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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5-17
 제목  신약성경과 헬라어
 주제어  신약성서
 자료출처  도서출판 예루살렘 / 강재성  성경본문  
 내용 헬라語의 역사적 배경

헬라어의 고대와 중세언어를 Greek 또는 Hellas라고도 하며, 그리스의 현대언어는 Ellas 또는 Romaic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고대의 헬라어에는 삼대(三大)지방언어, 즉 "Doric"과 "Aeolic" 그리고 "Ionic" 등이 있었으나, 그 중에 "Ionic"계통의 아테네 지방 방언(方言) (Attic 또는 Attica 언어)이 아테네(Athens)의 화려한 산문(散文)과 더불어 헬라의 대표적 언어로 성장하게 되고, 따라서 아테네가 정치, 문화, 교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소도시국가로 급성장했다. 이러한 결과로, 아테네의 언어, 즉 헬라어가 점차 지중해를 중심으로 헬라어 통용권 세계(the Greek-speaking world)를 형성해 나갔다. 사실, 이 아테네 언어(Attic-form Greek)가 그처럼 큰 영향을 미치게 한 배경에는, 아테네의 歷史家 투기디데스(Thucydides, 460?-400?, B.C.), 철학자 푸라톤(Plato, 427-347 B.C.), 웅변가인 데모스데네스(Demosthenes, 384-322 B.C.) 등 천재적 석학(碩學)들이 공헌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테네제국이 이웃,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Peloponnesian War, 431-404 B.C.)으로 국력이 쇠퇴되고, 마침내 마케도니아왕국의 필립大王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테네의 언어는 오히려 정복자의 언어가 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마케도니아가 찬란한 아테네의 문화에 압도되어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교사가 아테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음은 당시의 그리스 문명의 위력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급속하게 강대해진 알렉산더 大王은 전 동방(全東方)세계의 군주로 군림하였으며, 이것은 곧, 마케도니아의 무력의 승리인 동시에, 헬라어의 승리가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알렉산더 대왕에 굴복하는 모든 나라들은 이 아테네의 헬라어를 사용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로, 알렉산더 대왕이 급속하게 죽게 되어(323 B.C.) 제국이 분열되었으나, 분열된 왕국들의 법정과 행정분야는 여전히 그리스 왕국이나 다름없이 헬라문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케도니아가 주변국들을 정복한 것이 동방세계에 헬라문명을 확산시키는데 공헌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B.C. 4세기경, 로마제국이 지중해의 소아시아를 또한 침략하고도, 오히려 그곳에서 꽃피우고 있는 헬라문화와 헬라언어에 정복당한 결과가 되었다. 방대한 로마제국의 東方지역은 헬라語가 행정부의 공식언어로 사용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에서도 로마제국의 자국어인 라틴어 보다 훨씬 더 큰 비중과 영향력을 차지했다. 이런 과정에서, 세기경부터 헬라어는 하나의 세계 통용어로 자리를 굳히게 되고, 여러 국가들은 자국어와 병행하여 헬라어를 일상용어로 사용하였다. 로마제국 내에서도 헬라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상당수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로마서)을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로 쓴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the Koine"의 헬라

헬라어가 로마제국과 小아시아 세계에 확산되고 하나의 세계어로 성장하면서, 그 대가(代價)를 치르게 되었다. 즉, 헬라어가 당시에 새로운 세계로 통일시키는데 하나의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그 본래의 문체가 미묘하고, 다소 불명료한 언어 형태로 변형되어 간 것이다. 그것은 문화와 생활양식이 서로 다르면서, 정복자에 의해 혹은 자발적으로 의사 전달의 언어 수단이 된 헬라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자연히 쉬운 형태로 굴절(屈折) 되어진 것이다.

본래, 아테네 언어와 산문(散文, Attic Prose)은 강렬한 애국심과 찬란한 문화적 전통으로 뭉쳐진 소도시국가 아테네의 정신적 생활을 잘 표현해주는 문체이다. 그러나, 알렉산더시대 이후부터 아테네 언어(Attic Speech)가 더이상, 정신적 집단이던 아테네 사람들만의 언어로 존속될 수 없었으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의사전달의 매체로 발전되는 새로운 세계적 언어(Cosmopolitan Language)가 되면서, 그 본래의 아테네풍 언어(Attic Dialect)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소위, "the Koine"라 이름부쳐진 헬라語 문체가 탄생되어진 것이다. "Koine" (영어의 "common"이란 뜻) 즉, 다양한 인종과 국가들간에 의사전달 매체(Common Medium)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Koine"시대는 A.D. 500년경까지 계속 되었다.


신약성경은 "the Koine"로 기록된 것이다.

신약성경은 바로 이 "Koine"시대에 기록된 것이다. 언어학상으로 "70인역 구약성경"(the Septuagint) 즉, 70인 ?역(譯)으로 알려진 헬라어 구약성경이며, B.C. 3-2세기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있던 헬라어 사용의 유대인집단(Greek-speaking Jewish Commuinty)을 위해, 지파에서 括?장로들이 선발되어 히브리어 원문의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된 것으로, 이 恝?성경과 세기경에 기록된 "사도교부집(使徒敎父集)"문헌 등은 신약성경과 매우 근접한 "Koine"의 문쳬로 되어있으나, 이 세 개의 그룹 가운데서도 신약성경의 언어가 가장 쉬운 문체로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상의 언어수단은 "사도교부집" 문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문체가 아테네 산문(散文)의 저자들, 즉 투키기데스, 푸라톤, 데모스테네스 등의 두드러진 작품처럼 화려한 문체로 된 것이 아님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며, 그 이유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단순히 신약성경이 아테네 산문작가들 세기나 늦게 쓰여졌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비록, 신약성경이 기술된 동시대의 희랍작가 플루타크(Plutach, 영웅전을 쓴 역사가) 등의 작품과도 다른 것이다.

신약성경의 문체와 문형이 셈족언어인 히브리어 및 아랍어의 강한 영향을 받은 "유태계-헬라어"라는 가설이 주장된 바도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이집트 등지로부터 그 정확한 회답을 찾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Koine"가 나름대로 독특한 형태의 학문적인 소양(素養)을 갖춘 문어체(文語體)인 것으로 학자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발굴된 많은 고문서(古文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Koine"가 세련된 언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구어(口語) 그 자체로, 비문학적(非文學的, non-literary) 언어인 것이다. 그래서, 더러는 의사표현에 미숙하고 불명료한 어휘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Koine" 시대의 플루타크 작품 등에서 볼 수 있는 문학적인 언어와 또 하나는 일상생활에 널리 통용된 언어로 이원화(二元化)되어, 훌륭한 저술가들은 아테네 형식(Attic Form)의 언어만을 모방하여 인위적인 문학전통을 유지한 반면, 비문학적(非文學的)인 파피루스 고문서(papyri)의 미천한 작가들은 그 무엇도 모방함이 없이, 단순하고 꾸밈없는 평범한 언어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신약성경의 언어도 여러 견지에서 볼 때, "Koine"시대의 문학적인 차원과는 다른, 비문학적 고문서(non-literary papyri)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약성경이 헬라어가 통용되던 어느 도시에서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단순한 대중언어로 기술되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문학적인 작품이 아니다

헬라문화를 비롯하여, 인류문화 역사상 남겨진 훌륭한 작품들은, 그것이 문학적인 것이든 또는 철학적인 것이든 그 모두가 인위적인(artificial) 화려한 문장으로나, 논리적인 추리와 이론으로 전개하여, 그 의도하는 바 주제(主題)에 대하여 잘 표현하고 묘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나 철학가의 이론이라 할 지라도, 그 평가기준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가치척도(價値尺度)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서, 영국의 중세기 작품들 중 밀톤(John Milton)이 쓴 "실락원"이나, 베이콘(Francis Bacon)이 쓴 "학문의 진흥" 등은 당대최고의 명작들이며, 또한 그들은 각기 영국 최고봉의 시인이요, 수필가였다. 이들은 또한, 당시의 상류 지식층들을 위한 Latin語로 작품을 써서 최고 수준급의 작품들로 차별화 되었다. 여기에 비교하여, 이들과 동시대 희곡작가인 세익스피어(Shakespear)는 대중작가로서, 그의 모든 작품은 서민층에 애용되는 영어로 쓰여졌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일반대중을 위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은 대중적인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온 세계인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오고 있는 반면, 밀톤의 "실락원"이나, 베이콘의 "학문의 진흥" 등은 한 시대에 국한된 작품으로서, 우리에게 공감을 주지 못해, 한낱 고전(古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시대마다 전개되었던, 뛰어난 철학적인 그 많은 이론들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이 상실되고, 때로 그것이 한낱 궤변으로 평가절하 되는 것이 허다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어떤 평가기준에도 구애되지 않으며, 담고있는 내용자체가 어느지역이나 시대성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이 인류가 존속하는 한, 또 인종과 관계없이, 하나님과 인간, 즉 창조주와 피조물, 혹은 구원자와 피구속자(被救贖者)와의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깊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 동시에, 인간의 영적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성경은 작품적 목적으로나, 인위적(人爲的)인 문학적 문체로 쓰여진 것이 아니며, 미사여구(美辭麗句)의 화려한 수식어로 엮어지지 않은것은, 그러할 필요성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계-헬라어(Jewish-Greek)의 사투리가 아닌, 그 시대의 자연스럽고 평범한 생활언어로, 구원의 메시지(message)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록자들이 구약성경의 강렬한 영향을 받고있는 유대인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70인 역(譯) 헬라어 구약성경"의 언어상 표현 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70人譯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물과 심오한 정신세계를 묘사하기에 적합한 헬라어 어휘(語彙)를 발굴하는데 크게 공헌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어휘가 신약성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신약성경에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경 구절들은 바로 이 "70人譯 구약성경"에서 대부분이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신약성경 기록자들은 모태(母胎)종교인 유대교의 지극히 율법적이고, 경직된 사상에서 벗어나,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성령강림으로 거듭나면서, 새 生命과 새로운 확신을 경험하는 일대전환기에 있었으며,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신령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본래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확신과 신령한 경험을 통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의 일상적인 평범한 언어는 이상한 힘과 감동을 주는 말로 변했다. 이러한 연유로, 비록 신약성경에 사용된 언어가 화려한 문체가 아니고 단순한 생활언어 일찌라도, 거기에는 새롭고 심오한 사상을 표현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케하고, 그 범상적(凡常的)인 언어 자체도 형언키 어려운 어떤 다른 차원의 범주(範疇)로 바뀌어 진 것이다.

더우기, 히브리서(저자미상)에서 보여주듯이, "Koine"의 평범한 언어수단으로 세련된 문학적 수준과 수사학적(修辭學的)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시에, 그 문체는 헬라산문(Attic Prose)의 전형(典型)을 이루고 있으며, 저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호소와 신실성(信實性)으로 정신적, 아니 영혼의 예술로 승화(昇華)시킨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신약성경의 언어는 화려한 문체로서가 아니라,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생활언어로 기술되었으나, 그 표현하고 있는 사상이 심오(深奧)하여 감동적이며,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면서, 곤경과 궁핍 속에서도 박해 당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이, 감사와 찬미를 할 수 있는 마음을 솟구치게 할 뿐 아니라, 십자가의 도(道)를 깨우쳐 새 생명의 소망(所望)을 갖게 하는 영적인 말씀의 책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攝理)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섭리의 기묘함은 인간이 가히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다.
첫째로, 신약성경이 "the Koine"의 헬라어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미리 예정된 신비로운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테네의 소도시국가를 중심으로하여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를 미리 꽃피우게 하시고, 그런 연후에 주변의 마케도니아 및 로마제국 등의 강대국들에 의하여 헬라文化와 언어를 온 주변의 마케도니아 및 로마제국 등의 강대국들에 의하여 헬라文化와 언어를 온 주변세계에 확산시키면서 "Koine"라는 알기 쉬운 평범한 문체(文體)가 생겨나게 하여, 이것을 "cosmopolitan"적인 세계언어로 통용되게 하여 인종과 언어의 벽을 허물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그밖에 많은 이방인들이 쉽사리 이 문자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시점에서, 성경이 바로 이 문자로 기록되게 하심으로써, 로마제국과 소아시아의 지중해 세계로 급속한 복음전파와 더불어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기독교가 동방세계와 서구세계 문명(文明)의 모체가 되어진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가정(假定)하여, 국가와 인종간에 문화적 교류가 아직 발달되지 못한 그 시대에, 이러한 cosmopolitan적인 통용언어가 없이, 저자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로 성경이 쓰여졌다면, 초대교회는 물론, 그 이후 시대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는 지극히 부정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신약성경 저자들이 복음서와 서신을 기록한 동기와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갖게된 이러한 성경책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며, 아니, 그 보다도 그들의 메시지가 먼 훗날 세계 방방곳곳에 전해지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권의 명 명(히브리서를 바울 사도가 쓴 것이 아닐 경우)으로, 모두가 년 동안에 걸쳐 기록된 것이며(A.D. 50-96) 그 후에 기독교의 다른 문헌들과 구분하여 "칼타고 종교회의"에서 수 차례 회의를 통하여 정경(正經, Canon)으로 결정되기까지(A.D. 397) 소요된 기간이 약 350년이 걸린 것이다.

이렇게 이룩된 성경책 저자들이 쓴 동기와 목적을 몇 가지 예로 살펴본다면, 복음서는 각 저자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요약하면 (1)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여, 그의 십자가의 구속(救贖)사업을 믿게 하고, (2) 예수님 당시의 주요인물과 목격자들(사도들을 포함하여)이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이들 생전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의 메시지를 成文化시켜, (3) 새로운 성도들의 회심과 또 예배에 사용하고자 한 것이며, 이 모두가 당시의 초대교회를 위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누가 복음서 및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두 편을 기록한 목적이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인들을 위한 것이며, 또 당시 고관이던 "데오빌로"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깊은 지식을 주기 위해 이 서신을 보낸다(눅 1:4, 행 1:1)고 했다.

바울 사도가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로마서)은 "로마교회에 말씀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그 방문 길을 열기 위함과 또 그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롬 1:8-11)고 되어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기 전까지, 에베소에서 설교와 가르치는 일과 저작에 전념하면서 요한복음서를 썼으며,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특히 초심자들을 위해 쓴 것으로 되어있다.

바울 사도가 각 교회와 동료 사역자들 및 그의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들이나,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여러 교회에 보낸 회람(回覽式) 서신(베드로 전·후서, 여러 교회가 회람식으로 돌려가면서 보게 한 것임) 모두가 기록될 당시의 동기와 목적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그때의 정황으로는 모든 성도와 사도들까지도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극한적인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죽음을 목전에 둔 박해 속에서 먼 훗날의 세대를 생각할 마음의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초대교회만을 위한 메시지로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또한 바울 사도의 서신이 바울 개인의 비망록(備忘錄)으로 되게 하심도 아니었다. 신약성경 저자들의 당초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기록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히 남게 하시어, 심오하고 고귀한 사상을 전달하는 메시지로 승화시켜 듣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화 감동케 하고, 영적 진리를 깨우쳐 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샘"으로 비유되듯이 갈한 영혼에 생명수가 되게 하심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저자소개/ 강재성
저자 약력_____________________

* 1934년 경남 진해 출생
* 고려신학교 졸업
*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주) 국제상사 전무이사(수출사업 본부)
* (주) 중원상사 대표이사
* (주) 두풍산업 설립 및 대표이사

저서로 '예수님은 땅에 무엇을 쓰셨을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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