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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29
 제목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유다 왕국의 고분들
 주제어  [성서고고학]
 자료출처  '나눔' 98. 12월 호 에서  성경본문  
 내용

기럇메나헴, 모샤브 오라, 마나하트에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인공 언덕들이 있다. 이러한 인위적인 언덕들을 히브리어로 로겜이라고 부르는데 古墳의 형태로 생겼다. 그 특징은 손으로 들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돌덩어리들과 흙더미들로 쌓여진 언덕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1871년, 당시에는 베이트 마즈밀이라고 불리웠던 아랍 마을에서 이러한 로겜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였었고, 1885년, 영국 정부 산하의 P.E.F 가 T. Dreik의 감독하에 처음으로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이러한 로겜들은 인위적인 언덕이며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인위적인 언덕들을 Tumuli(복수형;Tumulis)라고 일쓻는데,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묘지 형태로 만들어졌던 현상으로써 그리스, 터키 등지에서 많이 찾아볼수 있다.

마나하트에 한 개(No. 2)가 있는데, 1923년 W.F. 알브라이트가 발굴을 했다. 발굴 결과 자연적인 언덕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것임이 밝혀졌고, 시기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로써 대략 주전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알브라이트는 삼하 5:21절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상을 버렸다"는 구절에 착안해서 블레셋 군대의 지휘관들을 위한 무덤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1953년에 R. 아미란은 이러한 형태의 레가밈이 약 19개가 더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사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산 봉우리에 놓여있는 것이 공통점이고 전망이 아주 좋은 위치에 놓여있는 것들이었는데, 하나 하나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였다. 이러한 레가밈은 이스라엘 내에서는 유일하게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유다 산지에 밀집해서 존재하는데 크게 세 지역으로 묶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기럇요벨과 기럇메나헴 지역. 두 번째는 모샤브 오라와 모샤브 아미나답 지역. 그리고 세 번째는 모샤브 베이트 자이트 지역이다. 전체를 합하면 20개의 레가밈이 확인되었다. 이것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조사를 하기도 전에 신축공사나 도로공사 현장에 의해서 파괴되어졌고 오늘날은 대여섯개 정도만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서 3개에 대한 발굴이 1953년 R. 아미란과 S. 예빈 그리고 1983년 G. 바르카이의 감독하에 이루어졌다.

 

한 개(No. 5)는 모샤브 오라의 진입로에 자리한 슈퍼마켓 주변에 있고, 다른 하나는 모샤브 오라의 농경지역에 있고, 또 다른 하나가 기럇메나헴 슈퍼마켓 뒷 편에 위치하고 있다. 1983년 기럇메나헴 수퍼마켓 뒷편에 있는 산 언덕에 독립전쟁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는 장소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만들기 바로 직전에 이 지역에 대한 구조 발굴이 실시되었고, 이 때 실시된 발굴 작업에 G. 바르카이가 관여하게 되었다.

R. 아미란이 발굴한 모샤브 오라에 위치한 No. 5의 레겜은 전체가 발굴되어진 유일한 것이며, 발굴 결과 돌 덩어리들과 흙더미들로 쌓여진 인위적인 언덕이었음이 입증되었는데, 안쪽에서는 원형 건축물이 발견되었다. 원형 돌담은 공룡이빨의 형태로 삐져나온 돌모서리가 5m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쌓여졌고, 그 돌담은 동쪽편(예루살렘 방향)에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으며, 계단 안쪽으로 들어가면 원형 돌담 안쪽에는 90cm 높이의 좀더 작은 형태의 투물리가 있었다. 작은 투물리 안에서는 무엇인가 태운 잿부스러기와 조그마한 구멍 안에서는 나무를 태운 잿부스러기가 발견되었다. 아미란은 결론적으로 이러한 레겜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돌무더기며, 무덤은 아니었으며, 종교적 제단으로써 주전 7세기 무렵 요시야왕 시대에 파괴되어진 지방 산당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G. 바르카이는 알브라이트와 아미란의 결론에 의구심을 가졌다. 우선 블레셋 사람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알브라이트의 견해는 같은 형태의 무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에서는 단 한 개도 발견이 되지 않았으며, 발굴되어진 유품들이 어느 것 하나 장례물품과 관련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 산당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형태가 신전이라면 우선 마을 내에 존재해야 하는데, 레가밈은 전부 마을과는 동떨어진 외딴 곳에 만들어졌으며, 레가밈 전부가 예루살렘 서쪽에만 있고 다른 지역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 적은 숫자의 토기들이 발견되어지는데 더군다다 발견되어진 토기들 역시 제사 용기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그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에 기럇메나헴 지역 개발 공사 과정에서 실시된 긴급구조 발굴 결과, 역시 기럇메나헴 수퍼마켓 뒷 편에 있는 산언덕은 인위적인 언덕, 즉, 로겜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바르카이는 결론적으로 남아있는 로겜 가운데서는 가장 큰 것이며,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발굴 과정에서 3개의 라멜? 인장을 발견하였는데, 따라서 이 로겜의 형성 시기를 주전 8세기 무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살라미스 지역에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전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투물리스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알려진 것들인데, 유다 나라와 같은 양식의 문화가 동시대에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Salamis in Cyprus라는 발굴보고서는 여러개의 투물리스 발굴 결과들을 보고하고 있는데, 그 중에 어떤 것은 도굴꾼들에 의해서 도굴된 것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도굴 과정에서 피해를 면한 곳이 있었는데 이곳을 발굴하였더니 그 곳에서는 왕이 타고 다녔던 병거와 침대 등 각종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는 나무를 태운 잿부스러기와 말머리모양의 조각, 사람 얼굴의 앞면, 손 모양과 발모양의 조각들이 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사람 얼굴의 앞면 조각의 뒷판에는 나무를 박아놓았던 흔적이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유물들을 근거로해서 무덤의 중앙에는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사람의 얼굴과 손, 발 모양의 조각들을 붙여서 상징적인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고 어떤 의식이 끝나고 나서는 불로 태웠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러한 투물리스는 왕들의 가묘였었는데, 니코크레온 왕가의 16명의 왕족이 외적의 침입을 피해 모두가 자결한 사건이 있었는데, 아마도 싸이프러스 주민들은 이러한 훌륭한 죽음을 기리기 위하여 왕족들을 위하여 상징적인 위폐들을 만들어서 가묘(?)를 만들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짜 무덤은 아니지만, 죽은 왕족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만든 것들이고 발굴되어진 유품들로 미루어보아 "불에 태우는"의식 이후에 준비해 온 돌과 흙무더기를 쌓아 만든 인위적인 언덕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서쪽에서만 발견되는 20개의 돌무더기 언덕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르카이는 여기서 성경구절을 들어 이러한 레가밈도 왕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상징적인 가묘(?)들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왕들이 죽고나면 우선 '왕들의 무덤'에 묻는다. 왕의 시체는 무덤에 묻고 장례를 치루고 난 이후에는 온 나라에 왕의 서거를 공포하게 되고 한 달 이내로 모든 백성들이 한 곳, 이미 사전에 지정된 곳, 에 모여서 상징적인 행사와 더불어 각 사람이 한 바켓 정도의 돌과 흙무더기를 갖다 부어 행사장을 덮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인공적인 돌무더기 언덕으로 남게되는 것이다. 이렇게해서 생겨난 돌무더기가 바로 레겜이라는 것이 바르카이의 설명이다.

 

대하 32:33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시"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존경함을 표시하였을까? 어떻게 히스기야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였을까?

왕의 죽음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바로 분향하는 행위였음에 대하여 대하 16:13-14이 시사하고 있다. "아사가 위에 있은 지 사십 일 년에 죽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또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이스레푸 로 스레파 그돌라 아드 리메오드"라 되어있다. 즉, '스레파 그돌라'로 왕의 죽음을 애도하였다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가 왕의 죽음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대조적으로 대하 21:17을 보면, "(여호람)이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 열조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저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열조에게 분향하던 관습을 여호람을 위해서는 백성들이 하지 않았다는 설명인데, 역시 히브리어로 "로 아수 로 스레파 키스레파트 아보타브"로 읽어서 '스레파' 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습적으로 행하였던 분향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렘 34:4-5에 보면,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제 열조 선왕에게 분향하던 일례로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는 예언구절을 읽게된다. 이 예언구절은 성취되지 않은 예언이다. 왜냐하면 시드기야는 칼로 죽었으며 평안히 죽지 못했다. 어쨋든 이 구절에서도 "열조 선왕에게 분향하던 일례"에 대한 언급을 읽어볼 수 있다. 즉, 매 왕이 죽을 때면 백성들은 왕을 무덤에 묻은 이후에 또 다른 분향 의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분향하던 의식, 즉 '스레파 의식'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향한다라는 말의 히브리적 의미는 불태운다라는 뜻이다. 즉, 무엇인가를 쌓아놓고 불에 태우는 의식이 "스레파"라는 형태의 상징적 의식이었을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레파' 의식은 무엇이었으며, '스레파' 의식과 레겜의 관계성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성경구절 한 곳을 발견하게 된다. 렘 51:25를 살펴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사람이 네게서 집 모퉁이 돌이나 기촛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영영히 황무지가 될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라"는 본문은 "나타티카 레하르 스레파"로 되어있다. "하르 스레파"가 무슨 의미인가? 이 본문을 번역한 많은 성경들이 번역상 어려움을 느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히브리어 의미로 풀이하면, '하르'는 '산'이라는 뜻이고 '스레파'는 '불에 태운다'라는 것을 말한다. 즉, 불에 탄 산, 불태운 산, 분향한 산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레미야 당시의 독자들은 어떻게 이해하였겠는가?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르 스레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수 있었을 것이다. 요시야 왕 통치 시대에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였음을 생각한다면,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의 예루살렘 거민들은 예레미야의 표현 양식에 담겨있는 뜻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게속되는 구절에서 "하르 스레파"에서는 돌을 가져다가 집을 짓는데 사용하지 말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집 모퉁이 돌이나 기촛돌을 위해서 "하르 스레파"에 있는 돌들을 가져다 쓰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쉽게 파악하였을 것이다. 즉 "하르 스레파"는 왕들의 죽음을 위해 가졌던 분향 의식 이후에 만들어진 인공적인 산언덕들 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왕국 유다의 왕들은 모두 21명이었다. 예루살렘 근교에 남아있는 인공적인 돌무더기의 숫자가 20개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근사치에 가깝다. 과연 이 돌무더기들이 유다 왕들의 죽음을 애곡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던 모든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향의 재단들이었을까? 알브라이트가 발굴한 것은 주전 10세기경의 것이었다. 아미란은 주전 7세기 것을 발굴하였고, 바르카이는 주전 8세기 것을 발굴하였다. 시대적 연속성을 갖고 있는 이러한 언덕들은 과연 예루살렘의 왕들이 죽고난 다음에 백성들이 왕의 죽음에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의식으로써 가졌던 분향 의식에 의해서 남겨진 것들일까? 그래서 그 언덕의 이름을 "하르 스레파"라고 불렀었을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레겜들은 그리스나 터키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들과는 다르게 무덤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지방 산당들도 아니었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유일하게 예루살렘 근처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이고 그 숫자가 20개가 된다는 것이다. 주전 10세기부터 주전 7세기에 이르도록 만들어졌던 것들이고 단 일회적 행사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던 언덕들 이라는 것이다. 돌무더기를 파헤쳐 보면, 일정한 양식의 구조물들과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이 공통점이다.

바르카이는 이것들은 분명코 유다 왕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가졌던 의식적, 상징적 존경의 표시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언덕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언덕이 "하르 스레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 연결고리 : 성서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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