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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불가항력적 은총
 주제어  [칼빈]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4과 불가항력적 은총
(Irresistible Grace)

<본문>

2. 은혜의 힘이다.

길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가난하고 병든 자를 한 의사가 병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의사는 그가 중병환자임을 알고 곧 수술에 들어갔다.

환자는 왜 자기 육신을 묶고, 찢으며, 잘라내느냐고 혹시 큰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 반항에 아랑 곳 없이 의사는 냉정하게 자를 곳은 자르고 찢어야 할 곳은 찢어서 병균과 부패를 제거해 버린다.

아프다고 살살하거나, 해야 할 것을 안하고 포기하는 의사가 될 수는 없다. 몹시 고통스럽지만 환자는 다시 살아난 자신을 생각할 때, 오히려 부끄럽고, 의사의 일사불란했던 은혜에 고마워하는 것이다.

사랑은 강권(强權)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고전5:14).

안 받겠다고 안 주면 주는 자의 사랑은 작은 것이다.

이미 선택하고 죄를 속해 준 그의 백성에 대한 부르심은 부름을 당한 인간의 저항을 훨씬 능가한다.

한편은 창조주 하늘의 힘이요 한편은 피조물인 사람(띠 끌)의 힘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반항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결국 돌아오고야 만다. 또한 어떤 사람은 사업을 실패케 되어 두 손 번쩍 들고 돌아오기도 한다.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당신의 뜻을 이루고야말 하나님임은 논리보다는 구원받은 죄인의 속일 수 없는 고백에서 나온 원칙이다.

<해설>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께 매를 맞고 돌아와서도 감사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성도의 간증이다.

어떤 성도가 필자의 교회에 등록을 하고 고백하기를 자신은 많은 실패 속에서 결국 구원의 길이 어디 있는 가를 찾다가 결국 많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를 선택하였는데 들어와 보니 하나님도 예수님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결단하여 하나님을 찾았다고 하였다.

과연 그는 자신의 결단으로 하나님을 찾았을까? 아니면 자신 만만하던 그를 무력하게 만들고 절대자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기독교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그이지만 기독교를 선택하도록 성령으로 감동을 주셨을까?

그는 자기의 의지로 선택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까지 포함하여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은 좀도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무능을 시인하면 진정으로 좋은 신앙인이 될 것이다.

<본문>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이 거부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생활 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믿게끔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은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만이 믿음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그들은 믿음이 하나님 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 편에서 나온 인적산물(人的産物)로 취급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구원의 보따리를 들고 있는데 아무 때고 인간이 믿음으로 달라고 하면 주게되는 것이라고 한다. 곧 하나님은 은혜, 인간은 믿음을 갖고 그들이 동시에 만나서 구원을 이룬다는 논리이다. 결국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의 협동작전에 의해 성취된다는 주장이다.

<해설>

하나님과 인간이 협동하여 구원을 이룬다는 주장을 반펠라기안 주의(Semi-Pelagian)의 주장이라고 제 1과 인간의 전적 타락에서 이미 설명을 하였다.

<본문>

그리하여 알미니안주의는「인간이 먼저 회개하고 믿어야 그 다음 그것을 보신 하나님이 중생을 시켜준다」는 기상천외할 구원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유심히 보라!

어찌하여 믿음이 사람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냐?

백번천번 말하지만 성경은「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단언했다(엡2:8-9).

알미니안주의는 믿음이 오히려「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니 대체 이런 모욕이 어디있는가?(롬11:34-36).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치 않으면 바로 이런 따위의 사상이 마구 나오는 것이다.

중생도 그렇다. 중생은 분명히 성령의 "임의"(任意)의 단독사역이다. 죽은 시체가 회개를 어찌 할 수 있으며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불성설이다.

중생과 구원은 협력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단독사역이다(7영리, 제5원).

믿게 해야 믿을 수 있고 회개의 영을 주셔야 인간은 회개할 수 있다. 이것이 칼빈주의 신앙이다. 즉 중생된 자만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해설>

이 부분은 앞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배우면서 겸하여 "구원의 서정"을 설명하게 되면 자세하게 거론될 것이다.

<본문>

곰곰히 자신의 신앙경력을 돌이켜 보자.

참 신앙인이라면 다음과 같은 고백을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역시 은혜입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예수 믿을 사람이 못됩니다. 믿음은 커녕 날마다 의심투성이요, 불만이요, 미움과 시기와 음욕으로 가득찼던 내 자신임을 내가 잘 압니다. 회개는커녕 교만하고 목이 뻣뻣하고 눈을 흘기고 얼마나 남을 업수히 여겼던지 나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압니다.

정말이지 어떤 강력한 힘이 나를 억나르고 그리하여 나를 강권하여 교회로 이끌지 아니했더라면 죽어도 나는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예수 믿고 축복을 누리게 된 것,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곧 내가 도저히 반할할 수 조차 없는 은혜였음을 진실로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울과 어거스틴 그리고 칼빈과 수많은 순교자, 신앙인들이 일치하게 토했던 고백이다.

실로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이다.

<참고 예화>

어느 날「빛」과「어두움」이 살고 있었다.

어두움이 말했다.

「얘, 빛아! 내가 살고 있는 여기 동굴에 한번 들어와 보렴. 얼마나 아늑하고 조용한지 참 살기 좋은 곳이란다.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이리 들어와 봐!

빛이 대답했다.

「무슨 소리니? 여기 바깥 세상은 넓고 시원하고 얼마나 밝은 천지인데, 너는 왜 그 음침한 동굴에 갇혀 살고 있니, 네가 한번 나와봐!

「아니야 네가 들어와 봐」

「글쎄 나와보라니까」

둘은 옥신각신 다투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빛」쪽에서 양보하기로 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들어가기로 하지. 자 어두움아! 준비됐니? 놀라면 안돼?

하고 단단히 일러두자,

「놀래기는....? 빨리 들어오라구!」어두움이 재촉했다.

그리하여「빛」은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자태로 천천히...., 깜깜했던 동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동굴 구석구석까지 빛은 파고 들었다. 어두움이라곤 조금치도 없었다.

「어두움아 어디 있니? 어디 있어? 안보이잖아!

빛이 소리쳤다. 동굴한쪽 구석에서 어두움이 힘없이 대답했다.

「내가 정말 안 보이니?」.............

그렇다. 보일리가 없다. 빛의 힘 앞에 어두움의 권세는 맥을 못추는 것이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아지는 법이다.

이 빛 되신 그리스도가 어두움에 들어오신 사건이 바로 불가항력적인 은총이었으니, 그것이 곧 중생이다.(→요1:1-14참조).

 

 

>> 목차고리 : 칼빈주의 5대 교리

>> 연결고리 : 구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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