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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성경사전  작성일  2007-05-28
 제목  종려나무(Tamar)
 주제어  성서의 식물 다말 대추야자 [나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종려나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중요한 식물 중의 하나다. 그러나 성경에 종려나무로 지칭된 것은 실은 대추야자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종려나무와 대추야자는 식물학적으로는 별개의 식물이다.

대추야자는 학명을 phoenix dactylifera L. 이라고 한다. 그리고 히브리명은 tamar, 그리스명은 phoinix, 영명은 date palm, 독일명은 Dattelpalme라 하는데, 대추같은 열매가 달리는 야자나무이기 때문에 대추야자라 한다.

 

마라를 떠나 엘림에 진을 쳤다. 엘림에는 열 두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민 33:9).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겔 41:18-20).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아 7:7).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승리와 늘 푸른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영존하는 승리를 뜻한다. 그리스도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는 문지기이시다.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시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또한 생명의 만족, 환난에 대한 승리 안에서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엘림(엘림은 전능자들, 혹은 강한 자들을 의미하는 복수 명사이다.)에 있었던 종려나무들은 난장이 나무들이 아니라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큰 종려나무들이었을 것이다. 물은 분명히 샘으로부터 아래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므로 엘림에는 아래로 흐르는 물과 위로 자라는 나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 다음,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는 부활 생명에 대한 그림이다. 먼저 부활 생명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흐른다. 이 흐름의 결과는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에게는 단물뿐만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뀌어진 물과 엘림에 있는 열두 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을 가지려면 십자가의 체험인 마라로부터 부활의 체험인 엘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시대로부터 그녀와 동시대(同時代) 사람인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 시대까지 주님의 백성은 대부분 마라에 있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의 사역을 통해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이 온전히 회복되었다. 펜 루이스(Penn-Lewis) 여사를 뒤이은 시대에서 주님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나아가셨다. 엘림에서 그분은 열두 샘과 칠십 종려나무가 있는 그분의 농장을 돌보셨다. 그러나 주님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마라를 매우 귀히 여기고 거기에 머물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관한 펜 루이스 여사의 저서들을 뛰어넘어 전진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십자가의 체험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흐르는 샘과 자라는 종려나무에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그들의 씁쓸함이 십자가의 적용을 통해 얼마나 달콤함으로 바뀌었는지를 간증한다. 마라에서 지체하는 자들에게 치료하는 나무는 있으나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자라나는 칠십 종려나무는 없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다. 거기에는 오직 베어서 쓴 물에 던지는 한 나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마라에서 엘림으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치료하는 나무에서 자라 번성하는 종려나무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가 마라에서 지체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엘림으로 나아가 거기에서 그분의 군대로 강화되기를 요구하신다. 최근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삼 세기 전의 신비주의에 의해 쓰여진 저서들에 관해 묻는 편지를 받았는데, 특별히 마담 귀용(Madam Guyon)과 로렌스(Lawrence) 형제의 저서들에 관해서였다. 사실상 마담 귀용(Madam Guyon)의 자서전은 마라에서의 체험에 대한 역사이다.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삼 세기 전에 마라에서의 체험을 강조했던 자들은 흐르는 열두 샘과 자라는 칠십 종려나무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 오늘날 주님은 하나님의 농장에 물을 주시어 종려나무들을 자라게 하여 그분의 생명의 풍성과 승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샘들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마라에는 농장이 없고 씁쓸함을 달게 바꾸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성장이 없다. 그러나 엘림에서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풍성과 하나님의 행정의 온전한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농장과 종려나무 숲을 누린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바뀐 물 안에서, 그 물에 의해, 그 물과 함께 종려나무들처럼 자라야한다. 그럴 때 그 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과 완전한 승리를 표현하는 흐르는 물이 될 것이다.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

종려나무로 만든 격자창을 보자. 창문은 공기와 햇빛을 들어오게 하고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겔 41:16). 이 창문들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생명 주는 영은 극히 자유롭고 해방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또한 격자가 있다. 자유가 있지만 또한 창살이 있다. 하늘에 속한 것과 생명에 속한 것과 순수하고 깨끗한 공기는 모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창문에 격자, 곧 창살이 있기 때문에 더럽고 악하고 소극적인 것은 모두 차단될 것이다.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신다.

 

모든 널판에는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41:18-20). 그룹은 1장에 언급된 네 생물이며 피조물 위에 표현되신 주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룹들 사이에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리스도의 영속되고 영존하신 능력을 상징하는 종려나무가 있었다. 1장에서 그룹은 네 얼굴을 가졌으나 벽에 새겨진 그룹은 두 얼굴―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얼굴―뿐이다. 사람의 얼굴은 인성을 상징하고 표현하며 사자의 얼굴은 인성 안의 승리를 나타낸다. 할렐루야! 벽은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진 나무로 덮여 있다. 이들은 나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고 새겨진 것이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새겨져야 한다. 우리는 덮는 널판들이며 주님에 의해 새겨질 필요가 있다. 새겨지는 것은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당신은 어떤 형제 자매를 만날 때 그들에게 주님의 새겨짐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주님의 영광이 그들 안으로 새겨졌다. 영속되는 능력과 신선함과 영원토록 싱싱한 생명이 그들의 존재 안으로 새겨졌다. 주님의 새겨짐으로 인해 그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모양과 인상을 나타낸다.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마태복음 28장 8 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이들은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나무 가지들은 종려나무 가지들로서(요 12:13),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장막절에 의해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산출을 누리는 만족함을 의미한다. 무리들은 겸비하신 왕의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그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들을 사용했다.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종려나무는 감춰진 샘물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높이 치솟아 자라난다. 이는 승리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들의 어떠함으로 온유하신 왕을 존귀케 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분이 승리하는 생명이 있는 그런 분임을 인식했다.


7 절과 8절은 이렇게 말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잎을 길에 펴며”. ‘옷’은 사람의 행위에 속한 인간의 미덕을 상징한다. 제자들은 그분이 탈 수 있도록 나귀 위에 그들의 옷을 얹어놓아 노예-구주를 존귀케 했으며, 무리들은 그분이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옷을 길에 폄으로 그분을 존귀케 했다.

 

나뭇잎(8절)은 종려나무 가지에서 따온 것이었다(요 12:13).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하는 생명과(계 7:9) 초막절 잔치로 예표된 것처럼(레 23:40, 느 8:15) 이 생명의 풍성한 소출을 누린 데서 오는 만족함을 상징한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하여 노예-구주의 오심을 경축했다.

 

노예-구주는 영광스러운 입성을 하셨으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것은 주님의 지혜에 따라 발생했다. 그분의 구속 사역을 위한 준비로 그분이 안배하신 첫 번째 일은 이 같은 환영이었다. 이러한 환영에 의해 그분은 사람들의 승인을 받으셨다. 마치 그분은 그들에게서 득표를 하신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분을 지지했으며 그분을 메시야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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