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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신학용어사전  작성일  1993-05-14
 제목  소명(라:vocatio, 영:calling, vocation, 독:Beruf)
 주제어  calling vocation 회개 봉사
 자료출처  KCM  성경본문  창 3:14-19
 내용 기독교 신학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회개하고 믿으라는 소명과 세상에 있는 이웃에게 봉사하라는 소명이다. 여기에서는 후자를 취급하려고 하며, 특히 일상생활의 일과 연관시키려고 한다. 전반적으로 구약성서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창세기 3:14-19은 일이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한다고 자주 해석되지만,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한 그 이전의 말씀은, 구약성서 전체에 수없이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정직한 일은 칭찬을 받고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는 구약성서의 특징인 일상생활의 일반적인 긍정을 반영한다. 신약성서는 실질적으로 히브리적이므로 일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태만을 정죄해가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일의 종교적 중요성에 대하여 신학적 반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세상의 임박한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에는 신성한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자는 수도원 생활과 사제의 생활과 관계가 있고, 후자는 비교회적 생활과 관계가 있었다. 비교회적 소명은 타락한 세상에서 죄의 억제를 위한 하나님의 자연법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 중요성의 가치를 전적으로 떨어뜨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종교적 봉사는 교회 안에서 가장 잘 수행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금욕적인 수도원 생활은 성생활과 자식의 의무를 하는 결혼생활보다 더 높은 소명으로 간주되었다. 결논적으로 중세시대에는 일상생활의 일을 통하여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을 종교적 중요성으로 인상적인 신학적 반영을 하지 않았다.

또한, 중세의 보편적인 종합이 수도원 생활과 사제의 직분을 높임으로 일상적인 일과 세속적인 직업의 가치를 떨어뜨렸는가의 문제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혁명적인 사회적 결과를 가져온 서양문화에 일의 독특한 개념을 제공했다고 사회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주장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은 신성한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보다 더 유용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루터의 견해는 인간의[인격]과 그의 [직분]을 구별하였다.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고, 후자는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의미했다.

의인화된 사람은 생활에서의 역할이나 소명이나 신분을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성취할 수 있었다. 이 신분들(예를 들면 남편, 아내, 사업가, 젖짜는 여자 등)은 자연법의 확실한 구체화였으며, 이러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는 것이었다. 루터의 견해에 대한 영향은 어떤 특수한 고로의 교회적 혹은 종교적 소명을 빼앗고,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유혹하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고, 모든 유용한 세속적 소명을 적극적인 종교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했다.

어떤 역사가들은 루터의 견해를 복고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가 태어날 때 받은 소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을 종교적으로 시인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칼빈은 다른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떤 소명의 무용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했다. 칼빈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표시로 그 사람의 소명을 세계적인 성공으로 유발해서, 현대 자본주의의 "작업윤리"를 위하여 놀라운 자극을 주었다. 이것을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세속적인 일을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한 종교개혁자들은 서양사회에 역동적인 요소를 소개했다.

현대적인 기술과 대량생산의 등장으로 일반적인 근로자들은 따분하고 단조로운 일을, 특히 주인에게 혹사당할 때는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기 에는 더욱 더 어려웠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론서의 노동은 생산을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고용주에 의해서 간주된다고 주장했을 때, 그의 견해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윤리학자들에게 무서운 도전이 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영국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이 도전에 대응했고, 그 후에 미국에서 사회복음 운동의 지도자들과 교화 레오 13세와 피우스 11세가 대응했다.

역설적으로 종교개혁의 원리에 충실하다고 자처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에 무관심하거나 그 불공평을 옹호했다. 이 개혁운동 이후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은 소명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들은 재산, 국가의 역할, 노동과 관리의 권리와 의무, 결혼, 전쟁, 그리고 관계되는 문제들에 관하여 글을 썼다. 천주교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연법의 이론으로 취급하고,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실용주의 입장과 상대적으로 한정된 공익의 입장에서 취급한다.

> 참고 항목 : 기독교 윤리. 사회복음. 사회윤리. 아가페와 에로스. 율법과 복음. 자연법.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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