도모해야 미래를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 목차고리 : 숨겨진 한국교회사

>> 연결고리 :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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