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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4-01
 제목  선교사들의 내한과 기독교학교의 설립 (전주신흥고등학교 90년사 2)
 주제어  
 자료출처  전주신흥고등학교  성경본문  
 내용

목차

 

갑오개혁이후의 신교육   

선교사들의 내한과 기독교학교의 설립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내전과 선교 활동의시작

최초의 신흥인 김창국   

시대적 배경

신흥학교의 개교

희현당

일제의 무단정치

초창기의 신흥학교

삼일운동의 배경

전주의 삼일운동

삼일운동과 신흥

일제의 문호정책

기독교의 재흥과 시련

학생수의 증가와 증축

1920년대 신흥학교 개황

인톤교장과 1930년대 초

조선총독부 지정 신흥학교

항일의 몸짓

광주학생운동과 신흥

신사참배 거부와 폐교

종교교육과 신앙생활

 

> 참고자료 :  삼일운동 

 

2) 선교사들의 내한(來韓)과 기독교계 학교의 설립

한국에 왔던 최초의 개신교 신자는 1627년에 온 벨트브레(Jan Janse Weltvre, 朴燕)와 1653년에 온 하멜(Hendrich Hamel, 哈梅兒)이었다. 이들은 화란인들로서 무역선을 타고 사업상 일본을 방문하다가 표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후 1816년 영국에서 중국에 파견한 사절단으로 암허스트(Amherst)경을 호위하고 중국에 왔던 바실 홀(Basil Hall)과 맥스웰(Maxwell)이 조선 서해안의 해도(海圖) 작성을 위해 내한했다가 군산만에서 첨사 조대복에게 성서를 선물로 준 일이 있었다.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는 구츠라프(Karl F. A. Gutzlaff)였다. 그는 1832년 2차 중국 전도여행 중 한국의 장산곶(長山串)과 군산만(群山?)에 들러 약 1개월 동안 그곳에서 전도하였던 것이다. 또한 1866년 미국상선인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n)호를 타고 대동강에 들어온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Robert Germain Thomas)는 동년 9월 2일 대동강 연안에서 자기의 목을 치는 조선인 병사에게 성서를 주면서 순교함으로써 이땅에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어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신교 선교사들의 내한은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부터였다.1882년 한미간의 조약이 체결된 후 우리나라 정부는 이듬해인 1883년 여름에 보빙대사(報聘大使)로 민영익(閔永翊) 일행을 친선사절로 미국을 방문케 하였는데 이 때 뉴욕에 있는 감리회 선교본부는 민영익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사정을 청취하고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일본에서 선교하고 있던 매클레이(Robert S. Macley)로 하여금 한국을 방문하여 사정을 알게 하였다. 매클레이 부처는 1884년 6월에 우리나라에 도착하여 김옥균의 안내로 고종을 알현하고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감리교에서는 스크랜톤(W. B. Scranton)의사, 아펜젤러(H. G. Appenzeller)목사, 그리고 스크랜톤 부인(M. F. Scranton)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한편 미국의 북장로교에서는 중국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던 알렌(H. N. Allen)의사를 한국에 파송함으로 한국에 입국한 최초 선교사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즉, 1884년 9월 20일 알렌이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최초의 주한 미국 선교사가 탄생한 것이었다. 1885년 4월 고종은 알렌에게 병원 설립허가를 내주어 광혜원(廣惠院)이라는 한국 최초의 병원이 생겼다. 이 병원의 특색은 장로교 선교부가 의술을 담당하고, 한국 정부가 건물 및 기타 설비, 경영비 등을 부담하여 운영되었던 협력기관이라는 데 있었다.

아펜젤러 목사는 1885년 7월에 서울에 들어와 일개월 먼저와 있던 스크랜톤 의사의 집 한 채를 빌려 방 두 칸 벽을 헐어서 조그마한 교실을 만들었고, 1885년 8월 3일에 이겸라(李謙羅), 고영필(高永弼)이라는 두 학생을 얻어 수업을 시작하니 이것이 한국 근대학교의 시초이다. 이에 1886년 6월 8일에 고종은 배제학당(培濟學堂)이라는 교명과 액(額)을 내리었다.

1885년 4월에 입국한 언더우드(H. G. Underwood)는 한국에 도착한 지 3일만에 알렌의사가 개설한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다가 1886년 고아원과 고아학교를 창설하니, 이것이 한국 최초의 고아원이요, 학교로는 두 번째이다. 이것을 통칭 언더우드 학당이라 불렀는데 이 고아학교가 경신학교(儆新學校)의 전신이다.

1885년 6월에 입국한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톤 부인은 선교사업의 중요한 분야로 한국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세울 것을 결심하고 그 준비에 착수하여 1886년 5월에 학생 하나를 상대로 학교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한국 여학교의 효시가 된 이화학당(梨花學堂)이다.

위의 세 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1910년 2월까지 설립된 기독교계 학교의 종파별 통계를 보면 장로교가 501교, 감리교 158교, 성공회 4교, 종파미상 84교, 각파합동 1교, 천주교 46교로서 신구교회가 세운 학교수가 모두 796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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