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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성령 소책자 해설 (1)
 주제어  [성령] [교육]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해설

성령 소책자의 제목은 "성령 충만한 생활의 비결을 발견하셨습니까?"이다. 그러나 편의상 이 책이름을 "성령 소책자"라고 부른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두 가지를 묻는다.

1) 이 책을 본 경험이 있는가?

이 책은 4영리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2) 성령 충만에 대하여 들어 본 경험이 있는가?

이 질문을 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 충만에 대하여 알고 있는 대로 말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 나름대로 성령 충만의 개념을 말할 것이다.

때로는 성령 충만을 기쁨이나 평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럴 때, 고민이 있거나, 아플 때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가고 다시 묻는다. 성령 충만은 병들었을 때 뿐 아니라 죽을 때도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의 질문을 주고 받은 후 2쪽 상단부의 글을 읽는다.

2쪽

본문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의 실재를 알고 순간순간 끊임없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의 하루하루는 가슴 설레는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해설

성령 충만의 정의는 "성령의 지배"이다. 충만이란 100%의 지배를 의미한다. 따라서 병들었을 때도 충만하여야 하고, 심지어 죽을 때도 충만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어야 한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이기 때문이다.

본문

성경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1. 자연인 (그리스도를 영접한 일이 없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린도전서 2장 14절).

2. 성령의 사람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5절).

3. 육신에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으나 신앙 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장 1~3절)

해설

3가지 형태의 사람

사람은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으며, 이것을 다시 세가지 형태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두가지 종류란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 믿는 사람과 없는 믿지 않는 사람이다.  

둘째로 세가지 형태란 예수를 믿는 사람도 다시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인데, 예수를 중심에 모신 사람과 변두리에 모신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을 성경은 신령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신령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고전 2:16) 신자임을 강조하고 신앙의 성숙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강조한다.

셋째로 육신에 속한 사람에 대하여 고전 3: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이다.

어린 아이란 신앙이 미성숙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신앙의 성숙이란 신앙 년조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한 신자(히 5:12-13)라도 어린아이처럼 남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신자도 있다.

2) "젖과 밥"의 차이는 말씀을 듣고 소화를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말씀을 통하여 상처를 입는 것은 어린아이의 소행이다. 어린아이는 자립하는 신자가 아니다. 교회에 오래도록 출석하면서도 자립적이지 못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된다.

3) "시기와 분쟁"이 있는 신자는 직분이 있을지라도 어린아이 신자이다.

신앙의 성숙은 직분에 있지 않다. 비록 유명한 부흥사나, 봉사를 많이 하는 장로일지라도 마음에 시기와 분쟁이 있으면 그는 미성숙한 신자이다.

때로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기와 분쟁"에 대하여 갈 5: 19-21에서 하나님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시기와 분쟁을 우상숭배나 이단이나 음행 등과 동일시하고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시기는 있을 수 있다는 개념은 잘못이다. 이런 신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갈 5:21)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4쪽

1>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풍성하고 열매맺는 신앙 생활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해설

"풍성"(요 10:10)이란 단어를 한국 교회의 신자는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풍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나 진정한 풍성은 영적인 풍성을 뜻하는 것으로써 신앙 성숙에 따르는 인격적 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해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적인 일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있는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해설 1.

"성령의 열매"를 통상적으로 9가지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란 단어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다. 단수란 하나를 뜻한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는 오직 한가지 "사랑"이다. 사랑 속에 나머지 8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전 13:4)라고 하였는데, 오래 참는 것과 온유한 것을 성령의 열매에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 속에 오래 참음, 온유, 충성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해설 2.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것도 갖가지 답변이 나오는 질문이다. 그러나 "사랑"의 반대말을 물으면 대개 윤곽을 잡는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라는 사실이다. 정확한 질문은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는 것이냐?"고 물어야 바른 질문이고, 바른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해설 3.

예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의 이웃은 누구일까?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는데,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가 이웃이라고 표현할 때도 있다. 이 대답은 정답 중의 정답이다.

어떤 여성도가 남편이 이웃이라고 대답하였을 때, 어찌 남편이 이웃이냐고 묻자 장시간 망서린 끝에 "돌아 누우면 남이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대답이다.

해설 4.

예수의 이웃관

눅 10:29-37에 예수의 이웃관이 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아니라 그를 치료해 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였다. 약간 확대하면 이웃은 옆집 사람도, 동족도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의 이웃"이고 "이웃 사랑은 그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이웃 사랑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느낌의 사랑이 아니라 표현되고 행동하는 사랑이다. 죄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한 구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 주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행동하는 사랑이다(롬 5:8).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질문 1.

성령을 받았는가?

질문 2.

권능을 받았는가?

질문 3.

예수의 증인이 되었는가?

질문 4.

증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해설 1.

이상의 질문에서 가장 주저하는 부분은 "권능을 받았는가?"이다. 성령의 권능이라 하면, 통상적으로 어떤 큰 이적을 행하는 것을 연상하고, 또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권능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변화가 바로 성령이 권능으로 역사한 결과이다. 이런 질문에 주저하는 피교육자에게 다시 묻는다.

성령은 권능있는 신인가? 아닌가? 물론 권능 있는 신이다. 그러면 권능있는 성령이 오실 때 권능의 성령으로 오시는가 아니면 무력한 성령으로 오시는가? 이렇게 질문을 유도하면 성령을 받는 순간 성령의 권능도 아울러 받은 것을 인식하게 된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이적을 행하고 능력있는 사역을 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도록 하며, 자신이 권능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한다.

해설  2.

피교육자들이 두 번째로 확실한 답변을 유보하는 것은 "당신은 증인이 되었는가?"이다. 그 이유는 전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인의 사명을 잘 수행하고, 증인의 역할을 착실하게 감당한 것과 증인이 되는 것과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따라서 증인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주저하면 "증인이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지, 증인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라고 질문의 욧점을 지적해 준다.

해설  3.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릇됨이 없다. 증인이 되었어도 증인의 역할을 감당치 못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부족하거나, 주님의 약속이 부실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불순종 때문이다.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주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전도를 아니한 책임을 주님께 돌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수의 증인이 되었으니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을 결심시킨다.

 

>> 목차고리 : 새 신자 교육의 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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