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신학용어사전  작성일  2007-05-21
 제목  교의신학(敎義學, dogamatics)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교의신학은 모든 신학을 종합하고 신학의 결론을 제시하는 학문 분야이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교의신학보다는 신약신학이나 실천신학 등에서 더 뛰어난 신학적 업적들이 나오면서, 교의신학에 대한 기존의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신학자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교의신학은 신학의 결정체로서 그 존재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교의신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신학적 특성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1. 교의신학의 의미

 

 1) 교의신학의 시작
 교의신학은 원래 신학이라고만 불렀다. 신학이 실천, 역사, 성서신학 등으로 세분되던 17, 18세기 이전에는 신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교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신학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모든 신학이 교의신학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독자적 학문으로 자리잡기 전에는 모두 철학에 속해 있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신학의 세분화가 이루어지면 신학 앞에 '교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여 교의신학이라는 명칭이 탄생하게 되었다. 교의신학이 다뤄야 할 신학의 부분이 교의라고 특징화된 것이다. 교의신학은 전(全)신학을 포괄하는 신학에서부터 기독교의 핵심인 교의를 다루는 신학으로 변모하면서 출발했다. 신학의 분리는 교의신학에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2) 교의신학의 역사
 최초의 교의신학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렇지만 역사신학자들은 대체로 오리겐(Origen 185-254)을 최초의 교의신학자로 간주하는 것에 동의한다. 오리겐 이후 교의신학은 동방 교회의 신학 사상과 서방 교회의 신학 사상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를 통해 종합되면서 교의신학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중세가 시작되었고, 중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신학대전」이라는 방대한 교의신학적 업적을 남겨 토마스주의(Thomism)를 만들어 냈으며, 존 칼빈(John Calvin)은 「기독교 강요」라는 불멸의 교의서를 통해 종교개혁을 완수해 나갔다. 초대교회로부터 중세까지를 끈질기게 하나의 끈질기게 하나의 끈으로 묶었던 것은 바로 교의신학의 힘이었다. 또한 종교개혁의 불꽃이 일어나고 개신교가 신학적 바탕을 완성한 것도 교의신학적 작업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그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신정통주의의 칼  바르트(Karl Barth)는 「교회 교의학」이라는 거대한 집필을 남겼고,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는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아름다운 문체의 「교의신학」을 남겼다.
 이처럼 교의신학은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구체적인 신학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3) 교의의 의미
 교의신학은 성서를 근복적인 학문의 토대로 삼으면서 동시에 교회가 제정한 여러 교의들을 일차적인 학문의 재료로 삼는다.
 교의란 기본적으로는 고대교회가 제정한 기독교의 근본 진리들을 말한다. 이런 교의들에는 니케아 회의와 콘스탄티노플 회의 그리고 칼케톤 회의 등에서 신조로서 확정된 교의들로서, 삼위일체론과 예수그리스도의 양성론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간의 관계 규정 등이 포함된다. 일차적으로 교의라 함은 기독교가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분리되기 이전에 보편교회가 제정한 기독교의 기본 진리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들뿐 아니라, 개신교의 신앙고백들과 신조들도 교의로서 교의신학의 학문 재료를 구성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그리고 대․소요리 문답 등은 교회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교의는 아니지만 그 신앙의 맥을 잇고 있으므로 개신교회는 교의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교의는 교회가 정한 신조들과 개신교의 여러 신앙고백들로 구성된 교회가 합의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뜻한다.

 

2. 교의신학의 정체성

 

 1) 오직 성서위에서만
 교의신학은 오직 성서 위에서만 그 기초를 쌓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신학은 성서 이외의 교회사적 지식들은 물론 세속사도 신학 하는 재료로 삼는다. 또한 성서신학은 성서 외적인 정치․문화적 요인들을 성서 해석의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실천신학은 그 활동이 장이 성서 밖을 향해 열려져 있다. 그러나 교의 신학은 오직 성서가 말하는 핵심적인 복음만을 취급하고 조직화한다. 결국 교의신학은 신학 중 가장 작은 영역을 다루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취급하는 신학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의신학은 성서가 말하고 교회가 그에 기초해 고백한 것만을 검토, 구성하는 가장 순수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2)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신학
 교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며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신학이다. 물론 다른 신학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특히 교의신학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교회의 구성을 건실하게 하는 역할을 교의신학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기본적인 교의들을 새로운 교회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교회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교의신학이다. 또한 이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신앙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확신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교회의 구성을 건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교의 신학인 것이다.
 교의신학은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정비시켜 줌으로써 교회를 위한 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신학 내에서의 역할
 교의신학은 같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독교의 진리들을 성서를 기초로 검토하고 구성한다. 그러므로 다른 신학들이 연구한 결과들과 신학관 자체를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신학은 오로지 교의신학뿐이다.
 성서신학의 성경 해석이 성서적인 관점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교의신학뿐이며, 역사신학의 역사관이 과연 성서에 어긋나지 않는 것인가를 판단하고 검토할 수 있는 것도 교의신학이다.
 교의신학은 다른 여타의 신학들이 진정으로 기독교적이며 복음적인 길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가를 판단해 줄 수 있는 신학의 길잡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의신학이 올바르지 못하면 다른 신학 분과들이 올바르지 않은 신학관을 갖는 것을 제어할 수가 없다. 자유주의와 복음주의의 기본적인 차이는 결국 교의신학의 내용 차이에서 발생된다고 말할 수 있다. 교의신학은 신학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신학의 방향을 제시하며, 성서를 종합적으로 사고하여 기독교의 진리 내용을 구성하는 학문인 것이다.

 

3. 교의신학의 영역과 활동

 

 1) 교의신학은 방법론
 교의신학은 종합적인 사고를 통해 성서의 단편적 내용들을 종합하며, 복음의 선포들을 성경의 중심 사상에 근거하여 재편성한다. 다른 신학들이 성서의 한 부분이나 한 사실만을 취급하는 반면, 교의신학은 성서의 모든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취급하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교의신학의 종합적 성격은 철학의 종합적이고 분석적 기능과 밀접한 연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철학이 가지는 종합적 사고 방식은 교의신학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면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철학적 사고 방식 전부가 교의신학에 도움을 주거나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교의신학은 철학의 도움을 받아왔으며, 역으로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긴밀한 상호 작용을 해왔다.
 교의신학의 방법은 성서 속에서 다양한 철근과 철골, 벽돌을 끄집어 내어 기독교라는 거대한 집을 짓기 위한 기둥과 골격을 세우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현대에서 요구되는 교의신학의 역할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기독교의 모습이 과거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졌음을 우리는 먼저 상기해야만 한다. 즉 중세를 지배하던 신학의 양상과는 상당히 다른 신학이 현대에선 요구되고 있으며, 근대를 지배했던 이성주의적 신학과도 매우 다른 신학이 요구되고 있다. 신학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철저히 기독교적 본성을 소유하는 교의신학은 과연 현대를 향해 어떤 선포를 해야만 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대인들의 요구에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모습을 진단하고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절실히 필요 되는 치료제를 교의신학이 투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교의신학은 현대에 대하여 더욱더 철저한 기독교적 대답과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제공하고 붙잡음으로써 본연의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의신학은 죽어가고 있는 신학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다운 기독교의 모습이 시들어 가고 있는 현대에 가장 살아나야만 하는 신학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기독교가 기독교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교의신학이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실천신학이 행동과학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교의신학의 뒷받침이 필요하며, 성서신학이 문학 비평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교의신학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현대의 신앙인들이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교의신학의 철저한 점검과 도움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교의신학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종합할 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확증된 기독교 진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객관적 방식을 동원하여 증명하며, 나아가 타종교와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한다.
 사회가 복잡 다단해지면서 교의신학도 단순한 신학 논리 속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적극적인 활동력을 갖춘 기독교 진리가 요청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 교의신학의 역할

 

 1) 기독교의 자기 확인
 기독교는 교의신학을 통해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확인한다. 성서의 다양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종합하여 복음의 진수가 무엇인지, 복음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독교 복음의 타당성은 어떻게 찾아질 수 있는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정리 정돈하는 것이 바로 교의신학이다. 뿐만 아니라, 정돈된 기독교의 진리들이 어떻게 학문적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도 교의신학을 통해서 가능하다.
 결국 기독교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교의신학의 문을 두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2) 기독교의 자기 사명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복음의 내용을 체계화하는 것은 기독교의 자기 확장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즉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복음의 내용을 체계화하고 논리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의신학은 기본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가능케 하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무엇을 전도할 것이며 무엇을 선교지에서 선포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가 교의신학을 통해서 해결된다.
 교의신학이 수동적 역할로서 기독교를 변호 증명한다면, 자기 확인의 역할로서 복음을 체계화, 논리화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아가 능동적 역할로서 복음에 활동력을 주어 선포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교의신학의 분야
 교의신학은 전통적으로 인간론, 신론, 죄론, 종말론 등의 분야를 가진다. 이러한 교의신학의 영역을 전통적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들이 요구된다.
 즉 수동적 역할을 위해서는 변증학이 요구되며, 자기 확인적 역할을 위해서는 교리학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능동적 역할을 위해서는 비교종교학과 교의신학의 뒷받침을 받는 실천 신학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의신학의 영역들은 전통적 영역들과는 사뭇 다른 분야들을 취급하기 때문에 확장적 영역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적극적 교의신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교의신학의 역사와 전개

 

 1) 초대교회
 기독교회가 설립된 최초의 시기엔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질시가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독교의 성찬식을 가리켜 식인의 풍습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고, 성도간에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면서 서로 결혼하는 모습 때문에 근친상간을 원칙으로 삼는 종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단 서구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독교가 들어오던 초기에는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처녀들을 겁탈한다는 잘못된 풍문이 상당히 오랫동안 퍼져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오해들을 풀어주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변증서들이 기술되고 기독교 변증가들에 의해 변증학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야만인들의 종교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헬라 철학을 동원한 변증학이 전개되었으며, 기독교 진리에 대한 자체적 논리화의 노력들도 일어나게 되었다.

 

 2) 중세
 중세가 되면서 상황은 많이 변하게 되었다. 기독교에 대한 모든 오해들이 풀리고 박해가 끝났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사회를 주도하는 사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엔 기독교 진리가 가지는 보편성을 보편적 방식들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신 존재 증명과 같은 논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쓸데없는 관념적 논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쓸데없는 관념적 논쟁들이 많았음도 사실이다. 제정 러시아의 신학자들은 바늘 위에 천사가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가를 논쟁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중세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논리화하고 나아가 기독교 신학의 기본 전제와 공리들에 대한 증명을 시도함으로써 기독교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다.

 

 3) 근세와 현대
 근세와 현대가 되면서 교의신학은 더 다양한 욕구들과 현상들에 부딪히게 되었다.
 사회의 발달과 과학 지식의 증가는 기독교진리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진술되기를 요구했고, 나아가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서 교의신학은 기독교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옹호,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들을 도입하는 한편,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확고히 지켜 나가기 위해 더욱 힘쓰게 되었다. 특히 근세로 들어오면서 해외에 나간 선교사들이 각 선교지에 산재해 있던 종교들의 실태와 현황을 보고하기 시작하면서 교의신학은 타종교에 대한 관점과 기독교만의 독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어야만 했으며, 선교 지침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했으며, 선교 지침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근세와 현대에서의 교의신학은 우선 현대적 지성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했으며, 선교지에서의 다종교 상황에 대해서 기독교적 선교 지침을 내려보내야만 하는 과제 가운데서 활동했다.

 

3. 적극적 교의신학은 왜 필요한가?

 

 1) 선교적 지식으로서의 요구
 교의신학은 선교적 지식의 필요성 때문에 더욱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선교지에서 들어오는 타종교들에 대한 보고와 지침 요구는 두 가지 문제를 발생하게 하였다. 두 가지 문제점이란 첫째, 타종교에 대해서 기독교가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이며, 그 종교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둘째, 기독교만의 독특한 진리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변호하고 증명하며 선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비교종교학이 교의신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고, 변증학과 교리학이 더 굳건히 요청되었다.
 결론적으로 선교적 지식의 요구 때문에 교의신학은 그 영역을 확장,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기독교의 문화적 사명
 기독교는 수도원적 종교가 아니라 수도원적 정신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변천하는 사회와 문화의 모습에 대해서 기독교는 성경에 입각한 문화적 대답을 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다.
 다원화된 현대의 문화 현상에 기독교가 기독교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선 기독교는 다원화되는 현상을 정확히 분석, 판단할 수 있어야만 하며, 분석된 현상에 가장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현대를 분석,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대철학과 역사에 대한 분석과 아울러 다종교 상황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즉 교의신학은 기독교적 역사관을 제시하고, 철학의 전제들을 교의적 측면에서 분석해야 하며, 비교종교학을 통해 타종교를 분석해야한 한다. 또한 현대 문명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을 하기 위해선 기독교의 교의들을 변호, 증명함은 물론 다시 점검하고 정리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교의신학은 이런 모든 작업을 담당하는 신학으로서, 현대 문화적 측면에서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3) 지식적 대답의 요구
 현대는 과학 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런 현대적 흐름은 기독교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다시 말해 현대는 기독교에 관하여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기독교의 과학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학적 질문에 대하여 과학적인 방식으로 대답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적인 선포와 기독교적인 논리화로 대답할 것인가를 기독교는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19,20세기의 이성주의의 물결 속에서 이성적으로 대답하고자 하다가 기독교의 진리성르 상실하고 자유주의라는 사생아만을 낳았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 유사한 시대 정신에 의해 다시 질문 받고 있으며 이제 대답해야만 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과학적인 현대의 질문에 대해 적극적 교의신학이 결정하는 대답 방식과 대답 수준에 따라서 기독교는 현대와 담을 쌓을 수도 있고, 현대에 의해 동화될 수도 있으며, 현대 속에서 현대를 다스리며 찬란한 빛을 낼 수도 있다.
  현대의 과학성과 과학적 대답의 요구 때문에 적극적 교의신학을 요청하고 있으며, 따라서 교의신학은 여전히 신학의 핵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전통적 영역에서의 교의신학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적극적 교의신학도 전통적 교의신학을 근거로 하고 내용으로 하여 신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통적 교의신학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무기력하고 무의미할 수도 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통적 교의신학만이 아니라 적극적 교의신학도 발벗고 나서야만 할 것이며, 전통적 교의신학은 교의신학의 적극적 활동을 깊이 있게 점검하면서 함께 동행해야 할 것이다.

 

 



   


A-Z




  인기검색어
kcm  339680
설교  172948
교회  126144
아시아  100433
선교  96455
세계  86694
예수  83795
선교회  73886
사랑  70087
바울  69260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