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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사영리 해설
 주제어  [사영리] [교육]
 자료출처  김대인 목사  성경본문  
 내용 4영리(四靈理)에 대하여 들어 보셨습니까?

<해설>

사영리 교육을 시작하면서 표지에 있는 제목을 그대로 질문으로 고쳐 각자에게 묻는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4영리에 대하여 들어" 본 경험이 있는 신자는 약 5분의 1정도이다. 4영리는 1974년 대학생 선교회(C.C.C.)에서 소개한 전도지인데, 믿는 신자 대다수가 들어보지 못하였다고 대답할 때 교육의 필요뿐 아니라 전도에 대하여도 많은 도전을 받는다.

2쪽

<본문>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해설>

자연법칙이 있고 영적인 원리가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법칙과 원리가 왜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법칙 혹은 원리는 그것에 순응할 때 편해 진다는 사실이다.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이 일상 생활에 생활에 편리한 것처럼 영적원리를 알고 따르는 신앙생활이 편하고 성장도 빠르다. 겨울에 여름 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 씨 뿌리는 농부가 없는 이유는 자연 법칙에 순응하여야 편하고 소득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신앙 생활도 원리에 따라야 신앙이 빠르게 성장 할 수 있다.

<본문>

제1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해설>

4영리는 전도지이다. 그래서 전도를 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2인층 대명사 "당신"이 사용되였다. 그러나 교육을 받을 때는 "당신"이 아니라 "나"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나"로 고쳐 다같이 읽는다.

<본문>

3쪽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요한복음   3장 16절).

<해설 1>

요한 복음 3:16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신자들이 이 구절을 암송하고 또 주일학생들은 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이 구절이 왜 중요할까? 성도들에게 "왜 중요한가"라고 질문하면 보통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정답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가 있는 신앙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는 구원을 위한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란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며,
2) "세상"이란 구원의 대상이 세상이란 뜻이며,
3) "사랑"이란 구원의 동기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란 뜻이며,
4) "독생자를 주심"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방편이 독생자를 주신 것이란 뜻이고,
5) 믿는 자, 곧 믿음은 구원을 얻는 방법이 믿음이란 뜻이며,
6)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은 구원의 결과이다.

이상과 같이 요한 복음 3장 16절을 이해할 때 이 구절이 갖고 있는 진수를 알게 될 것이다.

질문 1.

영생이란 무엇인가?

많은 신자들이 영생이란 오래 사는 것, 혹은 죽음 다음에 영혼이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불신자의 영혼은 소멸하는가? 만일 불신자의 영혼은 소멸하고 성도의 영혼은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이단적인 생각이다.

이 부분을 분명히 알기 위해 우선 영생이란 부분에 표시를 하도록 한다.

<본문>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설 1>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은 구원을 뜻한다. 그리고 생명과 영생을 같은 것이다.

요 3:16의 "영생"과 함께 생명에도 표시를 한다.

<해설 2>

"풍성"의 개념은 물질적인 소유의 풍성보다 인격적 풍성으로 해석하도록 한다. 소유의 개념은 동양적인 복 (福)과 부(富)의 개념으로 소유의 넉넉함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의 복의 개념은 "통한다"의 개념이다. 따라서 복의 개념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예수 믿고 복 받으시오"의 뜻도 부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의 길을 여는 자가 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본문>

4쪽

제 2 원리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죄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과의 사귐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적극적일 때는 하나님께 반항하게 되며,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증거입니다.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

<해설>

하나님께 대하여 소극적인 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결혼한 자녀가 자신들의 행복에 취하여 부모에게 무관심하면 부모는 서운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무관심은 그를 서운하게 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본문>

5쪽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

<해설>

죽음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립해야 한다. 죽음은 소멸도 기능마비도 아니라 "분리" 혹은 "단절"을 뜻한다.

육신의 사망은 육신과 영혼의 분리(떠남)이며, 영혼의 사망은 영혼의 기능마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죽은 상태(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육신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계 3:2)이다.

그러나 이 영혼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면 그 영혼은 살아날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고 만다. 이를 "영원한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1) 육신의 죽음, 2) 영혼의 죽음, 3) 영원한 죽음이다.

<본문>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사람은 죄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 철학, 종교 등의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도달하여 풍성한 삶을 누려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선행, 철학, 종교 등의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

<해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영원에 도전하는 방편인 요소 중에 종교가 있는데 이 종교에는 기독교를 제외할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기독교를 포함시켜야 한다.

<본문>

6쪽

제 3원리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는 또한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 전서 15:3-8)

<해설>

부활의 역사성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구절에는 많은 증인들이 채택되어 있다.
첫 번째 증인은 베드로이다. 그러나 1인의 증인은 증인으로서의 확실성이 결여된다.두 번째로 12제자가 동원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예수의 제자이기 때문에 역시 증인으로는 약하다.
세 번째는 "일시에"란 단어와 함께 500여명의 증인이 동원된다. 500명이나 되는 많은 신자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환상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증인이 측근자만으로 구성될 때 역시 확실성이 결여된다. 네 번째로 "야고보"(7절)라는 예수의 동생을 등장시킨다. 그는 예수의 생존 시,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았으나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믿게 되었다. 그도 부활의 증인으로서 가치는 충분히 인정되나 측근인 것만은 사실이다.
최후로 바울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는데, 그는 극단적인 반대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믿은 사람이다. 그의 변화는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환상이나 이론이나 교훈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본문>

7쪽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질문 1.

예수는 자신을 길이라고 하였는가, 아니면 길에 대하여 설명을 하겠다고 하였는가?

질문 2.

예수는 자신을 진리라고 하였는가, 아니면 진리에 대하여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는가?

그는 진리 자체이다. 그러기에 그를 아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질문 3.

그는 자신을 생명이라고 하였는가, 아니면 생명 얻는 방법을 가르치겠다고 하였는가?

<해설 1>

예수는 길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생명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다. 기독교를 독선적인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사실이다. 기독교가 독선적 종교가 된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있다. 그는 분명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처럼 독선적인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는 자신이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 말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요 10:10)와 상통하는 말이다. 역시 표시를 한다.

<해설 2>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신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신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사람이 된다. 이 사실은 그에게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을 모두 완전하게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림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사람을 십자가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렇게 연결시키는 분을 중보자라고 한다.

중보란 하나님과 사람의 성품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분만이 가능하다(딤전 2:5). 신성과 인성이 없는 자는 어떤 성자라도 중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도 중보가 될 수 없다. 마리아를 중보로 생각하는 천주교는 비 성경적이다.

<해설 3>

사람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인성을 가진 예수와는 교통이 가능하다. 예수는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없으나 예수를 중간에 두면 하나님과 교재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본문>

8쪽

제 4 원리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해설>

제 4영리에 대한 해설은 결론 부분에서 하기로 한다.

<본문>

9쪽

우리는 각자의 초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고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질문

당신은 두가지 그림에서 어느 쪽에 속하는가?

<해설>

질문에 답하는 것을 먼저 듣고 해설을 한다.

예수는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고 약속하였다. 이 약속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은 약속대로 들어오실 것이다. 영접이란 우리가 맞이하는 행동이 아니라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것 뿐이다.

<본문>

10쪽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
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 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해설 1>

영접을 위한 기도문이다. 이 기도를 하기 전 먼저 인도자가 기도를 하면서 진심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한 후 함께 기도를 한다.

<해설 2>

기도를 한 후 주님께서 마음에 들어오신 것을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

질문 1.

진심으로 기도하였고 영접하였다고 확인을 하면 다음의 질문을 한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해설 3>

사영리 8쪽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가 아니라 "이미 영접하였다" 이다. 영접을 전제하여 다음의 질문을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되었는가?

이제는 이런 질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 아니라 되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이다.

질문 2.

예수를 영접하는 것과 믿는 것은 같은 의미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

지금까지는 다른 의미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요 1:12)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를 영접하였다는 것은 그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 것과 영접하는 것은 낱말은 다르나 의미는 같다.

<본문>

11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 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장 11-13절).

<해설 1>

요 3:16, 요 10:10, 요 14:6 등에서 지금까지 생명과 영생이란 단어에 표시를 하였다. 이제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할 자례가 되었다. 우선 생명부터 생각하도록 한다.

예수 자신이 생명(요 14:6)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그를 마음에 영접한다는 것은 생명을 받아 드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고 한 것이다.

<해설 2>

영생이란 무엇인가? 죽은 후에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을 영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고 기록한 것이다. 이런 삶은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누리는 것이지 사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 다음에 영생하는 것은 지금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이 사후에도 그런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 목차고리 : 새 신자 교육의 이론과 실제

>> 연결고리 : 교육, 성령, 사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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