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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네비우스 정책의 수립
 주제어  [한국 교회사] [선교] [네비우스]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4. 네비우스 정책의 수립

 

1) 공의회 조직

 

1889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 데이비스가 입국하는 것을 계기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와 빅토리아(호주) 장로교 선교사는 1889년 10월 31일 "연합 공의회"를 조직한다. 그러나 이 회는 데이비스의 별세(1890년 봄)로 몇 번의 모임을 가졌을 뿐 별다른 활동을 못하고 유명무실해졌고,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의 입국을 계기로 다시 선교사모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893년 1월 28일 "장로회 선교사 공의회" (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를 재조직하면서 정상적인 활동이 전개된다.

이 선교사 연합 공의회 제 1차 회의에서 10개항의 선교정책을 결정하였는데, 이 선교정책은 네비우스가 제시한 정책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이 때 채택된 선교정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한국 교회와 교인을 위한 정책

(1) 자립 선교;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전도하여 성경공부를 시킨다.

(2) 자립 정치; 각 교회는 독자적으로 교회를 경영해야 한다.

(3) 자립 보급; 교회건축은 자립적으로 해야 한다

(4) 성경중심: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하여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갖도록 한다.

 

3) 선교사를 위한 정책

(1) 선교사는 광범위하게 직접 전도에 참여한다.

(2) 선교사들은 지역을 분할하여 서로 협력은 하나, 경쟁과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이 때 협의된 지역분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전라도와 충청도, 호주 장로교 선교부는 경상남도,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는 함경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경상북도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3) 1892년 6월 11일 북장로교와 북감리교는 한국의 전지역을 합쳐 재 분할하였다. 이들은 5,000명 이상의 읍소재지 이상에서는 양 교파가 같이 활동하지만, 그 이하의 지역에서는 기득권을 인정하기로 합의를 한다.

 

4) 정책의 발전

(1) 상류사회보다 서민을 상대로 전도하기로 한다.

(2) 부녀자들에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도함으로써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한다.

(3) 시골에 초등학교를 많이 세운다.

(4) 젊은 사역자들을 많이 양성하기로 한다.

(5) 완벽한 성경을 속히 번역하여 보급한다.

(6) 종교서적은 순수한 한글만을 사용하기로 한다.

(7) 선교사로부터 보조받는 교역자를 줄이고 교회에서 자급하도록 한다.

(8) 동족에게 전도하는 자립전도의 훈련을 강화한다.

(9) 의료 선교사는 시료와 함께 전도를 병행한다.

(10) 퇴원한 환자도 왕진을 통하여 전도하여 신자가 되도록 한다.

이상과 같이 하여 네비우스가 제시한 선교정책은 선교사 공의회의 협의를 거쳐 정식 한국의 선교정책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이 후 한국 교회는 이 선교정책의 발효로 부흥된 것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5) 헨리 벤

피선교지 교회를 자립·자급·자전의 교회로 양육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은 그의 경험과 이론이 가미되기는 하였지만 그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선교정책을 최초로 주창하고 실시한 사람은 영국의 선교사요, 교회 운동가인 헨리 벤(Henry Venn 1796-1873)이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로서, 남긴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1841년부터 선교협회 서기로 재직하며 삼자원리(三自原理)에 의한 선교정책을 주창하였고, 또 관련하고 있는 단체에서 실시하여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가 주창한 삼자원리(three-self)란 선교 현지의 교회들을 독립적으로 행정을 수행하는 교회(self-governing)·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교회(Self-supporting)· 자체적으로 선교(Self-propogating)하는 교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한국의 선교현장에 접목되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네비우스의 강의도 필요했고, 내한한 선교사들이 다시 한국적인 것으로 재조율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지의 토양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이 내한하기 전에 이미 자전 (自傳), 자립(自立), 자급(自給), 자치(自治)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가면서 좋은 토양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그런 양질의 토양에 네비우스 정책이 심어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둘째는 초대 한국 성도들의 구원에 대한 감격과 영혼구원을 위한 뜨거운 사명감이며, 셋째는 당시 한국이 처하여 있었던 사회의 특수성때문이며, 넷째는 서북인들이 가지는 자립에 대한 강한 의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당시 교회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고찰하면서 네비우스 정책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연구과제를 제공하려 한다.

 

>> 목차고리 : 숨겨진 한국교회사

>> 참고고리 : 네비우스 선교정책 

>> 연결고리 :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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