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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1999-08-02
 제목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2.22~1860. 9. 9)
 주제어  [독일] [철학자] 1809년 괴팅겐대학
 자료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독일 철학자. 그다니스크에서 1788년 2월 22일 부유한 은행가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영국·프랑스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일이 그의 세계관·예술관에 영향을 주었다. 또 작가였던 어머니 요한나와의 불화·대립은 그의 여성에 대한 혐오와 멸시의 한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1809년 괴팅겐대학에서 철학과 자연과학 연구하고 회의주의자 G.E.슐체에게서 철학을 배웠다. 그가 배운 플라톤과 I.칸트의 사상은 인도의 베단타철학과 함께 그의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학위논문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의 4개의 근거에 대하여(1813)》와 J.W.괴테의 색채론에 자극받은 《시각과 색채에 대하여》라는 저서를 완성했으며, 이어서 주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를 발표했다.

 

1820년에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헤겔과 경쟁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 인기가 높았던 헤겔에 맞서 그와 같은 시간대에 자신의 강의 시간을 배정하는 등 그와 경쟁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헤겔과의 경쟁에 실패하자 낙심하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여행이나 저술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20대 후반부터 30세에 이르러 완성한 이 저서는 그 당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이 저서로 인하여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의 사강사(私講師)가 되었다. 베를린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G.W.F.헤겔과 대결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가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된 것온 51년의 《여록(餘錄)과 보유(補遺)》라는 말년의 저서였으며 이에 대한 높은 평가는 1848년 3월 혁명의 패배에 따른 독일의 일종의 폐색상황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는 1833년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여 살다가 1860년 9월 9일 폐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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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 종교철학 >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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