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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4-01
 제목  전주의 삼일운동 (전주신흥고등학교 90년사 11)
 주제어  3.1운동
 자료출처  전주신흥고등학교  성경본문  
 내용

목차

 

갑오개혁이후의 신교육   

선교사들의 내한과 기독교학교의 설립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내전과 선교 활동의시작

최초의 신흥인 김창국   

시대적 배경

신흥학교의 개교

희현당

일제의 무단정치

초창기의 신흥학교

삼일운동의 배경

전주의 삼일운동

삼일운동과 신흥

일제의 문호정책

기독교의 재흥과 시련

학생수의 증가와 증축

1920년대 신흥학교 개황

인톤교장과 1930년대 초

조선총독부 지정 신흥학교

항일의 몸짓

광주학생운동과 신흥

신사참배 거부와 폐교

종교교육과 신앙생활

 

> 참고자료 :  삼일운동 

 

2) 전주의 삼일 운동


삼일운동의 발전과정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단계는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이 운동에 불을 지른 단계이고, 제2단계는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에 뒤이어 주로 학생층과 도시의 노동자 및 상인층에 의해 전국의 주요도시로 확산된 단계이며, 3·1운동은 말할 것도 없이 제2단계에 속한다.

전북지방에서 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은 군산이다. 군산으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온 사람은 당시 세브란스 의전 학생인 이병수(李秉洙)였다. 이병수는 200매의 선언서를 영명학교 교사인 이동열, 송헌정, 고석주, 김수영 등에게 3월1일에 전달했다. 그들은 3월1일 서울에서의 독립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월2일 밤 영명학교에서 3,500매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복사 인쇄하여 3월 3일에 영명학교 학생들과 기독교인들에게 비밀리에 배부하였다. 그들은 3월5일을 봉기일로 전했으나 이동열이 경찰에 붙잡혀 가자 70여명의 학생들이 3월4일에 시위를 감행하였다. 경찰이 당일 시위자를 모조리 잡아가자 3월5일 정오에는 남녀학생 및 천도교도 약 150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로 진입하였다. 이 시위는 영명학생이 주동이 되어 일반 군중 수백 명이 가세했으며, 주동자 99명이 잡혀갔다. 그 이후로도 3월23일, 3월30일, 4월4일에 1,000여명이 모인 큰 시위가 있었다.


1919년 2월 하순에 서문밖 교회에서는 매년 열리는 충청도와 전북 도내의 장로, 집사들의 성경학교를 마치게 되었다. 이날 선교사 마로덕(馬路德)목사를 통하여 미리 김종곤(金鍾坤)의 집에서 만들어 둔 태극기외 인쇄물이 각 교회에서 모여든 약 300여명의 장로와 집사들에게 나누어지고, 장날을 택하여 거사하도록 지시되었다. 3월4일과 5일에 군산에서 독립만세 시위가 감행되었다는 소식이 박태련(朴泰鍊), 김신극(金信極)등 전주의 지도자들에게 전해졌다. 전주의 천도교, 기독교와 신흥학교 등 각계 대표들은 3월13일 장날을 시위 결행일로 정했다. 필요한 태극기는 천도교인과 시민용을 신간회의 총무인 박태련의 집에서 인쇄하기로 하였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전주의 일본 경찰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신흥학교, 기전학교를 비롯한 각급학교에 강제로 방학조취를 취했다. 거사 5일을 앞두고 이와 같은 조치는 거사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당황한 애국지사 최종삼씨는 신흥학교 학생 5명을 불러 집에서 침식을 같이 하면서 밤에는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극기는 거사 당일 채소가마니로 위장되어 장터로 실려 나갔고, 이 태극기는 거사 직전 시장의 통로인 완산동과 전주교 건너편에서 시장을 향해서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은밀히 배부되었다. 12시 20분경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남녀 학생 및 천도교도와 일반인 등 약 15명이 태극기를 들고 남문밖 시장 부근으로부터 제2보통학교(현 완산국교)교정 부근에 모여 만세를 부르며 시중에 들어와 격문을 뿌리며 구보로 행진하여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당시 만세 운동의 규모나 전개 상황을 전반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매일신보"의 기사를 다음에 옮겨 적는다.21)


21) 이 기사를 읽어 나감에 있어서 당시 "매일신보"는 총독부 기관지의 성격을 띠는 어용 신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현대어로 고쳐 적었음을 밝혀 둔다.


전주―선언서의 배포―


13일 전주 장날에는 이왕보다 장꾼이 많이 모였으므로 당국에서는 아침부터 경계를 하였는데 오후 12시 반경에는 만여 명의 군중이 모인 곳에서 별안간에 소리를 지르며 종이로 만든 한국 국기를 들고 시중(市中)으로 돌아다니며 시위운동을 하였는데, 기를 든 자는 대개는 학생들인데 한국 국기는 헌명대가 총출동하여 모두 압수하였고 선동자로 인정되는 자 수인을 구인하였으며 별로히 폭행은 없었다더라.(전주특전)

이번 소요사건에 관하여 전주에서 배포한 불은 선언서의 반포한 상황이 아래와 같더라. 3월1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역 도착의 열차로 경성 수송동 천도교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이가 하차하여 전주 천도교구장 김봉연의 집에 간 즉, 김봉연은 국장(國葬)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고 없었으므로 시도되는 패창군에게 그가 가졌던 선언서의 1800매를 교부하여 즉시 각 교구에 배포하고 3일 새벽가지 각처에 부치라고 부탁하매 패창근은 그 교부를 재무계 전진오에게 약 600매를 주고 전진옥은 다시 임실천도교구장 한영태에게 약간을 교부한 바 동인(同人)의 손으로 다시 또 신도의 손을 거쳐 남원군, 익산군 각 방면에 산포하고 이리, 옥구, 함열, 논산, 부여, 김제, 정주에 모여 운동케 하여 3일까지 사이에 거의 준비행동을 마친 듯하고, 주모자와 운동자는 거의 다 잡혔는데 발견된 선언서의 수는 195매더라.

<1919년 3월 14일자>

전주―검거된 여학생―

당지에서는 13일 오후 1시경에 각학교 생도 및 일반시민 중 수백명이 각기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고쳐 재판소 앞까지 살도하여 시위운동을 행하였는데 이 날은 마침 장날인고로 놔화하는 자 수천명에 달하여 일시 혼잡을 극한 바 경관의 민활한 활동으로 즉시 이를 해산하고 약20여명을 검거하였는데 이중 기전여학교 생도 13명이 체포되었으며, 일반시민은 철저경계 중이더라.(전주 전보)

<1919년 3월 15일자>


전주―사오차를 시위―


야소교에서 경영하는 학생 남녀생도와 천도교도 약 1백명은 13일 정오로부터 오후 11시까지 4, 5차를 만세 부르며 시위운동을 개시하였으므로 약간명을 검속하였더라.

<1919년 3월 16일자>



전주소요의 후보(後報)―일시 맹렬하였다가 즉시 진정되어―


금번 각 지방의 소요 돌발 이후로 전주에도 또한 불온한 형세가 있다하여 여러 날 엄계불태(嚴戒不怠)하던 중 지난 13일 오후 1시경에 돌연히 제2공립 보통학교 및 신흥, 기전여학교의 생도 약 200명과 일반 다수의 민중이 단체를 지어 각기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며 시위운동을 시작하여 시중을 돌아 경찰서와 전주지청 앞까지 습래한 바 이날은 마침 전주 시일(市日)인 고로 이에 향응하는 군중이 수천 명에 달하여 일시 혼잡이 극하였고, 일반 상민은 점문(店門)을 철폐하여 전주 시가는 삽시에 일대 수라장을 화작하였는데 만일의 급경에 대한 예방책을 미리 준비하였던 경무부 헌병대와 경찰서원 일동이 민활히 활동을 개시하고 일변으로 소방조 전부를 소집하여 소요자 약간명을 검속하고 극력 진압하여 잠시 진정되었는데 동일 오후 세 시경과 네 시경에 두차례에 소요가 재차 폭발되어 이에 뇌동부화화는 군중이 점차 증가하여 극히 혼돈 복잡하였고, 또 이 중에 조선인 예기 조합의 기생들이 시위운동에 역시 다수히 참가한 것이라. 군중은 더욱더욱 성한 기세로 한국 독립만세를 크게 부르고 조수(潮水)와 같이 각 가로로 밀려다니며 시위운동을 계속하여 일시는 극히 위험한 형세가 있었으나 기마헌병 이하 다수의 경관과 및 소방조 등의 엄중 진압함을 인하여 군중은 필경 일보(日報)경에 이르러 점차 해산하였는데 이번 3회의 소요에 검거된 자가 합계 마흔 네명 중에 기전여학교 생도 13명과 기생 4명이 체포된 바 기생은 곧 방환되고, 전주지청 검사가 즉시 경찰서에 출장하여 검거된 자의 취조를 대략 마친 후 동일 오후 9시경에 자동차로 3,4차에 나누어 전주분감(全州分監)으로 다 압송한 바 인심이 오히려 흉흉한 상태에 있는 고로 다수의 경관이 소방대와 및 내지인의 상민 등이 종야토록 시내 각처의 요소를 순라 경계하였는데 야심 후 시내 수추에서 독립만세성이 또 일어났었으나 소요자 약간명을 체포한 후 곧 무사히 진정되었더라. (전주)

<1919년 3월 17일자>

전주―경배군대 도착―


13일 오후 1시경으로부터 그날 밤 11시경까지 5회에 나누어 소요가 돌발하여 민심히 불안하다 함은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14일 오후 3시경에 또다시 소요가 이러나 완산교 부근으로부터 다수의 학생을 선두에 세우고 천여 명의 일단 군중이 각기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본정 순사 파출소와 및 식산은행 앞까지 살도하여 시위운동을 시작한 바 다수의 경관과 및 소방조 등이 즉시 출동하여 극력 진압하기 위하여 용산군 사령부로부터 1개 중대의 병사를 이리에 파견하여 13일 밤에 이미 도착한 바 이 병사의 대부분이 14에 전주에 또한 도착된 고로 전주 시가에는 경계가 더욱 엄중하게 되었더라.(전주)

<1919년 3월 18일자>

위의 기사들은 종합하면 1919년 3월 13일은 전주의 장날이었는데 이 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군중들이 장으로 몰려들었고, 12시에서 1시 사이에 천도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 그리고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날 시장에 왔던 수천 명에서 만명에 이르는 군중들이 여기에 합세를 하였고, 오후 3시와 4시경에도 큰 규모의 시위가 있었으며, 밤에도 11시까지에 작은 규모의 시위가 2차례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튿날인 14일 오후 3시경에 천여명의 군중이 시위를 하였으며, 시위의 진압 양상은 극력진압 또는 엄중진압으로 표현되고 있는 바 무자비한 시위진압이 있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검거된 사람은 이틀 동안 40여명으로 보이며, 이들 중 기전학교 학생 13명, 기생 4명이 있어 전주의 3·1운동에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겠다. 그 외에 전주의 3·1운동에서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을 지도한 분은 당시 서문밖 교회에서 시무하던 김인전 목사였으며, 그 연락을 맡은 사람이 당시 서문교회 교인이었던 더벅머리 총각의 최종삼 씨였다. 여기에 김인전 목사의 동생인 김가전(당시 중학과정을 마쳤음)과 김종곤등도 거사 준비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영준 씨(11회, 전주중부교회 은퇴장로)의 말에 의하면 만세 운동날인 13일에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락을 하는데 일본말을 한글로 써"남문가에 아스마고"(남문에서 만나자)라고 써서 돌려 일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이날 시장에는 어찌나 많은 인파가 몰렸던지 지게를 지고 온 사람이 지게를 벗어 공중으로 올려 들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기준 목사(12회, 현 은석교회 시무)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3·1운동 당시 나는 14살이었습니다. 그날은 장날이었는데 김제 쪽에서, 남원 쪽에서, 고산쪽에서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전주 시내로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이 합세하여 만세를 불렀습니다. 형사들은 앞장 선 사람들을 일일이 잡을 수 없으니 분필을 가지고 등에다 그어 표시를 해서 나중에 잡고자 하였습니다. 나는 주동자들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형사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다가 그만 붙들려 두들겨 맞기도 하였습니다. 한 청년이 만세를 부르다가 소방대의 갈쿠리에 찍혀 즉사하는 것을 보았고, 한 기전 여학생은 헌병에게 붙잡혀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그 자리에서 숨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비참한 장면은 평생에 처음 보았습니다."


위의 목격담을 보면 신문기사의 공식적인 기록과는 달리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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