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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역사 속의 주님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2. 역사 속의 주님

 

한국 교회사를 읽고 있으면 교회와 사회의 만남을 통하여 교회 부흥의 환경이 조성되는 부분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조선왕조 말의 쇄국 정책, 동학란, 한일 합병, 3·1운동, 신사 참배 등등 대형 사건들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피면 이런 대형 사건들 외에도 작고 큰 사회적 사건들이 교회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런 역사 진행 과정에서 은밀하게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1) 하나님과 교회의 부흥

역사(歷史)의 배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한말의 식자층에서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에 대한 우국충정에서 교회를 선택한 분들이 많았다. 안창호·김구·이승만·남궁혁·이승훈 등등 저명한 분들의 이름이 허다하다. 이들 중에는 신앙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하나님께 맡기고 국권 회복을 주님의 손에 의지하려는 의도가 밑에 깔려 있었던 사람들도 보인다.

이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동기가 비록 비영적(非靈的) 욕구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 민족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문턱을 넘어 일반 서민들과 함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교회 발전에 힘이 되지 않았겠는가?

 

비영적인 욕구에서 교회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들 지도 계급만은 아니었다. 일반 민중들도 거의 동일한 이유에서 교회를 선택하고 있다. 부패한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피하고 동학란,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계속되는 전란에서 자신들을 보호받기 위하여 교회의 문턱을 넘어온 경우가 허다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여러 악순환에서 교회를 선택한 민중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과 자녀로 삼아 가신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에서 반드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하고, 그의 섭리를 읽어 낼 수 있어야 진정한 역사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실제적 분석

초창기 한국 교회의 부흥을 말할 때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네비우스 정책이다. 그리고 1907년도의 부흥을 말할 때에는 원산에서 있었던 선교사들의 성경 공부와 회개 운동에 뿌리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흥의 진정한 저변을 외면하고 작은 현상을 크게 부각시킨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존한 왜곡된 역사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대하여는 본론에서 이미 충분히 논하였기에 더 언급을 피하고, 1907년도 이후의 부흥에 대하여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1907년의 부흥이 있기 전 한국의 정세와 교회의 동향을 잠시 훑어보자.

이 때는 한국의 국운이 풍전등화같은 시절이었고, 일인들의 침략적 마수가 점점 노골화되면서 우리 국민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을 때이다. 이런 긴박한 시절에 회집된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 5회 공의회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전국 교회가 11월 감사 주일 다음날부터 7일간 기도하기로 결의한다. 그리고 상동교회에서는 전덕기,정순만 등의 인도로 매일 2,3천명이 모여 우국의 기도를 드렸다. 나라를 잃지 않기 위해서 전국 교회가 일어나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국 교회사는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이 기도 운동은 선교사들 몇 명이 모여 성령을 체험한 것보다 몇 천 배나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응답하시었다. 현실적인 국가의 자주와 독립 대신 더 크고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민족의 가슴에 안겨 주면서 하늘의 평안을 내려 주신 것이다.] 이것이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더 크고 더 값진 은총의 응답이 아닌가? 이 응답이 1907년대의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둘째, 1907년도의 부흥을 평가할 때 양적인 부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질적인 변화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민족의 자주독립을 목적으로,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교회에 출석하였던 우국지사들의 허탈감과 그들의 동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한일 합병을 계기로 교회를 떠나게 된다. 이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사실은 교회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시 교회를 떠난 우국지사들의 신앙관이 "종교는 정치의 도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고 한 한말(韓末) 어느 정치인의 범주를 넘지 못하여 떠난 것은 아닌지?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할 부분이다.

교회는 결코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을 위한 기관은 아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기관일 뿐이다. 이런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부 인사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렸고, 교회를 떠나야 했다면 이런 기회를 통하여 교회는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가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니게 된 것 뿐이라 하겠다. 이것이 영적인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교회는 다시 한 번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봉기한 때가 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다. 이 때도 국가의 독립은 쟁취하지 못한다. 다만 많은 교인들이 민족 독립의 제단에 피를 바쳤고, 재난과 수난을 겪는다. 그러면 그 피와 그 희생은 헛된 것이었을까? 아니다. 하나님은 그 때도 민족의 독립, 자주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민족의 허전한 가슴에 채워 주셨다.

 

보라. 1920년대의 대 부흥을!

이 때의 부흥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번에는 선교사들이 어느 골방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역사는 가지지 아니한다. 이제 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선교사들의 공로위주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歷史)의 뒤에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한국 교회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6·25 사변으로 인해 한국 교회는 다시 수난을 겪는다. 이 때도 역시 성도들은 기도하였다. 부산 피난 시절, 뜨거웠던 새벽 제단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부흥을 체험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소원을 들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3) 침체의 늪

한국 교회가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는 사실을 논하였지만 때로는 침체의 늪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늪 지대는 1911년대이다.

우선 애국지사들은 정치적인 압박 때문에 힘을 잃고, 교회를 떠나고, 고국을 떠나고 있었다. 일반 서민들도 일본 사람들의 수탈로 농토를 잃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만주로 이주하는 많은 무리들 속에는 교인들도 함께 섞여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이 때 이주한 사람의 수는 106만 명이나 되며 ?어느 시골 교회는 빈 건물만 남겨 두고 교인 전체가 집단적으로 이주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서명원. 앞의 책. 67쪽.

이들에 대한 교회의 대책은 오직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방임해 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 결과 삶의 냉혹한 현실에 부딪친 신앙인들은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런 사항은 당시의 통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1911년부터 교인의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제 한국 교인은 힘을 잃고 말았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때 선교사들은 [백만명 구령 운동]을 전개한다.(百萬名 救靈運動은 1909년 개성지구 남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창되기 시작하였고 장로교회도 이에 호응을 한다).

선교사들은 큰 소리로 외쳤고, 스톡스(M. B. Stokes) 같은 사람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5만 명이란 목표를 주셨다고 하였다. 물론 한국 교인들도 이 운동에 호응하였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이미 힘을 잃은 교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아니하였다. 한국 교인들이 힘을 내지 못하는 정책은 쓸모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였다. 큰 소리로 외치는 구호는 다만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이 때의 일을 해리 로디스(Harry Rhodes)는 "[백만명 구령]이란 구호 자체가 잘못 정해진 것이었다"(Some think that the slogan itself was a mistake)고 평하였다.) H. Rhodes. 앞의 책. 287쪽.

역시 한국 교회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었다. 주인이 없는 교회는 힘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계실 뿐이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주인 의식을 당당히 찾아야 한다.

 

>> 목차고리 : 숨겨진 한국교회사

>> 연결고리 : 한국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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