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공의회는 로마 황제들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끝난 후인 325년 여름에 개최된 것으로 첫번째 범제국적인 종교회의이다.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제국의 동부에서 그의 정적인 리키니우스를 이기고 정권을 장악했을 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문제를 둘러싸고 생겨난 아리우스 논쟁 때문에 분열의 위기에 놓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분쟁이 국가적 차원에서 분열이 조장될 것을 걱정하여 황제 자신의 주선으로 그 당시 황제의 거주지인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케 했는데, 여기서 결정된 것이 바로 니케아신경이다. 이 신경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는 ‘호우시우스’인데 그 의미는 성자(聖子)는 성부(聖父)와 본질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코르도바의 오시우스(Ossius von Cordoba)의 말을 빌려 한 말이다. 그 당시 교회의 쟁점이 된 것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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