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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무조건 선택 (2)
 주제어  [칼빈] [예정론]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제 2과 무조건 선택 (2)
(Unconditional Election)

<본문>

3. 왜 "무조건"이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함이다. 만일 선택의 조건이 인간에게 있다고하면 구원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사역이 아니다, 인간과의 공동사역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

칼빈주의의 기본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따라서 예정과 선택에서도 칼빈주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된 칼빈주의는 존재할 수 없고 기독교도 존재할 수 없다.

<본문>

특주(이 특주는 본문에 실린 것이기 때문에 설명없이 전문을 게재하기로 한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른바「예지예정」(預知預定)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미스터 박」이라고 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만히 살펴보니 그는 예수를 믿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예수 믿을 것을 미리 아셨다는 말이다. 그때 하나님은「미스터 박」을 아예 구원 (선택)하기로 예정해 버렸다.)

이것이 곧 예지예정의 논리이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말인가?

「마스터 박」이 믿을 만한 인물임을 알았다면 결국 하나님은「미스터 박」이 행동여부에 좌우되어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믿음이 있는 자가 나타나면 그것을 알고(예지) ,예정한다하니 우리 하나님의 주권은 무엇이 되는가?

어떻게 될 줄을 알고 정한다는 것은 이미 그 아는 대상에게 뒤늦게 꺾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즉 주체가 기존 대상을 뒤 따라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대상이 "어떻게 되는 가능성 포착" 이후에 알고, 정하게 되니 만큼,「알기 이전의 무엇?」은 모른다는 말이 된다. 이런 알미니안주의식의 논리에 따라 하나님을 적용시키게 되면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은 와해되고 만다. 예지된 자 이외에는 모른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미스터 박」의 믿음을 보고 움직인다하니「미스터 박」이 이미 가지고 있는「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백 번 말해도 지겹지 않으니,「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만약에 믿음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연 발생물로 본다면 그들은 성경을 정면으로 배척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믿을 가능성을 보고 나서야 선택한다고 하는가? 그 믿음(혹은 믿음의 가능성까지도)은 그러면 마귀가 주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스스로 생겨났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절대예정, 선택을 송두리째 거부하려하는 불효한 자녀들이다.

인간사회에서는 그들의 논리가 통할 수 있다.

우리는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의 조건(상태)을 보고 고른다. 아들녀석이 손재주가 있고 수학도 잘하고 모든 것을 살펴보니, 아버지는 아들의 조건을 보고 그를 공대(工大)에 보내기로 작정한다. 그때 아버지는 인간이기 때문에 아들의 재능의 조건이나 적성을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절대예정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상대예정만 있을 뿐이다. 상대를 본 다음 결정하는 것이 예지예정(상대예정)이다.

인간사회에서 통하는 조건법칙을 신령(神靈)한 세계의 하나님의 주권계획에다 적용하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안다"(히 야다 헬 기노스코)의 원래 의미는 바로 "사랑했다"는 의미이다. 즉, 선택적 사랑(히 헤세드)을 가리킬 때 "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니,「창 4:1」"동침하다"는 히브리어로 "야다(yada)" 곧 "안다"이다. 또한「출 2:25」,「3:16」의 "권념, 권고"가 히브리어로 "안다"이니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구원을 말하는 "안다"이다. 그러므로「롬 8:29-30」에서의 "미리 아는"(예지)것은 바로 "선택의 사랑"이다.

그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예정)하셨으니....또 미리 정하신(예정)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소명)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영화, 榮化)."라고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선택(예정)의 근거는 사랑이다. 아가페(Agape)의 사랑이다(신 7:6-8).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조건을 초월한다. 더럽고 추해도 어머니는 역시 아들을 사랑한다. 못났다고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데려다가 씻기려고 하는 적극적 사랑의 본성이 강하다. 자기는 삼베옷 입고 자랐어도 아들에겐 비단옷 입히기를 바란다. 돌 대신 떡이요, 뱀 대신 생선주기를 좋아한다. 조건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이 병들었을 때 어머니는 울며 기도한다. 아들이 죽었어도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를 안고 뜨겁게 입을 맞춘다. 모성의 눈에 아들의 조건 따위는 이미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나인성 과부의 모성이 주님을 감동시키지 아니했던가!

자식을 키워 본 자는 무조건 사랑이란 말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

죽은 시체인 죄인을 안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조건적 사랑의 행위가 바로 선택이다. 실로 선택은 조건이 아니라 사랑이다. 선택은 인간 편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죽은 인간이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으랴? 선택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하신다.

<본문>

4.「무조건」이 주는 결과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구원에 대한 '절대안심'이다.

<해설>

구원에 대한 절대 안심이란 바로 구원의 확신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가지는 구원의 확신이 자신의 경험이나 내적인 확신으로는 구원의 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적 확신은 보장된 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나 됨을 보시지 않고 나를 선택하셨다면 이것은 어떤 면으로든지 구원이 보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원이 확실하고 안심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아담아래 모든 인간들이여! 솔직히 대답해 보라.

당신은 절대자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완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진정으로 죄인임을 깨닫는 참 신앙인이라면, 아마「그럴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율법 613가지 중 하나만 범해도 죄인은 사함을 못 받는다고 하는 것이 율법의 본성이다. 율법이 무엇이냐?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행위(의무)의 법(法)"이다. 곧 「인간조건」이다.

인간조건이란 무엇일까?

완전한 아름다움일까, 완전한 부귀일까, 완전한 덕행(德行)일까, 완전한 사상일까, 아니면 완전한 사랑일까?

동양의 인간조건은 '효'(孝)와 덕(德)이다. 서양의 인간조건은 '지혜(Sophia)와 이성'(Reason)이며 그 중에 로마와 맑스주의는 '권력과 물질'을 인간조건으로 내세운다. 현대사상의 인간조건은 '실존과 과학'을 말한다.

자, 알미니안 주의는 무조건이 아니라 "조건"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효와 덕, 지혜와 이성, 권력과 물질, 그리고 실존과 과학이 과연 구원과 선택조건이 되겠는가?

<해설>

많은 인간 조건을 거론하였지만 실은 이런 인간 조건은 모두 상대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선을 요구하는 하나님께 상대적인 인간 조건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조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문>

만약 그 중에 하나라도 미달되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연옥에 보내야 하는가, 낙원(천국 아닌)에 보내야 하는가?

그래서 로마카톨릭은 '연옥'을 만들었고, 성공회와 알미니안 주의는 '낙원' 혹은 '음부'라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장소를 생각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해설 1>

연옥에 대하여

로마카톨릭은 연옥을 말하고 있다.

연옥이란 예수를 믿으나 선행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직접 천당으로 가지 못하고 잠시 머물면서 세상에서는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한 다음으로 천국에 간다고 하는 교리이다. 이런 주장은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가 충족 되어야 한다는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것이 성경적인 주장이다.

마틴 루터는 이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함으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다.(갈 2:16)

<해설 2>

로마카톨릭에서는 이 교리의 근거를 "가경 마카비 2서 12:42-45에 두고 있다. 사 4:4, 미 7:8, 슥 9:11, 말 3:2, 마 12:32, 고전 3:13-15, 15:29 등도 이 교리를 찬성한다고 하고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다(루이스 뻘곺저. 신복윤역. 기독교 신학개론. 성광문화사. 313쪽).

<해설 3>

로마카톨릭은 연옥 외에 선조 림보(Limbus Patrum)와 유아 림보(Limbus Infantum)도 주장하고 있다.

1) 선조 림보란 구약 성도들이 가 이는 곳으로써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곳으로 가시어 그들을 해방시켰다고 한다.

2) 유아 림보란 세례 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옥의 고통은 면제되나 천국의 행복은 누리지 못한다고 한다(루이스 뻘곺저. 신복윤역. 기독교 신학개론. 성광문화사. 313-314쪽).

<해설 4>

낙원 혹은 음부에 대하여

음부를 구약에서는 스올(Sheol)이라 하고 신약에서는 하데스(Hades)라고 한다. 이곳을 혹자들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지역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지막 부활을 기다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스올은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보면(신 32:22) 중간지역은 아니다.

따라서 이곳은 어떤 장소라기 보다는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며 육신과 분리된 영혼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루이스 뻘곺저. 신복윤역. 기독교 신학개론. 성광문화사. 311-312쪽).

성경은 육신과 분리된 영혼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눅 16:19-31). 그러나 신자의 영혼과 불신자의 영혼은 가기 가는 길을 달리 하는 것이 분명하다(눅 23:43).

따라서 가는 장소는 천국과 지옥이나 영혼만 가기 때문에 낙원과 음부로 구분하였다고 필자는 본다. 만일 낙원이 천국이 아니고 중간지대였다면 주님도 그곳으로 가셨을 수밖에 없다.

<본문>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면, 우리 중 아무도 그에 해당되는 자는 없을 것이다. 구원을 인간편에 두면 구원관은 참으로 불안해진다. 그러하다. 죄를 고백하고 전적 무능(無能)을 절감하는 참 신앙인은 정말로, 선택은 "나의 편, 나의 조건"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무조건" 해주시기를 바라게 된다.

왜냐하면, 백만번 생각하고 뒤척거려봐도 내게는 아무런 선택의 조건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알미니안 주의자들도 죄인은 분명히 죄인일텐데「인간조건」을 말할 수 있다니 얼마나 뻔뻔한 위선자들인가!

「전적타락」을 믿는 성도는 인간편의 어떤 조건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무조건 선택」을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조건이 있다면 다만 「죄의 조건」만 있을 뿐이다.

<해설>

그래서 구원은 감격할 것이고 감사한 것이며, 성도는 주님을 자랑하게 되고 항상 겸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내가 예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를 택한 것이다(요15:16).

성도는 선택을 하나님 편에 돌릴 때 지극한 안심(安心)을 갖는다. 만족감이다. 감격이다.

그러나 그 반대일 때 인간 구원론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해설>

칼빈주의의 구원관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붙잡으신 것이고 나는 다만 그에게 붙잡힌바가 된 것일 뿐이다.

<본문>

그래서 알미니안주의 교회들은 그「인간조건」을 쌓기 위해 인위적 공로와 수행(고행)에 혈안이 되어간다. 걸핏하면 심령부흥회를 연다. 그것은 감격신앙의 의미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조건적 신앙행위 일 뿐이다. 미친 듯이 부르짖고, 억지로 울고, 억지로 헌금을 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황홀지경(?)에 빠진 다음 성령 충만으로 착각한다. 엘리야 이상 가는 불바다(?) 후에 싱겁기 그지없는 그들의 텅빈 마음을 우리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조건적 신앙행위의 결과는「허무와 낙심」뿐이다.

<해설>

여기서 인간의 조건을 생각하지 않는 장로교 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구원을 받았으니, 혹은 구원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삶의 자세가 알미니안 주의자들보다 더 흩어진 상태에서 사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것은 시정하여야 한다.

칼빈주의의 모토(Motto)는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으로 되었으니 이제 해야할 일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Soli Deo Gloria) 돌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칼빈주의 사상을 분명히 인식하였으면 하다.

<본문>

알미니안 교회가 제 아무리 부흥회를 많이 열어도 그들의 사상이「조건」을 파괴시키지 않는 한 그것은 불안하고 끝없는 "유대인의 제사행위"일 뿐이며, 멋모르고 따라가 질세라 두 손 높이 들고 광기부리는 교중에게 점점 더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열정만 첨가해 줄뿐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의 부흥회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시종일관하여 「은혜에 감격한 감사행위」일 뿐이다.

첫사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감사는 회개를 불러일으킨다. 회개는 도덕적 고취를 갈망한다. 그것이 기도(祈禱)다. 참된 부흥회는 하나님 편을 기준으로 하고 인간 편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조건 선택은 감격의 술어이지 논리의 술어가 아니다.

<해설>

한국 교회의 부흥회는 많은 변천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초기의 한국 교회는 부흥회가 아니라 사경회를 선호하였다. 그리고 사경회 기간도 약 30일 정도로 길었었고 반(班)도 처음으로 참석하는 신자와 두 번째 참석하는 신자의 구분을 두어 계층적으로 진행을 했었다. 그러나 해방과 6.25의 전란을 거치면서 사경회는 부흥회로 성격이 바뀌었고 지금은 부흥회의 기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 목차고리 : 칼빈주의 5대 교리

>> 연결고리 : 구원, 교리, 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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