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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서골교회와 네비우스
 주제어  [한국 교회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6. 서골교회와 네비우스 정책 (1)

1) [사기 상]의 기록

이제 소래교회의 영향을 받아 설립되고 성장한 서골교회(한문명: 西儀洞敎會)를 예로 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심도 있게 네비우스 정책과 한국 교회를 비교해 보도록 한다.

"長淵郡 新化面 儀洞敎會가 成立하다. 先是에 敎人 金錫浩 崔相崙의 傳道로 李喆浩 李基彦이 信從하고 其後에 信者가 繼興함으로 敎會가 設立되니라."

이상은 황해도 장연군 신화면에 설립된 서의동교회(속칭: 서골교회) 창립에 관한 [사기 상]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1894년의 기록이니 그 해에 이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2) 창립 연도

이 교회의 창립에 대하여 서골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술자료에 의하면 서골교회는 [한국의 두 번째 교회이다] 혹은 [새문안교회보다 앞서 설립된 교회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장덕선 장로가 이 교회의 초창기 교인 중 한 사람이었던 부친 장치권씨(장치권씨는 뉴욕 퀸즈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장영춘씨의 조부이며 장덕신장로는 그의 부친이다.)에게서 직접 듣고 그의 자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해 준 말이다. 서골교회 최후의 목회자였던 서동혁목사는 그의 옛 기억을 더듬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서골교회에 부임한 후 초창기 당회록을 읽었는데 그 때 서골교회 창립에 관하여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이 교회는 소래교회보다 2·3년 후에 설립된 것으로 소래에서 복음이 직수입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서동혁목사가 16세때에 자신의 출신 교회가 창립 40주년 기념예배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는데, 서골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당회록을 읽으면서 자신의 출신 교회보다 정확히 10년 전에 설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동혁목사의 본 교회 설립 40주년 행사가 '금년으로 50년 전(1984년 현재)의 일'이니 서골교회는 1884년에 설립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3) 설립 내역

[사기 상]에는 "김석호·최상륜의 전도"로 복음이 서골로 들어온 것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서골교회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서골교회의 최초 설립자는 이대곤이다. 이대곤의 부친은 사업차 서울 등지를 자주 왕래하였으며 부친 별세 후에 이대곤이 부친의 가업을 계승하여 서울등지를 왕래하던 중 대구면 송천리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동생 형곤·석곤 등을 믿게 하여 이들 3형제가 교회를 설립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초가 6간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서골교회는 소래에서 복음을 직수입하여 설립한 교회이다."

서골교회의 설립자 이대곤씨의 자부 이순애는 지금도 생존하였으며 권사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긴 분이다. 그 녀는 시부에게서 "서골교회 설립에 대한 말을 자세히 들었다"고 확실하게 증언하였다.

 

 

6. 서골교회와 네비우스 정책 (2)

4) 서골 교인들의 자부심

서골교회 출신으로 월남하여 현재 목회자가 된 분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이종겸(성북교회 시무)·이종규(금성교회 시무) 형제와 장영춘(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시무)·장성춘(안암제일교회 시무)형제이다.

이들은 모두 모교회인 서골교회의 낡은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진에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아울러 서골교회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한다.

"고향에 있을 때 당회록을 직접 본 기억과 설립자들의 직접적인 증언에 의하면 우리 교회는 소래교회보다 2년 뒤에 설립된 교회로 한국의 두 번째 교회라는 사실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고향에서부터 지금까지 교회 생활을 해 왔습니다"

5) 서골의 부흥

이대곤에게는 혼기에 이른 딸이 있었는데 이웃에 믿는 청년이 없어 소래의 믿는 청년에게 출가시킴으로써 소래교회와 서골교회는 유대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1894년, 동학란으로 전국이 술렁일 때 이대곤을 위시하여 서골의 많은 주민들은 소래로 피신하였고, 이 때 거의 전부에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귀향하게 되므로 서골교회는 크게 부흥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서골교회도 역시 네비우스 정책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시절이지만 자력으로 교회를 이루기 위해 전도도 하고, 설립도 하였다. 그리고 교회를 유지해 나가는 일에서도 선교부의 보조 없이 잘 이루어 가기 위하여 애쓴 것을 알 수 있다.

6) 자립적인 성전 건축

소래교회가 자립적으로 예배당을 건축한 일에 대하여 이미 자세히 밝힌 바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에도 자립하여 건축한 이유는 앞으로 예배당을 건축하는 모든 교회가 자립적으로 예배당을 건축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서경조의 의도는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달되어 비록 초라하게 예배당을 지을지언정 자력으로 건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런 정신은 서골교회에도 예외없이 받아 들여졌다.

서골교회가 기와집 예배당을 건축한 것에 대한 기록을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長淵郡 新化面 儀洞敎會가 漸益進興함으로 禮拜堂을 建築하고 其後에 李其彦을 長老로 將立하여 當會를 組織하니라."

서골교회가 기와집 예배당을 건축한 것은 1898년의 일이다.

동학란과 청일전쟁을 무사히 넘긴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와집으로 예배당을 건축한 것이다. 이 때 예배당 건축의 주역을 맡은 분들은 모두 여덟 가정으로서, 다음과 같다. 이대곤·이형곤·이석곤 등 3형제를 비롯하여 이인식·이기언·장치권 등이다.

이상에서 서골교회의 설립과 발전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교회는 설립에서 예배당 건축에 이르기까지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전도하고(自傳), 자력으로 교회를 설립하고(自立), 자력으로 예배당을 건축하고(自給), 자력으로 교회를 유지해 나간(自治) 한국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것이 초기 한국 교회의 당당한 모습이고, 소래교회에서 유래한 초기 한국 교회의 전통인 것이다.

 

>> 목차고리 : 숨겨진 한국교회사

>> 참고고리 : 네비우스 선교정책 

>> 연결고리 :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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