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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J. W. 허스트(Hirst, Jesse Watson. 許時泰, 許濟, 1864-1952)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세브란스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세브란스의 제2인자


J. W. 허스트(Hirst, Jesse Watson. 許時泰, 許濟)는 1864년 12월 24일 미국 마사추세스주에서 출생하여 1890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했다. 1893년 필라델피아 제퍼슨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9년 존스 홉킨스 대학 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뒤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0년부터 4년간 제퍼슨 대학에서 조직학, 산부인과 진단학을 강의했다.

1904년 9월 13일 미국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로 내한하여 같은 해 9월 23일 세브란스(Severance)병원의 새 건물이 신축된 때부터 에비슨과 함께 전담 의사로 봉직 했다. 왕과 고관의 건강을 보살피는 시의(侍醫)와 군의(軍醫)로도 활동했다.

이때 에비슨은 주치의, 허스트는 부주치의로 임명되었다. 가마를 타고 다니던 그 시절에 고종황제는 그에게 특별히 인력거를 하사하여 교통수단으로 제공해 주었다.

이만열은 <한국기독교의료사>에서 “고종은 일본에서 새 인력거를 하나 더 주문하고 허스트에게 전용 인력거꾼을 붙여주었다. 에비슨과 허스트는 세브란스에서 가르치고 진료하는 일 외에도 시내의 화자들을 방문 치료하는 등 당시의 일과는 아침부터 저녁 8-9시까지 이어졌는데 전용 인력거가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했다.

1906년 세브란스 간호사양성학교 설립 때 실즈(Shields)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1907년 9월 9일 ‘한국의료선교사 협회’가 창립될 때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11년 의학교육의 전문화 과정에서 산부인과 주임교수로 활동하고, 1915년에는 진료사업의 입원실 책임을 맡았다. 그 후 세브란스 병원장(1925-1927)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병원 발전의 기틀을 닦아, 의과대학 교수로서 의사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

1934년 3월 30일 많은 공적을 남기고 퇴임했다. 연세대학 교직원과 동창들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허스트 흉상’을 헌정”했다.

그러나 <연세대학교사> 조차 “그의 공적보다 더 큰 에비슨의 그늘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세브란스의 제2인자였다. 그는 남대문교회에서 에비슨 부부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교인들을 지도했다. 귀국 후 북 캐롤라이나주(Durham)에서 거주하였으며, 1952년 4월 28일 플로리다 주에서 별세했다.



◇ 개성의 여성 개척 선교사 H. S. 허스트와 그 자녀들


할보 새디 허스트(Hirst, Harbaugh Sadie, 1875-1928)는 1875년 3월 28일 미국 일리노이주 록포드(Rockford)에서 출생했다. 1901년 3월 4일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J. W. 허스트보다 앞서 내한하였다. 개성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송도학교 ♠냄?기여했다.

1907년 3월 11일 J. W. 허스트와 서울에서 결혼한 뒤 미국 북장로회 소속으로 바꾸고 세브란스 간호원 양성소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등 남편의 의료 선교에 협력했다.

1928년 2월 19일 서울에서 53세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마-16)에 안장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 바탕의 돌에 대리석을 붙여 꽃병 모양으로 조각된 묘비에는 개성(송도)의 개척 선교사이며, J. W. 허스트의 부인이다.

“일하고, 사랑하고, 고난 받으며, 승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Having labored, loved and suffered she entered into glory triumphantly)”, “자녀들은 축복의 소산(Her children rise up and call her blessed)"이라 쓰여 있다. "

한편 그 옆 자리에는 허스트 부부의 딸 캐롤(Carol)의 스크롤로 조각된 묘비(마-17)가 있다. 그는 1920년 11월 15일 4살의 나이에 서울에서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이밖에 허스트 부부의 자녀로서 1907년 11월 6일 서울에서 사망한 아미(Hirst, Amy)와 1908년 8월 2일 사망한 조엘(Hirst, Joel)이 양화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묘지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계속될 것이다.

또한 해리 로드의 에 의하면 허스트 가족으로 "제시(Hirst, Jessie M.), 리챠드(Hirst, Richard W.) 및 도날드(Hirst, Donald V.)가 미국에 거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화진 제1묘역 “마열”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파송되어 1904년부터 1934년까지 세브란스 병원에서 30년간 산부인과 주임교수, 병원장 및 왕실의 부주치의로 활동한 J. W. 허스트 선교사 가족 묘지가 있다. 그의 부인 할보(Harbaugh)와 딸 캐롤 (Carol) 등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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