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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전적타락 (2)
 주제어  [칼빈]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과 전적타락 (2)
(Total Depracity)

<본문>

2. 죄는 오염(汚染)과 무능력(Inability)을 가져왔다.(7영리, 제3권 참조)

1) 또한 죄인은「죽은 시체와 묶어있는 산사람」의 처지와 같다.

로마의 한 최고 사형 법에, 죽은 시체와 산 사람을 벌거벗긴 채 마주대 놓고 꽁공 묶어 광야에 내버리는 형벌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되겠는가?

시체에 묶인 산 사람은 공포에 질린 채 시체의 부패가 산 살에 닿아 자기의 살이 점점 썩어 가는 고통을 겪는 것이다. 마침내 산 사람이 차츰 씩 부패되어 결국 시체화(化)되어 버린다.

<해설>

「죽은 시체와 묶어있는 산사람」에 대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사망의 몸"이 바로 「죽은 시체와 묶어있는 산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도는 죄로 인한 인간의 처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본문>

죄에 물든 인간은 마치 이런 원리와 같다.

아담 안의 모든 인간은 그 죄가 전가(transfer)되어 악성적으로 오염되어 있으니 특히 그의 영혼에 있어 그렇다.

영혼이 완전히 죽어 비린 것이다.

위의 비유에서와 같이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생존성"(生存性)을 가지고 사망(시체)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산 사람 때문에 시체가 생화(生化)될 수 없듯이 말이다.

<해설 1>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죽음"이란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며, 영혼의 죽음이란 영혼의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생은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설 2>

중생이란 생활이 변하여 성자가 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중생이다.

<해설 3>

중생한 사람이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일 뿐 삶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속에서는 "거듭난다"는 말을 "완전한 변화"로 사용하고 있으나 성경은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고 있다. 삶의 변화는 [중생]이 아니라 [성화]이다.

<본문>

그렇게 사망의 권세는 강한 것이다. 사망은 어디서 온 것인가?

죄 값이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의 죄는 인간을 생명화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을 오염과 타락 그리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가공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해설>

죄의 값이 사망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죄의 용서를 받은 성도는 왜 죽는가? 주님이 대신 죽어 주셨는데 말이다.

성도는 죄의 대가로 죽을 이유는 없어졌으나,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완전성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성도는 죽음으로써 육신을 벗으며 완전 성화를 이루는 것이다.

<본문>

2) 죄인인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선(善)이나 의(義)를 행할 수 없다. 완전타락(total depravity)이요 완전 무능력(total inability)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반문을 제기할래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 잘려진 가지요, 시체에 묶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체가 무슨 선을 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상대적 선"이란게 있다.

즉 악인들도 착한 일을 한다는 얘기다(7영리, 제3권,"해적의 선행" 참조). 불신자가 거지를 돕고 자선사업을 하는 얘기라든가, 도둑도 제자식을 사랑하고 이웃과 친교하며, 어떤 자는 돈을 훔쳐다가 가난한 자를 돕는 등의 애기는 일반 은총적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상대적 선"이라는 것이다(눅 6:33, 롬 2:14).

<해설>

상대적 선에 대하여

선악에는 절대적 선과 악이 있고, 상대적 선과 악이 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절대적 선은 "믿음"을 의미하고, 절대적 악은 불 신앙을 뜻한다. 상대적 선과 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선과 악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절대적 선에 속하는 신자도 상대적으로 선하게 살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적으로 악하게 살수도 있다. 반면에 절대적 악에 속하는 불신자 중에도 상대적으로 신자보다 더 선하게 살수도 있고, 더 악하게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선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절대적인 선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믿음 곧 절대적인 선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본문>

「돌트」신조는 그래서 그러한 불신자의 선행을「구원과는 관계없는 선」이라 했고「벨직」(Belgic)신조는「믿음 없는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고 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해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상대적 선이나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적 선에 속하는 일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본문>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고, 못된 나무는 못된 열매를 맺는 것이니 불신자의 온갖 선은 하나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안에서 하는 원천적(절대적)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선행은 예수 안에서 중생자가 믿음으로 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미니안주의는 말 앞에다 마차를 놓고 마차가 말을 끌어 가는 넌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 인간의 완전타락, 전적타락, 완전부패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전생애에 있어서, 아담 뿐 아니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가 끊어져 버린 상태, 곧 죽어버린 상태를 말함이다(렘 17:9 롬 3:11-12).

 

(필독해야 할 성구)

시 51:5, 렘 13:23, 17:9, 롬 5:12, 엡 2:1-3, 골 2:13, 시 58:3, 창 6:5, 8:21, 전 9:3, 막 7:21-23, 롬 8:7,8 앱 4:17-19, 딛 1:15, 요 8:44, 34, 시 143:2, 전 7:20, 롬 3:9-12, 요일 1:8, 10, 욥 14:4, 마 7:16-18, 12:33, 고전 2:14

 

토의문제

1. 구원의 5대진리란 칼빈주의 5대교리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2. 알미니안 주의와 칼빈주의의 차이점을 비교한다면?

3. 돌트 총회와 칼빈주의 5대 교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4. 인간의 전적타락이란 말은 누구와의 관계를 말함인가?

5. 인간의 전적타락이란 말과 완전타락, 완전부패란 말은 다른 말인가?

6. 왜 전적이란 말을 쓰게 되는가?

7. 인간의 전적타락이란 무엇을 뜻함인가?

8. 전적타락한 인간에게는 상대적선(잠정적선)도 불가능한가?

9. 인간의 전적타락 교리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인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인가?

 

 

>> 목차고리 : 칼빈주의 5대 교리

>> 연결고리 :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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